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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어리거나 젊은 사람들, 85~90년대생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NL이 뭐고 PD가 뭐였어요?”

 

질문하는 얼굴에는 이렇게 써 있다.

 

“무슨 동인 서인 당파싸움도 아니고.”

 

그걸 설명하자면 꽤 긴 시간을 소모하거나 아주 짧게 “뭐 그런 게 있었어.”로 끝내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최근 방법 하나를 터득했다.

 

“NL이 궁금하면 일단 이 책을 봐 봐.”

 

그게 <NL 현대사>다. 사실 NL만 알아도 된다. PD는 정파라고 하기엔 너무 다양(?)했다. 자취방 하나 있으면 거기서 요상한 이름의 정파가 탄생하는 지경이었으니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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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이 책의 베이스라 할 NL 탐구 연재가 처음 나갔을 때 엄청난 파장이 왔던 걸 기억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비난이 빗발쳤던 건 자생적 주사파의 수괴(?)라 할 김영환과 사노맹의 괴수(?)였던 백태웅이 하와이에서 만나 ‘수영을 하며’ 얘기를 나눴다는 대목이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죽어갔는데 그 얘기를 웬 퇴물들 후일담같이 늘어놓느냐는 격노부터 “국가보안법이 엄존하는데 아직은 NL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는 지적까지 다양한 색깔의 태클이 들어갔었다.

 

내 반응은 어깨 으쓱이었다. 하와이에 백태웅이 있으니 가서 만난 건데 그럼 하와이에서 스키 타며 대화를 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이 엄존할 때 김일성 수령님 만세 부른 사람들 얘기를 국가보안법 때문에 못한다는 건 좀 아귀가 안 맞는 거 아닌가.

 

또 어떤 이들은 운동권 후일담 지겹다는 투로 나오기도 했으나 나는 생각이 다르다. 더 얘기를 해야 한다. 같잖은 무용담은 알아서 걸러지게 마련이고 과장과 허위는 더 많은 얘기를 통해 깎여 나가는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소리는 대개 “그 얘기 하기싫어.”가 종종 쓰는 가면일 따름이다.

 

이렇게 전제를 깔고 책 얘기를 해 보자면 이 책은 ‘수박 속보기’로 표현할 수 있겠다. 수박 겉핥기의 수준은 분명히 넘어섰다는 뜻이다. 수박을 척 잘라 쪼개서 그릇에 담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았고(못했고가 아니다), 노점상에서 수박 살 때처럼 작은 삼각 칼집을 내고 칼로 푹 찍어서 그 속이 얼마나 익었나를 보여 주던 그 정도의 ‘수박 속보기’ 말이다. 최소한 안이 얼마나 익었는지, 당도는 어떤지를 대충 파악할 수 있지만 수박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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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 실질적으로 80년대 중반 이후 한국 학생 운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주류였던 NL의 역사를 어찌 책 한 권에 넉넉히 담을 수 있겠는가. 부족한 부분도 있고 아쉬운 대목도 많고 빠진 일도 부지기수다. 상대적으로 80년대 초중반, NL의 태동과 성장 대목은 그런대로 상세하지만, NL이 사실상 대학가를 장악하고 ‘한국을 움직이는 조직’에서 전경련을 능가하던 시절의 얘기는 의외로 소소하다.

 

NL의 사상과 행적의 큰 흐름을 깊이 있게 정리했다기 보다는 흐름 속의 인물들에 천착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렇기에 ‘NL사기(史記)’라기보다는 ‘NL인물열전’에 가까운 느낌이기도 하다. 무슨 뜻인가? 재미있다는 뜻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봐도 본 내용보다는 ‘열전’(列傳) 쪽이 더 흥미롭지 않던가. 이 책에는 영화 몇 편의 소재가 될 만한 인물과 그에 얽힌 사건들이 무시로 출몰한다. 강철 김영환 같은 주인공(?)급들만이 아니다. 학창 시절부터 이름을 들었던 전설적인 프락치 배00의 뒷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탄성까지 내질렀다.

 

유복한 경상도 집안 출신의 서울 유학생은, 그의 아파트를 초기 NL들의 아지트로 제공했고 주사파들의 원조라 할 구학련의 주요 멤버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사람은 프락치가 됐고 기존 동지들을 안기부의 올가미에 건 것은 기본, 심지어는 자신이 조직을 만들어 그 조직도와 명단을 통째로 넘기기도 했던 ‘역사에 남을’ 프락치였다. 이 사람의 이름을 알지만 책에선 굳이 00이라고 하고 있으니 그렇게 쓰기로 하는데 국내에서는 좀 살기가 껄끄럽다며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마음속엔 항상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갖고 있다. 친구들한테 솔직하게 토로하고 야단치면 야단맞고 그러고 싶다. 친구들이 나를 부른다면 가겠는데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서클 친구들을 보고 싶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는데... 많이 기억나고 그립다.”

 

전두환이라는 살인마가 입에서 피 철철 흘리며 전국을 횡행하고 20세기의 로마 군단 같은 복장의 전경들이 캠퍼스에서 족구하던 시절. 시위 한 번 하려면 “학우여”의 ‘학’자도 외치지 못하고 입 막혀 끌려가던 그 시절을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는 게 눈에 띈다. 사람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잘생겼든 못생겼든 생긴 자체로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을 황금기로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 역시 그러하겠지만 “가장 행복했던”이라고까지 묘사하는 건 조금 의외였다. 무엇 때문일까. 흘낏 생각하다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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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00이 가장 주체적으로 뭔가를 고민하고, 결단하고 주변 사람들과 목숨을 건 신뢰를 나누고, 역사 속에서 자신이 뭔가 기여하고 있다는 섣부르고 설익은, 그러나 단단하고 야무졌던 믿음을 굳혀 가던 때가 아니었겠는가. 그게 어디 NL 뿐이었겠는가. “식민지 내 조국 품 안에 태어나”, “조그만 더 쳐다오 시퍼렇게 날이 설 때까지” 고통을 견디며 “투쟁의 한길로 나서서 산산이 부서지는” 생각을 하고 “산 자여 따르라”는 노래를 부르며 나는 살아 있음을 가슴 벅차게 느꼈던 사람들의 ‘행복’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그 행복이 아픔과 환멸로 전이되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 사람도 있겠지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배00이 그리워하는 행복에 공감하는 이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던 시기에 나는 대학이라는 곳에 갔었다. 그 ‘행복’을 쉽게 누릴 상황이었고, 정서에도 맞았고 분위기도 비슷했다. 결정적으로 품성도 너무너무 좋았다(이 말에는 격렬히 고개를 젓고 주먹을 휘두를 이들이 많은 걸 안다. 그냥 국으로 가만히 계셔라).

 

나는 끝내 NL과는 불화했다. 이유는 “NL이 되기엔 의심이 너무 많았던 탓”이겠다. 그놈의 ‘신념’을 가지기 어려웠다. 김영환이 강조하고 임종석이 부르짖었고 <바보 과대표>의 시인 이창기의 ‘신념’이 의문투성이였고 그런 신념이 뭐가 중요하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책에는 주사파들과 더불어 그들과 얽히지 않을 수 없었던 북한의 공작들도 다수 등장한다. 과장이야 있었고 조작도 존재했으나 북한의 정치 공작이 남한 운동에 개입하고 잠수정 태워 주사파 핵심들을 북한으로 모시고 갔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 상세한 내용을 새삼스러운 놀라움으로 접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가슴 아픈 대목이 하나 있다. 성공리에 남한에 정착하여 강남에서 말레이시아 음식점을 경영하던 고정간첩이 있었다. 이름은 진운방. 한 조직 사건이 터지면서 급거 딸과 아내를 데리고 북으로 탈출했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위암 말기였다.

 

그는 어떻게든 조직을 재건해 보겠다고 나섰지만 이미 주사파의 수괴라 할 김영환부터 전향하는 상황. 그를 만난 이도 거의 마음이 떠나 있었지만 시커먼 얼굴과 가족들을 생각하여 차마 신고하지 못한다. 백화점에서 그의 가족에게 줄 선물까지 사 줬지만 진운방은 북한 귀환 길에 우리 군의 감시망에 걸려 죽음을 당한다.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명단은 고스란히 안기부의 호박 넝쿨이 된다.

 

혁명이 무엇이관대, 그에게 해방이 무엇이관대 위암 말기의 몸으로 그 험한 길을 오가다 죽음을 맞아야 했을까. 왜 북한 정보기관은 위암 말기 환자에게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조차 허용하지 못하고 죽음의 칠성판 위로 올려야 했을까. 누구보다 사람의 자주성을 강조한 주체사상이었지만 사람의 헌신을 너무 헌신짝처럼 썼다는 건 단순히 내 몰이해의 소산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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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그런 모습은 남의 NL 운동에서도 드러났다. 개인적으로 91년 봄, 분신 정국을 한국 NL운동이 낳은 최악의 사태라고 보는 이유다. 그 이후에도 학생 운동이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을망정 NL 중심의 학생 운동은 1991년 봄에 중대한 삐딱선을 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자주성을 중시하되 자주성을 억압하는 쪽으로 달려갔고, 창조성을 주창하되 아무 비판 없는 답습을 즐겼고, 의식성을 강조하되 비판 의식을 거둔 채 자신들만의 논리 체계와 정세 분석 안에 갇혀 버렸던 것.

 

이 책은 위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기나긴 내력들을 거칠지만 담담하게, 치밀하지는 않으나 친절하게, 뭉툭하지만 귀에 잡히는 이야기들로 묘사하고 있다. 장담하건대 최소한 겉핥기는 아니다.

 

책의 표지에서 저자는 그 많던 NL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묻고 있다. 그 답은 뻔하다. 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잘 살아나가고 있다. 나는 그 NL들을 존중한다. 세상에 오류 없이 산 사람 어디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옳았던 조직이 어디 있겠나. 또 일상에서 만났던 용감하고 순수했던 사람들, 불의에 맞서 투쟁할 줄 알았고 남을 보호하기 위해 일신을 걸 줄 알았던 이들이 그런 존중의 대상이 못될 이유가 무엇이겠나.

 

하나 더 그들이 소중한 이유를 덧붙이자면, 그들 중 일부가 열렬한 주사파였다고 하더라도 만약 자한당류의 헛된 망상대로 북한의 김씨 왕조가 ‘적화 통일’을 이루는 개 같은 미래가 온다면 가장 먼저 앞장서서 싸울 사람들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어떤 놈들은 완장을 차겠지만 어느 태극기 부대보다도, 어느 보수 우파보다도 더 열렬히 싸울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게 NL의 힘이었고, NL을 넘어서 한국 학생들의, 한국인들의 힘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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