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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반부터 유럽의 교회들, 특히 성공회를 국교로 인정하고 있는 영국의 교세가 크게 줄었다는 소식은 한국 교회에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인권을 중시하여 타 종교에 관대해진 탓 아니냐”, “이슬람에 잠식당한 것은 아니냐” 등등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특히, ‘미래한국’(futurekorea.co.kr)은 2002년에 게재한 ‘교회 건물만 있고 교인이 없는 유럽 교회를 분석한다’는 칼럼을 통해 유럽 교회의 쇠퇴 원인을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과학 문명에 의존한 세속과 향락이 만연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으로 파송된 한국의 선교사들이 담아낸 영국 현실 역시도 참담한 것처럼 보였다. 오랜 역사가 묻어 있는 전통 양식의 교회들이 도서관으로 호텔로, 심지어 술집이나 이슬람 사원으로 변해 있었다. 사람은 없고 건물만 있는 교회들로 가득 찬 영상 속의 유럽과 영국은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하고 충격을 안겨 주기도 했다. 어떻게 기독교를 국교로 했던 국가들의 교회가 이렇게 몰락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만 하다. 그런데, ‘유럽으로 다시 와 보라’니,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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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가 성장했다’의 진짜 의미

 

1960-70년대, 격동의 시기를 겪은 한국교회는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일궈냈다. 기독교 인구는 급증했고, 각 교회는 모여드는 신도들을 수용하기 위한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자연히 교회의 덩치는 커지고 사회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그렇게 한국교회는 화려한 건물과 풍요로운 자본 속에서 마치 대단한 성공이라도 거둔 것 마냥 성공신화에 심취해 갔다.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러한 성공을 거두게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양적으로 팽창 속에서 들리던 이런저런 잡음들은 무시한 채,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미명 아래 성장만을 강조한 한국교회는 21세기가 되면서 서서히 그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범죄들이 교회 내에서 비일비재해지고, 교계의 내로나 하는 지도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렇게 기독교는 ‘개독’이라는 이름으로 대표되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사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된 데에는 순수하게 신앙심만이 동력이 된 것은 아니었다. 각종 산업의 발전과 함께 도시화로 인한 인구 밀집, 편리한 교통수단의 제공은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유명한, 좀 더 멋들어진 교회를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기왕 다니는 거 좀 더 뽐낼 수 있는 교회를 다니는 게 신앙도 쌓고 자부심도 가질 수 있다는 일석이조 효과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물론, 이러한  분석이 정확한 평가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결과물들 비추어보면, 한국교회가 단순히 순수한 신앙만을 갖고 성장해온 것이라고 보기에는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할 만한 요소들이 너무 많다.

 

과연, ‘놀랍게 성장했다’는 한국교회가 ‘제대로’ 성장한 것이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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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

 

해방 이후, 약 60여 년간 한국교회는 가파른 성장세를 가동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Top 10에 6개 교회가 우리나라에 있다. 경제성장과 함께 괄목할 만한 교세 확장을 이룬 한국 교회를 전 세계가 집중했다. ‘선교사를 지원받는 나라에서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로’라는 슬로건이 얼마나 큰 한국교회의 자랑이었는지 모른다. 마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의 자랑이었듯이.

 

하지만, 한국교회가 교회를 평가하는 데 있어 가장 크게 범하고 있는 오류는 교회 평가를 위해 사용하는 주수단이 '통계'라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교회가 다른 나라들, 특히 유럽의 교회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유럽의 교회를 평가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유럽을 잠시 방문한 후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2011.6.27 크리스천투데이에 ‘유럽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게재한 서경석 목사도 5박6일간 체코와 독일, 프랑스를 둘러본 후, ‘참담하다’는 심경을 표하며 유럽의 기독교가 몰락했다고 표현했다.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수가 교회를 평가하는 지표가 된 셈이다. 하지만, 통계와 수치를 이용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교세를 측정하는 방법이 과연 교회의 성장을 평가하는 올바른 방법일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성장을 경험한 한국교회는 기계적인 생산을 통해 교인수가 가속화되는 성장을 했지만, 체계적이고 발전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해 결국 무너져 앉았다. 사실, 종교에서 통계는 단순히 ‘숫자’의 의미만을 지니지 않는다. 통계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지향점을 흔들어 모종의 권력과 연결시킬 수 있고, 한국교회가 숫자적 측면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지 성장을 지향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처럼, 유럽의 교회가 죽었다고 평가하는 한국교회의 평가 기준은 철저히 교인 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순 ‘양적’(Quantitative)연구를 통해 교회를 평가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교회는 교인의 수가 많고 적음보다 성경의 원리가 얼마만큼 잘 전달되고 적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부분, 즉 ‘질적’(Qualitative) 연구 방식으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양적 기준은 겉모습만 보고 평가할 수 있을 뿐, 교회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이 어렵다. 양적 평가를 이용하는 한국교회의 평가 방식에 얼마나 큰 문제가 있는지는 영국의 경우를 예로 살펴보자.

 

 

 

영국 교회는 죽었다? 새롭게 성장 중!

 

1-이민자 정책이 가져다 준 뜻밖의 사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의 많은 남성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1950년대 후반 보수당 정부는 전쟁 이후의 노동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 정책을 새롭게 개편한다. 그렇게 이민자에 대한 전면적인 개방을 선언하고 ‘영연방’(Commonwealth, 코먼웰스) 국가들을 우선으로 영국 이민을 장려했다. 수십만 명의 이민자들이 서인도제도, 파키스탄, 인도 북쪽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영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62년에는 이민법과 국적법 등을 개정했고 이민뿐만 아니라 망명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전면 개방 정책을 펼쳤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영국의 수도 런던(London)은 ‘시장’(Mayor)이 파키스탄계 영국인이고, 전체 인구의 70%가 외국인이다. 간단한 통계만 살펴봐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유입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영연방 국가의 시민들만 영국으로 유입된 것은 아니었다. 높은 인건비를 책정해 주는 영국의 각 정책들로 유럽과 비유럽 출신의 인적자원이 대거 영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영국의 초기 이민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전쟁 복구를 위한 불충분했던 노동인력이 채워졌고, 인구수도 증가했다. ‘세계화’(Globalisation)라는 국제적 이슈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명분도 갖추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인 나라로 영국이 꼽힌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현재 영국에는 비유럽 가계가 500만을 넘었으니 그동안 영국이 얼마나 공격적인 이민 정책을 펼쳐왔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대영 제국’(British Empire)이라는 이름 앞에,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살 거라 기대했던 이민자들은 보수적 영국인들의 공개적 인종적 우월주의에 맞서야 했다. 런던, 만체스터, 버밍엄, 리버풀과 같은 대도시들은 산업혁명 이후 이미 슬럼화되었고, 공장과 산업시설에서 나오는 연기로 쾌쾌했다. 영국의 변화무쌍한 날씨로 비바람은 뼛속을 후벼 파는 듯 했다. 이런 저런 고충들 때문이었을까? 영국 사회에 속할 수 없었던 이민자들은 결국 그들만의 독립된 사회를 꾸리기 시작했다.

 

각 지역마다, 인종에 따라, 종교에 따라 밀집 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런던의 북쪽지역에 유독 아프리카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많은 이유도, 런던의 특정 지역에 유독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사는 이유도, 버밍엄에 가면 거리를 거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도계 사람처럼 보이는 이유도 지난 70여 년의 이민 역사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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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에게 기독교는 생소했다. 매주 일요일을 ‘주일’(Lord’s Day)로 지켰던 영국에서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아야 했고, 물건을 사고 팔 수도 없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도 어려웠다. 때문에 일요일은 자의 반, 타의 반 쉬는 날이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집안 대대로 집과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고, 전쟁 이후 확대된 복지정책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자에게 영국의 삶은 버거웠다. 집도 없었고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도 아까운 이들이었다.

 

이민자들이 투쟁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이민자들은 “너희들이야 여기서 나고 자라 가족도 친지도 있지만, 우리는 의지할 가족도 심지어 집도 없고 생활도 어렵다.”며 애환과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일요일도 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기독교인에게 주일은 의미 있는 날이지만, 이슬람이나 힌두교와 같은 타 종교인들에게 ‘주일’(Lord’s Day)은 아무런 의미 없이, 억지로 쉬어야 하는 날에 불과했던 것이다. 물론 영국 정부는 기독교 국가로 이민을 온, 이제는 한 나라의 구성원이 된 이들의 정체성이 바뀌기를 바랐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2-교회의 쇠퇴: ‘일요일 상법’(‘The 1994 Sunday Trading Act’)의 시작

 

이전까지 시내 상점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던 이유는 노동자의 휴식을 보장하자는 이유도 있었지만, 평화롭고 고요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기도와 묵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민자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그렇게 오랜 논의가 거듭되다가 1990년대 초, 영국 정부는 오랜 전통을 깨고 일요일도 일반 상점이 문을 열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리고 1994년 ‘The 1994 Sunday Trading Act’이 발효된 이후, 일요일이면 굳게 닫혀 있던 백화점과 상점, 음식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고 손님 맞이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도 상업이 가능하게 된 후, 영국 사회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보통 영국의 도시들은 중심에 있는 큰 도로, 흔히 ‘하이스트리트’(High Street)라고 부르는데, 이 도로 한 가운데에 교회를 세우고 이를 중심으로 상점과 거주지역을 계획/발전시켜 왔다. 대부분의 영국의 도시나 마을은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는데, 여행을 하다 보면 각 도시마다 시내 중심에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교회인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다. 종교가 가진 상징성이 컸던 영국에서 일요일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로 향했던 것은 단순히 종교심 때문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 정치와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던 곳에 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민자 정책에 의해 주일이면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상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열기 시작했다. 뜻밖에 이 조치는 이민자뿐 아니라 영국인들에게도 자유를 쥐어줬다. 교회가 아니면 마땅히 갈 곳도 없었던 영국인들에게 또 다른 옵션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렇듯, ‘The 1994 Sunday Trading Act’가 이민자들에게는 더 많은 돈을 벌어 안정된 수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 반면, 영국인들에게는 여가를 좀 더 화려하게 보낼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물론, 여파는 크게 다가왔다. 1994년 이후, 영국의 기독교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 것이다. ‘The 1994 Sunday Trading Act’ 이후, 교회 이외에 다른 곳을 갈 수 있었던 영국인들이 더 이상 고리타분한 교회를 찾지 않았다. 기독교인이지만 교회는 다니지 않는다는 인구가 전체의 절반이 넘는 설문조사가 결과가 집계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그 이전까지 전체의 70~80%가 교회에 다녔던 이유는, 도시 계획부터 법체계까지 교회를 가도록 제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신앙이 있건 없건 간에 교회를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대다수가 교회를 찾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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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기독교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게 된 원인이 ‘The 1994 Sunday Trading Act’가 꼽히긴 했지만, 사실상 영국인들의 마음 속 신앙심은 바닥이 나 있었던 상태였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교회를 찾지 않았던 것은, 참된 신앙이 없었던 것을 증명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영국의 성공회는 특정 제도 때문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 것이었다. 이후 성공회 신학자들은 분석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현재 영국의 문제는 단순히 기독교 인구가 감소한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신학자들의 말이다. 참된 기독교 신앙인을 키워 내기 위해서는 제도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단순히 설득이나 강요에 통해서 이뤄질 수도 없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인식하게 됐다.

 

때문에 영국 성공회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신학자들은 신학을 객관화 할 필요성이 있다고 여겼다. 각 대학에서 별도로 운영하던 ‘신학과’(Department of Theology)를 ‘종교학부’(Department of Religious Studies)에 포함시켜 운용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명문학교, ‘옥스퍼드’(Oxford)와 ‘케임브리지’(Cambridge), ‘더람’(Durham)이나 ‘세인트 앤드류스’(St. Andrews) 그리고 ‘킹스칼리지런던’(King’s College London) 같은 대학들은 대부분 신학을 주요 학문으로 시작한 학교들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부의 정책에 학계의 반발도 있었지만, 제도적인 강요로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영국의 교육부와 성공회는 기독교 신학을 타 종교와 기독교를 일직 선상에 두고 함께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3-다시 처음부터 : ‘고체 교회’ vs ‘액체 교회’

 

영국 더람(Durham) 대학교의 교수이자 대중문화와 신학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로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는 ‘피트 워드’(Pete Ward) 교수는 미래 교회의 청사진을 담아낸, ‘액체 교회’(Liquid Church)를 펴내 화재를 모았다. 성공회의 선교전략가로 활동했던 그는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는 정지한 채 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교회는 액체와 같이 유연하게 변화를 수용하고 시대에 대응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책에서 피트는 변화를 거절하는 ‘고체 교회’(Solid Church)와 액체 교회를 구분하고 비교/분석한다. 말 그대로, 고체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 교회 건물, 공식적인 행사, 그리고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이루지는 예배 등을 의미한다.

 

반대로 액체 교회는 자유롭게 유동하고 그 모양이 쉽게 변하면서 일정한 형태를 가지지 않는 특히,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교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개인이나 집단 간의 진실한 소통으로 감동과 자극을 주는 그곳이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게 피트의 주장이다.

 

피트가 ‘킹스칼리지런던’에 재직 시절, 필자도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피트는 ‘영국이 기독교 국가인가?’라는 주제로 토의를 하던 중, ‘The 1994 Sunday Trading Act’ 이후, 기독교 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 ‘고체 교회’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영성을 회복하려고 하지만 ‘교회’라는 유형물과 특정 단체에 가입해야만 하는 부담을 꺼려한다는 것. 사실,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70%정도지만, ‘교회에 나간다’는 비율이 10% 미만인 것을 감안해 보면, 사람들이 교회를 찾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했다.

 

피트는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Church)는 특정 단체로서, 혹은 장소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며, ‘교회’는 기독교가 가진 역동성을 기반으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액체와 같이 흘러가야 한다. 결론적으로 피트는 액체가 있으면 고체가 있듯, ‘고체 교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가져야 할 성경적인 참된 모델은, 액체 교회의 형태를 갖고 역동적으로 흐르고 섞이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활동의 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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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을 감내하라: 교회의 성장은 양적인 성장에 있지 않다

 

영국은 겉으로 보이는 교회의 성장, 특히 숫자적 의미의 성장을 지양했다. 그리고 교회는 건물이 아닌 가정으로 들어왔다. 가정이 튼튼해야 국가가 튼튼하고 교회도 함께 견고히 설 수 있다는 기본적인 가치관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영국이나 유럽의 교회가 한국교회에 비해 뜨뜻미지근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서구 유럽은 이미 다 해 봤다. 다 겪어봤다. 전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도 치렀다. 중세 교회의 극심한 타락을 목도 했고 세계화를 통한 국제화로 이민자와의 갈등도 겪어 내야 했다.

 

그 가운데서 유럽, 특히 영국은 기독교의 위치를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영국의 신학이 부재하고 교회가 죽었다는 말에는 근거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겉으로 드러난 자료들만 갖고 분석한 평가는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다. 유럽은 신학에 대한 관심과 학문적 끈을 놓지 않는다. 더불어 자신들의 처지를 좀 더 객관화하여 자기반성에도 열심이다. 제도도 바꾸고 연구도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유럽의 교회가 한국교회를 부러워하거나 벤치마킹하지 않는 이유다. 이들은 한국교회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그 말로가 어떨지 이미 다 내다보고 있다. 유럽의 교회가 죽었다고?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의 교회는 갱생 중이다. 과연 누가 진짜로 죽은 교회의 주인일까.

 

 

 

마무리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위치한 ‘노르웨이 루터 신학교’(Norwegian Lutheran School of Theology)의 조직신학 교수이자, ‘The Reconstruction of Religion: Lessing, Kierkegaard, and Nietzsche’의 저자인 ‘얀 올라브 핸릭스’(Jan-Olav Henriksen)는 자신의 책을 통해 현재 유럽은 종교와 신앙과의 관계, 종교와 과학 혹은 다른 여타 이념들과의 관계성에 대해 씨름 중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사상적 변혁을 겪은 유럽 세계에서 현실 속의 지금을 살아가며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수이다.

 

현재 유럽에서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는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두 번의 세계 대전을 치르고 나서부터는 ‘공동의 삶’ 보다는 ‘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기독교적 공동체를 개인의 삶에 깊게 투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우리가 본받고자 하는 여러 종교개혁자들은 지금의 유럽 교회처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유럽의 근대 사상가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종교와 신앙을 두고 고민했다. 한국교회가 유럽의 기독교의 모습을 단순히 세속화라고 하기에는, 아직 그들의 진정성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국내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숫자로만 파악하고 평가하는 한국 교회의 신앙의 열매를 바라보는 관점도 여전히 설익었다.

 

집계가 어렵지만, 현재,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가정교회들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액체 교회와 같은 형태의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의 단위인 가정이 바로 서는 것이 곧 교회가 교회로서 발전할 수 있는 것임을 역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유럽의 교회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갔다. 과연, 한국교회가 영국이나 유럽의 교회들이 죽었다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사실 유럽의 교회, 기독교 단체처럼 봉사 많이 하는 곳도 드물다. ‘크리스챤 에이드’(Christian Aid),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헬프에이지’(HelpAge) 등과 같은 자선 단체들도 대부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해 만들어진 곳들이다.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교회의 덩치를 키우는데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유럽 교회에 더 이상의 희망은 없는 걸까.

 

인간에게 있어 발전이란 통렬한 반성을 통해서 이뤄진다면 교회에게 있어 성장이란 처음으로 돌아가 순수한 신앙심을 회복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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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에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