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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0. 21. 화요일

범우






















1. 글값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못한 말들을 글로 풀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의 파편들과 별로 자랑스럽지 않은 경험을 버무렸다. 답답한 숨을 풀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용케 제법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삶이 대견하기도 했다. 부족한 글들이 몇 번 기사로 편집이 되었지만 스스로도 재주와 능력이 부족함을 안다.


어렵게 쓰지 말라고 세종임금이 만들어주신 한글인데 글쓰기가 새삼 어렵다. 글값을 받고 나서부터 조금씩 더 부담을 느꼈다. 이제 글을 보는 눈이 조금 생겨서 다른 글쓴이들의 생각이 조금은 보인다고 느껴진다. 새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것처럼 글에서 풍기는 저마다의 독특한 향이 느껴진다. 이제야 사람과 글을 보는 눈이 떠진 것 같다. 하루일당 조금 부족하거나 넘는 글값이 무겁고, 투박한 글이 부끄러웠다. 내 울음을 듣고 이름을 지어서 내 이름을 불러 달라고 우는 새가 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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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에 딴지일보에서 연락처와 계좌 번호를 물어 올 때는 인정받은 느낌이 좋았다. 온두라스 김지수님 이야기와 홍석동님 납치실종사건 취재처럼 집요해야할 때 집요한 언론의 자세를 유지하는 딴지일보에게 인정받은 느낌은 딱히 자랑할 곳은 없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한동안 별일이 없어 잊어버렸다.


세월호 이야기 부터인지 300으로 글을 옮기고 부터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얼마간의 돈이 입금 되었다. 수없이 들어왔던 딴지일보의 재정적 어려움이 생각이 났다. 집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다. 쟤네도 어렵다는데 돈을 보내왔다는 내말에 입금액을 확인한 집사람은 뚱한 표정으로 티비를 보러간다.


반응이 좀 그랬지만 돈의 용처가 고민 되었다. 온라인 구매를 해본적도 없고 딴지마켓에서 파는 물건들은 내 생활과 거리가 좀 있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집회에서 모금함에 얼마를 넣고, 홍석동씨 납치살해 사건을 취재했던 김창규 기자님 앞으로 장인어른이 보내온 양파즙 한 상자를 보냈다.


투박하고 좀 모자라는 글을 편집해주시던 분들에게도 마음은 따로 보내드리고 싶었지만 마땅히 나누어 드셨을 거라 생각한다. 딴지기사 중 글을 팔아 돈을 만들던 이야기와 독투의 글 값에 절실하던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고 글값이 더 무거워졌다. 북극에 사는 물범이 얼음사이 숨구멍에 숨을 토해내듯 거칠게 토해 내던 글들이 조심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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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목숨값


딴지일보의 글들이 좋았던 건 권위에 대한 통열한 비꼼과 해학의 유쾌한 언어유희였다. 스스로에겐 부족한 것들이다. 생긴 대로 산다. 오랜 시간의 노동으로 작은 체구에도 가재처럼 굵고 투박한 손마디를 가진 친구가 손가락에 철심을 박았다. 최저임금으로 신고 되어 산재수당이 얼마 되지 않는다. 깁스를 하고 몰래 알바를 했다. 불법의 현장을 방문하고 아이들 간식을 샀다. 전세금이 올라 이사를 준비하는 28호에게 봉지우동 한 상자를 사주고 밥을 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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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 [범우시선] 28호



딴지일보는 아마 도약을 위해 천리마를 구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짐 말에게도 이정도 값을 쳐준다면 제값을 받을 거라 기대한 천리마들이 몰려 올 거라 생각한다. 글값에 대한 마음부담은 조금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 천리마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질 않아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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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안산에서조차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해 냉소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종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웬만한 슬로건에도 냉소적인 비아냥을 던지던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친구가 세월호 유가족 위원장 같은 거 하려면 어떤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거냐는 물음을 던진다.


“처음엔 정당한 분노와 정의감 그리고 누군가에게 기대려는 주위사람들의 약함에 대한 책임감 같은 거로 시작하겠지. 그리고 그 약한 사람들의 비겁함과 짐을 나누어지지 않으려는 주변사람들의 냉정함으로 고립이 되고, 희망이 되어줄 것 같은 사람들에 끌려 다니다가, 세월호 참살에 대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기득권을 손해 보지 않으려는 힘 있는 사람들의 조직적이고 끈질긴 저항으로 어쩔 수 없이 갈 때 까지 가다가 사람과 사회에 대한 염증을 느끼게 되기가 쉬울 거다. 우리 꼴이 날 것 같다만 그래도 처음 시작은 정당하다고 생각되는 분노와 정의감 책임감 뭐 그런 걸 꺼다.


나도 쫒겨난 공장에 다시 복직하려는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라는 이야기, 주택조합에서 알박기하다 개털 된 사람들 이야기에 빗대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프고 힘들고 외로워진다. 그래도 찍소리 안하고 곱게 뒈져버리는 것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조금씩 발전한 걸꺼다.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라.”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십 여년 전 시화에 있는 가구 공장에서 일할 때 알던 사람이 이런 일로 티비에 나오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는단다. 아는 사람 이야기이기에 마음이, 감정이 반응한다. 우리의 일을 남의 일로 만들어 버리는 언론을 빙자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욕심과 집요함이 징그럽다. 힘쎈 놈 편에 붙지 않는 딴지일보가 그래서 더 고맙다.


2012년 4월 1일 수원시에서 오원춘이라는 중국 사람이 젊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포를 떠서 검은 비닐봉지 12개로 나누어 담은 사건이 있었다. 인육논란이 있었지만 오원춘은 무기징역이 확정되었고, 피해자 가족들이 청구한 국가 배상금은 2130만원으로 2심에서 결정되었다.


2009년 폭행과 성접대 강요로 자살한 장자연양의 피해보상금은 1심에선 폭행만 인정해 700만원 2심에선 성접대 강요도 인정받아 2400만원이다. 성접대를 받은 사람들이 토해야할 꽃값과 목숨값은 당연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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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담배값


먹고 살기에 팍팍해서 직접 닿는 일, 아는 사람일이 아니면 분노도 공감도 하기 힘든 사람들에게는 휴먼다큐처럼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방송이 없으니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또 사람들 목 자른다는 이야기만큼 현실감이 없다. 담뱃값 2천원 오른다는 뉴스가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정쟁의 대상이 된다.


한사람 목숨 값이 2억원정도 되는 줄 알았는데,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많이 싸졌다. 담배 값이 더 중요해졌다. 4천원짜리 500보루면 천민 한사람 목숨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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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품값


새로이 일자리를 알아보아야 했다. 근로자에서 노동자로 다시 법외노동자로 살다가 마지막은 조금 게으른 농부로 마감하고 싶었는데 최소 수년간은 근로자가 되어야 할 형편이다. 아는 형님이 일하는 공장에 자리가 났다고 연락이 왔다. 이력서에 파카한일유압을 지우고 오란다. 그냥 웃었다. 이력서에서야 지워도 고용보험이나 의료보험 납부내역이 있다.


집담보로 세탁소를 한다는 동생에게 안부전화가 왔다. 회사와 노동조합의 중간지대에 서려고 노력하다가 어느 순간 분노하게 되어 수두룩한 전과와 소송기록을 갖고 대법 선고 후 남들보다 한 발 먼저 파카한일유압을 떠났다. 당시 암울한 상황에 회의감이 들 때 적어도 마무리가 될 때까지는 먼저 등을 보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끝이 애매모호해서 약속을 지킨 건지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는 약속이 된 건지 애매모호해졌다.


2년 만에 듣는 안부를 묻는 목소리가 참 반갑고 고마웠다. 자본에 대한 분노와 배신에 대한 상처로 날을 세우고 생활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민하던 지난날의 모습들이 마음에 걸리고 사는 게 별 내세울 것 없는 처지라 먼저 연락을 하지 못했다. 안부전화를 할 정도로 마음과 생활이 안정이 되었을거라는 생각에 더 고맙고 반가웠다. 전화통화 후 이틀이 지나서 알려준 세탁소로 얼굴을 보러갔다.


지난해 파카한일유압을 나와 새롭게 취직한 공장에서 이틀째 일하고 인사부장이 불러 말을 쉽게 못 꺼내고 머뭇거리더니 미안하게 됐다고 하더란다. 따로 이력내역이 중요하지 않은 마찌코바에서 야간근무를 하다가 몸이 못 버티고 돈이 안돼서 집을 담보로 세탁소를 시작했다. 작년엔 좀 괜찮았다는데 올해는 장사가 안 된단다. 어떤 날은 14시간을 일해 5만원을 들고 집에 가기도 한다. 세월호 이후 더욱 심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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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경기가 회복되길 기대하지는 말아야한다는 암울한 말을 해줬다. 젊은 아이들이 사회진출해서 돈을 만져야 결혼을 하고 씀씀이가 큰 소비를 계획하고 시행할 텐데, 근근히 먹고 살만큼의 돈만 주고 그 돈에서 뜯어 가는 세금마저 오른다. 지금 경제를 장악한 50대 중후반이후의 사람들이 자연사를 하고 재산상속이 다음세대에 될 때나 좀 돈이 돌 텐데, 한꺼번에 매물로 나오는 아파트들을 사줄 사람이 없어서 더 나빠질 수도 있다. 허리띠 졸라매고 빚 줄이고 버티며 운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애들 보고 버텨내라고 힘내라고 말해주니 저보다 형이 힘내야겠다며 웃는다.


웃는 얼굴이 좀 서글퍼 보여 안타깝다. 무절제한 술과 무기력으로 회복불능에 빠진 몇몇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난 후라서 그런 것 같다. 기간의 제한이 없는 계약직으로 쇼파 공장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노동 강도와 시간에 비해 품값이 싸다는 생각이 드는 이런 계약은 거절해야하는데 일단 또 한 해 겨울을 나야한다는 핑계로 조금의 비겁함을 덮는다.


착취 받는 노동자로 사는 삶은 비참하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로 사는 삶은 더럽고,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편에 서는 지식인의 삶은 가치있다던 돈 못 벌던 육변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도 고맙지만 좋은 일을 하기위해 굳이 직업을 갖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의 삶이 조금 더 부럽긴 하다. 그래도 아직은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 귀한 숫가락으로 똥 퍼 먹는 분들의 삶이 부럽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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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우


편집 : 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