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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외인부대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갔다.

외인부대 홈페이지에 각 도시의 모병소 주소가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파리에 있는 모병소로 지원하기로 했다. 영어도, 불어도 못하는 나는 외국의 온라인에 있는 정보를 번역기를 거쳐 얻거나 가뭄에 콩나듯 숨어있는 한국 온라인의 정보를, 그 마저도 사실인지 확인할 길 없는 정보들을 최대한 수집했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 없이 모든 걸 가서 확인 한다는 생각으로 비행기표를 구하고 짐을 쌌다.

금요일 18시45분 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을 하고 지체없이 모병소로 향했지만 익숙치 않은 지구 반대편에서의 초행길인지라 이것도 썰을 풀면 두 세 페이지는 나올법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모병소에 도착한 시간은 00시00분쯤.

굳게 닫혀 있는 철문 앞에서 그때 다행이 부대로 들어가는 외인부대원이 있어서 그가 벨을 누르고 함께 들어갈 수 있었다. 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작은 건물이 덩그러니 있었고 전면이 유리로 덮힌 데스크와 그 안에서는 한 사람이 앉아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한국 군대의 위병조장 역할 같아 보였다. 함께 들어간 외인부대원은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위병조장에게 지원자라고 말해주는 듯 보였다.

그런데 위병조장이 안 된다는 말을 했다. 전달이 제대로 안 됐나 싶어 내가 직접 입대하러 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시 안 된단다. 영어를 전혀 못하고 프랑스어로만 뭐라 떠드는 위병조장. 영어를 해주는 외인부대원을 통해서 무슨 말인지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것도 변역기를 통해서.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부터는 주말이니까 월요일에 다시 오래"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는 부대 안으로 들어가고 나 또한 돌아 가려는데, 이 시간에 부대로 복귀하는 외인부대원들이 꽤 있었다. 나의 영어 실력과 번역기를 신뢰할 수 없기에 그 중 세 명의 무리에게 다시 한 번 물어보았는데 그들은 친절하게 알려주었고 같은 대답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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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보내달라고 조르는 내게 위병조장은 이 쪽지를 던지곤 문을 쾅! 닫아 버렸다.
뭐라고 쓴 건데;;

자정이 넘은 시간. 도로를 소음으로 메꾸는 폭주족들을 보고 노숙할 마음은 접고, 또 한 번의 우여곡절을 넘어 겨우겨우 숙박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1박 70유로 에다가 시설은 거의 다락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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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토요일)

전날 피로가 쌓이고 새벽 늦게야 잠을 잤지만 긴장된 탓인지 아침 일찍 눈을 떴다. '외국에서는 모든게 쉽지가 않네. 내가 여기서 잘해 나갈수 있을까...' 걱정스런 마음이 가슴에 뭉쳤지만 쉼호흡으로 날려버리고 나갈채비를 하는 것 외에는 별 수가 없었다.

오전 10시쯤 호텔을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외인부대에 한번 더 찾아갈 생각이었다. 어젯밤 찾았던 그곳을 향해 다시 걸어가는데 날이 밝고 다시 본 그곳은 꽤나 아름다운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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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아침부터 운동을 했는지 츄리닝 차림에 줄넘기를 들고 들어가는 외인부대원을 따라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는데 외인부대원은 아닌듯한 차림새의 낮선 남자가 또 나를 뒤따라 들어왔다. 위병조장 앞에서 다시 입대하러 왔다고 했지만 예상했던 대로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나를 뒤따랐던 남자가 위병조장에게 영어로 뭐라고 길게 말을 하자, 위병조장은 뭐라 씨부려가며 짜증을 냈는데 딱 한 마디 알아들었다.

"only french!"

그 역시 외인부대 지원자임을 알 수 있었는데 둘이서 어쩌지 못하고 난감해 하고 있을 때, 짧은 금발의 백인 외인부대원이 운동복 차림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낮선 남자가 말했다.

"영어 할 줄 아시나요? 저희 좀 도와주시겠어요?"

지나가던 외인부대원은 불어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며 우리를 도와주었다.

"오늘과 내일은 주말이니까 월요일 오전 8시 이후로 다시 오랜다."

그러고선 우리에게 번갈아 묻는다.

"도전자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good"

그는 만족스런 미소와 함께 한 마디를 남기곤 가던 길을 갔다. 길을 나서야 하는 건 나와 낮선 남자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간단한 대화와 허탈한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길을 걸었다. 그는 미국인 이라고 했다. 함께 걸어가다 나는 옆에 있는 공원의 벤치에서 생각 좀 해야겠다니까 그도 따라와서 함께 앉았다.

힘겹게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다면 그도 나처럼 어제 프랑스에 오자마자 부대에 들렸지만 안 된다는 말을 들었으며 근처에서 노숙을 했단다. 나는 혹시나 생길 긴급상황에 대비해 한 달짜리 선불유심을 준비해 왔는데 그는 스마트폰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주말 동안 어디 갈 곳도 없다고 했다.

당장 급하게 주말 이틀 동안 묶을 숙소를 알아봐야 했다. 대화를 중단하고 폭풍과 같이 격렬하게 검색을 시작했다.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외국인 호스텔은 연락처를 알아내도 영어로 예약을 해야 하기에 패스하고, 한국인 숙박업소를 찾아나섰다. 만실이다, 여자만 받는다 등등 몇 곳을 거쳐 괜찮을 것 같은 한인민박을 알아내 연락한 결과 남는 자리가 있다며 오라고 했다.

옆에 있는 미국인에게 말했다.

"한인 호스텔을 알아냈어. 같이 갈래?"

"좋아"

그렇게 함께 지하철에 몸을 싣고 도착해 몸을 뉘었다. 바로 옆 침대인 그가 말을 걸었다.

"이름이 뭐야?"

알려줬지만 제대로 듣지도 발음하지도 못했다. 나도 물었다.

"브라이언. 나이는 몇살이야?"

내 나이를 알려주니 깜짝놀라며 한마디 더 던졌다.

"리얼리?"

브라이언의 눈엔 내가 나이보다 엄청 어려보인다고 했다. 그는 22살이라고 했다. 한인민박의 유일한 외국인인 그에게 부침개와 삼겹살을 먹여가며 2박3일을 보냈다. 편안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도전을 시작해야 하는 월요일 아침이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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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일찌감치 눈을 뜨고 브라이언과 눈을 마주쳤는데. '준비됐어?'라는 말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어나서 세안을 마치고 짐을 싸고 아침밥을 기다렸다. 부스스한 여행자들이 식당에 모여 별 말 없이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바로 가방을 들고 민박 이모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길을 나섰다.

한 번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거라 아주 쉽게 갈 수 있었다. 오늘은 크고 묵직한 철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자동차들도 활발히 들락거리고 같은 색의 반팔과 반바지를 입은 외인부대원 무리가 밖으로 구보를 나갔다가 돌아오고 있었다.

세 번째로 위병조장 앞에 섰다. 브라이언이 영어로 말을 하자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시간을 기다렸는데 위병조장이 건물 왼쪽에 있는 문을 열고 나오더니 손가락으로 부대 안쪽의 또 다른 건물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들어가봐"

라고 말하고선 그가 무슨 버튼을 누르니 안에 또 하나 있는 철 구조물에서 '철컥!' 소리가 났다. 철 구조물에는 철로 된 회전문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걸 연 거였다. 우리는 회전문을 밀고 안으로 가서 그가 가리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상당히 넓은 공간에 온통 외인부대 의복과 장식품으로 치장돼 있었지만 조잡하지 않고 정돈돼 있었고. 책상과 컴퓨터는 하나씩 있었다. 책상 건너편에 백인이 군복을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여권을 달라고 말하고 우리를 앞의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브라이언에게 A4용지 한 장과 앞에 놓인 외인부대 홍보 팜플렛 영어판을 권했고 나에게는 잠시 생각하더니 중국어판 팜플렛을 건넸다. 둘러봐도 한국어 텍스트는 보이지 않았기에 차라리 영어판을 달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A4용지 반 만한 하얀 종이도 우리 둘 다 받았는데 온통 영어로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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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을 입은 그는 우리의 여권을 컴퓨터에 옮겨 적었고. 그 사이 우리는 방금 받은 종이들을 훑어봤다. 할 일을 끝마친 그가 영어로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나는 다시 어딘가로 찾아 가라는 것만 알아들었지만. 영어를 하는 브라이언이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듯 했다.

그는 모니터에 지도를 띄워 경로를 설명해 주고 우리가 받은 작은 종이를 가리켰는데 거기에 찾아가야 할 곳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외인부대 공식 웹사이트에 있는 파리모병소 주소는 내가 찾아온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에 그 주소를 올려 놨으면 번거롭지 않았을 것 아닌가... 따질 수도 없고 따져 뭐하겠는가. 다시 길을 나섰다.

브라이언이 설명을 제대로 들은 덕분에 근처 역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타야 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파리의 아름다운 도시를 감상하며 20분쯤 갔을까? 익숙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글에 외인부대를 검색하면 대표적으로 나오는 이미지. 거대한 돌담에 뚫린 입구 위에 legion etrangere 라고 적힌 모병소의 입구를 지나쳤다.

브라이언을 쳐다봤을 때 그도 알아채고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재빨리 빨간 버튼을 누르고 정류장에서 내려 다시 십분 정도를 되돌아가니 묵직한 돌담 입구가 다시 보였다. 우리와 반대편에서 지원자로 보이는 사복차림에 중간 크기의 가방을 든 백인 한 명이 다가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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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드디어 이 유명한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심호흡은 했지만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앞장 서 문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돌담은 아주 높고 두꺼웠고, 입구 안에도 아주 넓은 공간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대편의 초병 2명도 우리쪽으로 다가오는 터라 양쪽의 거리가 상당히 가까워졌는데도 반응이 없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join in legion etrangere!"

초병이 대답했다.

"어디서 왔냐?"

"한국"

"여권 내놔라. 가방에 칼이나 총 같은 무기 있냐?"

"없다"

"벽에 붙어 서라. 핸드폰 있냐? 꺼라"

이 과정을 세 명 모두 거친 후 바로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구 안쪽 벽에 뚫려 있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엔 적당한 크기의 방에 자판기와 정렬된 의자가 많이 있었고 화장실도 따로 있었다. 셋이 들어가 앉은 지 얼마 안 돼서 또 한명이 들어왔다. 동남아 쪽 친구로 보였다.

들어와서 어쩌라는 건지 말은 없었지만 대기하고 있으면 된다는 걸 분위기상 알 수 있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보려다가 집중이 안돼 덮고 낮선 남자 네 명이서 말 한 마디 없이, 시간을 재지는 않았지만 체감상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무료한 시간을 보냈을 때, 두 명의 백인이 더 들어왔다. 한 명은 과묵한 느낌. 다른 한 명은 실실 웃는 표정에서 까불거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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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