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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동화] 대통령의 기생충

2003.2.21.금요일

딴지 의학부


경고 : 아래 내용과 등장인물은 모두 픽션이다. 또한 아래 내용에는 아무런 정치적 의도도 없다. 혹시라도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흥분하는 머리나쁜 독자는 없을 줄로 믿는다.


 


"기생충이 없어진 지가 언젠데 각 대학마다 기생충학교실이 있습니까? 이건 낭비고, 비효율입니다. 기생충은 과거의 유산입니다. 우리는 미래와 싸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 기생충학 교실은 우리 나라에 두세개만 있으면 됩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무현 당선자의 연두 기자회견을 들었을 때, 마태우스는 너무 놀라서 차를 몰고 인도로 돌진할 뻔했다.


뭐니뭐니해도 우리나라는 제왕적 대통령이 지배하는 나라다. 안 그래도 평소 기생충학 교실을 없애지 못해 안달이던 각 대학들이 앞다투어 교실을 없애버릴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저 사람이 정말...


마태우스는 두달 전 일을 떠올렸다.


 





 


2002년 10월 20일, 대선을 두달 앞둔 시점에서 기생충학회 평의원 회의가 소집되었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느냐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대세는 이회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생충학회 회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 후보는 이런 말을 했었다.


"제가 이래봬도 어릴 적 회충에 걸려 고생 많이 했습니다. 회충이 200마리가 넘게 나온 적도 있지요. 동네에선 회창이란 이름보다 회충으로 더 많이 불렸습니다, 허허"


이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기생충학회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기생충학은 중요한 학문이며,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입니다. 열심히만 해주신다면 제가 몸이라도 팔아서 돕겠습니다"


학회 회장이 입을 열었다. "오래 말할 것 없이, 이회창 후보를 만장일치로 지지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와 함께 "없습니다"란 말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이의 있습니다!" 찌렁찌렁한 목소리에 좌중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회장은 자신이 뭔가를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손을 든 사람은 마태우스였다. 학교를 떠나 탐정사무소를 열긴 했지만, 평의원 자격은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


"회장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회장은 짜증이 났다. 빨리 회의를 끝내고 횟집에 가야 했다. 물론 이 후보 측에서 마련한 모임이었다. 간단히 끝날 줄 알고 시간을 최대한 당겨 놨더니 이게 웬 낭패람?


"저... 무슨 이의가 있는지 말좀 해보시죠"


마태우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 그러니까...."


말을 할 때 뜸을 오래 들이는 건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마다 나오는 마태우스의 습관이었다. 회장은 다시금 시계를 들여다봤다.


"에....우리가 기생충학을 전공한 게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아닐 겁니다. 기생충은 언제나 소외받는 사람들의 질병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기생충학을 택한 게 아닙니까? 그런데 소외받는 사람들의 후보를 제쳐두고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특정후보를 지지한다면, 수많은 기생충들이 분노할 것입니다"


"무슨 소리야!" "집어 치워!" "야! 마이크 꺼!" 일대 소란이 일었다. 회장이 다시 나섰다.


"모두 진정하세요! 조용!"
장내가 정리되자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이견이 나왔으니 민주적 방식에 따라 표결로 지지후보를 결정하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1번을 지지하시는 분들, 손 들어 주세요"
모두 손을 높이 들었다. 단 한명, 마태우스를 빼고.


"말도 안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무슨 놈의 표결을 한단 말입니까? 민주선거의 원칙이 비밀선거라는 것도 모르십니까?"


회장의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다. "지금까지 우리 평의원 회의에서는 거수로 의견을 정해 왔습니다. 그때는 아무 말씀 안 하시다가, 왜 갑자기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군요"


마태우스는 끝끝내 저항했지만 대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음날 신문들은 미생물, 해부학, 약리학회 등에 이어 "기생충학회도 이회창 후보지지 결의"라는 기사를 1단 기사로 내보냈다. 그리고 마태우스는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평의원 회의 결과 마태우스님의 평의원 자격을 박탈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기생충학 교실, 없애야 합니다!!
 


 


노 당선자의 연두기자회견 다음날, 평의원들간의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려하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기생충학교실이 2-3개 대학만 있으면 된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신라대 김유신 교수가 그 말을 받았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 몰랐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당하기만 할 수는 없지 않나요?"


다혈질인 백제대 계백 교수가 일어났다. "그렇습니다. 당장 청와대 앞으로 몰려갑시다! 그냥 가기 뭐하니까 목에다 회충을 한 마리씩 감고 갑시다!"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오! 내일 아침 회충을 들고 모이기로 합시다"


좌중이 소란해졌다. "좋소! 우리의 결의를 보여 줍시다!" "김교수, 나 회충 한 마리만 빌려주게. 꼭 갚겠네" "아이, 지난번에도 한 마리 가져가시고선..."


"저는 반대입니다" 고구려대 양만춘의 말에 사람들이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회장은 그에게 못마땅하다는 눈초리를 보냈다. "그럼 양교수는 이대로 죽자는 거요? 도대체 반대 이유가 뭐요?"


양만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모두 지성인입니다. 알지()에 섹스성(), 지성인!" 양만춘은 혀로 입술을 핥은 후 말을 이었다. "그래, 배웠다는 사람들이 겨우 생각한다는 게 기생충을 목에 감고 시위를 하는 겁니까? 시민들이 그 장면을 TV로 보면서 잘한다고 할까요? 그건 우리 얼굴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것밖에 안됩니다"


침묵이 이어졌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양교수는 어떤 다른 대안이 있다는 거요?"


"제가 대안도 없이 이런 소리를 했겠습니까" 양만춘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회충을 포함한 기생충들은 60, 70년대에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멀쩡한 사람들이 입으로 회충을 토해내던 그 시절, 그때가 바로 우리의 전성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은 요즘 세상에 기생충이 어디 있냐고 우리를 비웃습니다"


양만춘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그바람에 졸고있던 발해대 선생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제 딸이 학교에서 다녀오더니 이런 말을 하더군요. 아빠, 흑, 아빠는 왜 기생충 같은 걸 했어? 애들이 날더러 벌레딸이래라구 말입니다. 이게 뭡니까? 우리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아무리 토끼를 잡으면 사냥개를 잡아먹는 세상이라고 해도, 기생충이 줄어들었다고 기생충학 교실을 없애는 게 말이 됩니까? 그리고 지금 기생충이 없습니까? 요충도 많고, 말라리아도 창궐 중입니다. 그밖에도..."


분위기가 썰렁해지는 걸 막고자 회장이 끼어들었다. "자, 양교수의 뜻은 잘 알겠는데, 아까 얘기한다던 그 대안이란 게 뭔지 설명 좀 해주시오"


"아, 대안 말입니까" 양만춘은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러니까 제 말은, 기생충을 다시금 부활시키자는 거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양만춘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병 하나를 꺼냈다. "이건 회충알입니다. 이 병 안에 적어도 1000만개 가량의 회충알이 들어있지요. 물론 마음만 먹으면 더 만들 수도 있지요. 이걸 각자 구역을 나누어서 삼겹살 집에 공급되는 상추에다 뿌리는 겁니다. 두달, 적어도 두달이면 전국에 난리가 날거구, 사람들이 우리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빌 겁니다"


신라대 김유신이 손을 들었다. "우리가 했다는 게 탄로나면 어떡하죠?" 계백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갑자기 회충이 급증하면 우리를 의심할 텐데.."


"두분은 언제나 그렇게 걱정이 많으시군요" 양만춘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봄 가을로 구충제를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만큼 회충의 공포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요. 회충 환자가 발생하면 올것이 왔구나 그러지 누가 일부러 회충을 풀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증거라곤 하나도 없을텐데 말입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회충이 박멸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합시다.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던 회충이 올 겨울의 이상난동 때문에 급증한 것 같다고"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거 참 말되네" "기발한 생각이야"


"양교수님, 그런데 그 회충알은 어디서 난 겁니까?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양만춘은 껄걸 웃었다. "이건 제가 만든 겁니다"


"네? 뭐라고요?"
"석달 전, 저희 병원 환자가 수술 중 장에서 회충 3마리가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그중 두 마리가 암컷이었죠.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이용해 볼 수 없을까. 그러다 생각이 났죠. 내가 먹자! 혹시 앞으로 유용하게 쓸 일이 있을지 모른다..."


참석자들이 소란해졌다. "웅성웅성" "시끌시끌"


"그래서" 양만춘은 손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았다. "회충의 자궁에서 알을 꺼낸 뒤 인큐베이터 속에서 부화시켰지요. 3주쯤 지나고 난 뒤 그 알들을 모아 파리크라샹 빵에다 얹었습니다. 그리곤 눈 딱 감고 그 빵을 먹었죠. 7주가 지나자 제 대변에서 회충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전 대변을 볼 때마다 변에서 회충알을 분리해 병에다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회충알의 수로 보건데, 제 몸에는 적어도 스무마리 이상의 회충이 들어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회충의 수명을 일년으로 잡는다면, 앞으로 8개월 동안에는 얼마든지 회충알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하하하하"


웃음소리가 끝나자 누군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박수소리는 점점 커졌고, 얼마 후에는 모든 사람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박수는 한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박수소리가 뜸해질 무렵,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교수, 수고 많았어요. 우리나라에 양교수 같은 분만 있다면 이 나라가 이렇진 않을 겁니다. 이건 제 자랑같지만, 양교수가 우리 학회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전 양교수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지요. 하.하.하"


회의장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자, 그럼 그 회충알 살포... 멋있게 회충 프로젝트라고 하죠. 그 회충 프로젝트에 혹시 반대하시는 분이 계시나요?"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았다.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대하시는 분이 없는 걸로 알고.."



한마리씩 목에 감고.. 우...


그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뛰어들어왔다. "이의 있습니다!"라는 고함소리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문쪽으로 쏠렸다. 마태우스였다.


"우리 자신의 존속을 위해 선량한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국민들의 건강보다 우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단 말입니까?"


"이봐! 마군! 자넨 여기 들어올 자격이 없어. 자네의 평의원 자격은 이미 박탈되었다구!"


회장이 밖을 향해 손뼉을 치자, 건장한 체격의 경비 두사람이 들어왔다. "이분, 밖에까지 모셔 드려요" 경비는 마태우스의 양 팔을 잡았다.


"회장님, 국민들을 희생시키지 않고도 기생충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좋은 방법이 제게 있습니다. 한번만 믿어 주십시오!"


"당신을 내가 믿을 것 같나? 당장 끌어내요!"


국민들을 상대로 기생충을 뿌리는 게 영 꺼림직했던 마한대 돈교수는 마태우스의 생각이 뭔지 궁금했다. "회장, 그 방법이란 게 뭔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동조하는 발언이 쏟아졌다. "그래요, 맘에 안들면 그때가서 내보내면 되잖소" "맞아요,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우리식구 아니요"


회장은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경비들에게 마태우스를 놓아 주라고 했다. 마이크 앞에 선 마태우스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제게 발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저희 고모께서..."
십분 후, 회의장에서는 다시 기립박수가 울려퍼졌다. 그 박수는 두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태우스는 만장일치로 평의원 자격이 회복되었다.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는 특유의 진솔한 화법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 주었다. 낡은 정치, 끝장냅시다! 부정부패 없는 나라 만듭시다! 지역감정 물리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야 합니다....


"아니, 왜 그거밖에 안드세요?" 반도 안먹고 숟가락을 놓는 대통령을 영부인 권양숙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았다.


"모르겠소. 속이 더부룩한 게, 요즘 영 식욕이 없소"
"당신, 어디 아픈 거 아니어요? 주치의에게 상의해 보지 그래요"
"안그래도 그럴 참이었소"


 





 

"켁켁" 마태우스는 연방 기침을 해댔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폐 속에 뭔가 들어있는 것처럼 답답함이 몰려왔다. "왜 그러지? 알레르기가 도졌나?"

 





 


"글쎄요.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이는군요"


대통령 주치의 마해영은 검사결과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삼성대학 일반외과 과장이던 그는 10년 이상 노무현의 주치의였다.


"내시경 검사상 별다른 게 없습니다. 혈액검사 결과도 다 정상이구요. 약간 빈혈의 징후가 보이긴 하지만, 크게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빈혈? 내가 빈혈이란 말이요?"
"의학적으로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13g/dl 이하를 빈혈로 규정합니다. 대통령께서는 12.5g/dl 정도니, 크게 우려하실 건 아닙니다. 요즘 식욕이 없으셔서 그런 모양인데, 철분제재를 드시면 금방 회복되실 겁니다."


"그밖에는 다 괜찮단 말이죠?"
"에...또..." 마해영은 투박한 안경을 고쳐썼다. "검사 결과 모든 게 다 정상 범위입니다. 혈당이 97이고...크레아티닌 농도, 이건 신장 기능을 말해주는 건데 0.2 정도면 정상이고...어디보자...음... 호산구가 조금 높군요"


"호산구? 그건 뭐죠?"
"백혈구의 한 종류입니다. 알레르기나 기생충 감염시 수치가 높아지지요. 보통 백혈구 중 0-2% 정도를 차지하는데, 대통령께서는 5%로 조금 증가되어 있군요"


"그래도 괜찮은 거요? 내가 어릴 적 천식을 앓은 적이 있는데"
"아마 그래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요즘 세상에 기생충에 걸렸을 리는 없구... 어쨌든 5%는 별로 의미있는 소견은 아닙니다."


이상없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노무현은 여전히 속이 좋지 않았다. 빈혈이 걱정되어 미역국을 끓인 아내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절반도 못먹고 숟가락을 놓아 버렸다. 먹은 건 없어도 대변은 꼬박꼬박 나왔다. 노무현은 변기에 걸터앉았다. 6.15 선언 3주년을 맞아 김정일이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는 등 남북관계는 잘 풀려가고 있었다. 경제지표 또한 순조로웠다. 야당도 김대중 정부 때와는 달리 대승적으로 협조를 해줘, 각종 개혁입법의 처리에 대부분 동의해 줬다. 한나라당이 지도부 개편을 통해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건 전적으로 야당을 국정 파트너의 한 축으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한 대통령의 노력 덕분이었다. 조선일보는 연일 노무현을 좌파라 부르며 공격했지만, 그간의 엉터리 기사로 신뢰도가 크게 떨어졌고, 구독자 숫자도 100만명 이하가 되어 예전만한 영향력을 갖지 못했다. 모든 게 잘 풀렸지만 몸이 아프다보니 노무현은 울적하기 그지 없었다. 역시 건강이 제일이라니까 이 와중에 몸만 좋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첨벙!" 대변이 낙하하면서 변기의 물이 엉덩이에 튀었다. 노무현은 미간을 찡그렸다. 안그래도 선명한 이마의 주름살이 더 굵어졌다. 순간 주치의의 말이 생각났다. "알레르기나 기생충 감염..."


기생충. 내가 왜 한번도 그 생각을 안해 봤을까. 뱃속에 회충이 있으면 속이 더부룩하고 밥맛이 없다는데, 내가 딱 그렇지 않은가.


노무현은 변기에서 내려와 변기 속을 들여다 보았다. 볼품없게 생긴 대변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창 때는 색깔도 곱고, 굵고 힘찬 똥을 쌌었는데 이게 뭐람? 나도 늙었나보군"


그는 청소용 솔의 자루로 대변을 휘저었다. 대변이 물에 섞이며 물 색깔이 흐려졌다. 그때 그의 눈에 희멀건 물체가 보였다. 네모낳고 길쭉한 그 물체가 물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헉! 이게 뭐지?" 분명 잘못 본 건 아니었다. 공포감이 밀려왔다. 노무현은 막대기로 그걸 건지려 했다.


"여보! 당신 지금 뭐해요?"
부인이 부르는 소리에 놀란 노무현은 화장실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바닥에 머리를 부딪혔는지 의식이 점점 혼미해졌다. "여보!" 아내가 부르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


눈을 떴다. 수심에 잠긴 아내의 얼굴이 보였다. 아들 녀석도 며느리와 함께 와 있다.


"건호야, 니가 웬일이가?"
"아버님이 쓰러지셨다고 해서요" 며느리는 거의 울듯한 표정이었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조금 지났다. "난 아무렇지도 않아. 바닥에 미끄러졌을 뿐이니 어서 돌아들 가. 건호 너, 내일 출근해야 하잖아"


노건호는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 "아버님, 그런데 변기에서 뭐하고 계셨어요? 어머니 말씀으로는 평소답지 않으셨다는데..."


노무현은 자신이 기생충에 걸렸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같은 인텔리가 기생충에 걸리다니, 말이 되는가? "음, 아빠는 말이다, 변기가 막혀서 뚫고 있는 중이었다"


아내가 끼어들었다. "당신, 요즘 먹은 것도 없는데, 변기가 막힐만큼 변을 봤단 말이어요? 물 잘만 내려가더만..."


"청출어람도 몰라요? 아무것도 안먹어도 대변은 나오는 법이오. 그런데 당신, 물을 내렸단 말이오?" 노무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며느리와 아내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제서야 노무현은 아랫도리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음을 알았다.


"여보, 추리닝 바지 좀 갖다 주겠소?"
바지를 입은 노무현은 가족들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말한 뒤 화장실로 향했다. 노건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아버님이 이상하신 것 같아요.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더니만..." 그때 화장실에서 노무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나무젓가락 하나만 갖다 주구려!"


가족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희 아버지, 정말 왜이러시지?"
"뭐해요? 빨리 젓가락 갖다줘!" 다시한번 부르는 소리가 나자 권양숙은 젓가락을 챙겨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노무현은 젓가락을 들고 변기 위에 앉아 있었다. 열심히 힘을 줘봤지만 바람만 나온다.


"하긴, 그나마 나올 건 아까 다 나왔으니..."
다시 변의를 느낄 때까지 기다려도 되지만, 그는 그러기가 싫었다. 몸 속에 기생충을 두고는 편히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기생충에 걸렸다니. 그는 아까 봤던 그 네모난 벌레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희고 네모난 놈이 꿈틀거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엽기적이었다. 그는 천장을 보고 중얼거렸다. "오, 주여.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정치에 입문하고 난 뒤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이것 역시 그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 총선에서 낙선했을 때나 대선 막판 정대표가 지지를 철회했을 때보다 훨씬 더 참담한 느낌이었다. 그는 다시금 배에 힘을 주었다.


"풍덩!"
작은 덩어리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노무현은 변기에서 내려와 변기 안을 들여다 보았다.


 





 


마태우스는 속이 영 불편했다. 입맛도 없었고, 수시로 헛구역질이 났다. "임신이라도 했나? 왜이러지?" 마태우스는 소화기내과에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봐, 안비서"
만찬장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노무현은 안광재 보좌관에게 귀를 대보라고 했다. 안광재.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될 때부터 자신을 보필하던 오른팔이다. 지난 경선 때부터 대선에서 승리하기까지 자신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켰다.


"내가 자네에게 뭐하나 줄 테니까, 근처 약국에 보이고 약을 달라고 해"
노무현은 손에 들고 있는 병을 안비서의 양복 주머니로 옮겼다.
"그리고,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알았지?"
안비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요.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미모의 약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아는 분이 주시기에 그냥 받아왔는데요. 꼭 약을 받아오라고 하셔서..."
"제가 보기에는 기생충 같거든요. 이거 드시면 될 거에요"
약사가 내민 약은 젤콤이었다. "회충.요충.십이지장충을 한방에!"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안비서는 생각했다. 아, 기생충에 걸리셔서 그렇게 부끄러워하셨구나!









씨바.. 기생충이 왜 안 없어지지..


노무현은 괴로웠다. 그 약을 일주일이나 먹었건만, 그 네모난 벌레는 매일같이 대변을 통해 기어나오고 있었다. 처음 이틀은 약효가 안올라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흘째에도 여전히 그놈들이 관찰되니 미칠 노릇이었다. 이젠 더 버틸 도리가 없었다. 노무현은 자신의 휴대폰 7번 버튼을 길게 눌렀다. 7번에는 주치의의 번호가 입력되어 있었다.


"아니 이럴수가!" 병에 든 물체를 확인한 마해영은 외마디 소리를 쳤다. "이거, 기생충 같아요! 아니 요즘도 기생충이 있다니!"
"어떻게, 고칠 수 있겠어요?" 노무현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이런 기생충은 저도 처음 보는데... 친구 중에 기생충학을 전공한 사람이 있는데, 그를 불러 오면 어떻겠습니까?"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안되는데... 그 친구, 믿을만한 친구요?"
"네. 마한대 돈교수라고, 아주 믿음직하지요"


삼십분쯤 기다리자 돈교수가 청와대에 도착했다.
"각하, 영광입니다. 마과장, 오랜만일세."


노무현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 밤중에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워낙 상황이 급해서... 제 대변에서 이런 게 나오는데 좀 봐 주시지요."


돈교수는 병을 받아들더니 안의 내용물을 손바닥 안에 꺼내 놓았다. 노무현은 민망했다.
"미안하오. 더러운 건데..."
"아닙니다. 기생충학자가 기생충을 더러워해선 안되지요. 제겐 소중한 샘플입니다."


불빛에 놓고 잠시 들여다보던 돈교수는 다시금 샘플을 병에 집어 넣었다.
"이건 광절열두조충이라는 기생충의 조각입니다. 크기는 수미터에서 긴 건 10미터까지 되지요. 그놈이 뱃속에 도사리고 앉아 끝부분만을 대변으로 내보내는 거죠"









광절열두조충


노무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십미터나! 그런 게 내 뱃속에 있으니 소화가 안됐구나!"
"네, 각하. 크기에 비해 별다른 증상이 없긴 해도, 소화가 안된다든지 하는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지요."


"각하라는 호칭은 빼 주십시오. 그런데 뭘 먹고 걸리는 거요? 난 흙장난 같은 건 안했는데"
"이건 연어나 농어회를 먹고 걸립니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걸리죠"


노무현은 놀랐다. "부산 사람이 회를 좋아하는 건 당연하죠. 그런데 나 말고도 이런 거에 걸린 사람이 있나요?"
"네, 각하. 아니 대통령님.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수십명이 이 기생충에 걸립니다. 별다른 증상이 없는지라 뱃속에 이 기생충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마해영도 놀란 표정이었다. "치료는 어떻게 하나? 대통령님이 회충약을 드셨는데도 차도가 없다는데"


돈교수는 껄걸 웃었다. "회충약을 드셨으니 효과가 없을 수밖에. 이건 회충이 아니라 우리가 촌충이라고 부르는 기생충이라네. 대통령님, 오늘 치료해 드릴까요?"


"물론이오. 꼭 좀 부탁합니다" 노무현은 돈교수의 손을 잡았다가 아까 기생충을 만졌다는 걸 상기하곤 손을 뺐다.


"그러려면 한명이 더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광절열두조충을 가장 많이 연구한 전문가가 한분 있거든요. 지금 오라고 할까요?"


노무현은 사람이 많아지는 게 영 못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여러 사람 민폐를 끼치는구려"


얼마 안있어 마태우스가 비서의 안내를 받으며 등장했다. 손에는 바가지가 몇 개 들려 있었다. 노무현을 본 마태우스는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각하, 만나뵙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노무현은 마태우스의 투박한 손을 잡았다. "참, 이런 일로 여러분이 고생하게 되어 미안합니다. 임기 동안 건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확실히 좀 고쳐 주십시오"


마태우스는 노무현에게 하얀 알약을 하나 줬다.
"각하, 아니 대통령님, 이게 촌충약입니다. 이걸 드시고 잠시 뒤 설사약을 드시면 장운동에 의해 기생충이 항문 근처로 나올 겁니다. 그러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그걸 뽑아내면 치료가 다 되는 겁니다"
"뽑다니? 뭘로?"
"손으로 뽑으면 됩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아이고! 미안스러워서 어떡한다?"
"괜찮습니다. 대통령님께 도움이 된다니, 제가 기쁩니다"


20분 뒤, 노무현이 설사약을 먹자 마태우스는 그를 화장실로 가게 했다.
"각하, 좀 어렵겠지만, 엉덩이를 들고 엎드려 주십시오"
노무현은 요구하는대로 자세를 취했다. "이거 대통령 스타일 다 구기네"
마태우스는 엉덩이를 들여다 보았다.


"나오나요?"
"글쎄요" 마태우스가 대답하는데, "뽕" 소리가 났다.
"아이고, 이거 미안스러워서 어쩐다? 제가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냄새가 진동했다. 그걸 정면으로 마신 마태우스는 죽을 지경이었다. "괜,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안그래도 요즘 속이 거북하던 터라 마태우스는 하마터면 오버이트를 할 뻔했다.


"뭔가 나올 것 같소" 노무현의 말과 동시에 설사가 바가지에 쏟아졌다. 그와 동시에 하얀 벌레의 끝부분이 항문 주위에 나타났다. 마태우스는 힘차게 그걸 잡아챘다.


"자, 뽑습니다!"
마태우스는 끊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벌레를 뽑아냈다. 노무현은 뒤를 힐끗 돌아다 보았다. "와!" 자신의 몸에서 하얀 벌레가 끝없이 나오고 있었다.


"이게 끊어지면 몸에 남은 놈이 다시 이만큼 자랍니다"
마태우스의 말에 노무현은 다시 앞을 보았다. 뭔가가 계속 항문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노무현은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다... 뽑았습니다"
마태우스가 바가지 하나 가득히 담긴 벌레를 들어 보였다. 노무현은 그걸 보자마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변기 가득히 토사물을 게워 냈다.


 





 


마태우스, 마해영, 그리고 돈교수는 일요일 점심 때 청와대에 초청되었다.
"지난번에 고생들 했어요. 그 후로는 소화도 아주 잘되고, 건강합니다.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노무현이 웃으며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거지, 벌레가 나온 이후부터 아예 입맛이 떨어져 밥을 통 못먹고 있었다. 그래도 속이 더부룩한 건 완전히 가셔, 기분만은 상쾌했다.









아 이 상쾌한 기분..


"그런데, 그 기생충이라는 게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소?"


돈교수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경기도 북부에 발생하는 말라리아도 사실은 기생충이지요. 애들한테서 요충도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전국민의 2% 가량이 간디스토마에 걸려 있는 등, 기생충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말라리아가 기생충이라는 건 처음 들어봅니다. 그렇다면 기생충학이란 게 꼭 필요한 학문입니까?"
돈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기생충학은 기생충을 박멸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기생충을 가지고 인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연구를 하는 게 바로 우리들의 삶이죠. 지금까지 의학의 진보는 사실 대장균을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만, 미래의 연구는 인간과 훨씬 더 가까운 기생충을 통해 이룩될 것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세계 최초로 유전자가 모두 해독된 게 바로 C. elegans라는 기생충이지요"


노무현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하여튼 기생충학이 필요한 학문이라는 얘기로 알아들으면 되겠소?"


이틀 후, 노무현은 기생충학을 비롯한 기초의학 분야에 연구비 지원을 대폭 늘릴 것을 지시했다.


 





 


마태우스는 고모가 운영하는 식당에 앉아 있었다.


"약만 먹이면 되는데 그걸 보는 앞에서 손으로 잡아뺐단 말야?"
"응, 그래야 기생충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고모는 혀를 내둘렀다. "우리 대통령, 고생 많이 하셨겠네"
"나도 마음이 아팠지"
"내가 널 돕는 일이니까 하긴 했지만, 들킬까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너 가고나서 사흘인가 있다가 우리집에 온거야. 회덮밥에다 니가 준 걸 넣는데 어찌나 가슴이 떨리던지"
"고모, 정말 고마워. 이 은혜 잊지 않을게"
"내가 잘한 짓인지 모르겠네. 기생충학이 정말 그렇게 필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해. 방법은 옳지 않았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이 회충으로 고생하는 것보단 낫지. 민중을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이니까 대신 고생하신 거, 이해하실 거야"


술에 취해 들어가는데, 웬 남자가 문앞에 서있다.


"마태우스, 오랜만입니다" 양만춘이었다.
"아, 네, 전화를 주시지, 오래 기다리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사과를 하러 이렇게 왔습니다. 사실 제가 세운 회충알 뿌리기 작전이 좌절된 게 속상해, 마태우스의 음료수에다 갖고 온 회충알을 몽땅 넣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요즘 어디 불편하신 곳이 없으셨는지요?"


그다음 말은 마태우스에게 들리지 않았다. 마태우스는 뒤도 안보고 약국을 향해 달려갔다. 멀리 양만춘의 목소리가 들렸다.


"회충약 제가 사가지고 왔는데요!" 






 


오늘의 건강상식
-광절열두조충(Diphyllobothrium latum) -



확대된 체절 사진


넓은마디 촌충이라고도 하며, 혹은 일명 fish tapeworm이라고도 한다. 인체에 기생하는 조충류 중 가장 크다. 길이는 3미터 내지 10미터이며, 약 3천개의 체절로 이루어져 있다.


전세계에 분포하고 있고, 인체 감염이 많고 빈혈이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비타민을 먼저 흡수해서 인체에 결핍증이 생길 수 있고, 소화장애, 메스꺼움, 구토, 복통,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연어, 전어, 송어 등에 의해 사람에 감염된다. 몸안에 이런게 들어있는거 절라 끔찍하지 않은가! 역시 생선회는 언제나 조심해야 할 것이다....


 



딴지 의학부 전문우원
마태우스 (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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