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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일출봉, 제주 제1경이자 4.3 학살터

 

그날도 광치기해변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여느 때처럼 검멀레와 초록이 끼를 너르게 입은 바위, 그 위를 흐르는 낮은 빛, 주변이 모든 풍경을 이리저리 감싸 안아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 성산일출봉이 발목을 잡는다 생각했다. 다른 길을 나서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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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는 한, 길은 자신의 모습을 쉽게 숨기지 않는 법이니 길을 나서기 전 계획한 만행은 다음으로, 그다음으로 기약 없이 내던지고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그 순간의 풍경과 이태백과 두보의 술병처럼 바닥을 드러내지 않는 제주 바람이 곰 삭힌 풍주風酒에 몸을 맡겼다. 아무리 부어도 차지 않고 아무리 마셔도 비지 않는 술잔, 볼때기는 불그레 지고 등골이 후끈해졌다. 춘풍에 사그라지는 억새처럼 취기에 잡힌 몸뚱어리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어느새 땅과 하늘은 경계 없이 한몸이 되었다.

 

정수리까지 오른 취기에 짓눌려 몸뚱아리가 검멀레 위로 낮아지고 또 낮아졌다. 성산일출봉, 그 육중한 몸도 바다 위를 일렁이더니 핏덩이 같은 태양을 토해냈다. 새벽 어린 태양은 성긴 바람에도 산산히 부서져 잔뜩 날을 세우고 초점을 잃고 검멀레에 누워버린 동공으로 맹렬히 날아들었다. 그 고통에 터져 나온 눈물 너머로, 붉은 피눈물 너머로 사람들이 하얗게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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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지 않은 그때, 육지에서 온 검은 총부리들은 길고 지난한 세월, 먹고 살려 바다로 뛰어든 이 해변으로 섬사람들을 그저 빨갱이라 부르며 몰아세웠다. 작은 쇳덩이들이 불을 뿜으며 섬사람들 가슴을 파고들고 사람들은 태풍에 꺾인 솟대처럼 검멀레 위로 하냥 쓰러져갔다. 절규, 탄식, 애원, 구원의 비명은 마지막 숨이 되어 검은 모래 위로 잦아들었다.

 

검멀레에 반쯤 묻힌 내 가슴으로 그 마지막 숨들이 잦아들었다.

 

파리한 새벽 햇살이 마지막 숨들을 보듬어 붉은 수면 위에 맴돌고 비석처럼 솟은 봉우리도 목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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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은 기억되어야 합니다 

 

4.3 사건은 단 하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시작되어 1954년 9월 21일까지 장장 7년 넘게 제주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지칭합니다. 1947년 3월 1일 제주도 관덕정에서 있었던 3.1절 28주년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민을 향해 경찰이 발포한 사건을 계기로 1948년 4월 3일 친일부역자들을 앞세운 미 군정에 대한 좌익의 무장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 삼아, 그 후 7년간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과 탄압을 했습니다. 이것이 4.3 사건 혹은 4.3 민중항쟁의 본래 모습입니다.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폭압 속에서 제주도 중산간 마을의 95%가 쑥대밭이 되어 사라졌고 제주도 인구의 10%에 이르는 3만 명의 제주 민간인들이 그들의 총칼에 희생되었습니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지슬’과 1978년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은 4.3 사건 당시 그리고 그 이후 제주도가 얼마나 처참한 비극적 상황에 처했는지 보여 줍니다. 이승만 정권, 박정희-전두환-노태우 군사독재 정권,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 반민주, 반민족, 독재 정권들은 제주 4.3 사건을 역사의 뒤꼍으로 밀어내고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잊기를 강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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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사건 직후 벌어진 여순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빨갱이 담론’은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며 맹렬하게 그 폭력성을 확장했고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며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 흉포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나마 국민의 정부 때 4.3 특별법이 제정되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로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참람한 불법행위임이 공식적으로 천명되었지만 진상 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은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지난 10년간의 보수 정권은 오히려 진실을 찾는 그 길을 막아서고 뒷걸음치게 만들며 역사에서 지우려 했습니다. 빨갱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불이익과 편견, 지옥 같은 기억으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제주민들이 있음에도 그들의 악업을 선업으로 포장하고 살고 있는 그들은 이제 그만 잊자고 합니다. 악몽 같은 그 기억은 결코 잊혀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망각을 자양분 삼아 그들과 같은 이들이 또 생겨나고 같은 악행을 되풀이하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조건 용서해서도 안됩니다. 용서란 용서를 비는 자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재를 뒤집어쓰고 머리를 찧으며 통렬하게 반성하고 자신들의 죗값 받기를 자청할 때,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용서할 수 있습니다. 무고한 제주 민간인 학살을 명령하고 그 만행을 저질렀던 이들 중에 진정으로 사죄하며 용서를 구한 자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하루속히 4.3 특별법 개정이 이루어져 아직도 어두운 기억과 불명예로 고통받는 제주인들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치유할 수 있길 바랍니다. 더 이상 4월 제주의 푸른 하늘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제주 사람들이 시린 눈을 훔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