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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 안나 앤더슨 - 아나스타샤이기를 원했던 여인

2003.10.5.일요일
딴지 미스테리 취재반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짜르)였던 니콜라스 2세의 일가는 혁명세력에 의해 잔인한 죽임을 당합니다. 그들의 시신은 훼손 및 유기되었고, 이후 수십년간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 민중들 사이에는 황제의 가족이 살아있을 것이란 소문이 나돌 게 됩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황제의 막내딸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나타나고, 주변에서도 그녀가 정말 아나스타샤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며 세간의 관심을 유발하게 되는데... 이것이 수십년간 회자되어온 아나스타샤 미스테리의 대체적인 전말입니다.


1956년의 영화 아나스탸샤와 만화영화 아나스타샤는 모두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딸인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 황후 알렉산드라, 아들 알렉시스, 4명의 딸 올가, 타티아나, 마리아, 아나스타샤는 1917년 볼셰비키의 혁명이 일어나자 결국 죽음을 당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미스테리 전문작가인 콜린 윌슨의 책 "세계 불가사의 백과"에 잘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유명한 문화비평가였던 콜린 윌슨의 저서의 입장은(물론 중립적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미스테리의 성격을 강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심심하신 분들은 읽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것은 앞서 말한 율 브리너,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 아나스타샤입니다. 그 영화를 보시면 아나스타샤가 단순한 흥미거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실제로 그 영화는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주었고, 영화 자체의 평가도 좋은 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영화를 통해서 아나스타샤에 대해서 잘 알게 되었고, 아마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내용보다는 좀더 진실에 가깝도록 아나스타샤의 미스테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나스타샤의 가족


아나스타샤 니콜라에브나(Anastasia Nicholevna)는 1901년 6월 18일에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니콜라스 2세(Nicholas II)는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였으며 그의 어머니이자 황후는 알렉산드라(Alexandra)였습니다. 아나스타샤는 위로 올가(Olga), 타티아나(Tatiana), 마리(Marie) 언니와 아래로 1904년에 태어난 남동생 알렉시스(Alexis)가 있었습니다.








 


1914년에 찍은 사진: 왼쪽으로부터 올가, 마리, 짜르, 황후,
아나스타샤, 알렉시스, 타티아나임









아나스타샤의 사진




 당시의 시대 상황과 가족관계


그 당시의 러시아는 매우 어지러운 시기였으며 그녀의 증조부이자, 니콜라스 2세의 할아버지 알렉산더 2세는 1881년 폭탄에 의해서 테러당해서 정신을 잃은 상태로 "겨울궁전"에 옳겨졌고 그 당시 13살인 니콜라스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지켜 보았습니다. 곧이어 니콜라스의 아버지가 알렉산더 2세를 이어 3세로 즉위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지적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철권으로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농부를 착취했고, 소수민족 특히 유대인을 차별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인 니콜라스는 매우 온화하고 젊은 남자로 자랐습니다. 그는 프랑스어, 영어, 독일어에도 능숙했으며, 뛰어난 춤솜씨와 승마솜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황태자로서의 수업은 거의 받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이제 40대 였기 때문에, 곧 그가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나스타샤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는 흔히 차갑고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은 매우 발랄했다고 알려졌으며 그녀의 어릴적 별명은 "sunny"였을 정도였습니다. 그녀의 원래 이름은 Alix 였으며 그녀가 12살 니콜라스가 16살에 처음 만났습니다. 니콜라스는 첫눈에 완전히 반했으나 곧 헤어졌습니다. 그가 좀더 나이가 들고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사랑에 빠졌고 1894년에 약혼했습니다. 알릭스가 약혼한 다음에 바로 알렉산더 3세가 죽었으며 니콜라스는 비록 준비가 되어있지는 않았지만 짜르가 됩니다.


짜르가 된 후 그의 첫번째 명령은 Alix의 이름을 알렉산드라 페오도로브나(Alexandra Feodorovna)로 공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알렉산더 3세의 장례식 1주일 뒤에 그들은 결혼했으며 그들은 가정적이어서 매우 아이들을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나스타샤는 공주들 중 가장 어리고 또한 가장 영리했습니다. 그녀는 매우 흉내를 잘내고 장난과 농담을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그녀가 눈덩이에 돌을 집어넣어 그녀의 언니 타티아나에게 던졌는데 이것으로 그녀가 쓰러졌었습니다. 이것은 장난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매우 놀라서 울었는데, 다행히 언니는 기절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나스타샤의 어린 시절의 놀이친구인 타티아나 보트킨(Tatiana Botkin)은 그녀를 생기 발랄하지만 약간 거칠다고 말했으며, 그녀의 사촌인 왕녀 제니아(Xenia)는 그녀를 매우 거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두 사람들은 나중에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안나 앤더슨을 만났고 둘 다 앤더슨이 아나스타샤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아나스타샤는 거친면이 있기도 했지만 매우 부드러운 성격도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개를 좋아했으며 나중에 처형당할때 스파니엘종의 제미(Jemmy)라는 개와 같이 있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동생이 아픈 것에 대해서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동생 알렉시스가 혈우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조그만 충격에도 그는 매우 고통스러워 했으며 격렬한 놀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는 그의 아들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살았는데, 아마도 청년이 되기 전에 죽을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라스퓨틴


사실 라스퓨틴은 별 관심없는 사람입니다만, 만화영화 아나스타샤에서는 라스퓨틴이 조연역활을 했죠.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대개 이러한 극중 인물은 허구일 경우가 많지만 라스퓨틴은 실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니콜라스는 정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방침을 그대로 이어 받아서 농민들을 착취하고 소수민족을 차별했습니다. 1914년에는 1차 새계 대전에 러시아 군대를 지휘하였기 때문에 아내인 알렉산드라가 내정을 맡아서 하게 되는데, 이때 유명한 라스퓨틴(Rasputin)이라는 수도승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녀가 그를 믿은 것은 그가 그의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는 잘못된 생각이어서였습니다. 그는 많은 각료들을 갈아치우고 자신들의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결국 역모자들이 라스퓨틴을 초대해서 독약을 먹이려 했으나 실패했고, 총으로 쏴서 죽이려 했으나 완전히 죽지 않자 강물에 빠트려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죽었지만 그가 망쳐놓은 황가의 명성은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에서 피해를 입게 되고 식량이 모자라고, 노동자가 폭동을 일으켜서 반란이 군대에까지 퍼지게 되고 볼세비키 혁명으로 인하여, 1917년 3월 15일 니콜라스는 왕위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황제의 가족이 시베리아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의 호위병들은 매우 무례했고 겁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나스탸사와 그의 언니들은 그들의 침실문을 잠글 수조차 없었고, 심지어는 호위병이 욕실까지 따라 들어왔다고 합니다. 황제의 가족은 처형이 일어난 에카테린부르그에서 78일간 지냈다고 합니다.
 


 처형의 날


1918년 6월 16일 한밤중에 황제의 가족들은 지하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들은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을 맞이한 것은 유코프스키가 이끄는 군인들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어리둥절하면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그들에 대한 처형명령서가 읽혀졌습니다.


짜르는 "뭐라고? 우리는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고, 이에 대한 대답으로 유코프스키는 피스톨을 꺼내서 짜르의 얼굴에 쏘았습니다. 총알이 짜르의 뇌를 관통했으며, 그의 몸은 회전하면서 바닥으로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있던 에르마코프라는 군인은 약 1.8 m 거리에서 황후의 입을 총으로 쏴서 죽였습니다. 그 다음으로 유코프스키는 황태자인 알렉시스를 총으로 쏘았고, 그가 바닥에서 신음하는 동안 많은 총알이 다른 식구들을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주치의 세르게이 보트킨은 돌아서 도망가려고 했으나 목에 총을 맞았습니다. 아나스타샤와 마리아가 주치의 옆에 쓰러졌습니다. 에르마코프는 요리사의 몸에 한 발을 쏘고 머리에도 한 발을 쏴서 죽였습니다. 또다른 누군가가 짜르의 하인을 쏘았습니다. 하녀인 안나는 첫번째 학살에서는 피해 보석이 들어있던 벼개뒤로 숨었으나, 결국 그녀도 총검으로 죽음을 당했습니다. 이때까지도 황태자인 알렉시스는 신음하고 있었으나, 유로프스키가 머리에 총을 2발 발사했고 결국 죽게 됩니다.


아나스타샤는 이때 죽지 않고 살았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콜셋에 보석이 박혀있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총알이 튕겨나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그녀를 뒤집자 통증으로 소리를 냈고, 그 사람은 라이플의 개머리판을 곤봉처럼 이용해서 그녀를 죽입니다.









유로프스키(Yakov Yurovsky, 혹은 Jacob Yurovsky).
처형을 주도한 사람




 처형이후


처형후 20분만에 그들은 시체를 피아트 트럭에 싣고 그들은 그날 밤에, 시체를 처리하기 위해서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그들은 마을에서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의 폐광에 시체를 버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때 그들은 시체의 옷을 벗기고, 옷에 장식된 모든 보석을 떼어냈습니다. 특히 황후의 옷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나중에 모스크바로 보냅니다.


이들은 옷을 태우고 시체를 폐광에 버립니다. 하지만 곧 시체를 버린 곳이 소문이 나자 유로프스키는 다음날 밤에 시체를 다시 꺼내서 염산 처리를 합니다. 그는 시체를 모두 태우기로 결정하고 황태자와 여자 시체를 하나 태웠습니다. 문제는 이 시체가 도대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는 점입니다. 유로프스키는 황후나 하녀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황후의 딸중의 한 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체를 단 2구밖에 태우지 못한 것은 시체를 태우는 과정에서 많은 연료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이 미쳐 몰랐기 때문입니다.


학살이 있은 후 8일 후에 러시아 백군이 시베리아 지역을 탈환합니다. 이들은 황제를 찾았지만 처형이 일어난 장소를 발견했을 뿐이고, 소문으로는 그 시체들이 폐광에 버려졌다고 하여 찾아보았지만, 태워 버린 옷가지와 그 속에서 황제와 황후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의 소지품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시체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소콜로프의 저서 "러시아 황제 일가 암살의 사법조사"라는 보고서로 작성되었고, 대부분의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는 이 보고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









안나 앤더슨 (1929년)


하지만 위의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 위의 보고서는 시체를 확인하지 않았고 흔적만을 이용해서 확인한 것이므로 신뢰도가 높은 편도 아니었으며, 보고서의 작성자가 자의적으로 자료를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황제는 사살되었지만 나머지 가족은 살아있다는 소문에서부터 아나스타샤는 살아있다는 등의 여러 가지 소문이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나타납니다. 그녀는 나중에 안나 앤더슨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최근에는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라고 하면 오래전에는 안나 앤더슨의 이야기로 생각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히려 정확한 자료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콜린 윌슨의 책에서 조금 인용하는 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안나 앤더슨은 아나스타샤의 처형 2년 뒤인 1920년 2월 17일 베를린에서 자살을 하려고 뛰어 내렸으나 구출이 되어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녀는 신분증이 없었고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자 보호시설로 보내졌습니다. 1921년이 되자 그녀는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말을 했습니다. 알렉산드라의 시녀였던 한 여자가 그녀를 방문했을때 아나스타샤는 담요밑에 숨었으며, 시녀는 그녀를 협잡군이며 가짜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은 아나스타샤의 이야기를 믿었고 1922년 그녀가 보호시설에서 나오게 되자 그녀를 믿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영화 아나스타샤는 바로 이 시기의 이야기를 영화화 한 것입니다.


나중에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도망쳐 나왔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총검에 찔리기는 했지만 총검이 무뎌서 죽지 않았으며 도망쳐 나오다가 차이코프스키(Tschaikovsky)라는 군인에 의해서 도움을 받아서 루마니아로 옮겨왔고(비록 그녀의 말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그와 결혼을 했으며, 그가 거리에서 싸움으로 인하여 죽게 되자, 출산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후 그녀는 혼자 베를린으로 와서 친척인 아이렌 황녀를 만나려고 했으며 아이렌이 사는 궁전에 도착했으나 아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서 들어가지 않고 자살을 택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렌 황녀는 결국 아나스타샤를 만나보았으나 그녀는 그 자리에서 아나스타샤를 닮았다는 것을 부정하였습니다. 그러나 돌아와서 나중에 아나스타샤와 매우 닮았다는 것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아이렌 황녀의 아들인 시지스문트는 아나스타샤와 옛 친구였는데, 자신이 아나스타샤라고 주장하는 그녀에서 여러가지 질문을 보내서 답변을 받아보고는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맞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나스타샤로 주장하는 그녀는 스스로를 안나 앤더슨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맞는가에 대한 황제의 친척들의 의견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경우에는 앤더슨이 진짜라고 하였고 또한 다른 많은 경우에는 그녀가 가짜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안나 앤더슨이 정말로 가짜였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몇가지가 있기는 한데, 별로 대단한 내용은 아니고,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는 대개 횡설수설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세한 내용은 잘 파악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러한 와중에 일부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그녀가 폴란드의 공장 근로자였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녀는 안나 앤더슨이 나타나기 직전에 사라졌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앤더슨을 Schanzkowska라고 증언한 사람이 매수되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돈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당사자만이 알겠죠.


앤더슨은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녀는 가끔 거만하고 혹은 지나친 요구를 하기도 했으며, 가끔은 사람들을 공격하고 조금 이상한 행동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녀가 가족이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안나 앤더슨 (1965년)


그녀를 가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러시아말을 못한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그녀는 러시아에서 연설했을때 러시아말을 이해했고 다른 나라 말로 답변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기 가족을 죽인 사람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으로 또한 이해되었습니다.


그녀는 영어, 독일어, 불어를 잘하는데, 이것은 일반적인 폴란드의 공장 근로자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여러 곳에 상처가 있었는데 이것은 총검에 찔린 것이라고 했으나 반대자들은 공장에서 수류탄에 의한 사고 때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앤더슨은 1938년에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려는 재판을 했는데 이 재판은 1970년까지 끌었습니다. 이 재판 과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이 아나스타샤를 진짜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그녀가 졌는데, 그것은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녀가 아나스타샤임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아나스타샤냐 아니냐의 문제는 지금에 와서는 하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그 당시는 거의 가장 흥미로운 미스테리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사실 대부분은 그녀가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그 유명한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 아나스타샤라는 영화에 출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안나 앤더슨은 생애의 마지막 15년을, 미국의 부호인 존 마나한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다가 1984년 폐렴에 걸려 사망했고, 그녀의 시체는 정말로 안타깝게도 화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아나스타샤의 비밀은 영원히 묻히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안타까움이야 말할 수 없었죠.


아나스타샤의 논쟁에서 빼먹을 수 없는 것은, 반대한 사람과 찬성한 사람들이 거의 극명하게 자기 이익에 따라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아나스타샤는 짜르의 딸이므로 공식적으로 유산의 소유권을 가지게 되므로 실제 아나스타샤가 황녀라는 것이 확인되면, 많은 사람들은 재산을 잃게 됩니다. 그러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아나스타샤를 황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아나스타샤를 황녀로 생각했고 이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는데, 그것은 반대로 그녀가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을 경우 자신들에게 많은 상이 내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발굴


1984년이 되어서 안나 앤더슨이 사망했고, 그 당시만 해도 그녀의 진실은 묻혀 버릴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처형을 주도한 유로프스키는 자신이 로마노프 가족의 처형을 기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소련이 점차 개방적으로 변하자, 소련의 영화제작자인 겔리 리아보프는 로마노프 왕가의 무덤을 찾으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로프스키의 자손들을 추적해서 "유로프스키 노트"를 얻을 수 있었고, 지역의 향토사학자들과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결국 나무 더미 밑에 묻힌 검고 녹색으로 변한 뼈가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것들의 일부가 로마노프 짜르 가족의 뼈라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때가 1979년이었지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지 못하고 10년을 더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소련이 드디어 고르바쵸프 서기장이 개방을 추진하고 후임으로 옐친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옐친은 시체 발굴을 허락했고, 발굴을 마친 후에 러시아에서는 발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 1992년에 드디어 미국의 법의학팀을 초청하게 됩니다. 당연히 미국의 최고 권위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유명한 인류학자인 메이플박사는 저명한 전문가들을 모아서 팀을 구성했습니다.


러시아에서 발견한 시체는 모두 9구였습니다. 사망자가 11명이었기 때문에 2구가 부족했는데, 시체중에 5명은 여성이고 4명은 남성이었습니다. 이들 시체는 특히 얼굴이 심하게 망가져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거나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미국의 법의학 팀은 시체 9구에 대해서 각각의 시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1번 시체. 완전히 성장한 성인 여성이고, 관절 부분에서 전형적인 무릎을 꿇고 일하는 사람(하녀)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이 여자는 황후의 하녀인 안나 데미도바로 생각됩니다.


2번 시체. 완전히 성장한 성인 남성이고, 시체에서 2발의 총알이 발견되었지만 총은 3발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은 황태자인 알렉세이의 주치의인 세르게이 보트킨으로 생각됩니다.


3번 시체. 여성이고 20대 초반으로 보였습니다. 앞이마가 튀어나온 것과 상처로 볼 때 올가라고 생각됩니다.


4번 시체. 중년의 남성의 시체로 약간 키가 작았습니다. 머리뼈의 모양과 엉덩이뼈를 바탕으로 짜르인 니콜라스 2세로 생각됩니다.


5번 시체. 여성의 시체로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으로 보이며, 3번째 어금니가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가장 어린 여성이었으며, 3째인 마리아라고 생각됩니다.


6번 시체. 이 시체는 완전히 성장한 젊은 여성으로 보이며, 그녀의 천골이나 골반의 뼈로 봤을 때 최소한 18세 이상으로 보였고, 쇄골을 봤을 때는 최소한 20세는 되어 보였습니다. 그녀의 치는 65.5인치이며, 그녀는 등뒤에서 총을 맞았습니다. 그녀는 사망당시 21살이었던 타티아나로 생각되었습니다.


7번 시체. 나이든 여성의 시체로 치아가 백금으로 되어있는 등 여러 가지 증거로 황후인 알렉산드라라고 판단되었습니다.


8번 시체. 이 시체는 매우 조각이 많았으며, 산에 의해서 심하게 부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체는 분명히 성인의 것이었으며, 잠정적으로 요리사인 이란 카리토노프라고 생각되었습니다.


9번 시체. 매우 크고, 강한 뼈의 남자로 6피트는 되는 사람으로 짜르의 시종인 엘렉세이 트루프로 생각되었습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이상하게도 황태자인 알렉시스와 아나스타샤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조사자들은 메이플 박사의 이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6번 시체가 아나스타샤라고 생각했습니다. 살해 당시 아나스타샤는 17살 1개월 이었기 때문에 미국팀들은 이에 동의할 수 없었으며, 러시아 조사자들은 이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얼굴뼈를 새로 맞추는 작업을 계속 진행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분석


1993년에 아주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는데. 앞서 발굴한 시체가 과연 짜르 일가의 시체가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이용한 것인데, 참고로 미토콘드리아의 DNA에 대해서 잠깐만 지적한다면, 그 당시 알려진 바로는 인체의 핵안에 들어있는 DNA는 쉽게 파괴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DNA는 상당히 오래 보존된다는 것이 알려졌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되며, 돌연변이가 극히 드물어서 그 당시 약 300세대 만에 한 번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세 딸의 시체는 쉽게 에딘버러 공(Duke of Edinburgh)으로부터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짜르의 DNA는 Grand Duke Georgij 와 비교하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유로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불의의 사고로 생긴 피묻은 손수건이 있었는데, 이것은 상당히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신빙성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짜르의 조카인 Tikhon Kulikovsky에게 요청했으나 그는 영국이 자신의 망명을 도와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DNA 제공을 거부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좀더 먼 친척인 Xenia Sfiri와 Duke of Fife의 DNA와 비교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주 특이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치 16169번의 염기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된 것입니다. 이 돌연변이로 인하여 좀더 연구를 한 결과 미토콘드리아의 모든 DNA가 돌연변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정상인 것과 혼합되어 있었습니다.(이것을 헤테로플라스미라고 부릅니다.) 이것 때문에 연구자들은 짜르의 DNA의 정확성에 대해서 98.5% 확률로 니콜라이 2세의 시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Grand Duke Georgij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러시아 정교회의 요청과 함께 1994년 발굴을 하여 미토콘드리아의 DNA를 조사한 결과, 니콜라스 2세와 동일한 헤테로플라스미가 발견되어 드디어 기나긴 로마노프 짜르 일가의 신원확인이 끝나게 됩니다.
 


 아나스타샤는 어디로?


미토콘드리아 검사는 단지 그 시체가 로마노프 짜르 가족의 시체라는 것을 말해줄 뿐 세명의 황녀에 대한 신분을 밝혀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측의 결과에 따르면, 아나스타샤의 시체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연구팀의 일부는 미국측의 결과를 동의하지 않았으며, 1998년 새로이 발견된 증거를 이용해서 러시아어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초록을 살펴보면, 6번 시체를 아나스타샤로 생각하며 마리아와 알렉세이의 시체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외 러시아의 또다른 연구팀의 2001년의 논문에서는 아나스타샤가 1918년 죽은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썼으나, 논문의 초록에는 그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의 연구팀이 지나치게 아나스타샤에 집착하는 것과는 달리, 러시아의 상당수 사람들은 이 결과를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즉, 그들은 미국쪽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서, 아나스타샤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살아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안나 앤더슨이 바로 아나스타샤라고 믿은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미스테리는 안나 앤더슨은 과연 아나스타샤인가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나스타샤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안나 앤더슨의 묘


DNA 분석법이 너무 늦게 개발되었고, 안나 앤더슨은 이미 죽은 뒤 화장을 했기 때문에 DNA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머리카락이 남아있었으나, 모근이 짤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도 별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그녀에 대한 진실이 영원히 묻히는 것 같았으나 다행히 기적적으로 안나 앤더슨의 DNA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수술을 받았고, 그 때 제거한 조직이 그 병원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DNA를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 조사를 맡은 피터 길(Peter Gill) 박사에 의하면, 여기서 추출된 DNA는 원래 1991년 발굴된 아나스타샤의 가족의 여성(황후 및 세 딸)의 패턴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녀가 진짜 아나스타샤가 아니라는 것은 확인되었지만, 혹시 검체가 오염됐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나 앤더슨은 생전에도 그녀가 폴란드의 공장 노동자인 프란체스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증언한 증인이 매수당했다고 생각했으나, 조사할 가치는 충분했습니다. 만약 그녀가 아나스타샤가 아니라면 그녀는 프란체스카일 가능성이 제일로 높았기 때문에, 독일에 살고 있는 프란체스카의 외조카인 칼 마우쳐의 혈액을 얻어 조사한 결과, 다행히도 서로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미스테리의 중요한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사건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은 안나 앤더슨이 실제로 아나스타샤이기를 바랬습니다. 얼마전에 나온 20세기 폭스사의 만화영화 아나스타샤만 해도, 그러한 일반인들의 소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아나스타샤가 살던 시기의 고단한 삶속에서 새로운 신데렐라를 동경하는 마음 때문에 더더욱 사실처럼 느끼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불행히도 안나 앤더슨은, 생존 당시에는 남의 유리구두에 의지해서 신데렐라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만 결국 완전히 신데렐라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죽은 후에는 신데렐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줌의 재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딴지 국제미스테리 취재우원
김진만(jeank@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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