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02. 21. 금요일
일본 특파원 알려지지 않은 주시자
1. 연아와 마오
김연아. 1990년 9월 5일 출생.
아사다 마오. 1990년 9월 25일 출생.
사소한 오류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면 이너넷에 한때 유행했던 '하늘은 이미 아사다를 내시고 왜 또 연아를 내셨단 말인가'는 살짝 오류다. 김연아 선수가 20일 정도 생일이 빠르다.
두 위대한 피겨스케이터가 아마도 생애 마지막이 될 올림픽 경기를 마쳤다. 결과는 독자제위가 모두 아시는 대로다. 김연아 선수는 소치가 마지막이 될 거라 공언한 상태고 아사다 선수도 지난해 '내년도가 마지막이 될 거다'라는 발표를 했으니 은퇴 번복이 없는 이상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일 것이다.
미리 이야기해 두지만 난 피겨스케이팅에 대해 무지하다. 그러니 이 글의 제목만 보고도 이미 '감히 마오 따위를 연아와 같은 줄에 서술하다니!!'라면서 기사 댓글 혹은 트위터 멘션으로 아사다가 몇 년도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한 몇 번째 점프의 회전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강변할 준비가 되신 분들이 그걸 실행에 옮기시는건 자유이지만 지극히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할 거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해하려고 할 생각도 없다.
나는 오늘 피겨스케이팅 그 자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건 다른 전문가들이 이미 다 하신 일이고 앞으로도 쭉 하실 일일 거다. 난 다른 관점에서 이 두 사람의 은퇴를 축하해 주고 싶다.
2. 김연아와 공정한 판정
극도의 일본 혐오증이 있는 분들은 이 주 정도 지난 뒤에 이 글을 읽기를 권한다. 하지만 믿기 어려워도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일본 이너넷에는 김연아 선수와 한국이 어떤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김연아 선수의 득점을 늘상 올려왔고 그 때문에 일본 선수들이 항상 방해를 받아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일본어가 가능한 분이라면 일본어로 '김연아 승부조작' 이렇게 검색만 한 번 해도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토리노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아라카와 시즈카 선수가 저서를 통해 정면으로 반박을 할 정도였다.
일본은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112명의 선수와 126명의 임원을 파견했고 금메달 하나를 획득해(은과 동도 없었다. 전체 메달수가 하나) 18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그 금메달이 아라카와 시즈카 선수가 여자 피겨에서 딴 금메달이었다. 이 정도면 아라카와 선수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는 대충 감이 올 것이다. 그런 선수가 올림픽을 앞두고 낸 저서에서 김연아 선수를 정면으로 옹호할 정도로 일본 이너넷의 '김연아 비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반복하지만 나는 피겨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이너넷에서 말싸움 주고 받는 것도 나이를 먹어서 은퇴한 지 좀 오래된 상태고. 그런 나도 밴쿠버 올림픽을 전후해서 딱 한 번 일본의 이너넷에서 일본어로 배틀을 뜬 적이 있다. 한국어로 옮기면 이 정도가 될거다.
김연아 선수는 19살(밴쿠버 당시)이라고 19살. 미성년자. 니들 말대로 김연아 선수가 무슨 부정에 관여했으면 그게 하루 이틀 걸리는 것도 아니고 17살이나 18살 때였겠네. 18살이 무슨 재주로 한국 빙상 연맹, 국제 빙상 연맹, 한국 올림픽 위원회, 국제 올림픽 위원회, 삼성과 기타 한국의 글로벌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자기한테 유리한 판정을 내리도록 룰을 바꾸고 심판을 매수해서 점수를 더 받고 일본 선수들은 성적을 낮게 받도록 조종을 할 수 있냐. 김연아가 출전하는 경기는 일본 선수들이 시상대에 못 오르는 게 우연의 일치냐고? 아사다 마오는 일본 선수 아니냐. 밴쿠버 은메달 누가 땄는데?
김연아가 무슨 측천무후의 환생이냐. 그 정도 정치력이면 피겨 실력 말고 그냥 그 개인적인 영향력에 경의를 표해서 금메달 하나 줘도 돼 이것들아. 지금 동계올림픽 금메달이 문제냐. 18살에 국제 빙상 연맹과 국제 올림픽 위원회와 삼성을 조종하고 있는 판국에. 40살 이전에 국제연합 사무총장은 껌으로 달겠네. 니들 조심해 이것들아. 18살에 저 정도면 50살엔 순전히 개인의 역량으로 아시아 연방이라도 만들겠다.
말이 안 되는 거 니들도 알잖아. 너희 고등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봐. 지금 중딩들은 여기서 나가고 고딩들은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너희들이 주변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생각해 봐. 김연아도 너희와 똑같은 인간이라고. 근데 김연아는 18살에 저게 가능했다고? 만약 그게 사실이면 욕하지 말고 존경해 멍청이들아. 오다 노부나가가 문제가 아냐 지금.
김연아가 한 게 아니라 한국이 그런거고 김연아는 그 이득을 보고 있는 존재니까 밉다고 하는 인간들 잘 들어. 만 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자. 만 번 양보해서. 그럼 김연아는 어떻게 해야 하는데?
“어? 내 실력은 B+나 A 정도인데 항상 A+의 결과가 나오네? 이건 내 조국의 연맹 관계자들과 올림픽 위원회와 삼성 등 거대기업이 부정한 짓을 한 결과인가 보구나. 난 이런 나쁜 짓에 가담할 수 없으니 피겨 그만두고 편의점 알바나 해야겠다. 그리고 대학에서 교사 자격증 따서 나중에 시골에 내려가 체육교사나 할까”
이럴까?
미쳤냐?
김연아가 그 상황에서 뭘 해야 하냐고. 대안을 마련해 주고 욕을 해야 할 거 아냐. 철들고 나서부터 한 건 피겨 밖에 없는데 피겨 관둘까? 아니면 경기에서 일부러 넘어져? 아사다 마오가 진정한 금메달리스트의 자격이 있으니 경기 대충하는게 스포츠맨 쉽이야? 뭘 어쩌라는 말인데.
김연아는 그냥 평생 피겨만 한 선수야. 너희들이 말하는 우연이니 행운이니 예술을 스포츠로 바꾼 경기에서 나타나는 근본적인 한계니 하는 것들을 10대 초반에 다 깨닫고 10대 후반에 뛰어넘은 사람이라고. 그런 사람에 대해 말을 하려면 기본적인 예의는 갖춰야 할 거 아냐.
너희들의 손자들이 다시 손자를 볼 나이쯤이 되어도 인류가 피겨스케이팅을 계속하고 있다면 사람들은 김연아라는 이름을 알게 될 거고 알아야 할 거야.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는 건 그런 거라고. 너흰 그렇지 못하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참고로 저때 반응은 그럭저럭이었다. 버로우 탄 애들도 많았지만 따지고 드는 애들도 많았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말 안 통하는 사람이 나올 확률은 비슷비슷하니 별로 신경은 쓰지 않는다만.
3. 마오를 미워하라
내가 진심으로 기겁한 건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한국 이너넷에서 김연아를 아사다 마오로 바꾼 똑같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내 심정은 말로 이루 다 표현하기 힘들다. 처음엔 김연아 욕하는 일본 웹사이트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이름만 바꾼 건줄 알았다.
아니더라고. 여기서 다 소개하진 않겠지만 디테일한 증거(?)들은 조금씩 달랐다. 아사다가 어느 대회에서 뛴 몇 번째 점프의 착지 자세를 무슨 성경 구절처럼 외우고 있는 사람도 봤다. 하지만 큰 틀은 놀라울만큼 똑같았다. 비슷한 게 아니라 똑같았다.
이런 식이다.
아사다 마오와 일본이 돈으로 피겨 판을 망쳐 놓았고, 그로 인해 항상 이득을 얻고 살아왔다는 거다. 그럴만한 실력도 없는데 온갖 부정으로 세계적인 선수인양 살아왔고 전 세계 피겨판은 아사다 마오와 일본을 위해 움직인다는 주장(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러시아가 땄지).
이쯤에서 독자제위에게 한 가지만 부탁을 하겠다. 그렇게 한 셈 치지 말고 물리적으로 딱 한 번만 스크롤을 올려 이 위에 내가 적어놓은 붉은 글씨의 글을 한 번 더 읽어주시길 바란다. 물론 아사다 마오 대신 김연아를, 김연아 대신 아사다 마오를 넣고 한국과 일본의 자리를 바꾸셔야 된다. 그리고 삼성 대신 일본의 글로벌 기업 두어 개를 집어넣으시는 걸 추천한다. 토요타 정도가 적당하려나? 측천무후는 그대로 두셔도 좋다.
어떠신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지 않나?
4. 미운정
그리고 시간이 흘러 두 스케이터가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 섰다. 고백하건데 내가 가장 바란 시나리오는 두 선수가 쇼트 프리 모두 클린경기를 하고 아사다 마오 선수는 트리플 악셀 제발 제발 제에발 부탁이니까 성공하고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 아사다 선수가 은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즈키 아키코 선수가 동메달이면 내겐 가장 행복한 결과였을 것이다.
쇼트가 끝나고, 아사다 마오가 시상대에서 멀어졌다.
웃긴 일이지만 내가 다 마음이 짠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어렸을때 부터 꾸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인생의 다음 단계를 바라보게 됐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를 위로해선 안 된다는 이유도 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놀랐던 건 한국에서 흔히 ‘동정론’으로 포장된 아사다 마오 응원하자는 분위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보기엔 평소 후임병 매일 툭툭 때리다가 맞은 일병이 진짜 아파하자 갑자기 급 미안해 하는 상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그래도 그런 말도 안 나오는 것 보다는 낫지 않나.
아사다 선수가 프리에서 만큼은 정말 아무 후회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스케이트 인생을 다 바친 연기를 보여주길 바랬다. 그리고 박수를 받으며 떠나가길 바랬고 그 바램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우습게도 새벽까지 깨 있었던 한국과 일본 국민들은 러시아 국가를 듣게 되었다.
5. 행복한 삶을
지나친 욕심이었을지 모른다. 내가 바라던 그 결과라는 건 이미 밴쿠버에서 저 두 선수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 번 선사해 준 적이 있는 결과였다. 피겨스케이터로서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가 이뤄낸 기적과 같은 성과들은 내가 일일이 아쉬워하거나 평가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앞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럴 것이다.
내가 정말 안도하는 건 따로 있다. 이제 저 두 선수가 한국과 일본이라는 애증관계 때문에 대중의 쓸데없는 악의에 노출되는 일은 확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없어지진 않겠지. 하지만 그 일거수 일투족을 수백 만 명 단위의 사람들이 악의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기억하고 곱씹는 일은 없을 것이다. 관심을 받는 만큼 미움도 받는 것이 유명세라지만 밴쿠버 바로 이전 올림픽에서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아라카와 시즈카 선수가 한국에서 아무런 증오도 받지 않는 점을 상기해 보자. 아사다 마오 선수는 김연아 선수의 라이벌이라는 이유만으로 평생 들을 모든 모욕의 대부분을 20대 초반에 들어야 했다. 김연아 선수도 마찬가지다. 이제 겨우 그 매듭이 풀린 것이다.
남들은 이제 막 자신의 삶을 설계하기 시작하고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할 나이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던 자리에서 은퇴하는 두 선수의 앞날에 부디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나는 김연아 선수가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은퇴하고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앞으로도 광고 더 찍으셔도 좋고 아니면 이제 대중 앞에 나서는 일을 완전히 안 하셔도 나는 평생 그녀를 기억하고 고마워할 것이다. 한국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이미 예전에 다 하셨고 몇 년 전 부턴 그 이상의 일을 해 주셨다.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부디 당신의 삶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2만 점이라고 보면 4만 명을 합쳐도 0.5 정도의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먼지와도 같은 악플러들의 말들 따위 앞으로도 영원히 개의치 않길 빈다.
이제 좋아하는 빵도 맘껏 드시고...
나는 아사다 마오 선수가 앞으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 은퇴하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일본의 일부 저렴한 언론은 그 발언을 가지고도 가타부타 말이 많았다. 이제 한 명의 개인으로 돌아가 부디 열심히 스스로의 행복을 찾으시길 바란다. 만약 한류 드라마를 볼 기회가 있어 한국어를 배우시더라도 당신에 대해 한국어로 쓰여진 악플은 읽지 않으셔도 된다. 그러라고 있는 한국어가 아니니까.
만약 두 선수가 언젠가 자신의 결혼식에 상대방을 초대하는 날이 온다면 난 기뻐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두 분이 대화를 하고 싶다면 공짜로 통역이라도 해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훨씬 더 많지 않나. 라이벌로 있었던 시간보다 친구로 지낼 시간이 더 많길 빌어본다.
한국은 김연아 덕분에 행복했다. 일본은 아사다 마오 덕분에 행복했다. 나는 그 사실에 만족한다.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아사다 마오 때문에 자신들이 불행해 졌다고 믿고 있었고 일본의 몇몇 사람들은 김연아가 자신들을 불행하게 하고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만약 다음에 한국과 일본에서 장르를 불문하고 각각 전 세계를 놀라게 할 만한 위대한 개인이 등장해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면, 그때는 부디 그 두 사람으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이 조금 더 늘어나고 불행해 지는 사람은 많이 줄었으면 한다. 그쪽이 그들과 대중 모두 행복해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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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unknownbeholder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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