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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염색을 시작했을까?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30대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찍부터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에 비해 백발이 되는 시기가 빨랐던 것 같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주름살은 거의 없었지만 머리는 백발에 얼굴은 불그스레한 인상이어서 – 일본 원숭이가 떠오른다면 매우 불경스러운 생각이다만 – 주위 사람들에게 “김영삼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으셨다고 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수를 하다 문득 거울을 보았을 때 흰머리가 부쩍 늘어난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전설에 의하면 천자문을 지은 주흥사(周興嗣)가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야 했으나 마지막 4자를 짓지 못하여 고심하고 있는데, 홀연히 귀신이 나타나서 어조사 언재호야(焉哉乎也)의 마무리를 알려주었으며, 완성한 후에 보니 머리털이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백수문’(白首文)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직장 초기, 나름 스트레스를 받았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흰머리가 늘었겠지만 그것을 발견했을 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시인 바이런은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하지만,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흰머리투성이가 되어 있었다.”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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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흰머리는 꾸준히 늘어 –그리고 직장의 스트레스도 꾸준히 계속되어– 한때는 파마도 해보고 (별 짓 다 해봤지만) 했지만 마흔이 되기 전부터 염색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초기에는 두 달에 한 번 하던 것이, 어느 샌가 한 달에 한 번이 되고, 그러다 보니 이발할 때마다 염색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패턴이 되어 버렸다. 매번 웃돈을 주고 염색하는 것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턴가는 염색약을 사서 직접 염색하게끔 되기도 했고...


어느날, 커피를 마시며 “염색하는 것도 귀찮아서 못 할 일이야.”라고 푸념을 하자, 한 자리 건너 앉아 있던 동료가 혼잣말 비슷하게, “에휴, 난 물들일 거라도 좀 있어봤으면 좋겠어.”라고 푸념을 하던 생각도 난다. 그 동료 왈, “내가 이래봬도 스무 살 때는 앞 가르마 타고 다니던 사람이야.”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했었는데 당시에는 이미 탈모가 상당히 진행되어 머리를 감으면 (아니, 빨아서 널면) 옆으로 길게 넘겨서 이마를 가리기 바빴고, 바람 부는 날 외근하는 걸 무지하게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 물 들일 거라도 있으니 다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 있을 때는 한동안 염색을 안 한 적도 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전체적으로 반백의 헤어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당시 모시던 사장은 머리가 반쯤 벗겨진 사람이었는데, 나름 탈모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는지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대머리는 병이 아니야.”라고 항변한 적도 있었다. (누가 병이라고 했나?) 아무튼, 백발을 하고 다니니 곤란한 점이 있었는데, 사장을 모시고 어디를 가면, 호텔 벨보이가 나에게 먼저 문을 열어주지를 않나,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분명히 내가 가장자리에 앉아 있음에도– 나에게 먼저 밥을 갖다 주고는 해서 곤혹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게 다 내가 잘 생겨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다) 사장은 별반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고깝게 생각하는 티가 역력했다. 결국, 1년 정도 지나서 다시 염색을 하고 다녔다.


일본사람들은 콧수염을 기르고 다니는 건 일상다반사이고, 나이 먹은 중년임에도 장발을 한다든지, 노란 물을 들이고 다닌다든지, 어쨌든 개인의 용모에 대해서는 굉장히 자유스러운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째 한국사람은 아랫사람이 윗사람보다 배가 많이 나와도 건방지게 보이고, 좋은 차를 끌고 다녀도 싸가지 없어 보이고, 심지어 흰머리가 많아도 백안시 당하는지 지금도 좀 이해가 되지 않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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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고 2~3년쯤 지나고 나서도 근 일 년여를 염색 안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당시 내 소속부서가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분위기라 용인되기는 했지만, 역시 불편한 점은 있었다. 예를 들어, 정장에 넥타이 매고 한 손에 서류가방 들고 출근하면 정문에서부터 경비들이 거수경례를 붙이는 통에 민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물론 잘 생기고 풍채도 좋은 사람이 흰머리를 하고 있으니 임원이라고 착각할 만도 하기는 하다, 이게 다 내가 잘 생긴 탓이다) 그렇다고 그 경비를 붙잡고, “저기 내가 임원이 아니고 그냥 직원인데요.”라고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번은 직장 내에서 족구시합이 있다고 해서 흰머리를 휘날리며 공격수로 뛰었더니, (나를 모르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아니 왜 그쪽은 임원이 직접 나서서 공격을 하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동료들이 말을 전해주길래 한층 민망하기도 했다. 또 한번은 머리를 자르러 당시 유행하던 블*클럽이라는 곳을 갔는데, 젊은 처자가 머리 자르다 말고, “연세에 비해서 피부가 매우 좋으세요.”라고 해서 '읭? 연세?' 몇 살로 보이냐고 했더니 “50대 초반 아니세요?”라고 대답. “아뇨. 사십대인데요.”라고 하자 서로 뻘줌해져서 머리 깎는 내내 어색한 분위기로 대화 한 마디 못 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색 안 하고 꿋꿋이 버티고 있었으나 결국 다시 염색을 할 수 밖에 없는 불상사를 겪게 된다. 때는 연말. 한국어를 배우러 와 있던 일본사람과 가끔 만나서 밥도 먹고 외국인은 가 보기 힘든 서울 시내 이곳 저곳을 안내해 주기도 했었는데, 그가 일본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었더니 감자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송별회 겸해서 만나 감자탕을 먹고 헤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술기운도 내릴 겸 커피를 한 잔 하러 갔었다. 옆자리에는 단골인 듯한 사람들이 대여섯 명 몰려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생일인 듯,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고 있었다. (주인하고 친한 손님들인 듯 했음) 얼핏 곁눈질로 세어본 양초 개수로 나보다 대여섯 살 위인 듯 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접시에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오면서, “어르신도 같이 드시죠.”라고 하는 바람에 혼비백산.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 나오고 말았다. 앞에서 얘기했듯 나보다 대여섯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말이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 외모가 문제였던 듯. 감자탕에 소주 한 병을 곁들였기 때문에 얼굴은 불콰했을 것이고, 입고 있던 코트는 갈색 체크무늬, 게다가 안에 입은 건 회색 개량한복이었으니, 그 형님들 보기에는 매우 정정해 보이는 어르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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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닝이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았겠으나,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 법. 전철을 타러 갔더니 마눌님이 화장실이 급하다고 볼일 보고 오겠다고 플랫폼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근데 하필 그 역이 충무로. 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역대 청룡영화제, 대종상 수상자들 사진이 벽에 빼곡히 붙어있다. 달리 할 일도 없고 해서 그 사진들을 건성건성 들여다 보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건다. “저, 아버님.” (읭? 아버님…?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고개를 돌려보니 2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젊은 아가씨다. (젊은 처자가 나한테 볼일이 없을 텐데…?) 아가씨의 블라블라. 자기가 무슨 기자라고 한 것 같다. 이어지는 질문. “요즘 젊은 사람들이 외국영화는 많이 보는데 국산영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잖아요. 근데 나이 지긋하신 분이 영화배우들 사진을 유심히 보시는 걸로 봐서 –별로 유심히 보지는 않았는데...?– 국산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인터뷰를 요청 드려도 괜찮을까 해서요.”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의미였다.) 이제 와서 아니다 사실 나 그렇게 나이 많지 않다. 그리고 영화 자주 보지도 않는다고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그러라고 했다.


근데 첫 질문이, “저 사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라고 하길래, “아... 이영하도 이제는 많이 늙었겠구나 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대답했는데, 사실 이영하는 나한테는 큰 형 뻘 정도 되고도 남는 사람이다. 그러고도 몇 마디 더 말을 섞고 있는데 –사실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마침 화장실 갔던 마눌님이 돌아왔다. 나에게 아는 체를 하는 마눌님을 돌아본 아가씨(기자)가 나와 마눌님을 번갈아 보더니 혹시 두 분은 무슨 사이냐고 했다. 삼촌과 조카 사이냐고 하길래 아니라고 했더니,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그럼 혹시 부부 사이세요?”라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무슨 나이 차이 아주 많이 나는 인신매매범 보듯 하길래 대충 끊고 마침 도착한 전철을 탔다. (마눌님과 나는 동갑이란 말이다.)


불과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연타를 맞고 정신이 혼미한데, 전철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저 반대쪽에서 안경 낀 학생이 벌떡 일어서며,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하는 바람에 멘탈 붕괴, 아니 멘탈이 증발해 버렸다. (아버님도 아니고 할아버지라니...) 정신 없이 손사래를 치며 옆칸으로 도망치듯 피해 손잡이를 잡고 서 있으려니 이게 무슨 악몽을 꾼 것인가 싶기도 했다. 흰머리 때문에 짧은 시간에 3연타로 오해를 받다니. 아무튼,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염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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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 쭉 염색. 한 달에 한 번 이발할 때마다 하던 염색이 이제는 2주쯤 지나서 옆머리를 한번 더 물들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흰머리가 늘어, 동료들에게 농반진반으로 “내가 염색 안 하면 검은머리가 새치야.”라고 말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오지 않았으면 하는 사태가 오고 말았다. 맹박이 때부터 낙하산 사장이 와서 분탕질을 치며 회사를 말아먹고 있었지만, 정권이 바뀌고 나서 또 다른 낙하산이 사장으로 와서는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희망퇴직(이라고 쓰고 구조조정이라고 읽는다)이었다.


낙하산들한테 등 떠밀려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바뀌어 버린) 회사에서는 이미 나를 비롯한 기존세력을 폐기물 취급하는 상황. 오기로라도 버티어 볼까 생각했지만,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거기 있어봐야 당신 성격에 병 나서 죽을지도 몰라.”라고 달래는 마눌님의 조언에 따라 퇴직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염색도 그만 두었다. 머리를 길러 –사실은 깎지 않는 거지만– 묶고 다니는 나를 보고 마눌님은 제발 이발도 하고 염색도 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만, 내가 자기 말 듣지 않을 걸 뻔히 알기에 심하게 재촉하지는 않는다. 대신, “앞으로 두 번은 염색해야 돼.”라고 오금을 박는다. 딸들 시집갈 때는 단정하게 이발도 하고 염색도 하라는 의미겠지. 귀농을 위해 시골에 와 있는 지금은 몸뻬 바지를 입고 다녀도, 흰머리를 단정히 묶고 다녀도 –뒤에서 보면 덩치 좋은 할머니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제서야 나는 흰머리와 염색의 지긋지긋한 반복에서 빠져 나온 듯 하다.






영구읍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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