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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어느 지역의 한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한 아줌마가 있었습니다. 이 아줌마는 아이들이 자신을 놀리기 때문에 그에 반응하는 거라고 우겼는데, 문제는 그 반응이 아이들을 욕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칼을 들고 나오거나 파이프를 질질 끌고 다닌다거나 하는 수준이어서 우리에게 제보가 왔던 거죠. 지적장애가 미약하게 있었던 그분은 외모도 좀 험악해서 아이들이 겁낼 만도 했습니다.

하지만 짖궂은 애들 중 일부가 징그럽게 아줌마를 놀리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후배를 취재 내보내고 봉고차에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몇몇 6학년(추정)들이 작전회의(?)를 하는 게 들렸습니다.

"네가 사이코 **년아 라고 할 때 사이코가 쫓아오면 내가 저쪽 골목에서 사이코 **년아 여기야. 라고 시선을 끌께..." 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결국 내막은 그렇더군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아줌마를 압도할 만큼 커 버린 고학년들 중 일부가 아줌마를 끈질기게 놀려 대고, 쉽게 도망가 버리고, 결국 아줌마는 멋 모르는 병아리 저학년들을 독수리처럼 쫓았던 것이죠.

가장 가슴 아픈 건 그 아줌마의 딸이 그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취재를 시작한 지 0.5시간 만에 그 아이가 심각한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걸 금새 알아챌 수 있었지요. 운동회를 하는데 보니 단 한 명과도 말을 주고 받지 않은 채 의자에 붙박혀 있다가 집으로 가 버리는가 하면 친구들이 오면 주차된 차 뒤로 숨었다가 미적미적 나오기도 하는 모습이 얼마나 안돼 보이던지요.

허리띠로 아이들을 두들겨 팬다는 그 아버지와 딸의 학교 친구들을 뒤쫓느라 정신이 없는 어머니, 그리고 "엄마 교육 잘 시켜라"는 핀잔을 들으면서 완벽히 왕따가 된 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교에 이 사실을 알리고 (알리고 라기보다는 공유하고가 맞겠죠. 학교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함께 해결을 해 보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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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과 학생주임 선생님은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아이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까지 말씀을 하셨지요. 어떻게든 함께 대책을 세워 보자고 중지가 모아지는데 교장이 끼어든 다음, 분위기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났어요.

아이와 상담을 해 보니 아이가 아무 문제가 없고 부모님도 아이를 사랑하며 구타당하지도 않고 엄마의 기행 때문에 조금 속상한 정도일 뿐이라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왕따도 절대로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가 허리띠로 아빠 뿐만 아니라 오빠한테까지 맞는다는 건 그 엄마가 우리에게 해 준 얘기였고 담벼락에 바싹 붙어 친구들을 피하는 아이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본 터에 학교측의 상담(?) 결과는 어이가 남아나지 않았는데 급기야 아동 보호 기관의 상담까지도 거부하고 나설 때는 어처구니 실종 신고라도 하고 싶어지더군요.

이유는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를 상담시킬 까닭이 없으니 교내 상담을 하려면 부모님 허락을 받아 와라."는 겁니다.

아동보호법과 교원법상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에 해당합니다. 아동학대 가해자의 태반이 부모인 현실에서 아동 학대에 해당하는 정황을 발견하면 즉시 아동 보호 기관에 그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법적으로 정해져 있지요. (교원법 제 19조) 헌데 허리띠를 휘두른다는 아버지와 왕따의 직접적 원인이 된 어머니에게 상담 허락을 받아오라는 개념과 터무니가 동시에 없는 말을 내뱉는 교장 앞에서는 아마 석굴암 본존불도 벌떡 일어나 '갈~~'을 외쳤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참아야 했지요.

아이가 6학년이니 전학을 시키기도 뭐하고 (사실 아이도 학교 잔류를 원했고요) 학교를 무자비하게 까 버리면 그 학교에 남은 아이는 뭐가 되겠습니까. 어떻게든 좋게 좋게 설득을 해서 '함께 노력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게 하려고 발버둥쳤어요.

어쩌면 이 사태의 원인이 된 아이들의 아줌마 놀리기를 막는 데에도 학교측의 특별한 협조가 필요하기도 하였구요. 그래서 솔직히 우리 부장이 알면 나를 한 대 때릴지도 모르는 거래(?)를 제안하기까지 했습니다.

학교측의 잘못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이 사태를 지역 사회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하는 가운데 중요한 한 축으로 기능하는 모습으로 방송의 내용을 잡겠으니 협조해 달라고 한 거죠. 하지만 학교는 그마저도 거절했습니다. 그때 교장이 황당한 얘기를 했죠. "아이를 죽이려는 겁니까?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이 발언의 근거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별 문제 없는 아이가 방송을 타게 되면 완전히 왕따가 되니까 하지 말라"

적어도 겉으로는 우리나 교장이나 아이를 무진장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도 둘 다 고개를 끄덕였을 겁니다. 하지만 둘의 입장 차이는 확연했지요. 저는 아이 문제 뿐 아니라 어머니를 포함한 제 가족들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문제가 있으면 덮을 게 아니라 드러내서 해결해야 한다는 PD 입장이었고, 교장은 드러내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었겠죠. 문제는 이 두 입장을 소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 학부형들을 설득해서 학교로 들여보내도 봤고 학교 운영위 부모님들까지도 모셔서 사태를 설명한 후 교장과 만남을 갖게도 해 봤습니다. 하지만 교장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속내를 드러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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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학생 수가 주는 동네의 학교에 이런 일이 있다고 방송 나가면 다 전학 가고 전학 오지도 않습니다." 즉, 교장의 관심은 아이를 겨냥하는 듯 하면서 전혀 다른 쪽을 겨누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저희를 물리치기 위한 연막이며 "아이를 죽이려 하느냐"는 질문은 "내 임기 중에 왜 이렇게 귀찮게 구느냐?"의 분장이었던 겁니다.

학부모들의 설득이 무위로 돌아간 뒤 교장실을 찾았을 때 교장은 "내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보라~"면서 상담 노트를 가져 왔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 그 상담의 흔적을 자기 손으로 펼쳐 보여 주더군요. "자 봐요, 학교의 좋은 점! 이젠 아이들이 놀리지 않는다."

놀리지 않아서 좋은 학교? 저는 그 순간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의심한 정도가 아니라 옆의 조연출이 이상하지 않냐고 따질 때까지 말문을 열지 못했을 만큼 얼이 빠졌습니다. 수십 년 교직에 몸담지 않고는 이를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한 교장이라는 작자의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이제는 놀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답변을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머리 위로 헤매는 얼을 다시 머리 속으로 우겨 넣고서 "안 놀려서 좋다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물었을 때 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놀려야 좋겠네 그럼?"

어느 날 문제의 딸 아이가 집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밥을 못 먹고 왔다는군요. 어떤 남자애가 쓰레받기에 먼지를 받아서 그 밥 위에 뿌려 버렸다네요. 그런데 애 아버지가 또 황당한 소리를 합니다. "애 신발을 감춰 버려서 애가 맨발로 오고, 또 그 전부터 애들이 툭툭 건드린다 그래서 학교에 갔는데 담임 선생이 전학가라고 그러더군요. 아직 전세가 1년 남았다 그랬더니 친척집은 없냐는 겁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가 다시 발바닥으로 갔다가 다시 머리털로 올라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확인을 위해서 지겹지만 할 수 없이 학교로 갔습니다. 자초지종을 고한 후 교장실에서 담임을 기다리기 30분, 도무지 오지 않아 밖으로 나가자, 이번엔 교장이 놀랍니다. "안 갔어요?"

우리의 방문 사실을 들은 후 그냥 튀어버린 겁니다. 다음 날 우린 또 찾아가서 마침내 드디어 앳 라스트, 파이널리, 그 담임을 만났을 때 그 사실을 따지니 이렇게 답을 합니다. "4시 40분 종례 이후는 제 시간입니다. 말도 없이 간 건 미안합니다."

혈압강하제는 이럴 때 먹는 건가 봅니다. 담임은 전학 권유 따위는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 뗐습니다. 안 했다는데 경찰마냥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럴 수도 없는 거죠. 그래서 아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다음은 그 대화록입니다.

"아이가 왕따라는 사실을..."

"왕따요? 왕따 아니라니까요. 개인적으로 애들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혼자 있어 보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아니... 걔 뿐이 아니라 혼자 다니는 애들 꽤 있어요."

"이 아이가 상담이나 도움이 필요없는 정상아동으로 판단하셨다구요."

"남한테 피해를 안 주면 되잖아요. 혼자 약간의 그런 스트레스를 받는 거는 현대인의 울타리에 갇혀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있는 거예요..."

이때 저는 지금까지 제가 이 학교와 소통해 보려고 그 발버둥을 쳐 왔다는 것을 뼈 속 깊이 후회했습니다. 그래도 학교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며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여 보다 나은 사람으로 길러내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교사들이 있는 곳이라 여겼고, 방송을 피하는 것이 단지 학교의 명예나 자신의 이력에 흠이 날까 하는 우려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그 아이를 감싸고 싶은 측은지심의 발동의 결과로 보려고 애써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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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소통할 수 없는 상대와 소통하려 했음을 깨달았어요. 대답 없는 학교를 설득해 보려고 학부모들을 모시고 브리핑하느라 쉰 목청도, 사람을 기다리게 해 놓고 말도 없이 사라지는 무례함을 온순하게 참아낸 인내심도 개 발에 편자로 짓이겨졌음을 알았지요.

이미 마음에 딴 생각을 굳게 먹고 어떻게든 이 순간만 모면하면 만사가 순탄할 것이며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말든 우리 결론은 이것이며 내 임기 내에는, 내가 맡은 반에서는 어떤 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개인과 집단 앞에서 소통의 노력이란 얼마나 헛되고 또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된 일일는지요.

소통의 시작은 소통의 상대를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 하지만 벽을 두드린다고 문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소통은 계속 되어야겠죠. 방송에서 저는 학교 죽이기를 나름 최소화했습니다. 명확한 사실 관계와 꼭 필요한 인터뷰 외에 감정적인 편집은 자제를 했지요. 이유는 단 하나.

아이가 계속 학교를 다니고 싶어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학교의 이름이나 선생의 신상명세 쯤은 몇 시간이면 알아내는 그 무서운 네티즌 과학 수사대 NSI를 출동시키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는 악착같이 노력했지요. 제가 느낀 그대로 편집했으면 그 학교 교장과 담임은 아마도 곱게 넘어갈 수 없었을 겁니다. 제 능력을 과장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감춰 준 사실만 해도 꽤 되거든요. 당장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냥 사라져 버리고 "4시 40분 이후는 내 시간"이라고 우긴 것도 빼 줬으니까요.

다행히(?) 큰 파문은 없었습니다. 뭣보다 아이를 위해서 다행한 일이지요. 그러나 "뭐같은 PD가 와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면서 이만한 것이 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릴 학교측을 상상하면 지금도 가슴에서 청룡언월도가 시퍼렇게 날을 세웁니다. 그 시퍼런 것을 화면에 싣지 못한 게 아쉬워지기도 해요.

그래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소통이 그것이었다고 애써 자위합니다. 그걸 알아 주지 않아도 어쩔 수 없지만, 아이에 대해서는 여러 길이 열릴 수도 있지 않겠어요? 최소한 아이에 대해서 만큼은 이전과 같이 무심하지는 못하겠지요. 아동 보호 기관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할 테고, 지역 사회의 눈도 전 같지는 않을 거니까요.

이제 그 아이도 스무살이 넘었겠네요... 잘 지내고 있을까. 궁금해집니다 쓰레받기에 먼지 담아 도시락에 뿌리는 악동들의 괴롭힘에서 자유로워졌을까... 문득 생각이 납니다.







산하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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