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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조 “파미레스”의 후예

 

일본의 ‘패밀리레스토랑(ファミリーレストラン)’의 시초는 1953년에 개업한 프랑스 요리점 ‘로얄 나카수 본점(ロイヤル中州本店)’이라고 합니다. 현재 ‘로얄호스트(ロイヤルホスト)’라는 이름으로 일본 각지에서 영업하고 있어서 아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로얄나카수는 1969년에 이른바 ‘센트럴 키친(central kitchen)’ 방식을 채용해서 점포를 늘려 갔죠. ‘센트럴 키친’이라 함은 모든 지점에서 사용할 식재료 등을 한 곳(공장)에서 가공해 각 점포의 품을 덜어주는 방식을 말합니다. 체인 레스토랑이라는 영업 형태에 핵심적인 시스템이라 할 수 있겠죠.

 

그 당시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일본에서는 줄여서 ‘파미레스(ファミレス)’라고 하죠)이라는 말은 없었고, 1970년에 비로소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말이 탄생했답니다. ‘스카이락(すかいらーく)’ 1호점이 도쿄 쿠니타치(国立)에 출점될 때 창업자와 한 신문사의 기자가 고안한 단어라고 합니다. 지금 ‘파미레스’라고 하면 비교적 저렴하고 일상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당시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족(패밀리)끼리 같이 식사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일이라 상당히 세련되고 멋진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 후 스카이락은 승승장구를 거듭해 체인 레스토랑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상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왕년의 스카이락에서 식사를 즐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2009년 10월 사이타마에 딱 하나 남아 있던 카와구치신고(川口新郷)점이 폐점됨에 따라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죠. 스카이락이 폐점에 이른 이유로 가장 많이 말하는 요인은 90년대 초의 거품경제 붕괴와 경기 침체를 계기로 손님이 급감한 것입니다. 비교적 세련된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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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진출했었지만 2006년 철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레스토랑 브랜드로서의 스카이락은 볼 수 없게 됐지만, 각종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는 회사 이름(스카이락 그룹)으로 남았습니다. 대신 비교적 저렴한 메뉴를 내세운 ‘가스토(ガスト)’가 그룹 내 주력 레스토랑으로 부상했지요.

 

 

2. 가스토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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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는 2018년 봄 기준으로 약 1360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일본에서 가장 수가 많은 파미레스 체인입니다. ‘가스토’라는 명칭은 스페인어로 ‘맛’을 뜻하는 ‘gusto’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영어에도 ‘좋은 맛’이라는 뜻의 ‘gusto’라는 단어가 있고, 독일어엔 ‘손님’을 뜻하는 ‘Gast’라는 단어가 있으니, 이들 뜻이 ‘ガスト(가스토)’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면 레스토랑 명칭으로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각종 햄버그 스테이크나 그릴(닭고기/소고기)류, 스파게티・피자 등 양식을 비롯해 돈가스 백반, 굴 튀김과 참치 덮밥 정식, 소갈비살 구이와 새우튀김 백반 등 일식 백반류, 각종 라멘이나 한국식 찌개 우동, 시원한 샐러드면(시금치로 만든 국수 요리) 등 면류도 나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라이트 밀(가벼운 음식)’ 시리즈로 도리아나 일식 죽 등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먹기에 알맞은 메뉴가 있는가 하면 감자튀김이나 가라아게(일본식 닭튀김), 얼큰한 닭고기구이, 소시지의 그릴 등 안줏거리도 충실합니다. 아기용 메뉴가 마련된 것은 기본에 종류가 6가지나 있고 가격도 500엔 전후로 저렴합니다.

 

‘Cafe 레스토랑’을 자칭하는 만큼 후식류도 다양하고 괜찮아 보입니다. 파미레스는 계절마다 제철의 식재료를 쓴 메뉴를 출시하는 행사를 할 때가 있는데 요즘은 망고 디저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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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의 다양성과 가격의 저렴함이라는 파미레스 요건을 다 충족한 가스토에서는 드링크바(Drink Bar)도 기본. 드링크바를 함께 시키면 각종 음료수가 무한리필입니다.

 

가스토에도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종업원이 사람수와 흡연 여부를 물어올 테니 식후에 한 대 태우고 싶은 분은 흡연석을 지정하면 됩니다. (참고로 흡연석을 희망할 경우에는 “키츠엔 세키데 오네가이시마스(喫煙席でお願いします)” 정도 전하면 오케이입니다.)

 

결제도 전형적 파미레스답게 다양하며, 현금에 더해서 신용카드, 교통카드로도 지불할 수 있습니다(점포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입점 시 확인하면 더 안심하죠).

 

가스토와 관련해서 하나 유의할 점은 찾아오는 손님들의 질이 반드시 좋지는 않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왠지 가스트에는 집단으로 찾아와서 시끄럽게 이야기 나누는 젊은이들이 많이 오는 것 같습니다. 이자카야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릴 경우가 있어서 카페로 이용하기에는 약간의 리스크가 따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겠습니다.

 

 

3. 현장실사

 

필자가 찾아간 가스토를 리포트해 봅시다. 이번에 찾아간 곳은 가스토 노다우메사토(野田梅郷)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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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치바 어딘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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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포인트를 모으면 호빵맨 굿즈를 주는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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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 외관. 파미레스 앞에 주로 있는 홍보용 깃대에 ‘포인트를 모으면 호빵맨 굿즈를 꼭 받을 수 있다’고 써있네요.

 

일본의 많은 파미레스가 그렇듯이 가게 안에 장난감 판매대가 있습니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오는 손님이 많아서일 텐데, 어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상품도 있네요. 필자는 이런 데에서 장난감을 사본 적이 없어 정말 팔리는지 궁금했었는데 종업원분이 “꽤 잘 팔린다”고 답해주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재미있는 상품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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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점(入店)하면 바로 있는 장난감 판매대. 꼬마 아이를 데리고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인지 일본 파미레스에선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주방 쪽에서 나오는 종업원에게 둘이서 왔고 흡연석을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죠. 종업원은 흡연석 쪽으로 가리키며 “좋아하는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합니다. 필자 일행은 왼쪽 가장 끝자리에 앉기로 결정. 금연석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필자 일행이 들어간 흡연석엔 손님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쾌적한 상황이었습니다.

 

참고로 파미레스에는 종업원이 손님을 자리로 안내해주는 곳이 있고 종업원이 손님의 사람 수와 흡연 여부만 확인하고 알아서 앉으라는 식인 곳이 있습니다. “알아서 앉아라”식이 다수파인 것 같은데 가스토도 그렇습니다. 손님 중에는 종업원이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알아서 자리를 잡는 손님도 있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예의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필자 일행은 신사답게 종업원을 기다렸다가 뜻을 전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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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흡연석에 손님이 적어서 쾌적하게 식사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

 

자리에 앉으면 오늘 먹을 것을 고르는 차례. 필자는 ‘양식의 가스토’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찾아봤더니 뜻밖에 일식 메뉴도 충실한 모양. 약간 흔들렸지만 역시 양식을 먹기로 했죠. 그런데 가스토가 원래 양식 파미레스인 만큼 일반 메뉴도 많고 봄의 특선 메뉴도 너무 맛있게 보이는 겁니다. 친구는 할인쿠폰이 있다면서 철판에 나오는 치즈 햄버그 스테이크를 시킨다고 일찍 결정한 상황. 봄 특선 메뉴도 땡기고, 오랜만에 새우튀김도 땡기는데 철판요리의 고소한 향도 상상돼서 마음이 쪼개지는 듯한 느낌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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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 메뉴판(2018년 봄). 음식 이름이 설명조로 되어있죠. 제발 이름에 ‘걸쭉하게(とろり)’라든지 ‘쥬씨(ジューシー)’라는 말을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뭘 시킬지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새우튀김을 먹고 싶었던 처음의 마음을 믿고 햄버그 스테이크&새우튀김을 시키기로 결정. 상당한 결의가 필요했던 이유는 햄버그 스테이크&새우튀김은 철판이 아니라 도자기 그릇으로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친구가 철판요리를 시킨 만큼 역사상 영웅이나 된 것 같은 결의였죠. 저녁을 먹기 전에 크나큰 마음을 먹어야 했던 겁니다.

 

고민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의 파미레스에서는, 특히 양식류를 시킬 땐, 메인 메뉴(필자의 경우 햄버그 스테이크&새우튀김)를 시켜도 공깃밥이나 국물, 음료수 등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밥이나 스프를 먹고 싶으면 따로 시켜야 하고 음료수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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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 사진에 나와 있는 햄버그 스테이크 등. 메뉴 사진에 공깃밥이나 국이 안 나와 있는 점에 주의가 필요하죠.

 

그래서 말입니다. 따로 공깃밥이나 국, 음료수 등을 단품으로, 아니면 메인과 세트로 판다는 것을 알려주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공깃밥, 날마다 종류가 바뀌는 ‘오늘의 스프’, 드링크바가 세트로 있는 ‘A 드링크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배고파서 밥을 곱빼기로 했죠(참고로 곱빼기로 할 수 있는지 물어볼 때에는 “오오모리니 데키마스까(大盛りにできますか)?” 정도면 됩니다). 물론 주메뉴(햄버그 스테이크 등)만 단품으로 시켜도 전혀 문제가 안 됩니다. 잘 몰라서 주메뉴만 시키는 손님도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차원에서 종업원이 “○○는 단품으로 시키시는 게 맞으시죠?”정도는 물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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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깃밥이나 국은 따로 시켜야 나옵니다. 오늘은 A 드링크 세트를 주문했습니다.

 

주문을 마치면 음료수를 따르러 갑니다. 식당 안에 설치된 드링크바 코너에 가서 (종류도 양도) 내 마음대로 따른 뒤 자리에 가져오면 됩니다. 필자는 따뜻한 커피하고 (정확한 이름은 까먹었는데 하여튼) 무슨 바닐라 주스를 따라 왔습니다. 아주 맛이 있어 보였는데 너무 싱거웠어요. 달달한 음료수를 먹은 후 제대로 씻지 않은 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느낌. 애당초 얼음을 많이 넣었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얼음의 양을 잘 조절하면 맛있을 겁니다. 커피는 일본에서 가장 일반적인 ‘블렌드’를 선택. “적당히 섞었다.”라는 뜻일 텐데 나름 맛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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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싱거운 바닐라 주스(정확한 이름은 까먹음)와 커피. 커피는 괜찮았습니다.

 

A 드링크 세트에는 ‘오늘의 스프’도 포함되는데, 시켰을 때엔 몰랐지만 스프도 드링크바처럼 무한리필이랍니다. 오늘의 ‘오늘의 스프’는 ‘한국풍 계란스프’였죠. 뭐가 어떻길래 한국풍인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한국에서도 먹어 봤던 것 같기도… 정도는 동감할 수 있었습니다. 약간 짠 느낌이 있으면서도 나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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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 노다우메사토점의 드링크바. 스프 코너는 드링크바 뒤에 있습니다. 물은 무료입니다.

 

커피를 마시며 친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문한 햄버그 스테이크&새우튀김이 나왔습니다. 곱빼기로 변경한 공깃밥은 그 이름대로 곱빼기. 충분한 양입니다. 일단 새우튀김을 먹고 싶었기 때문에 햄버그 스테이크엔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네요. 소스가 아주 맛이 있었죠. 새우튀김도 기대했던 대로 맛있습니다.

 

경험상 파미레스 메뉴판에 있는 사진은 거의 믿을 만하고 실제 음식이 사진대로 제공되는데 새우튀김만큼은 경계가 필요합니다. 튀김이다 보니 튀김옷만 크고 내용물은 전체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이죠. 그 점에선 가스토 노다우메사토점은 괜찮습니다. 적절한 두께의 튀김옷에 새우가 가득 있었죠. 타르타르 소스의 맛도 합격. 양도 딱 좋고 모자르지도 남지도 않았습니다. 요리사 솜씨가 대단한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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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버그 스테이크&새우튀김. 새우튀김은 기대만큼 맛이 있었고 햄버그 스테이크도 괜찮았습니다. 특히 소스가 밥에 딱 맞아서 맛있었어요. 겉보기에는 완전 양식인데 필자는 젓가락으로 먹었습니다.

 

친구가 시킨 것은 치즈 in 햄버그 스테이크하고 A 드링크 세트(공깃밥 곱빼기). 역시 철판 위의 고기는 마력이 있나봐요. 너무 맛있어 보였지만 이번에는 새우튀김으로 대만족. 후회는 전혀 없었습니다(단 다음엔 꼭 치즈 in 햄버그 스테이크를 먹을 거라 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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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in 햄버그 스테이크. 철판 위에서 녹다 못해 살짝 구워지는 치즈가 범죄적으로 맛있어 보이며, 입안에서 육즙과 절묘한 조화를 이룰 것을 상상하면 참(독자 분들 및 필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 이하 생략).

 

이제 배도 부르니 커피나 마시면서 마무리하면 평온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단계. 그렇지만 파미레스의 상혼(商魂)은 일반 서민의 평온한 계획을 깨뜨리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테이블 부착형 후식 광고'죠. 일본의 일부 파미레스에서 볼 수 있는 후식 광고 스타일인데, 말 그대로 테이블에 대대적으로 후식 광고를 부착한 겁니다. 필자가 가스토를 찾아간 날에는 딸기를 내세운 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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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토의 테이블 부착형 후식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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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딸기 행사를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식사를 했지만 신기하게 후식이 들어가는 자리는 있는 모양. 친구와 상의하는 척하면서 둘 다 딸기선데를 주문. 커피의 쓴맛과 멋진 조화를 이룬 딸기선데는 시킨 이를 후회하게 하지 않는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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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식으로 먹은 딸기선데. 원고를 쓰면서 확인해보니까 431엔. 식은 머리로 보면 약간 비싸기도 한데 테이블 부착형 광고는 사람의 냉정함을 쉬이 깨는 모양.

 

필자 일행은 딸기선데를 먹고 어쩐지 마무리를 하는 타이밍을 놓쳐 버렸습니다. 음료수만 계속 마시며 잡담을 했죠. 커피만 마셨으면 좋았을 텐데, 드링크바의 나쁜 점은 추가요금이 없으니 되도록 많은 종류의 음료수를 먹자는 욕심을 부추기는 거죠. 커피를 마시던 필자가 살짝 탄산음료를 따라 버린 겁니다. 갑자기 입이 심심한 느낌이 들었죠. 필자 일행은 고봉 감자튀김(山盛りポテトフライ, 323엔)을 시켜 버렸습니다. 아마 필자가 제의하고 친구가 동의해줬을 텐데 배부른 상황에서 왜 그랬는지 전혀 모릅니다. 가격 대비 만족감은 충분하죠.

 

둘이서 여기까지 총액 3,400엔(≒ 34,000원)이면, 반드시 비싸진 않죠? 아주 맛이 있는 요리를 제공하는 것도, 꼭 다시 찾고 싶게 만드는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막상 가보면 메뉴가 그나마 다양하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은, 나쁘게 말하면 실히 어중간한데 어떻게 보면 만인이 그저 그런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곳. 가스토는 그런 파미레스의 전형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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