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일요일 저녁. KTX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던 와중에 두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6차 핵실험을 했다. 이게 레드라인인가? 레드라인이면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뭔가?”

 

평소 알고 지내던 교수였다.

 

 “레드라인은 이미 넘은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는 없다.”


 “그럼, 전쟁인가?”


 “전쟁을 옵션으로 올려놨다면, 전쟁이 났어도 몇 번은 났을 거다.”

 

교수와의 통화가 끝나고 또 다른 지인이 연달아 연락이 왔다.

 

 “북한이 원유 비축한 이유가 있었어!”

 

북한이 원유를 비축하고 있다는 정보가 흘러나온 게 얼마 안 됐다. UFG 훈련과 9월 9일 건국절, 브릭스(BRICs)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 뭐가 터져도 터질 타이밍이었다. 간단하게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다.



1. 내로남불

 

215.JPG

출처 - <Radio Pakistan>


“북한 핵실험을 비난한다!”

 

파키스탄 외교부의 성명이다. 온 세상이 다 북한을 비난해도 파키스탄은 그러면 안 된다. 이 모든 ‘사태’의 근본 원인은 파키스탄이 아닌가? 지금 북한이 롤모델로 삼고 있는 게 파키스탄이다.

 

1976년 8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파키스탄으로 날아갔다. 그리곤 부토 대통령을 협박했다. 핵개발을 계속했다간 못 볼 꼴을 볼 거라고, 1년 뒤인 1977년 7월 부토는 못볼 꼴을 보게 된다. 당시 육군 참모총장 모하메드 지아 울 하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부토는 교수형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키스탄은 핵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1985년 10월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우라늄을 농축했다. 그런데 이를 레이건이 무시했다. 당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하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기 위해선 파키스탄이 필요했다. 레이건은 계속해 파키스탄을 지원했고, 핵무기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1998년 5월 28일과 30일에 핵실험을 했다.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

 

북한은 파키스탄 모델을 쫓아가고 있다. 아니, 핵무기의 시작점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말 파키스탄의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 핵무기 개발 설계도와 기술, 설비를 넘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1998년 5월 30일의 핵실험이 북한 핵폭탄의 ‘실험대행’이란 설도 있었다. 파키스탄의 여섯 번째 핵실험 당시 플루토늄이 검출됐다. 당시 파키스탄은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플루토늄 탄이 터진 거다. 이를 두고 북한제 플루토늄을 가져와 터트렸다는 설과 파키스탄 내 원자력 발전소에서 불법적으로 핵연료를 빼내 재처리했다는 설 두 가지가 나왔다. 한때 파키스탄의 여섯 번째 핵실험에 북한 관계자가 참관했다는 설까지 나돌았다)

 

그런 파키스탄이 북한을 비난했다.



2. 6번째 날

 

2C7B56C900000578-3240567-image-a-11_1442611755401.jpg


파키스탄은 1998년 5월 28일 5발을 터트렸고, 1998년 5월 30일 1발을 터트렸다. 총 6번의 핵실험을 했다. 이 6번의 핵실험으로 파키스탄은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았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含意)’다. 파키스탄이 6번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 지위를 얻었다.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이웃’을 잘 만나 국제사회의 제재에서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북한은 파키스탄을 쫓아가고 있다.

 

 “우리도 일단 6번을 터트리고 보자.”

 

파키스탄처럼 6번을 터트렸다. 이제 남은 건 국제사회의 대답이다. 파키스탄처럼 인정을 해줘야 하는가? 아니면, 이를 무시하고 더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해야 하는 걸까? 6번의 의미는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3. 북한의 스케줄

 

3717694133_AJTvG267_2.jpg

출처 - <중앙일보>


김일성 집권 당시 총 8회 15발의 미사일을 날렸다.

김정일 집권 당시 총 28회 58발의 미사일을 날렸다(‘의미 있는’ 장거리 탄도탄의 경우 17발)

김정은은 불과 6년 동안 탄도탄만 39발을 날렸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한다.

 

김정일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 2009년 5월 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이후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핵실험은 없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2013년 2월 12일 3차, 2016년 1월 6일 4차, 2016년 9월 9일 5차, 그리고 2017년 8월 3일 6차에 이르는 4번에 걸친 핵실험을 연이어 시도했다. 집권 6년 동안 4번이다.

 

주목해 봐야 하는 사실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단순히 ‘실험’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시기를 살펴보면, 그 중 60%는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나머지 중 상당수도 미중 혹은 한미, 한중, 한미중 정상회담 기간이나 국제적인 정치행사가 있을 때 시험했다. 나쁘게 말하면 ‘관심종자’이고, 좋게 포장하자면 정치적 주목을 최대한 많이 받을 수 있는 ‘선택’이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게, 미사일 발사나 핵폭탄 실험을 정치적 이유로‘만’ 감행하는 걸로 봐서는 안 된다는 거다.

 

북한은 나름의 미사일 개발, 핵실험 로드맵을 짜놓고, 그에 맞춰 실험 일정을 다 준비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정치적 일정’을 끼워 맞췄다고 보는 게 맞다. 즉, 북한의 대륙간 탄도탄 개발은 기정사실이다. 그들은 핵을 탑재한 대륙간 탄도탄 개발 계획을 다 짜놓고 있고, 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실험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는 게 옳다.

 

(핵실험 한 번을 하기 위한 준비를 생각해 본다면, 단순히 정치적 제스처를 위해 핵실험을 하는 건 어렵다. 이미 스케줄은 나와 있고, 거기에 맞춰 정치일정을 짜 넣는 거다)



4. 석유

 

fd.JPG  


북한의 연간 석유 소비량은 150~200만 톤 내외다. 이중 90%는 중국의 송유관에서 뿜어져 나온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북한이 석유를 비축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기 시작했다. 목표량은 100만 톤 내외. 이 때문에 예정된 원산 에어쇼도 취소하고, 평양 시내의 휘발유 가격은 폭등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이때부터 몇몇 언론과 정보기관에서는 북한의 6차 핵실험에 관한 말들이 나왔다.

 

북한의 석유 비축은 두 가지 포석으로 해석되는데,

 

첫째,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 최후의 카드인 ‘원유 금수조치’에 대한 대비이다. 석유가 끊기는 것도 각오한다는 불퇴전의 모습이다.

 

둘째, 중국이 목줄을 쥐고 있는 게 아니란 사인을 보이는 것이다. 중국의 영향력 밖에 있다는 사인을 국제사회에 보내고, 덤으로 시진핑의 인내력을 시험하고 있다.

 

누구도 북한을 건들 수 없다는 사인을 국제사회에 보내는 것이다. 만약 송유관을 닫는다면 어떻게 될까? 비축유가 떨어질 때까지 북한은 도발을 계속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계속 부각시킬 거다. 이미 북한은 다리를 끊었다.



5. 수소폭탄

 

1280px-IvyMike2.jpg


수소폭탄. 간단히 말해서 원자폭탄을 뇌관으로 핵분열, 이어지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거다. 핵무기보다 위력이 클까? 크다. 핵무기가 킬로톤 단위라면, 수소폭탄은 메가 단위의 폭발력을 보여준다(이론상 기가 단위도 가능하다). 우리가 잘 아는 차르봄바, 케슬 브라보(비키니 섬을 날려버렸다) 등등이 수소폭탄이다.

 

북한이 수소폭탄을 강조하는 이유. 그것도 실험 전날 수소폭탄 모형(?!)을 보여주고 터트린 이유. 간단하다. 미국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북한이 그들이 말하는 대륙간 탄도탄 화성 14형을 한 발 날렸다고 하자. 그게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뚫고 미 본토에 떨어졌다고 해도 킬로톤 단위의 폭발력밖에 없다면 어떨까? 미국에게 압박을 가하기 위해 더 큰 위력의 수소폭탄을 보여준 거다.

 

원자폭탄이든, 수소폭탄이든. 일단 핵이 떨어지면, 대한민국은 끝이다. 의미 없다.



6. 양탄일성(兩彈一星)

 

_97651260_540ef002-b816-4d83-ba4f-211d9e368657.jpg


잇따른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겉으로 보면 중2병이지만, 김정은은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하고 있다.

 

2013년 3월 역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처음 등장한 ‘핵 경제 병진노선’은 1970년대 중국의 양탄일성(兩彈一星 : 원자폭탄, 수소폭탄의 개발, 인공위성 발사)의 북한 버전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960년대 소련에게 밟히고, 국제사회에서는 늘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던 중국(문화대혁명과 홍위병 덕분에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다 털어먹었다). 그러나 1964년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1967년 수소폭탄을 터트렸고, 1970년 중국의 첫 번째 인공위성 둥팡훙(東方紅) 1호를 띄워 올리며 중국은 도약했다.

 

이 덕분인지 1972년 2월 닉슨은 중국을 방문했고, 그 유명한 핑퐁외교가 시작됐다. 그 다음은 국제사회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1979년 대만에 배치된 미군이 전면철수한다. 이미 1971년에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리에서 쫓겨났고, UN에서도 쫓겨났다(자진 탈퇴를 선언했지만, 쫓겨난 것과 진배없다). 미국과도 단교했다(현재 대만이 수교한 국가는 20개국 정도다).

 

김일성은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양탄일성부터였다며, 이를 부러워했다. 그걸 손자인 김정은이 하고 있다. 핵을 쏘고, 인공위성을 올리고(광명성 1호는 어디에?), 수소폭탄을 터트렸다.  

 

핵과 미사일을 지렛대로 국가의 위상을 재고하고, 국제사회의 벽을 뚫어 보겠다는 계산이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전략은 지금까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핵 경제 병진노선을 통해 북한의 경제는 살아났다. 핵과 경제가 어떤 식의 상호 연관작용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아주 쉽다.

 

 “군비로 들어가는 자원을 경제로 돌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2 경제(second economy)'란 개념은 지하경제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그 의미가 좀 다르다(소련의 경우에도 제2 경제는 ’그림자 경제‘로 불렸지만, 이는 비적법한 경제활동을 의미. 자본주의 사회의 제2 경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북한의 제2 경제는 군수산업을 의미한다.

 

북한은 인민경제라 불리는 일반경제와 제2 경제라 불리는 군수경제가 있다. 이미 GDP차이만 45배가 나는 남북한 경제력 차이에서 북한이 남한을 군사적으로 이길 확률은 거의 없다(핵과 같은 비대칭 전력을 제외하고). 군비경쟁이 가당키나 한 말일까? 이 상황에서 ‘핵’이 등장하면서 군비 압박을 덜어냈다. 그리고 제2 경제의 일부를 인민경제로 돌린 거다. 마식령 스키장이나 여명거리를 만드는 돈이 다 어디서 나온 걸까?

 

국가방위는 핵으로 해결하고, 여기서 아낀 군비를 민간으로 돌린다(핵은 의외로 싼 무기다). 북한으로서는 해 볼 만한 선택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북한 경제다. 4% 가까이 되는 경제성장률을 보라. 고난의 행군 때의 북한이 아니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잘만 버티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핵무기 보유국 지위를 확보한다면, 중국이 양탄일성과 함께 도약했던 과거를 재현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있다). 너무 긍정적인 부분만 말한 거 같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그렇다면, 우리는 대만 꼴이 나는 건가? 설마. 거의 가능성 없다!).

 

북한은 확실히 자기들만의 로드맵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다.



7. 김정은

 

못 먹어도 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약간 중2병 스러운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위치를 알고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아는 모습이다.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을 보라 핵개발 하다 중단한 자의 최후다. 우크라이나를 보라. 국제사회가 안전을 보장한다 말했지만, 핵을 포기하고 어떻게 됐나? 안전을 보장한다던 러시아가 치고 크림반도로 밀고 들어왔다.

 

핵을 포기해서 얻는 긍정적인 모습이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지금은 공공연하게 레짐 체인지를 말하고, 참수작전을 거론하고 있다. 김정은은 어쨌든 핵무기를 움켜쥐고, 이를 지렛대로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아내야 한다. 핵을 포기하면, 경제원조를 해준다? 그 말을 누가 보장해 줄까?



8. 문재인

 

아무것도 할 게 없다. 아무것도...



9. 트럼프

 

전쟁할 생각이 있을까?

 

얼마 전부터 1994년 이야기가 나온다.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폭격을 생각했다. 김영삼의 만류와 지미 카터의 등장으로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한때 전쟁에 한없이 가까워졌던 얼마간이었다.

 

지금 그 시절에 대한 재평가가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다.

 

“그때 때렸어야 한다.”

 

그때는 핵도 없었고, 국제정세도 이렇게 첨예하지 않았다. 중국은 아직 패권 국가로 올라서기 전이었고, 러시아는 알거지가 됐었다. 북한도 경제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이때 북한을 공격했다면, 지금의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것이란 말들이 나온다(북한이 반격하지 않았을 것이란 확신이 전제에 깔려있다).

 

지금은 1994년에 비해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0. 도미노

 

black-and-white-2309273_960_720.jpg


북한 핵을 인정하는 순간, 일본이 들고 일어난다. 일본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중국이 반발하고, 덩달아 한국도 핵을 가지려 할 거다. 북한, 일본, 한국이 핵을 가지게 되면 베트남도 핵을 곁눈질할 거다. 도미노다.

 

북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계속 시위를 할 거다. 이를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자인하는 거다. 즉, 어떤 식으로든 해결을 봐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란 간단히 말해 길 가운데 똥을 싸놓고는 멀뚱멀뚱 쳐다본 거였다. 황금 같은 8년이 지나간 거다. 물론, 오바마에게도 할 말은 있다. 어떻게 북한핵을 처리할 건가? 방법이 없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을 공격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터질지도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한 달 안에 각각 1천만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남한과 북한이 전쟁에 뛰어든다. 이 상황에서 전쟁 카드를 꺼낸다? 아무리 트럼프라도 쉽게 전쟁 카드를 뽑아 들 수는 없을 거다.

 

최소한 서울시민 1백만이 북한의 반격으로 희생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좀 체 떠오르지 않는다.





펜더


편집 : 딴지일보 cocoa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