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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뚝심송,

2018-05-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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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오전,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어, 락기야. 물뚝형이 돌아가셨어.”

 

평소 물뚝심송님과 친하게 지내던 형이다. 물뚝 이인자라고 놀릴 정도로 가깝게,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던 형이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이 담담했지만, 느낌은 달랐다.

 

양말을 신는 데 오래 걸렸다. 한쪽 양말을 신고 반대편을 발에 끼우는 데까지 20분은 걸린 것 같다. 겨우 채비를 하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멍하게, 목적지만 인식하고 걸었다. 지하철역에 거의 다다랐을 때, 불과 며칠 전인 5월 1일이 떠올랐다.

 

 

 

5월 1일.

 

쉬는 날이라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휴대폰 소리에 화면을 보니 ‘물뚝형 보러 가자.’란 메시지가 보였다. 병문안을 가자는 말이다. 늘 담담한 어조다. 가야지 가봐야지 했던 터라 준비하고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병원에서 본 물뚝심송님은 많이 야위어 있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다른 날보다는 컨디션이 굉장히 좋았다고 했다. 필담으로 말을 주고받았다. 주로 농담이었다. 한참을 물뚝심송님과 담담한 어조의 형과 대화를 나누다가 눈물이나 자리를 잠시 비웠다.

 

대개는 농담이었고, 유머였으며, 평소와 하나 다를 바 없던 대화를 더 나눴다.

 

병실에 있는 세 명이 홍어찜에 소주를 마셨던 날이 있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몇 해 전이었을 거다.

 

딴지를 통해 알게 된 형들은 양손으로 술을 받고 몸을 돌려 마시는 걸 불편해했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일로 만난 사이도 아닌데, 뭣 하러 그러냐는 것이다. 계속 한 손으로 술을 받고 마시다 나도 모르게 양손으로 술을 받을 때였다. 담담한 어조의 형이 타박 아닌 타박을 했다. 그냥 한 손으로 받으라고. 물뚝심송님이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것도 강요야. 마음대로 하게 냅둬.”

 

농담이 오가던 중에 나눴던 얘기라 다 같이 웃으면서 또 술잔을 기울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맞는 말 같다. 그것도 강요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가진 권위가 많지는 않았지만, 작은 권위마저도 내려놓으려 했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5월 12일, 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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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가 조금 넘어 병원에 도착했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아직 빈소가 다 차려지지 않았다. 곧이어 락수미님과 옥상땐스님이 왔다. 다시 빈소로 내려갔다. 아직 조문객이 없는 텅 빈 빈소.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문상객이 상주보다 먼저 온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 앉아 있다 물뚝심송님 가족이 오고, 인사를 나누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차려진 상에 술을 마셨다. 세 명 모두 눈이 빨개졌다. 흐느껴 울진 않았지만, 마음은 모두 같았으리라 생각한다. 곧이어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이 오고, 문상객이 오기 시작했다. 4명이 앉은 자리에 술잔은 다섯 개다. 하나는 물뚝심송님 자리다.

 

물뚝심송님은 사람을 좋아했다. 2013년인가? 처음 만났을 때도, 초면에, 팬이라고 말하는 나도 거리낌 없이 뒤풀이 장소에 초대했을 정도다. 물뚝심송님은 낯선 사람과도 잘 만나고 팬이라고 하는 사람과도 잘 만나고 딴지 필진들과도 잘 만났던 거로 기억한다. 날 선 공방을 자주 하던 사람답지 않게 두루두루 연이 닿은 사람이 많았다. 내가 딴지와 연이 닿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을 거다. 글을 쓰고, 필진이 되고, 입사를 하게 된 연의 시작이 물뚝심송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로 기억한다.

 

그 뒤로 때로는 자주, 때로는 드물게 만나게 됐다. 시간이 흐른 뒤 자연스럽게 물뚝형이라고 부르게 됐다. 나이 차이는 조금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텔레그램이 등장하고, 단톡방같이 텔레그램 방이 하나 생겼다. 이름도 재미난 “대 쫄보 연합” 딴지스 형들이 만든 방이었다. 워낙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방이라 뜨기 전(?) 물뚝심송을 잘 아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팬이 아닌 독투불패에서 활동하던 물뚝심송으로 대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르면 바로 구박을 주고받던 곳이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나는 주로 구박을 받는 쪽이었는데, 주된 이유는 노잼이란 거였다.

 

 

 

ㅎㅎㅎ

 

노잼 개그와 함께 물뚝심송님이 자주 쓰던 말이다. 물뚝심송님도 딱히 재미있는 사람은 아닌데, 나보다 재미없다는 말엔 동의하지 않았다. 스스로 재미있다 생각하는 개그를 했을 때 ㅎㅎㅎ를 자주 썼다. 나는 물뚝심송님이 했던 개그 중 ㅎㅎㅎ가 가장 재미있었다. 썩개(썩은 개그)를 워낙 자주 쳤던 사람이라 딱히 기억에 남는 썩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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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동의하지 않던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마사오님과의 외모 대결이었다. 굉장히 의미 없는 대결이라 생각했지만 물뚝심송님은 끝까지 마사오님을 아래로 봤다. 아니, 대결이란 말 자체를 싫어했다. 마사오님은 굉장히 분해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5월 12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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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니 더 많은 사람이 조문을 왔다. 오랜만에 보는 분도 많았다. 밤늦은 시간이 되자 마사오님이 조문을 왔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아는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물뚝심송님 아내분이 오셔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마사오는 저렇게 울 줄 알았어.”

 

마사오님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빈소에 들러 눈물을 흘렸다. 조용히 조문하고 간 사람도 많았다.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되어 만난 적은 없지만, 조문을 왔다는 사람도 많았다. 참 잘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 13일, 둘째 날도 많은 사람이 조문을 왔다. 부산에서 온 분도 있고, 일정을 미루고 온 분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12일도 술을 많이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다. 13일도 그랬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5월 14일, 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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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좋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물뚝심송님 큰형님이 오셔서 운구를 부탁했다. 네, 라고 대답하고 자리에 다시 앉았다. 이틀 동안 빈소에 찾아갔으면서도 영정 앞에 가질 못했건만, 이제는 물뚝심송님을 마주해야만 할 일이 생겼다. 같이 운구를 할 물뚝심송님 어릴 적 친구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내게 건넸다. 그 말이 슬프면서도, 민망하게 다가왔다. 그저 내가 오고 싶어서 왔던 자리라 더욱 그랬다.

 

하얀 장갑을 끼고 운구를 했다. 가벼웠다. 눈이 붉어지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처음 마주하는, 용기가 없어 마주하지 못했던, 여러 감정이 뒤섞여 들어왔다.

 

장례식장 버스로 화장터로 향했다. 고맙다고 말을 건넸던, 물뚝심송님 어릴 적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딴지일보를 좋아한다는 분이 나를 챙겨줬다. 어릴 때 친구인 세 분은 ‘성호의 흑역사’를 많이 안다고 했다. 어릴 때, 같이 놀았던 이야기도 들려줬다. 보통 1986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던 물뚝심송님이라 그 전의 이야기를 듣는 게 흥미로웠다. 번데기 먹던 이야기, 물뚝심송님 집에 놀러 갔던 이야기가 오갔다. 친구 한 분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툭, 혼잣말처럼 한마디 내뱉었다.

 

“난 이제 누구랑 노냐.”

 

화장터에 도착 후 조금 기다려야 했다. 세상을 떠난 분이 많았던 터였다. 시간이 지난 후 물뚝심송님 화장이 시작됐다. 조용히, 모두가 떠나보낼 준비를 했다.

 

화장이 1시간이 넘게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시간이 걸린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됐다. 너무 빨리 사라지지 않아 위로가 됐다. 다시 버스를 타고 근처 식당에 갔다. 화장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걸리기에 점심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물뚝심송님 어릴 적 친구들과 같이 식사를 했다. 성호가 사는 마지막 밥이니 맛있게 먹자고 했다. 다시, 물뚝심송님 어릴 때 이야기를 들었다. 회상과 슬픔이 교차했다.

 

다시 화장터로 갔다. 화장이 끝나고 유골이 나온다고 했다. 작은 유골함에 담겨 나오는 물뚝심송님을 보니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작게 실감했다.

 

 

 

5월 14일, 장지.

 

수원에 종친 묘와 봉안당이 있다고 했다. 물뚝심송님은 그곳에 안치된다고 했다. 가족은 물론, 딴지를 통해 알게 된 사람, 친구, 많은 사람이 모였다.

 

작은 봉안당, 물뚝심송님을 정말 떠나 보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많은 사람의 배웅과 함께 물뚝심송, 아니, 물뚝형을 떠나 보냈다.

 

 

 

5월 18일.

 

아직 크게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간혹 인터넷으로 물뚝심송을 검색하곤 한다. 부고를 다 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물뚝형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그냥, 인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잘 가요. 형. 보고 싶을 거예요. 다시 만나게 되면 홍어찜에 소주 한잔해요. 안녕. 물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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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락기

사진 인도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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