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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세 봄, 열심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부모님과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많지 않은 돈으로 패기 있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무척이나 외로웠지만 즐겁기도 했던 유학생활을 글로 옮겨봅니다.




1. 유학을 결심하다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에 들어갔다. 첫 사회생활이다 보니 초년생의 ‘야루키(やる氣. 하려는 의욕)’로 나름 열심히 일했던 거 같다.


2000년대 후반 건설경기가 좋을 때였다. 내가 일하는 분야도 일이 너무 많았다. 평일엔 밤 10시 전에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고, 새벽에 택시로 귀가한 적도 많았다. 주말출근도 한 달에 반은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울기도 했고, 새벽에 택시로 귀가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다양한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경험이고 추억이지만 그 땐 항상 분노에 차있었다. 나름 멀쩡한 대학 나와서 뭔 개고생인가 싶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창의적인 일을 했었고 평생 그럴 줄 알았는데 회사는 그렇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일하는 게 너무 싫어서 불만 많던 시절이었다. 회사 3~4년 차가 일도 제일 많이 배우고 고비도 많을 때인데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곤 개인작업 및 전시 등에 빠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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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좋아보이던 관광객 시절에 찍은 사진. 야나카 근처.


그러던 어느 날, 일본에 출장을 갈 기회가 생겼다. 대학생 때 전시 때문에 한 달 정도 체류한 적이 있던 곳에 3년 만에 간 것이다. 다시 간 일본은 처음 갔을 때처럼 너무 좋았다. 친절하고 깨끗한 분위기에 매료당했고, 아무도 나를 모른다는 사실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자연스럽게 일본 유학을 알아보았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본 일본 미술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던 차였다. 늦더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다. 혼자 간사이 여행을 다녀온 뒤로 본격적으로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 유학준비


유학준비는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평일엔 회사 일이 바빠서 아무 것도 하지 못했지만, 주말에는 무조건 강남 및 종로의 유학원을 돌며 상담을 받았다. (중간에 스페인 혹은 독일로의 유학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스페인은 가본 적이 없는 터라 감이 안와서, 독일은 학위를 따려면 몇 년 걸리겠다 싶어서 포기했다)


차곡차곡 자료를 수집한 뒤, 가고 싶은 일본어학교(어학원)를 정했다. 이를 또 유학원에서 상담하며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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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학교는 이런 느낌


유학을 준비할 때 중요한 건 체계적인 계획이다. ‘A를 한 다음에 B를 하자’고 계획을 할 땐 A가 안 되었을 때를 대비해 대안으로 C를 찾아 놓는 등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는 게 좋다. 나는 아예 ‘유학공책’을 만들어서 메모를 했다.


일본어학교 선택 시 고려해야 할 사항


- 유학목적: 일본어 공부 / 진학 / 취업 / 이민 등

- 지역: 도시일수록 접근성은 높지만 물가가 비싸다.

- 학비

- 재정상태

- 학교 시설 및 특징: 교육의 질, 교직원, (학원의) 재정상태, 진학률 등

- 기타


이외에도 두 가지를 고려했다.


① 한국 사람이 별로 없는 곳

일본에까지 가서 한국어를 하(는 환경에 놓이)면 일본어가 늘지 않을 거라는 판단 하에 외국인이 더 많은 곳으로 갔다. 한국인이 많이 없어서 외롭긴 했지만, 반대로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어서 좋았다.


② 학비가 조금 비싸더라도 공부를 빡세게 시키는 곳

나는 강제성이 없으면 공부를 안 한다. 매일매일 시험을 보는, 엄하게 다스려줄 곳으로 선택했다.


일본어학교를 정한 뒤엔 서류수속 등을 도와줄 유학원을 정했다. 규모가 크지 않아도 나와 맞고, 경험이 많은 분이 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유학원이 필요 없을 수도 있지만, 당시 회사원이었던 터라 유학원을 통하는 게 편하고 안전했다.


보통 유학원에서는 비자/어학원 신청, 기숙사 상담, 노하우 전수 등을 해준다. 물론 선택과 서류준비는 개인의 몫이다.


준비해야 할 서류는 본인서류와 보증인서류(보통 부모님)로 나뉜다.


[본인서류]

등본 / 기본증명서 / 가족관계증명서 / 여권사본 / 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서 /

최종학교졸업증명서 / 학생: 재학(휴학)증명서 / 직장인: 재직(경력)증명서 /

일본어 학습 증명서 / 사진 12매


[보증인서류]

은행잔액증명서(4000만 원 이상) / 근로소득원천징수 or 소득금액증명원 / 도장


이외에도 유학원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준비해가면 유학원에서 비자신청을 대행해준다(보통 어학원도 신청해준다). 비자는 유학비자 기준으로 학기시작 4-6개월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다음은 기숙사를 정하는 일인데, 유학원에서 예산에 맞게 잘 찾아준다. 도미토리 기숙사부터 원룸, 투룸 등 옵션이 다양하니 예산과 기호에 맞춰 잘 선택하면 된다. 중요한 건 처음 3개월 분의 집세를 선불로 내야 한다는 것!


이와 함께 한국의 일본어학원에 등록했다. 일본에 관심 있는 것에 비해서 일본어를 못했던지라 히라가나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말이 나와서 그런데, 일본어는 웬만하면 한국에서 많이 배우고 가야 한다. 바보처럼 기초만 하고 일본에 가도 현지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실력이 일취월장할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오자마자 일본인 애인이 생긴다면 빨리 늘 수는 있겠다). 일단 많이 알고 가면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말을 할 수 있으니 확실히 더 빨리 는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등을 많이 들어서 귀를 빨리 트는 게 좋다. 좋아하는 드라마의 대사를 달달 외워도 많이 늘 것이다. 리스닝이 돼야 스피킹이 된다.


이렇게만 보면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 같지만 준비 과정에서 부모님과 트러블이 있었다. 유학을 강하게 어필했음에도 부모님은 서른이 다 되어가는 자식이 유학을 가겠다는 것에 반대하셨다. 뉴스로 보는 해외의 간접경험이 전부인지라 ‘외국에 가면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을 하셨기에 항상 언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에 너무 지쳤던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너무 못됐지만 “유학비용 도와주는 거 아니면 내 뜻대로 하겠다!”고 하고 유학을 강행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아빠에게 죄송한 마음뿐이다.



3. 유학자금 준비


준비해야 하는 것 중 제일 중요한 게 ‘자금’이다. 회사에서 번 돈은 솔직히 생각한 것보단 적었다. 평소 돈을 펑펑 쓰는 편이 전혀 아니었지만 생활비 및 월세, 통신비 등을 혼자 해결해왔고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만 했으니, 모아둔 돈이 많을 리가 없었다. 일본에 가기 6개월 전부터 허리띠를 졸라매며 자금을 마련했다.


① 주말알바: 여태껏 해본 알바라고는 미술학원 강사가 전부였지만 처음으로 서빙알바를 했다. 평일엔 회사를 가야하므로 주말 밖에 없었다. 강남역의 파스타 집에서 알바를 하면서 난생처음 점장한테 일 못한다고 욕을 먹기도 했다. 이게 뭐하는 짓일까 생각이 들면서도 일본에 가면 한동안 돈을 벌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열심히 일해야 했다.


② 프리랜서: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책자에 삽화 그려주는 일, 벽화 그리기 등 내 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갔다. 추운 겨울날 손을 벌벌 떨며 벽화를 그리는 일도 있었지만, 다른 알바보다는 돈을 많이 버는 편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지금은 집안사정이 좋아졌지만 당시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유학가려고 모은 돈을 부모님께 드리면 가계에 큰 보탬이 되었을 테지만, 마음 약해지면 진짜 갈 수 없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을 무릅쓰고 떠나기로 했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돈


◎ 어학교 비용
◎ 기숙사 비용
◎ 일본 생활비 몇 달치: 초반에는 돈을 벌수 없다. 6개월 이후로는 현지 알바로 충당

-> 6개월 학비 + 3개월 기숙사 + 3개월 생활비 정도는 준비하는 게 좋음.


◎ 1년 후 대학원에 입학할 경우 필요한 학비: 국립대학에 붙는다는 전제로 해당하는 돈만 가져갔으나 결국 집에 조금 손을 벌렸다


이러다보니 떠날 날이 가까워졌다. 신변정리를 하면서 친했던 회사동료 및 친구들과 송별회를 하느라 3키로나 쪄버렸다. 모두 일본 가면 못 먹으니 많이 먹어놓으라고 해서 마구마구 먹었던 것 같다. 주책맞게 울기도 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가기 전 며칠 동안은 우울했다. 특히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고 죄송스러웠다.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지금도 이 때 생각하면 또르르….

드라마에서만 보던 공항에서의 작별을 끝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4. 일본어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4월에 입학 예정이라 3월 중순에 일본에 입국했다. 일본어학교 오리엔테이션 및 일본생활에 필요한 서류 준비(재류카드, 국민건강보험 등), 통장 개설(여권, 재류카드, 인감 필요. 6개월 이상 거주자에게 발급해주는 경우가 많음) 등을 하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생활에 대해서는 차차 다룰 예정이다.


*재류카드: 일본에서 3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카드로 신분증처럼 쓸 수 있다. 거주지 등록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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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 일본국민은 물론 3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도 드는 보험이다. 직업이 없다고 하면 보험료가 저렴하다.



일본어학교의 중간레벨 반에 들어갔다. 앞서 말했듯 한국인이 거의 없는 학원이라 20명 정도인 반에 한국인은 나포함 단 둘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왔다고 했다. (평범한 집안에서 유학 온 나와 달리 정말 부자인 친구도 있었다. 아니면 국비로 유학올 만큼 엘리트인 친구도 있었고.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고 온 24~26살이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친구들도 몇 있었다. 그래도 나이개념이 없어서인지 윗사람보단 친구로 잘 지냈다. 유학을 끝낸 후 많이들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반에 한국인이 단 둘이어서 단점도 많았지만 장점도 많았다. 한국어를 거의 쓸 일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영어나 짧은 일본어를 썼는데, 덕분에 빨리 늘었다.


일본어학교에서의 공부
*내가 다닌 학교는 대학 및 대학원 진학중심의 학교여서 다른 학교에 비해 늦게 끝났고 학습량도 많았다.


나의 하루 일정


오전: 6시 기상 ▶ 점심 도시락 준비(나중엔 사먹음) ▶ 씻고 준비하며 일본어 리스닝 CD듣기 ▶ 자전거로 학교(3~4분 거리) ▶ 한자 테스트 후 오전 수업 ▶ 점심식사

오후: 오후 수업 시작 ▶ 15시 30분 하교 ▶ 집에서 꿀잠 ▶ 17시 30분 기상 ▶ 저녁식사 ▶ 20~22시 공부 ▶ 수면


한국에선 회사 다니면서 야근만 했는데, 일본에선 공부도 하며 낮잠을 잘 수 있는 게 너무 편하고 좋았다. 오랜만에 펜을 잡는다는 설렘에 공부도 더 잘 되는 것 같았고, 실제로도 집중력이 최고였다.


공부는 말 그대로 ‘모두의 일본어’ 교재인 <민나노니혼고(みんなの日本語)>를 기본으로 했다. 보통 부록CD를 무시하는데, CD를 들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좋다. 모든 수단을 이용하자. 늦은 나이에 유학을 갔다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어린 나이에 온 사람하고 배우는 속도가 같기 힘들다.


한국에서 일본어 공부를 더 하고 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다면 일본어학교를 6개월만 다녔어도 대학원 진학이 가능했을 거다(아닐 수도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이득이었을 텐데,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나의 어학교 생활


모든 공부의 기본은 예‧복습을 철저히 하는 거다.

다음 비자에 많은 영향을 끼치니 출석은 절대적으로 중요

뽕뺀다는 심정으로 선생님께 질문공세를 하자. 한도 내에서는 성심성의껏 알려준다.

‘보란티어’에서 회화력을 높이자. 학교에서 하는 회화는 기초 수준이기도 하고, 일본어학교 선생님은 학생들을 위해 아주 천천히 말하기 때문에 현실에 적용하기가 조금 힘들다. 가끔 구청이나 시청에서 ‘보란티어’라는 걸 하는데, 거기에서 그 동네의 어학 자원봉사자들과 무료 혹은 아주 저렴한 돈으로 회화공부를 할 수 있다(친구도 될 수 있고). 구청이나 시청 홈페이지 혹은 직접 가서 정보를 얻도록 하자.

파티 및 기타 노는 것 자제한다. 어린 친구들도 많고 타국에 혼자 떨어져 산다는 자유에 밤마다 파티를 하거나 몰려다니며 술을 먹고 다니기도 한다. 친목을 위해선 나쁘지 않지만 여유가 없다면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학교에서 하는 파티는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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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원 시절 참가했던 마츠리(祭り)


유학준비부터 어학교에 들어가는 것까지 호로록 지나간 것 같은데, 다음엔 유학'생활'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바야


편집: 딴지일보 챙타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