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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CA라는 게 있다. '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의 약자이며 다카라고 부른다. 내가 아는 만큼은, 아니 보통은 그 이상을 다른 사람들도 알 거라고 생각하기에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키로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릴 때 부모를 따라와 본의 아니게 불법 체류자(이제는 서류 미비자라고 부른다)로 지내고 있는 청소년들을 구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프로그램이었다'로 역사에 남게 될 예정이다.


6개월의 유예기간 후 이 프로그램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트럼프가 선언했기 때문이다. 워낙에 거센 여론이 들끓고 있어 6개월 후 진짜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이도저도 아닌 상황으로 지지부진 시간을 끌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체제가 강구될 가능성도 있다) 어쨌건 현재는 그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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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마흔줄 들어 뒤늦게 주립대(CSU)를 다니고 있다. 이게 꽤 큰 이슈여서 부총장으로부터 다카 학생들을 최대한 도울 거라며 전체 이메일이 발송 되었고, 어제의 클라스에서는 교수가 여기에 대해 얘기하자며 다음날 이 이슈로 학교의 스탭 회의가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고 각자의 입장들에는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이유들이 있다. 미국의 이민 이슈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첨예하게 서로의 입장들이 대립하고 있고 이 이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민자인 이상은 아무도 없다. 조금 더 당당한 사람, 조금 더 아쉬운 입장인 사람은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옳고 그름을 얘기할 생각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나 많은 세월을, 긴 시간을 들여 얘기하다 보니 이제는 지쳐버렸다. 무기력해졌고, 어느 순간 포기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다.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만으로 위가 쓰리기 시작해서 급 졸려오기까지 한다. 이 글 역시 꾸벅꾸벅 졸면서 쓰고 있다. 단지 쓰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말이다. 심지어 아직 저녁 6시인데.


단지 두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모두 한국인이다. 내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1)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우리 일자리와 온갖 혜택을 빼앗아 간다. 택스 내고 일하는 우리만 너무 억울하다. 여기에 더해 추방까지 시키자. 한국으로 가라.


2) 다카 신분을 유지하던 지난 몇 년 동안 방안도 마련 안 하고 뭐 했나. 결혼했으면 될 것 아닌가. (다카는 합법 신분이 아니라 단지 추방 유예 정책이다. 불체자임은 변함 없으며 245i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 한 결혼 밖에 구제 될 방법이 없다.)


더 이상 논쟁할 기운이 없어 급격히 더욱 더 졸려온다. 다카는 몇 십년 된 정책이 아니다. 불과 4,5년 된 정책에 떳떳한 시민권자들이 일자리를 빼앗겨 왔다면 창피한 일이다. 불체자들이 받는 혜택보단 트럼프가 안 낸 세금이 훨씬 더 많을 테지만 이것만으로도 다른 주제의 이슈가 될 만한 논쟁거리기에 여기선 다루지 않는다.


결혼에 이르면 더욱 더 한심하다. 신분 얻으려고 결혼 하는 게 더욱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내가 바보인가. 사랑하는 사람이 시민권자라면 해피엔딩이다. 그러나 결혼이 신분 얻자고 할 수 있는 일이었나. 결혼이 사랑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더 이상 순진하게 생각진 않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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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지지자들은 저소득 백인 남성들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자기 집 가진 중산층 이상의 한국인들 70% 이상이 트럼프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 좋아한다기 보다는 정확히는 트럼프가 그들에게 우월감과 재산 증식의 기회를 가져다 주고 있다고, 그러기를 바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많은 그들이 한국의 상황에선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하고 미국에선 트럼프를 지지한다. 당장의 이익과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내가 틀렸기를 바란다. 단지 내가 그런 형편없는 바닥에 살고 있어 그리 보이는 것 뿐이라고.


한국의 언론들에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그 이민자들은 더이상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니 너희나 나가라고. 그 말도 일리 있는 말이다. 불법은 나쁜 것이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 개인의 사정을 모두 헤아리며 국가 정책이 시행될 수는 없다.


단지 세 가지만 말하겠다.


1) 그 혜택을 받았던 이들이 교육 기간, 혹은 직업 트레이닝 기간을 거쳐 이제 제대로 세금을 지불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세금 많이 나간다고 그들을 쫓아낸다고 한다. 미국도 그들에게 투자 많이 했다. 참아주느라 애썼다. 지금껏 그들에게 들어간 돈이 아깝다고 생각한다면 그 돈을 거둬들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이다. 일을 하게 하고 세금을 왕창 거둬들이는 것이 더 실용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허상인 걸까.


이건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범주에서 벗어나는 이슈라고 생각한다. 그다지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는 아니지만 멀쩡한 미국 주립 대학교의 한 클라스 40여명 전부가 본인, 혹은 그 부모들이 이민자 출신이었다. 본인 스스로 멕시코 이민자 출신인 교수는 너희들은 어디서 왔니?로 수업을 시작했다.


남미, 중국, 베트남, 한국 등의 수 많은 나라들을 거쳐 우리는 한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듣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특히 LA 지역이라 더욱 그렇긴 하다. 그러나 백인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소들만 미국인 것은 아니다. 이미 전 미국 인구의 1/3이 유색인종으로 구성이 되고 있고 트럼프가 말하는 Great America에 그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불체자 쫓아내고 그 혜택을 너희들에게 주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마지막 칼끝은 결국 너희를 향할거란 말이다. 난 그것이 두렵단 말이다. 백인 동네에 사는 것, 백인 친구 있는 것이 자랑인 소수의 내 동족들아!


2) 전 정부의 정책이 특별한 숙고나 사유 없이 단지 (90% 이상의 확률로) 전 대통령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현 대통령의 장난질에 의해 난도질 당한다. 이것은 미국이 아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세련되고 싶어하고 매너 있고 싶어하던 평범한 이들의 민낯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예전엔 창피해서 차마 말 못하던 반 이민, 반 저소득층 정서를 더 이상 감추지 못하고 스멀스멀 드러낸다.


대통령 선거 이전 오바마가 싫어  공화당을 지지하던, 그래도 트럼프는 창피하다고 말하던 친구가 바로 일주일전 나는 불체자와 메디칼 환자가 싫다고 말했다. 그래서 "트럼프가 좋아?" 라고 물으니 머뭇머뭇, 그래도 작은 소리로 "응", 하고 대답한다. 지금의 시스템이 미국이 잘 나가던 시기에 셋업된 것이라 아무래도 덩치가 너무 커져서 어려운 시기인 지금 부작용이 많이 나고 있나 보다. 고쳐야 할 점은 있겠지만 나는 이 상황이 옳다고 생각지는 않아. 하고 작은 소리로 대답하고는 그 자리를 수습했다.


그런 이슈를 이제는 내가 먼저 피해간다. 나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다. 촛불을 들 용기도 없으며 전투적이고 싶지도 않다. 나는 비겁해졌고 기성 세대가 되었으며 그냥 지쳤고 마냥 졸리다. 그 친구와 나는 이십년지기다. 뭔가 통하는 점이 있어 그 오랜 세월을 함께 했을 텐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 왜 내가 오랜 친구 앞에서 죄인같은 어색함을 느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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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이건 시작일 뿐이다. 공화당이 좋지만 트럼프는 아니라던 친구는 이제 조용히 트럼프를 지지하기 시작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조용히 내재돼 있던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정책을 시작으로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드라마들이 펼쳐질 수 있을지 헤아릴 수 없다. 트럼프의 주 지지층이라는 저소득 백인 남성들이 불체자들 직업이나 빼앗아 던져 준다고 만족할리 없지 않은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결국 그 마지막 표적은 너희들이란 말이다. 많이 배웠고 가진게 있기 때문에 더더욱 너희 것을 빼앗아 백인들에게 안겨줄 것이란 말이다. 바보들아.


3) 역시 이민자들인 많은 한국인들이, 영어보다 한국말이 더 편한 이들이 특히 이렇게 말하더라.


"Go back to your country."


그게 말처럼 쉽냔 말이다. 젠장!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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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haleyeli


편집 : 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