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대북송금] 노벨상을 돈주고 샀다구??

2003.2.16.일요일
딴지일보

가상의 상황.


일본 굴지의 건설회사 개구라 건설이라는 회사가 있다. 이 회사의 창업주 조카지마 회장은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아버지 덕분에 조선 반도에서 태어났고, 1945년 청천벽력같은 일본의 항복 선언이 있었지만 여전히 대동아 공영권을 신봉해 온 사람이다. 특히나 요즘같은 일본의 장기 침체에는 동북아 경제 블록을 만들어 건설 특수를 일으키지 않는 한 일본 경제의 장기적 비전은 없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가라오케만 가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며 오매불망 조선 재진입의 꿈을 꾸어오고 있던 조카지마 회장. 과거 6,70년대 좀 젊었을 때엔 경주 기생 관광도 심심치 않게 오던 그 회장님께서 어느날 결단을 내리시기에 이른다.


동경 시내에 가지고 있던 빌딩 두세채를 팔아 현금을 마련, 그 돈을 북한에 준 것이다. 그리고 북한 정부로부터 남북철도연결 건설사업권, 전화 인터넷 등 통신 사업권, 전력이용권, 통천에 비행장 건설 사업권, 금강산 저수지의 물 이용권, 관광지 종합개발권, 임진강 댐 건설권 등을 계약한다. 그것도 향후 30년간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계약을...


이것이 밝혀진 다음날부터, 한국의 모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방송 인터넷신문 등등은 모두 홀랑 뒤집어진다.


- 한국 정부 도대체 뭐했나
- 안일한 대응에 선수 빼앗겨
- 향후 OO억 달러 손해 효과
- 남북 교류할때 일본에 로얄티 내야
- 일본 정부의 협조 없이는 어려워
- 일본 다시 대외 확장으로 나서는가
- 부활하는 대동아공영권


빌딩 몇채 값으로 한 나라의 큰 사업권들을 거의 거저 먹다시피한 개구라 건설은 쾌재를 부르며 축제 분위기에 휩싸인다. 미국은 중동에서 명분도 없고 말도 안 되는 전쟁을 해야 얻을동 말동한 사업들을, 비록 석유는 없다지만 한 나라의 기간 사업권을 거의 거저 먹었으니...


 





 


그 비슷한 일을 현대가 했다고 한다.


그동안 그렇게도 폐쇄적이었던 북한과, 최근에도 경제의 대미 종속을 막는다며 달러화 사용 금지라는 요상한 정책을 내놓기도 한 북한과 그런 엄청난 계약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대는 죄송하다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정부도 잘못했다며 납작 엎드렸다. 강경파 국회의원들과 신문들은 당장 해명하라고 연일 맹렬하게 공격하고, 국민들도 과반수 이상이 잘못한 일이라고 한다. 이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지?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강변하던 사람들도 드디어 북한이 자본의 힘에 굴복하기 시작했다고, 역시 자본주의의 힘은 공산주의보다 강하다고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공산주의하고 친하게 지냈다며 규탄한다. 미국 석유회사들이 이라크 시장에 드디어 진출하게 됐는데 미국 국민들이 당장 취소하라고 규탄하는 셈이다. 석유고 뭐고 다 필요없고 일단 후세인부터 족쳐야 한다며.... 이거 뭔가 본말이 전도된 것 아닌지?


물론 (가상의) 개구라 건설과 현대의 경우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좌지간에 일본이든 중국이든 경제적 주도권 다툼에 눈이 벌개져 있는 시대에, 우리가 뱃길 철도길 도로길을 열어버리고, 개성에 공단을 짓고 우리 기업들의 대거 진출이 가능해 진다면 이게 과연 비난할 일인가? 그 정도 돈도 안 쓰고 공짜로 먹겠다면,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우리는 전문용어로 날강도라고 한다.


심지어 민간 기업이나 언론사에서 방북하려고 해도 비공식적으로 얹어주는 돈이 있다. 엄밀히 따지면 다 불법이다. 작년에 방북한 사람이 1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다 김정일 총비서를 오매불망 사모하는 빨갱이 바보라서 돈을 주었겠는가? 다 돌아오는 경제적 이득이 있으니까 주는 것이다. 그거 법적으로 따져서 다 불법으로 처벌하고 거기 만든 공장들 다 뜯어서 돌아오랴?


DJ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도 있다. 노벨상을 김정일에게 돈주고 구걸했다, 정상회담을 돈 주고 샀다고 깎아내리기 바쁘다. 글쎄 뭐 그렇다 치자. 그러나 김정일을 돈으로 매수해서 닫혀있던 문을 열었다면 그건 너죽고 나죽고 탱크로 밀어붙이는 것 보다 훨씬 뛰어난 수완이요, 외교다. 돈 내민다고 아무나 매수 당하나? 노벨 수완상이라는 게 있으면 그것도 추가로 줘서 2관왕을 만들어 줘도 모자랄 일이다.


북한에 대한 근거없는 불안감, DJ에 대한 반감을 악용해서 마치 이것이 무슨 큰 비리 사건, 큰 파렴치 범죄라도 되는 양 오바하는 자들이여 좀 조용히 하시라. 꼴뚜기 점프대회에 나타나서 장대높이뛰기 하는 망둥이 꼴 안 되려고 본지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서 조용히 있었으나 더이상 볼 수가 없도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결국 두가지이다. 1) 정상회담 돈 주고 샀다 2) 몰래 했다.







담화문 발표중...
 


1번은 이미 얘기했다. 돈주고 했으면 그게 오히려 수완 좋은 거라고.


2번 몰래 한 것에 대해서는, 그 정황에 대해서는 십분 이해한다. 뭐 한발짝 가기도 전에 미국에서 태클 들어오고 국내에서도 시끄러웠겠지. 그러나 아무리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는 몇가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몰래한 사랑이 손가락질 안 받고 진짜 사랑으로 인정받으려면 남들에게 떳떳하게 밝혀야 하는 거다.


한쪽에서 목에 핏대 세우듯이 시시콜콜 다 밝히라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국가간의 약속상 밝힐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는 명확해야 한다. 우선 현대가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업권의 범위와 내용이 공식화되어야 한다. 그것이 계약이라면 숨겨야 할 필요가 없다. 둘째, 5억달러를 부담하는 것이 현대라는 한 민간기업인지 아니면 정부인지를 분명히 해야한다. 그 투자를 회수하거나 혹은 회수하지 못할 때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나중에 또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5억달러 송금하는 것 자체에는 하등의 불만도 없고 전폭 지지하지만, 심지어 독점 계약권이 다 허당이었다 해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그 성격만큼은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와 정부를 족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 북한과 대화를 해야만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DJ는 잘못했다는 말 끝까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퇴임하는 날 다시 그 상황이 온다 해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 모습에 본지는 박수를 보낼 것이다.


지난번 대국민 담화에서 이 일의 정당성을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고 하셨던가? 역사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본지는 평가해 주련다. 졸라 긍정적으로~


DJ 똥꼬 핥기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런 문제만큼은 확실히 핥아드리련다.



딴지 편집장
최내현(asever@ddanzi.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