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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기업에서 아니, 자본주의 생태계에서 나 같은 '종'이 오래 서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시스템적으로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기업 문화가 그렇지 않은가. 대개의 경우, 기업들은 20대 여직원을 뽑아 2년에서 3년 정도 꽃 같은 일 시키다 내보내고, 다시 받고 하는 일을 선호한다. 

 

것도 아니면 대졸 공채로 채용해 어느 정도 부려먹고 과 차장급 정도 되면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여자들에게 조직생활이란, 투명하게 가로막힌 유리천장이 아니다. 대놓고 쳐진 방탄 천장이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나 때는 그랬다).

 

나는 이들이 오래전에 화초라 여기고 들인 잡초다. 그것도 다른 수목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잡초, 게다가 잡초면 잡초답게 낮은 자세로 짜져 있어야 하는데, 주제를 모르고 나댄다. 싫다. 그러자 지난해부터 다 함께 나라는 별종의 뿌리뽑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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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여기서 잠깐, 내가 어째서 화초가 아닌 잡초로 성장했는지 말하고 가야겠다. 어려서부터 나는 학업에 대한 재능이 없었고, 의지도 없었다. 어쭙잖게 그림을 그리는 바람에 재수는 물론이고 삼수를 하고도 서울 인근의 전문대 디자인과를 나왔고, 하필 졸업 무렵엔 IMF 여파로 제때 취직을 못했다.

 

당시 같은 과 졸업생 중 한 둘 정도만 충무로 인쇄소에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내 생에 그림을 그린 이력을 통째로 들어내고 고졸 사무직 구하는 곳을 골라 입사 지원했다. (디자인과 나왔다고 하면 어느 일자리든 분야가 맞지 않는다고, 서류 전형에서 전부 탈락시켰다) 물론 계약직이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회사를 오래 다닐지 몰라 고졸이나 전문대 졸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어 적극적으로 뭘 하지 않았다.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려고 그랬나, 스무 살, 불행하게 아버지를 여읜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신 아버지 친구분께서 당시에 제약회사를 크게 하셨는데, 꽤 오랜 기간 나를 그 회사에 유령직원으로 취직시켜 월급을 주셨고, 시간이 지나 그 일이 뜻밖의 경력이 되어(보험이나 연금이 나갔기에) 그 덕에 지금 이 회사에 경력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땐 어려서 이게 불법인 줄도 몰랐다(이십 년 전 일이다).

 

지금은 다정하던 아버지 친구분도 돌아가시고 그 제약회사마저 없어졌으니 말해도 되겠지 싶다. 뭐 내가 공인이 될 것도 아니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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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연재물을 본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학창시절 삼풍백화점 사고를 겪은 생존자다. 항상 죽음이라는 단어가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아침에 눈을 떠 새로 시작하는 딱 '하루'에 대한 생각만 하고 미래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고, 오로지 그날 그날 나의 욕망에 충실하게 살았다. 그러니 공부가 다 무언가. 그러다 서른을 넘기고 갑자기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한 후, 공부를 이어 했지만, 그 후의 이력을 인사팀에 따로 알리진 않았다. 알린다 한들 내 처우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 같은 색 네임텍을 목에 걸고 있어도 대졸 공채(ㅁㅁ맨 식의), 그러니까 모든 업무를 할 수 있는 종합직, 또 그런 종합직의 보조 역할을 하는 일반직, 계약직 등으로 인사권 자체가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 정해진 직종은 퇴사할 때까지 전환이 불가한 게 원칙이다.

 

한때 나를 아끼던 본부장이 내가 대졸 공채 이상의 일을 해내니, 종합직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인사팀에 정식으로 공문을 보내 요청했다. ' 선례를 만들 수 없어서 안 된다.' 는 회신을 받았다. 난 그걸로 족했다. 회사에서 인정을 안 해 주면 어떤가, 내 상사가 나를 인정해 주는데. 그거면 됐지라고 생각했다.

 

남보다 적게 받고 많이 일하면 왠지 모르게 떳떳해서 좋았다. 나는 나보다 좋은 학교를 나온 이들이 이 회사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잘 모른다. 그러니 같은 일을 하고 급여를 차이나게 받아도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이들이 여태 투자한 게 얼마인데, 하는 식으로. 

 

4. 

나는 이 조직에서 특이할 정도로 해외출장을 많이 다녔다. 우리 회사같이 보수적인 집단에서 나 같은 직군이 해외출장 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면 일반직에겐 대개 중요한 일을 시키지 않으니까, 한데 나를 아끼던 본부장이, 내게 중요한 일들을 많이 맡겼고, 그에 따라 미국이든 유럽이든 업무에 필요하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출장을 보내주었다. 꽤 오랫동안 이 일이 자연스러운 건 줄 알았다. '아- 일을 열심히 하면, 더 중요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일 그렇듯 영원한 건 없다. 나를 아끼던 본부장이 퇴임했다. 다른 분이 그 자리에 왔는데, 이분은 나를 딱 고졸 일반직 그 이상, 이하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분이 '우연한 기회에' 날 이태리로 출장 보내게 됐는데, 그날 밤 전화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참 어려운 결정을 한 거다. 대졸도 아닌 너를 해외 출장 보내는 게 내 입장에서는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잘 해라". 그 소리를 듣고 한 번은 참을 만했다. 그래 그런가 보다,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하지만 그분은 그 후로도 정확히 두 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 한참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참 너를 해외 출장 보내 주는 게..."

 

그러니 잘 해, 그러니 잘 해, 그러니 잘 해.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마음 같아선 이태리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싶었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데 어째서 저런 말을 듣고 가야 하나 싶어 서러웠다(아마 이 사람은 기억조차 못 할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분은 어느 자리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면, 내가 처음에 이곳에 어떻게 입사했고 지금 이 자리에 있게 된 게 누구 덕분인지를 꼭 강조했다. 꼭. 

 

맞다. 내게 기회를 준 건 사실이고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다. 한데 사람들 많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어야 했을까. 

 

굳이 항상, 굳이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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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상황이 더 절망스러웠던 건 그 분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 대부분 중 한 명일 뿐이고 평범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다. 그래서 알았다. 지금이 틀린 게 아니라 오히려 예전이 특별했다는 걸. 나는 이분과 일하는 내내 말도 못하게 괴로웠다. 분명 나한테 잘 해주었고, 그 사람도 그런 자신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한데 나는 몹시 힘들었다. 수없이 방황했다.

 

이 무렵부터 기약 없는 슬럼프에 빠졌다. 어느날 아무 설명도 없이, 주전에 밀려 벤치에 나 앉으니 나 자신이 너무도 처량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해서 매일 퇴사하자는 심정으로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언젠가 봄, 20일 정도 집 밖에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적도 있다. 극심한 무기력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천장만 바라보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했다. 

 

하지만 시작된 모든 일은 끝난다. 그분이 퇴사하며 이 일도 끝났다.

 

 

6. 

나는 다시 뛸 준비를 했다. 더 정확히 말해, 이 즈음부터 나를 싫어하는 이들과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은 나의 슬럼프 시절을 빌미삼아 사내에 여론을 형성해 이 구단에서 내 이름을 영구 제명하자고 주장했고, 다른 몇몇은 내가 비록 업 다운이 심하긴 해도, 뭘 해도 하는 사람이니 기회를 주자 했다.

 

나는 이런 대중의 심판을 거치는 동안 지칠 대로 지쳐, 끝내 대인기피에 걸리고 말았다. 그간 얼마나 사람들의 '말'에 시달렸는지 꿈에서조차 사람들의 비웃음과 야유 소리가 들려와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 앉곤 했다. 내가 하는 이 싸움은 승산이 없다. 나 하나 어쩐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문득, 어쩐지 희한하게,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바위에 던지는 게 계란이면 어떻고, 짱돌이면 어떤가. 바위가 깨지지 않으면 또 어떤가, 어쨌든 내가 먼저 뭐라도 해보면, 그것도 최선을 다 해보면, 이 다음은 좀 쉽지 않을까.

 

 

7. 

본격적인 싸움에 앞서 전술과 전략을 신중하게 수립했다. 전에는 오로지 정면승부 주의자였는데 이제는 상대가 던지는 유인구에 절대로 먼저 배트를 돌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이 조직에서 내가 겪은 일과 비슷한 일을 앞서 겪은 사람들을 찾아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수사를 하자 이 일을 주도하는 자들의(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집단으로 괴롭혀 쫓아내는) 윤곽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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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꽤 오래도록 개인을 따돌리고 괴롭혀 사람을 내 보내왔는데, 앞서 나간 사람들이 그저 조용히 자리를 비켜주고 사라졌기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었다.

 

해서 나는 그 자료에다가 최근에 이들이 사내에 새로 뿌린 '나에 대한 악의적인 모함'을 가지고 팀장님께 가 말했다. 이 일에 대해 명확히 정리해주지 않으면, 나는 이 길로 걸어나가 이들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회사를 상대로 지난 여름부터 있었던 익명게시판 사건을 방치한 죄를 물어 내가 입은 물적 심적 피해 보상을 요구하겠다고 말이다.

 

 

8. 

그러자 이 일을 꾸민 몇몇이 위에 불려가 엄중한 경고를 받았고, 그 후로 기세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렇다면 이 싸움에서 내가 이긴 걸까? 천만에, 사내 정치, 사내 세력이란 게 그리 만만치 않다. 언제든 반격을 도모한다. 왜냐면 나는 여전히 이 집단에서 소수고 약자이며 이들에게는 사내 권력과 여론이라는 막강한 힘이 있으니까. 

 

해서 나는 지금도 긴장하고 있다. 지난 여름,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도 찍혀봤고, 눈 뜨고 코도 베어봤다(직장에선 흔히 있는 일이니 자세히 말해 무엇하랴). 더 이상은 안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이 싸움에서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다. 지금 내가 추락한 곳, 이 진흙탕에서 나를 밀쳤던 이들을 끌어들여 함께 뒹굴 생각이다. 그래야 이들이 다시는 이딴 짓을 안 할 테니 말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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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식자리에 가게 됐다. 전부터 잘 따랐던 다른 팀 선배가 주최하는 저녁 자리였다. 무슨 영문인지 우리 팀 전원이 그 자리에 참석해 있다. 나는 굳은 얼굴로 구석에 앉아 비싼 안주에는 손도 안 대고 맥주만 한 잔 홀짝였다.

 

바로 그다음이었다. 다들 얼큰하게 술이 좀 오르자 이들이 어쭙잖게 화해 비슷한 걸 하려는 눈치였다. 보아하니 술을 핑계 삼아 그간 서로 서운하게 했던 건 잊고 앞으로 잘해 보자 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분위기에 휩쓸려 어줍짢은 화해를 했을까. 그리고 속으로 끙끙 앓았을까. 나는 굳은 얼굴로 외투를 집어 들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천만에, 그렇게는 안돼.

너희들 중 그 누구도 내게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술 한잔에 이 일을 없던 일로 해야 해?

그럴 수는 없어.

 

그날 집에 와 올해 들어 처음으로 소리 내 엉엉 울었다. 

 

 

<계속>

 


 

 

필자 주

 

안녕하세요. "산만 언니"입니다. 제가 팟캐스트를 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에서는 "몰라서 알았다" 검색 부탁드립니다.

 

http://www.podbbang.com/ch/1770326

 

저 포함. 4명의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녹음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지난 연재 '삼풍 생존자가 말합니다' 시리즈에서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른 친구들도 저마다 재미있고 다양한 콘텐츠로 이야기를 엮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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