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등장인물도 나옵니다.
호칭도 때에 따라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1.
물뚝심송님은 '필요 이상' 가깝게 지낸 몇 안 되는 필진 중 한 명입니다. 딴지가 부활한 2009-2010년에 연을 맺게 된 필진은 이런 경우가 제법 있습니다. 대부분 무어라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서로를 곤란하게 하는 묘한 관계였는데 물뚝심송님은 더욱 그랬지요.
2.
5월 11일 금요일입니다. 전날 아이의 열이 38도를 왔다 갔다 해 물을 적신 거즈로 닦아주다 잠깐 눈을 붙였습니다. 휴대폰을 보니 점심 12시가 너머 있습니다. 각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6통의 전화와 3개의 문자가 와 있습니다. 물뚝심송님에 대한 연락인데 물뚝심송님으로부터 온 연락은 아닙니다.
3. 2009-2010
물뚝심송님을 처음 만난 건 8년 전입니다. 외부에선 딴지가 한참 부활하고 있는 시점으로 보였겠지만 내부 사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입사하고 한 달 안에 1층에 있던 직원 대부분이 나갔고(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막내는 이럴 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법이지요) 2층 편집부 상근 직원은 3명이 됩니다. 함께 있던 사람은 당시 편집장이던 너부리님, 후에 부편집장으로 활동한 필독님입니다. 총수님은 장난을 치며 과자를 뺏어 먹거나 소파에서 낮잠을 자곤 했습니다. 제법 한가한 시절이었지요.
입사는 했지만 딱히 할 것도 없는지라 묘한 시사문제를 기사로 내며 놀았습니다. 당시 "제10회 딴지 시사능력 검정시험"에서 물뚝심송님이 정답을 모두 맞춰 공동 1등이 됩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단 사람이었는데 '1빠가 1등은 아니지만, 1빠가 몽땅 정답이면 1등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속으로 ‘이거 참 이상한 사람이군. 가까이 지내면 피곤할 것 같으니 거리를 둬야지’, 라고 생각한 게 물뚝심송님에 대한 첫 기억입니다. 전에 게시판에서 같이 놀긴했지만 저 기억이 강렬합니다. 왜냐하면 정말 강렬하게 저렇게 생각했으니까요.
2009년에 필진으로 활동하다 정치불패라는 게시판의 방장을 맡았는데 금세 입사를 하게 되었는 지라 다음 방장은 물뚝심송님이 됩니다. 저는 조용히 지내는 쪽이었고 물뚝님은 그렇지 않은 쪽이었습니다. 좀 더 정밀히 하면 게시판에서 재밌게 놀기도, 꽤나 싸우기도 했던 사람이지요. 가끔 논쟁이 격해져선 물뚝심송님과 게시판의 딴지스가 크게 각을 세웠는데, 그게 또 재미가 좋았습니다. 이런 싸움이 많아져 서로 골치 아픈 일도 많았지만 "다, 덤벼"의 기백만큼은 확실한 사람이었지요.
여하튼 앞선 시사능력시험을 계기로 게시판에서 놀던 '수석합격자' 물뚝심송님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후 8년간 더없이 묘한 관계가 시작됩니다. 딱히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어느새 필진과 담당 기자처럼 되어버렸지요. 8년 동안 많은 필진이 왔고 많은 필진이 갔습니다.
다만 이렇게 쉼 없이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는 지금 생각해보니 제법 이상합니다.
4. 2010-2011
전심전력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물뚝심송님이 매달린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흔히 '삼성전자 휴대폰 폭발사건'이라 부릅니다. 전심전력이라 말할 수 있는 건 피해자와의 만남, 고민, 취재, 등 그 전 과정을 옆에서 본 단 한 명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요약하면 '삼성이 증거를 조작해 피해자를 블랙컨슈머'로 만든다 판단했는데 당사자가 블랙컨슈머인 것으로 결말이 났습니다. 딴지가 부활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다시 망할 수도 있겠다, 라고까지 생각될 정도로 시끄러운 사건이었지요. 물뚝심송님은 마음이 꽤나 상했습니다. 나 또한 그랬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이 사건이 물뚝심송님과 가까워진 계기가 됩니다.
저는 집으로 사람 부르는 걸 꺼립니다. 왜인지 모르지만 딴지에서 만난 사람 중 처음으로 물뚝심송님과 그렇게 됩니다. 혼자 살았던지라 물뚝님이 서울에서 자료를 조사하거나 인터뷰를 할 때 가끔 집을 대여(?)해주거나 함께 짬뽕을 시켜 먹곤 했지요. 언젠가 물뚝님으로부터 온 고소장(딴지일보는 고소, 고발이 많아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에 '딴지일보 안가에서'라고 쓴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어 함께 웃었습니다. 고소장에 명시된 딴지일보 안가는 저의 집이니까요.
그나 저에게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따금 당시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강렬한 사건입니다. 물론 남들이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싫지만.
5. 2012
2012년 역시 물뚝님의 주무기인 논평을 주로 쓰던 와중, 연말에 '물뚝 전성시대'가 열립니다. 나꼼수 말기, 딴지라디오에 '그것은 알기싫다' 라는 팟캐스트가 런칭됐기 때문이지요. 프로듀서 UMC를 중심으로 필진 중엔 물뚝심송님이, 편집부 기자 중엔 제가 각자의 주제로 첫 코너에 참여하게 됩니다. 팟캐스트를 함께 하면 이상한 동지 의식이 싹틉니다. 어쩌다 보니 더 가까워지게 됩니다. 처음 '그것은 알기싫다'가 오픈했을 때, 내부 청취자수(굳이 딴지로 들어와서 플레이하는 청취자 수)가 50만이 나와 둘 다 놀랐지요. 제가 이 기록을 엑셀로 체크하고 있어 기억합니다. 아마 물뚝심송님을 모르던 사람이 그를 알게 된 계기가 대부분 이 방송이었을 겁니다.
방송을 시작하고 몇 회의 출연이 더해지자 형에겐 술이나 먹을 것 등의 선물이, 저에겐 편지가 왔습니다. 어리둥절할 정도로. 둘 다 이건 뭐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라며 놀라면서도 기뻤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속물처럼 보이겠지만(실제로 속물이기도 하지만) 많은 현물(?)이 들어오는 형을 부러워했고 형은 많은 편지가 들어오는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왜 그런 청자의 성향차가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나 제가 좀 더 유리한 입장이었지요. 먹는 건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형이 조금 억울했습니다. 흠,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이후, 물뚝님은 계속 '그알싫'에 집중했고 저는 회사 업무가 많아져 방송과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보통 형의 원고를 받으면 제가 이러쿵 저러쿵 하는 입장이지만, 방송을 시작하니 형이 저에게 말을 못한다 이러쿵 저러쿵하는 입장이 됩니다. 내심 으음, 그 정도로 형이 프로 방송인은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역전되었었지요. 맞는 말이라 딱히 할 말은 없지만.
6. 2013-2014
당시 편집장이던 너부리 형은 회사의 자금 확보를 위해 마켓에 온 힘을 쏟아붓기 시작합니다. 2013년 3월인가 4월에 데스크를 물려(?) 받았습니다. 딴지 구성원을 뭉뚱그려 편집부라 하지만 당시 고전적인 편집부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저와 꾸물 둘 뿐이라 제법 고생했습니다. 매일 매일의 업뎃은 물론, 편집부 관련 전화 응대와 잡무까지 두 사람이 해야했으니까요. 직원 모두 3, 4명의 일을 하며 밤샘도 잦았던, 그런 시기였지요.
꾸물과 나만 당할 순 없는 지라, 그동안 나를 놀리며 장난친 필진들에게 새벽이고 밤이고 청탁 폭격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물뚝심송님은 집중포화의 대상이었습니다. 으음. 생각해 보니 가장 큰 희생양이었네요.
데스크를 인계받은 달에 물뚝심송님에게 대략 10꼭지의 기사를 청탁합니다. 놀란 건, 그가 청탁한 기사를 모두 써버립니다. 기획을 던질 때, 나름 친절한 타입이라 생각하지만(저만의 생각입니다만)던지는 사람과 그걸 구체화시키는 사람의 고생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지요. 이 기억은 제법 강렬합니다. 우와. 던진 걸 다 받다니.
생각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물뚝심송님은 원고를 빨리 씁니다. '빨리'라고 하면 어느 정도일지 상상이 힘들 텐데 정말 빠릅니다. 딴지에서 웬만한 글쟁이들을 만났다 생각하지만 지난 10년간 아침에 급히 원고를 청탁해 점심 시간에 '다 이루었도다', 하며 연락하는 이가 네 명 있습니다. 펜더님, 필독님, 파토님 그리고 물뚝님이지요. 겉으로는 늘상 '아, 빨리 줘요. 말한 지가 언젠데. 3시간 지났단 말이야(이렇게 적고보니 제가 조금 이상해 보입니다)' 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굉장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10개의 기사를 쓰려면(게다가 길다고 소문난 딴지 기사를) 3일에 한 번 꼴로 써야 합니다. 당시, 물뚝님이 보낸 기사 중 평균 1, 2개는 킬하므로 어느 정도의 속도인지 상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후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페이스는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 형도 정상인인 척하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은근히 괴롭혀지는 걸 좋아한 것 아닐까요.
사람들이 읽고 감응할 수 있는 글을 그 속도로 써내기 위해선 모든 사안에 자신만의 철학과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지요. 매번 이 원고는 이렇네, 저렇네 했지만 속으론 늘 굉장하다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7. 2015-2016
이 당시 물뚝님은 묘하게 고민이 많습니다. 스스로의 컨텐츠와 앞으로의 삶에 대한 방향성이랄까, 함께 한 시간은 오래지만 그 전에는 하지 않을 대화의 시간이 잦습니다. 컨텐츠적으로는 '물뚝심송' 답게 많은 아이템을 가져와 기억을 다 하지 못할 정도입니다. 여기에선 이거, 저기에선 이거, 딴지에선 요거, 어떨까. 딴지와 관련되지 않은 일이 더 많았습니다. 언제가부터 그런 관계가 되어버렸지요. 내심 ‘아, 이 형 에너지가 너무 많아 피곤하다’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으음, 피곤하다.' 싶으면 슬금슬금 도망가는 타입이라 슬금슬금 하던 던 중 과연, 인생은 생각대로 흐르지 않는 모양이지요. 케이블 방송을 함께 하게 됩니다. 방송 녹화 시엔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찍는 데다 딴지 외적으로도 같이 일하는 관계가 되다 보니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런 류의 방송엔 둘 다 아마츄어라 처음엔 어색했고 서로가 서로를 부끄러워했지요.
방송을 끝마치면 대부분 밤 늦은 시간이 됩니다. 배가 고파 같이 짬뽕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앞으로 본인이 무슨 일을 할지 고민이 계속됩니다. 본인의 생각만큼 하려던 일이 잘 되지 않은 것 같아 때때로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런 잡담의 시간이 잦다보니 '어, 우리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네' 라는 어떤 선까지 가버립니다. 서두에 '필요 이상' 가까워졌다, 라 했는데 그건 이 시기부터지 않을까 합니다. 누군가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한다, 는 기분이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런 게 아닐까 합니다.
필진과 편집부의 관계란 참으로 묘합니다. 느슨한 연대라 해야 하나, 느슨한 동료라 해야하나. '딴지만의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으나 내부적으로는 '가는 사람 안 잡고 오는 사람 안 막는다' 는 느낌이 있습니다.
딴지에 들어왔을 때 느낀, 쿨하다면 너무 쿨한 그런 분위기가 처음엔 어색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 했습니다. 월급이 불안정한 곳, 회사 앞날이 불투명해 누가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곳,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도 않고, 기대도 받지 않는, 큰 틀 안에서 미우나 고우나 울타리 정도 유지하는, 섭섭할 것도 섭섭해질 것도 없는 그런 묘한 관계.
물뚝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것이 이즈음 깨어진 게 아닌가 합니다. 서로 화를 낼 수 있고 서로 섭섭할 수 있고 서로 삐질 수 있는. 조금 질척임이 생긴다 할까요. 서로의 직업이나 일을 떠나 인간 개인에 기대치가 많아졌달까요. 딴지 필진 중 제게 화를 내거나, 섭섭하다거나 할 수 있는, 저 또한 그럴 수 있는, 그렇게 필요 이상 상호질척의 관계가 두 명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됩니다. 이런 관계가 좋은 것인진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온갖 주제로 오래 잡담하다 한 템포 쉬어갈 때면 마사오는 이게 문제야, 저게 문제야 하고, 의견을 나눕니다. 물뚝심송님과는 함께한 시간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의견이 달랐지만 마사오님에 대한 문제인식만큼은 누구보다 마음이 통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돌이켜보면 마사오님에겐 조금 미안한 일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뭐 그런 건 어떻게 되도 상관 없는 것이지요.
8. 2016. 05-
2016년 5월 초입니다. 이때부터의 기억은 꽤나 선명합니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나 2년 정도는 저도 기억하지요. 언제나처럼 청탁하는데 돌아온 대답이 남습니다.
"어차피 알게 될 테니 얘기할게. 나 암 걸렸어. 처음엔 심란했는데 좀 지나니까 적응돼. ㅎㅎ"
구강암입니다. 윗쪽 턱뼈를 잘라내고 틀니같은 보강재를 끼우는 수술을 할 거라 합니다. 외모도 변화없고 발성도 변화없을 거라, 걱정말라 합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합니다. 필진인 락수미님이 병원에 있는 지라 여러모로 물뚝심송님을 케어했는데 울먹거리며 "죽돌아, 물뚝형, 어떡하냐, 어떡하냐" 전화로 되뇌인 기억이 납니다.
그 전까지 활발하게 기사를 쓰던 물뚝심송님의 기사가 끊깁니다. 5월에도, 6월에도, 7월에도, 8월에도 원고 청탁을 계속합니다.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건 알았으나 위로나 경과를 묻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요. 청탁을 계기로 잡담을 하면서 뒤이어 근황을 교환하는, 그런 시간이 몇달 째 지속됩니다.
8월에 혀와 목구멍이 아프다 합니다. 당분간 음식을 못 먹을 것 같고 체중이 75킬로가 되어 몸짱이 되었다 합니다. 재밌는 건 이 와중에 새로운 아이템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둘레길, 올레길, 해외 트레일 다 다니면서 이런 걸 중계하는 글이나 영상 컨텐츠가 가치가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야, 이 상황에서 조차, 할 일입니다.
9월에도 으레 평소처럼 청탁을 합니다. 정말 청탁을 한 건 아니고 으레 암묵적인 첫마디 같은 것이지요. 이미 쓰고 있다고 하더군요. 놀랐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매운 것 빼곤 잘 먹고 있다' 며 놀러온다 합니다. 국궁도 하러 다닌다 합니다. 만나니 살이 거짓말처럼 빠지고 방사선 치료로 얼굴이 부분부분 시커매져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온 복귀기사가
[10.26논평]예견된 파국, 미래의 재건: 최순실 따위를 모시는 나라
기사원문 - 링크
이 기사입니다. 2016년 10월 기사인데 우리에겐 조금 추억이 있습니다. 복귀기사가 내부 조회수 15만이 넘어(보통 딴지 기사는 많이 퍼가는 탓에 펌보다 내부 기사 조회수가 훨 낮습니다. 15만이면 그 3배수 정도의 사람이 본 것으로, 우리 마음대로 생각합니다) 형의 기분이 좋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시 꾸준히 쓰자, 라 말하는 것 뿐이라 청탁은 계속 됩니다(이러니까 뭔가 청탁 인생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네요). 락수미님이 물뚝님 무리시키지 말라고 투덜댑니다.
딴지 필진은 원고를 넘기면 댓글도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쪽이 있는가 하면 딴 곳으로 퍼간 것까지 꼼꼼히 체크해 댓글을 하나하나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뚝님은 후자입니다. 본인의 기사가 잘 나가고 여기서도 퍼갔다, 저기서도 퍼갔다 좋아했는데 10월 말부터는 뭐 쓸까?, 안 던져?, 죽돌 아템 떨어진 거?, 라며 도발합니다. 저는 도발에 응했고 11월부터 부활한 형은 다시 기사를 쓰기 시작합니다. 대부분 반응이 좋았습니다.
11월 한 달에 7편의 기사를 받았고 2편을 킬합니다. 몰래 하는 말이지만 사실 그는 조금 성가신 스타일입니다. 기사를 쓰기 전에 너무 많이 의논합니다. 모든 기사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 꽤나 합니다. 헌데 이때는 그런 과정이 기뻤습니다. 내심 예전(?) 기분이 되었다고 할까요. 암에 걸리기 전의 그와 얘기하는 느낌입니다.
한국 측 상황에 대해 일본 쪽 언론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경우가 있는데 물뚝심송님에게 맡기기도 합니다. 컨디션이 좋은 모양인지 하루만에 탈고 하더군요. 정말 그리 느낀 게 다른 기사를 보면서 이 기사는 이런 게 좋았다, 저 기사는 저런 게 좋았다 평을 할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암에 걸리기 전엔 그런 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잡담엔 딸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 수능 영어 과목 점수가 좋지 않은 거 같다 했습니다. "속이 상한다" 합니다. 이 사람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표현인데 그때 그리 말해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내가 아는데, 속이 상한다. 형은 본인 의사가 중요하겠지만 딸이 한 번 더 도전해봐도 좋겠다 생각했습니다(이후에 그렇게 됩니다).
[논평]박지원의 반대로 2일 탄핵 무산, 그리고 국민이 가진 최후의 카드
기사원문 - 링크
참고로 이 기사는 당시, 그렇게 마음이 편치 않은 와중에 고심하며 쓴 기사입니다. 형이 공을 많이 들여 역시나 기억에 남습니다.
12월엔 또 새로운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며 한 번 들어보라 파일을 보냅니다. 오디오 논평입니다. https://soundcloud.com/park-sungho 형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건 언제나 놀라운 일이지만 놀랍게 재미 없다 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동일합니다.
9. 2017
2017년 초반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아이템과 새로운 일에 대한 주제로 나눌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딴지 관련이든 아니든. 컨디션은 가끔 만날 정도였지요. 이제 정말 괜찮아졌다 생각했습니다. 2월 18일에 결혼한다 전했는데 '2월 17일이 내 생일인데 감히 그 다음날 결혼하다니!', 라는 이상한 드립을 치기도 합니다. 드립만큼은 정말 어처구니 없는 사람입니다.
그럭저럭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다 2017년 4월부터 6월 사이엔 과거에 쓴 기사로 기자들이 찾거나 고소가 들어와 약간 힘들어 합니다. 검찰청에 가기도 했지요. 저도 함께 걸려있는 사안이라 '물귀신처럼 죽돌도 물고 들어갈 거~'라고 웃으며 말해 그러자 했습니다.
이때는 암환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4월부터 다른 암환자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를 딴지에 연재하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황입니다. 물뚝님과 함께 글을 쓰기로 한 분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리는 게 힘들다 하여 무산됩니다. 하긴, 그처럼 아무렇지 않게(적어도 겉으로는), 있는 게 이상한 일이지요. 이 직후에, 거짓말처럼 암이 재발합니다.
서로 아무 때고 전화했고 이 형은 나와 달리 어느 때고 전화를 잘 받는 스타일입니다. 어느날, 몇 번이나 전화가 안 되어 조금 의아했습니다. 곧 있다가 '보철을 빼놓은 상태라 통화가 곤란하다.' 하더군요. 7월로 기억합니다. 보통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데 '낼 모레 수술 받을 걱정에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고 해 멈칫했습니다. 물뚝님의 말에 처음으로 농담이 나오지 않는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8월엔 다시 좋아졌는지 본인의 예전 글을 보내면서 이거 잘썼지, 과연 나야, 라거나 블로그에 쓴 글이 조회수가 잘 나왔다고 자랑하길래 아아, 이 형이 요즘 덜 힘들구나, 해서 또, 청탁합니다. 이때는 저도 마음이 조금 좋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SNS나 댓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정말로 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안티가 굉장한 양반이었지요.
그런 스트레스는 괜찮은데, 턱하고 얼굴 통증이 심하다 했습니다. 이때쯤엔 저도 조금 진지해져서 형같은 경험을 하면 인생관이 바뀔 것 같다 하니 "원래 가지고 있던 인생관이 워낙 훌륭했었기 때문에 별로 안 바뀐다" 하더군요. 으음. 그러면서 허벅지 안쪽에 이식용으로 피부를 떼어낸 모습을 보여주며 "생살을 찢는 느낌인데 지옥과도 같은 고통"이라 합니다. 이 정도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을 할지 조금 난감해지기 마련입니다. 농담으로 받지 못하니 '근데 난 잘 참는다고 전공의에게 칭찬받았지! 에헴' 하더군요. 아아. 암환자의 갑질이란.
10월쯤엔 정말로 좋지 않다 했습니다. 본인 느낌엔 '이 고비를 넘기면 좋아질 거 같은데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 달인 11월에 마사오님과 입원실을 급습합니다. 물뚝님은 자고 있습니다. 전에 놀러갈 땐 족발을 사들고 가 앞에서 약을 올릴 정도로 금세 나을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팔이 여린 소녀처럼 가늡니다. 한동안 쳐다만 보다 병실을 나옵니다. 마사오님은 지하 병원 주차장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칩니다.
11월엔 정말 받고 싶은 글이 있어 청탁을 합니다. 글을 쓸 힘이 있냐니 없다 했습니다. 알겠다 했는데 형이 다시 왜 그러냐 되묻습니다. 수능이 다가오는데 딸에게 쓰는 편지를, 형이 만약 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했습니다. "아아...." 하더니 (참고로 2017년 7월 이후엔 거의 텔레그램으로 대화했습니다). 당장 쓰기 시작하겠다 하더군요.
[편지]지극히 개인적인, 4번째 수능에 임하는 내 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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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엔 컨디션이 나빠지고 있다 했습니다. 힘들다 했습니다.
10. 2018
1월입니다. 퇴원해서 집에 돌아온 형은 락수미님이 신경을 너무 잘 써줘서 효과가 있다 했습니다.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안정이 되고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했습니다. 딸은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들어갈 것 같다 했습니다. 내 일 같이 기뻤습니다. 집으로 놀러오라 합니다.
2월은 딸이 정식으로 입학증서를 받아 물뚝심송님의 기분이 조금 좋아집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온 집안이 우울했는데 딸이 안타를 쳤다 합니다. 환타님이 준 '중상급은 된다고 자랑하며 가져다 준 홍차'가 있다며, 마셔본 사람들 다 좋아했다며, 오면 차를 마시자 합니다. 다만 코 옆으로 종양이 증식하고 조직이 상하는 바람에 보기 흉한 건 각오하라 합니다. 2월 9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아침에 컨디션이 급 저하되어 미안하다며, 이후로 미룹니다. 한 번 더 날짜를 잡았는데 물뚝님의 가족 여행으로 또 미루어집니다. 평일에 마사오님이랑 놀러오라 합니다.
3월, 출산 후 3일째였나, 조산원에서 아내와 아기를 달래고 있는데 형이 연락 옵니다. 선물을 보내고 싶다며 주소를 보내달라 합니다. 괜찮다 했고 만나서 얘기하자 했습니다. 이번엔 제가 약속을 미룹니다.
4월 초에 연락을 했는데 문자로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컨디션이 혼미해 가끔 헛소리를 쓴다고 미안하다 합니다. 내성있는 세균이 나와 격리되어야 할 것 같다 합니다. 병원에서 많이 좋아졌는데 퇴원 직전에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 합니다. 퇴원하면 '연예인급(본인을 지칭) 면회 한 번 하게 해준다' 합니다. 나는 이번에도 자고 있으면 얼굴에 낙서를 하고 오겠다 합니다.
11. 05. 12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장례 준비가 아직 덜 된 상황이었습니다. 물뚝심송님과 형수님에게 인사하고 옆으로 가니 한 쪽엔 과거에 물뚝심송님과 함께 방송을 만든 제다이 측 사람들이, 한 쪽엔 락기와 옥상땐스, 락수미님이 있습니다. 아는 분들만 아는 이야기를 해 죄송하지만 이 세 명의 조합은 물뚝심송님이 봤으면 '어휴. 진짜 재미없는 인간들만 모였네' 라고 생각할, 딴지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구린 구성입니다. 재밌는 사람들 다 저녁에 올텐데, 그래야 왁자지껄 맛이 있을 텐데.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물뚝심송님과 달리 인복만큼은 언제나 없었지요.
물뚝심송님 자리에 소주잔을 하나 채우고 제법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선 짠을 하면 안된다지만, 우리는 테이블 상석에 물뚝심송님 자리와 잔을 마련해주었다는 핑계로 짠을 합니다. 중간 중간에 물뚝심송님 팬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합니다. 몇 시간 동안 물뚝 형을 제법 까다가 서울로 돌아옵니다.
12.
그 날 새벽, 어제부터 열이 나던 아기의 몸을, 적신 거즈로 닦으며 분유를 먹입니다. 이런 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를 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새벽엔 잠시, 그와 가까이 지내어 추모 원고를 부탁할 이들이 몇 명 떠오릅니다. '형 건 니가 써야지', 혹은 '야, 미친놈아, 지금은 좀 내비둬라' 라는 뻔한 답이 예상됩니다. 어떤 인간과 '필요 이상' 가깝다는 건 그런 느낌이겠지요. 저는 아마 그들보다 덜 가까웠기에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2주, 아니, 한 달일까, 그쯤 되야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만큼 가깝진 않았나 봅니다.
해도 이 이상 거리감을 좁힐 필진은, 아니, 딴지일보의 영원한 정치부장은 앞으로 있어선 안되겠다는 생각만큼은 확실히 듭니다.
딱히 할 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얼굴 한 번 더 보면, 그것으로 다 될 일인데, 그러지 못한 것이 내가 참 속이 상합니다.
편집장 혹은
물뚝심송의 8년 담당기자
죽지않는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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