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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말 백제 조정은 어지러웠다. 젊어서 용맹스럽고 효성이 지극했던 의자왕은 주지육림의 쾌락에 빠져 있었다. 대야성을 함락시킨 뒤 신라는 내 손안에 있다 호탕하게 웃었으나 신라가 당나라와 손잡고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관심이 없었다. 귀족들은 더했다. 의자왕의 왕권 강화책에 불만을 품은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나랏일보다는 자신들의 이권에 여념이 없었다. 좌평 임자부터 김유신과 내통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가 망하든 서로를 돌보아 주자.”

 

김유신의 달콤한 꾐에 덥석 넘어갈 만큼 백제의 기강은 해이해졌고 귀족들은 썩어 있었다.

 

충신 성충이 분연히 일어나 의자왕에게 정신을 차려 정사를 돌보라고 청하였으나 의장왕은 오히려 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니 성충은 곡기를 끊다가 죽어가며 유언을 남긴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육군은 탄현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를 넘어오기 전에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보다 못한 흥수라는 충신이 목숨을 걸고 의자왕 앞에 엎드렸으나 의자왕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치가 성충 꼬라지를 못 봤나 보다.”

 

마침내 전쟁이 터졌다. 당나라군만 13만 대군이 덕물도에 상륙했고 고구려를 치는가 했던 신라군 5만이 전속력으로 남하하여 소백산맥을 넘으려 했다. 백제 건국 이래 최악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의자왕은 당황하여 오늘날 전라도 장흥에 귀양가 있던 흥수에게 사람을 보내 대책을 물었다. 흥수의 답변은 거침이 없었다.

 

“당나라군은 수가 많고 무엇보다 정예병들입니다. 신라와 한패가 돼 기세등등하니 야전(野戰)으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성충의 말을 기억하소서. 기벌포를 막으소서. 그들이 백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신라군은 탄현에서 막으면 됩니다. 천험의 요새지라 어렵지 않게 막을 수 있습니다. 적들이 요새를 돌파하지 못하면 양식이 떨어지고 피로해질 터, 어렵지 않게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의견이 도착한 이후 백제 궁정에서는 회의가 열렸는데 김유신과 내통하고 있던 임자를 비롯한 귀족들은 엉뚱한 소리를 한다.

 

“흥수는 오랫동안 귀양가 있어 임금에 대한 원망은 그득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없을 것이니 어찌 그 말을 듣겠습니까. 오히려 당나라군은 백강에 들어온 다음 그 물살에 정신 못차릴 때 치는 게 옳고, 신라군은 탄현에 올랐을 때 치면 독안의 쥐가 될 것입니다.”

 

그럴듯하지만 전술적으로 보면 완전한 헛소리였다. 아무렴 강이 바다보다 험하겠는가. 산을 넘은 군대가 짓쳐 내려오는 것을 치기가 쉽겠는가, 산을 기어오르는 군대를 공격하기가 쉽겠는가.

 

계백을 비롯한 일부 신하들이 격렬하게 반대하였으나 표결에 부쳐진 귀족 회의의 결론은 성충과 흥수의 의견을 반대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더 어이없는 것은 표결 전에는 계백 등의 열정적인 설득으로 상당수 귀족들이 흥수의 안에 동의를 표하였음에도 막상 이름을 밝히지 않은 투표에서는 모두 돌아서 버린 일이었다.

 

계백은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회의를 하고 있을 즈음 당나라군은 기벌포를 통과했고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서 버렸다. 그나마 주력군은 당나라군을 상대해야 했으니 계백은 불과 5천 명을 이끌고 5만 신라군을 막아야 했다.

 

“아아. 충신들은 죽어가고 저 탐욕 덩어리들만 남아 나라를 그르치는구나.”

 

어쩔 수 없었다. 계백은 5천 명의 부대를 이끌고 탄현과 사비 사이에 놓인 마지막 전장인 황산으로 출진한다. 비장한 출진 전, 계백이 자신의 가족을 죽이고 그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을 쳐들고 말에 오르니 부하들의 가슴도 터져 나갈 듯하였고 군사들도 모두 이를 악물었다. 결사를 다짐하며 머리를 깎고, 갑옷도 채 지급받지 못하여 베옷(布衣)을 입은 병사들은 굳세게 안장을 들어 올렸으나 입에서는 울음 같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저 귀족 놈들 때문에...”

 

이때 계백의 부장이 울분에 차 읊은 시 한 수가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작자 이름은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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剃布按斧訣 체포안부결

머리 깎고 베옷 입고 도끼 어루만지며 이별하도다

 

戮甲窒獻多 육갑질헌다

으뜸가는 이 죽이고 어진 이 숨통막히는 일 잦도다

 

衰隊迦理假 쇠대가리가

쇠약한 무리 거짓 바로잡는 일 가로막고

 

國蛔將亂質 국회장난질

나라의 회충들이 이제 나라의 근본 무너뜨려 하니

 

百約無效也 백약무효야

백번의 언약도 아무 효험이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