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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씨랜드피해자 쌍둥이엄마입니다. 

1999.7.26.월요일
정리 : 딴지편집부

수 많은 어린 생명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사건은  이제 서서히 뇌리에 잊혀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한 달이 다 되도록 사고의 원인규명조차 되지 않고, 몇몇 공무원을 사법처리하는 것으로 끝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어린 생명을 잃은 부모만이 지금도  사회의 무관심과 싸우며 외롭게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들에게 여러분의 격려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씨랜드 유족회 홈페이지 :myhome.cjdream.net/cs3004)


 쌍둥이엄마의 7번째 편지


어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법의학팀이 이곳 강동교육청에 다녀갔습니다. 자기들은 단순히 시신을 인도 받아서 확인만 했기 때문에 사고 당일의 정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고 있으며,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죽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내가 우리 아이들에 대해서 알고싶어 하는만큼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는 그분들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가현이와 나현이는 가슴부분이 똑같이 남아 있어서 옷에 남아있는 상표와 그림을 보고 찾았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아이들이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틀림없이 가현이는 동생을 안아주었을 겁니다. 살아있을때도 가현이는 나현이보다 훨씬 의젓하고 언니다운 행동을 많이 했었습니다.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의 죽음이, 앞으로 이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날 수많은 새싹들을 위해서 보람있는 희생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

하루하루 시간은 지나고있고, 관계당국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해명도 하지 않은채 우리 유족들을 강동교육청 지하에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성의한 정부의 태도에 심한분노를 느끼지만, 아무런 권력도 가지지 못한 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절망감이 쌓여갈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면서도, 정작 이나라에선 누구한사람 책임지려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 유족들은 가는곳마다 죄인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갔을 때에는 300여명의 경찰이, 화성경찰서에 갔을때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경찰이, 광화문 제1청사앞에서 있었던 집회때에는 시민단체에서 허가를 받은 집회였음에도 불구하고 5대 이상의 경찰버스가 따라 붙었습니다. 우리 유가족은 겨우 30명이 채 못되는데 말입니다.

맨처음 모기향때문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나왔을때, 유가족대표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방문했었습니다. 국과수측에서는 그런 발표를 한적이 없다고 했고, 순진한 우리들은 물러나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과수는 화성경찰서에 모기향으로 추정된다는 화인감정서를 발송했다고 합니다.

화성경찰서를 방문했던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화성경찰서의 수사과정에 강한 의혹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수사자료의 공개를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경찰서측에서는 변호사만이 자료를 열람할수 있다고 했고, 우리를 도와주고계시는 민선변호인단 두분이 경찰서를 방문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협조해주지 않았고, 결국 1/5도 제대로 보지 못 한채 돌아오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은 경찰서장에게 항의방문을 갔던 것인데, 또다시 우리는 저지당했고 우리를 위해 수사를 하고 있다는 그사람들은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태도로 우리를 냉대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심정을, 이번에 쌍둥이와 함께 하늘로간 창현이 엄마의 절규를 적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참고로 이 메모는 국과수방문현장에 있었던 한 신문기자의 도움으로 옮겨 적을 수 있게되었다는 것을 밝힙니다.

7월6일 오후 13시경 국과수현장 -







- 강창현 어머니, 경찰들을 향해

"부끄럽지도 않아요? 나중에 결혼해서 자식들에게 이런 짓 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린 단지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보러 온 것 뿐이예요. 지금까지 세상이 이렇게 험한 줄 몰랐어요. 다 좋은 사람들만 있고 좋은 일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직접 당해보니 그렇지 않더군요. 남들이 민주화가 됐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게 민주주의예요? 내가 당사자가 되고보니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겠네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예요."


- 강창현 어머니, 경찰을 향해



"가서 윗사람들에게 전하세요. 오늘은 우리 유족들끼리 찾아왔지만 전 국민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고. 오늘은 우리끼리 왔지만 자식을 가진 전 국민,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고. 가서 윗사람들에게 꼭 전하세요."


- 김도현 아버지,



"여기 깔린 경찰 절반만 있었어도 우리 아이들은 다 살았을 거다. 시신 확인에 왜 경찰이 필요한가? 당장 경찰을 철수시켜라."


* 대치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 유족들이 실신 직전의 상황까지 갔었고, 시신 인도절차를 따라 달라는 수원지검 검사의 요구에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짐.


 쌍둥이엄마의 8번째 편지글 - 7월 13일

오늘도 저는 분향소에서 아이들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저 사진들이 저기 저자리에 있는것인지 아직도 꿈인 것만 같습니다. 우리 나현이가 제일 친한친구라고 이야기했던 천수영이라는 아이의 사진아래에는 상자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수영이의 이모들이 학을 천마리나 접어서 수영이가 저세상에서나마 행복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아둔 상자입니다. 수영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었다고 합니다. 몸무게는 2.8kg으로 체중미달은 아니었는데, 아기가 자꾸만 호흡곤란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렇게 작은 아이의 온몸에 여기저기 주사바늘을 꽂고, 이런저런 검사를 해가며 병원측에서는 25일 동안이나 아이를 퇴원시켜주지 않았었답니다.


저절로 호흡이 자연스러워지면서 퇴원했지만, 화양리에 있었던 그병원에서는 아무런 병명도 밝히지 못한채 보호자에게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 수영이네 부모님은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다행히 아기가 건강했고 병원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너무 힘든일이라며 만류하는 주위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냥 포기했었다고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힘없는 서민들은 항상 억울하기만 하다고 이야기하며 수영이엄마와 저는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세상이 도대체 언제 끝날까요?

 쌍둥이엄마의 9번째 편지글


오늘은 이번에 쌍둥이와 함께 숨진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볼까 합니다. 강찬영(여자아이입니다), 고가현, 고나현, 구성욱, 권형수, 김도현, 김세라, 김재우, 배한슬, 오영종, 유연수, 이재혁, 이형민, 정선교, 천수영, 최송이, 허수나, 황소희, 김혜지입니다.


그리고 성인이 네분 계시는데, 김영재선생님과 박지현, 서태용, 채덕윤입니다. 김영재선생님은 이미 장례를 치루었는데, 선생님이 근무하시던 마도초등학교는 아주 작은 시골학교여서 학교 한복판에 분향소를 설치한 상태에서는 수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웠다고합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미리 치루기는 했지만, 김영재 선생님의 누나되시는 분께서 지금 저희 유가족협회와 행동을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번 화재로 부천에있는 이월드유치원에서 온 원생중에 단 한명만이 씨랜드 2층숙소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채 발견되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김혜지입니다. 혜지부모님은 뒤늦게 자식의 죽음을 알았는데, 그 다음날까지도 그 유치원은 버젓이 수업을 계속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어처구니없게도 이월드유치원장 홍경희는 아직도 구속되지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혜지부모님은 너무나도 억울한 이상황에서 서명운동을 벌이셨고, 고소장과 함께 제출하셨습니다. 혜지엄마가 직접 작성한 호소문을 여기에 올립니다.







1999년 6월 30일 새벽 1시. 경기도 화성군 씨랜드 캠프장에서 참으로 끔찍하고 분통한 화재 참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김혜지의 에미되는 원완숙입니다.

활활거리는 쇳불속으로 자식을 보낸 에미로서 무슨 할말이 있겠습니까마는, 우리 어른들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채 꽃도 피우지 못하고 스러져 버린 어린 넋과,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아이를 구출하다 희생되신 지도교사들의 영혼앞에 가슴깊이 사죄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섰습니다.


그날의 화재는 최초 3층 301호에서 발화되어 2층까지 번지는 데에 30분 이상의 긴 대피시간이 있었습니다. 2층 숙소에서 잠자고 있던 300여명의 모든 아이들이 여유있게 대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 딸인 김혜지만 223호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가 되어 죽었습니다.

어린 것이,여섯 살 어린 것이, 활활 타는 쇳불속에서! 서서히, 서서히 숯덩이가 되어가며 그렇게 죽었습니다. 이 사건은 불법건물인 씨랜드 캠프장, 악덕 건축업자, 불법을 합법화시킨 관계기관, 부천 이월드학원장인 홍경희와 그의 남편인 이사장 강호영, 인솔교사들이 합동으로 빚어낸 참극의 극치였음에도, 이월드 학원 관계자들은 지금도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죽고싶은 심정으로 길거리에 나섰습니다. 제 딸 혜지를 비롯하여 함께 희생되신 영령앞에 한치의 숨김도 없는 공정하고, 철저하고, 적법한 수사와 사인규명의 결과를 바치고 싶을 뿐입니다. 다시는 이 땅에 또 다른 혜지가 없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국민 여러분!


화성군수 한사람을 구속하는데에도,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서도 버젓이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들을, 이나라 이땅에서는 그냥 두고만 보고 있을 것인지 한심스럽기만 합니다.



 쌍둥이엄마의 10번째 편지글


어제 우리 엄마들이 오후 3시쯤 모였습니다. 우리가 이곳 강동교육청지하에서 숙식을 해가며, 버티고 있어야하는 이유를 모두함께 이야기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결론은, 타오르는 불길속에서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변해버린 불쌍한 우리 아이들의 죽음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똑같은 마음들이었습니다.


이틀 전에 우연하게도 우리 나현이의 낙서를 공책에서 발견했습니다. 아이들의 책꽂이를 뒤적다가 찾아낸 공책에는 또박또박 예쁜글씨로 네모속에 한글자씩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저는 소망유치원에 다니는 고나현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햇님반 선생님을 믿습니다


우리아이들이 참으로 믿고 따랐을 그 선생님들은, 내아이가 그렇게 오랜시간 불에 타고 있는동안 그저 바라만보고 있었을까요? 엄마들의 바램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내아이의 볼을 한번만 만져볼수 있다면... 내 아이의 손을 한번만 잡아줄수 있다면... 사랑스러운 내아이를 꼭 한번만이라도 다시 안아볼 수 있다면...


며칠 전에 김종필 국무총리가 재수사를 실시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모든 국민여러분이 알고 계실것입니다. 재수사라는 말에 한가닥 희망을 갖고, 정작 피해자인 우리 유족들의 입장을 전달하기위해, 저희 유족회에서는 국무총리실에 면담요청을 했고 계속해서 답변을 기다려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오전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우리는 직접 광화문에 있는 제1청사에 가서 면담일정만이라도 확답을 받기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표 네분이 청사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유가족들은 버스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시간반.... 대표분들은 흥분해서 돌아 오셨더군요.


국무총리는 커녕 비서관도 만나지 못했고, 한시간반동안이나 기다리고 기다려서 만난 사람은 자치행정국장이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자치행정국장 조영택이라고 밝힌 그사람은, 중앙안전대책위원장겸 현재 국무총리가 국사에 매우 바빠 면담하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했고, 자식을 잃은 슬픔속에서도 참다운 진실을 밝히기위해 그곳까지 찾아간 우리 부모들은 아무런 대답도 들을수 없었습니다.


어린 영혼을 달래기 위해 그곳까지 찾아간 우리 유족들은 분노에 앞서 처참한 심정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습니다. 국민여러분!! 그 거룩한 내각제 공방에 비하면 우리의 어린영혼들은 너무나도 초라했습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도대체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 7월16일 오전8시.


강동교육청에 있던 우리 유가족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의 시신을 관에 안치하기위해 가족들의 시신확인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겹겹이 늘어서있는 경찰들이었습니다. 친절하게도 그사람들은 모두 사복을 입고 있더군요. 더러는 하얀 의사가운을 입고 있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측에서는 우리 유가족들에게 민감하게 대처해야만 할 무슨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손에 손에 종이봉투나 작은 가방들을 들고, 아이들의 마지막모습을 보려는 생각으로 온통 가슴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위해 평소에 좋아하던 장난감, 즐겨입었던 옷, 크레파스나 도화지 등을 챙겨서 아이들의 관속에 넣어주기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현이와 나현이를 위해 준비한 수영가방 두 개속에는, 쌍둥이의 막내이모가 준비한 색종이와 교회선생님인 김진수집사님이 준비해주신 성경책, 큰이모가 준비한 가오가이거(만화영화의 주인공)샌들과 엄마인 제가 직접준비한 꽃이 두 개 달린 예쁜 샌들이 들어있었습니다.

평소에 로봇을 조립하거나 블록쌓기를 좋아하던 우리 쌍둥이는 큰이모가 사준 샌들을 좋아하겠지만, 엄마인 저로서는, 생전에 여자아이들에게 예쁜 신발 한번 제대로 신겨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신발이 두켤레가 되었습니다. 한달전쯤 가현이는 자전거를 타다가 신발이 찢어졌는데, 그것을 투명테잎으로 붙여서 한동안 신지않고 살짝 숨겨두었습니다.


캠프 때에는 꼭 샌들을 신겨보내라는 가정통신문을 받고, 제가 직접 신발을 확인하긴 했지만, 가현이는 새신발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았고, 저는 그냥 사실 그때 저는 가현이가 곧바로 엄마에게 말하지않았고, 자기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것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찢어진 신발을 신겨 보낸 것이 이렇게도 후회스러울수가 없습니다. 그 신발을 신고서도 큰소리로 인사하며 힘차게 뛰어나가던 모습이 너무나 가슴을 저미게합니다.


9시20분이 되어야 유치원버스가 태우러 오는데도, 가현이와 나현이는 아침 8시부터 들떠서 밖에 나가려고 하는 바람에 저는 애를 먹어야했습니다.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얼른 쫓아나가서 선생님들 김밥을 차에 실어주고 손을 흔들었지만, 왠일인지 가현이와 나현이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고보니, 나현이가 나가면서 제가 보고싶으면 사진을 보라고 했던말이 자꾸만 생각나고, 차안에서 엄마를 바라보던 아이들의 표정이 자꾸만 어른거립니다. 캠프를 떠나기 전날,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엄마 사랑해요!"라고 소리치면 꼭 들으라고 나현이가 이야기하자 가현이는 저더러 작년캠프때도 말했는데 들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에는 들었는데, 올해는 "엄마 말씀 잘들을께요!"라고 소리치라고 했습니다. 미운일곱살이라는 말이 무슨뜻인지 모든 엄마들은 다들 아실것입니다. 나현이는 화가나서 입이 뾰로통해졌는데, 가현이는 엄마말에 수긍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도 부풀어서 캠프를 떠났던 내 아이들... 가현이와 나현이는 조그만 관속에, 형체도 불분명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도대체 이세상에...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말입니까?


 쌍둥이엄마의 13번째 편지글 - 7월 18일


지금까지 저에게 가장 관심이 되었던 문제는 바로 화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들이 말하는 모기향 때문에 발화가 되었다는 것은 아이들이 자다가 발로 차거나, 바람이 불어서 무언가 다른 물건이 모기향에 닿았거나 했다는 이야기로,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간 불쌍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서 자기들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겠다는 천인공노할 발상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엄마인 저로서는 절대로 이점을 묵과할수 없었고,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의 아이들에게 침묵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싶은 생각에 정확한 화인이 규명될때까지 최선을 다해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7월13일 화요일에 mbc에서 방영되었던 PD수첩을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모기향이 발화요인으로 발표된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허술한 것이었는지 확인하셨을겁니다.


화재발생 후 얼마되지않아서 박재천(씨랜드대표)이 동네사람들에게 모기향때문에 불이 났다고 이야기했고(PD수첩에서 한 주민의 진술내용), 유족중에 도현이아빠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달님반과 별님반 아이들을 데리고 여관에 있던 선생님께 긴박하게 왜 불이 났느냐고 물었을때도 그 선생님 또한 모기향때문이라고 곧바로 이야기 하더랍니다.


처음부터 화인을 모기향으로 결론지은 조작극이 분명한데도, 이나라에서 가장 정하고 확실한 결과를 발표해야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는 피의자들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것도 추정된다는 애매한표현을 써가면서 말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 잘난 박사님들이 수두룩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우리 유족들에 대해서 항상 그렇게 민감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질 뿐입니다.


저는 법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화재전문가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하지만 이 화재의 원인이 모기향이어야하는 이유는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기향때문이라면 원장인 천경자의 책임이지만, 원인이 전기라면 더 많은 기관이 연루되어야하고 더많은 공무원들이 다친다고 합니다.


게다가 국과수의 발표가 번복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해 하면서 살아왔을까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언젠가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김훈중위의 죽음이 어째서 자살이어야만 했는가를 이제야 알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 그만 잊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높은 지위에서 정치를 하는 권력가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언제 어떻게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 어쨋든 이 암울하기만한 나라에서 계속 살아가야 할것이고,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불쌍한 우리 쌍둥이를 따라가고 싶은 심정이지만....


하지만 저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있습니다. 국민여러분 모두들 참다운 진실을 알고 계실것입니다. 엄마로서 우리 예쁜 쌍둥이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다만, 내 아이를 잊지않고 기억하는 것 밖에는...


 쌍둥이엄마의 14번째 편지글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매주 일요일아침마다 우리 쌍둥이를 태우기위해 아파트 후문앞에 하얀차가 서 있곤 했습니다. 교회 유치부선생님인 김진수집사님이셨는데, 아마 오늘도 그분은 쌍둥이의 빈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돌아가셨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현이와 나현이가 붙여놓은 스티커들이 아직도 출석카드에 그대로 남아있다며 차마 말을 잊지 못하시더니, 성경책을 사다주고 가셨습니다.


6월30일, 그 원망스러운 날 새벽에도 가장 먼저 사망자명단을 보고 전화를 하신분도 그분이십니다. 그때 저는 다른 채널을 보고 있었는지 사고소식만을 알고 있었는데, 집사님은 아무말없이 TV를 보았느냐고만 물으셨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살다가긴 했지만, 다행히 우리 쌍둥이를 사랑하고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유치원에서는 재롱잔치를 위해 한참 습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일요일저녁, 가현이가 갑자기 토하면서 배가 아프다고 했습니다.남편이 급하게 삼성의료원 응급실에 데리고 갔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며 그냥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가현이는 계속 배가 아팠고 저는 아이의 배를 손바닥으로 쓸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상한 것이 손바닥에 느껴졌습니다. 아이의 뱃속에 뭔가 야구공만한 것이 만져지는 것이었습니다.

스포츠센터에 연락해서, 운동을 하고있던 남편에게 다시 병원에 데리고 가도록했습니다. 이번에는 오랫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었습니다. 한참동안 애를 태우고 있는데, 남편이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초음파사진을 찍었는데, 뱃속에 무언가가 들어있다는 것과 정확한 정체는 알수 없으나 아무래도 수술을 하게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마구 쏟아지는 눈물을 걷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했던 우리쌍둥이는 감기때문에 병원에 간것 말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있는 모습은 TV에서나 보았을 뿐, 내아이에게 그런일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입원하기로하고 다시 삼성의료원에 갔는데 여러 가지 검사를 하기 시작하자 가현이는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살짜리 어린아이를 꼬박 하루동안 굶겨서 CT촬영을 하고, X-ray를 찍고, 자꾸만 피를 빼고 하는동안 곧 눈물을 쏟을 것 같으면서도, 가현이는 잘 참아주었습니다.


저는 가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사진만 찍으면 되는것이라고 자세하게 과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느냐고 여러번 물었지만, 가현이는 괜찮다며 음료수만을 먹고싶어했습니다. 결국은 그 음료수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먹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날 하루동안 꼬박 같이 굶는것 말고는 가현이에게 아무것도 대신 해줄 수 없었습니다. 지금 이상황에서 무기력한것처럼....


수술날짜가 잡히고,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있으면서도 아이는 한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술을 하는동안 잠을 자면된다고 가현이를 계속해서 안심시키고는, 수술실에 아이를 들여보낸후에 혼자서 한없이 울어야만 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쫓아갔는데, 가현이는 자꾸만 화장실에 가야한다며 일어서려고 했습니다. 아이를 진정시키고 그냥 누어서 쉬를 해도 된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가현이의 회복은 아주 빨랐습니다. 평소에 건강했었고, 수술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시도 가만있지를 못하고 계속 돌아다니더니, 주치의 선생님이 깜짝 놀라실정도로 씩씩해졌습니다. 결국 집이 가까우니까 빨리 퇴원해서, 필요하면 다시 병원에 오라는 지시를 받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때 그 일주일!! 내딸 가현이가 엄마를 온전히 차지할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 유치원에서 있었던 재롱잔치에는 남편이 대신 시간을 내서 다녀왔었습니다.나현이가 가현이의 몫까지 두가지 공연을 해야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꼭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남편은 유치원원장과 선생님들이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며 만족해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믿을수가 없습니다. 원장선생님은 그렇게까지도 표리부동한 사람이었을까요?그렇지 않기를 바랄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진실을 말해주기를 바랍니다.


어딘가로 잠적했다는 원장의 남편되시는 분께서는 혹시라도 제 글을 읽게 되시거든, 원장선생님께 우리 엄마들의 마음을 전해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원장선생님 혼자 모든죄를 뒤집어쓰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원장선생님을 믿고 아이들을 소망유치원에 보낸 엄마들입니다.


 쌍둥이엄마의 15번째 편지글


저는 지금까지 나름대로 사실만을 이야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솔직히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원망스러운 사람도 많고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상황도 자주 일어났지만 개인적인 감정을 자제하고, 좀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 화재의 원인에 대한 부분도 제 나름대로 진실만을 이야기했고, 국과수가 자신들의 발표를 번복하기에는 중대한 결단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오히려 그들이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나라에서 저와 같은 시대를 살고 계시는 모든 국민여러분께, 일부 공무원들의 한심한 작태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지난 7월 12일, 경기도청 2차 항의 방문때의 이야기입니다.


유족들이 이번 사태의 수습을 위해서 정부가 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자 경기도 여성국장(이미경)이라는 분의 말씀이 "정부가 학교를 보내라고 했느냐?" 라고 반문을 하면서 "이번 사태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이번 화재가 정말로 엄마, 아빠들의 책임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일입니까? 이 나라에서는 학교를 보내지말라는 이야기일까요?


7월 19일, 유족들이 사태수습을 위해서 경기도 대책본부위원들을 만났을 때, 화성군청 부군수(최홍열) 라는 분은 "내가 아이들을 죽였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런 말씀을 하신 두 분의 고위 공직자들께서는 이번 사건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경기도 대책본부의 일원들 이십니다. 거침없이 그런 말을 내 뱉는 그분들은 이번 사고에 대해서 과연 얼만큼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모두는 그런 무책임한 공무원들을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건가요?


 쌍둥이 엄마의 16번째 편지글 -수사지검의 수사


지난 7월9일부터 수원지검에서는 씨랜드 화재참사에 대한 재수사를 실시하고 있다고합니다. 화재가 일어난지 22일째인 오늘까지 우리유족회에서는, 모든 아빠들이 거의 생업을 포기한 채로 이리뛰고 저리뛰며 힘들게 증거자료를 수집해 오고 있는 중입니다.. 화재당시 촬영된 비디오테잎을 입수하고,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녹취록을 작성해가며, 도대체 우리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진짜원인이 무엇인지 알기위하여, 그당시 선생님들을 비롯한 어른들의 행적을 파헤치고, 관계기관들의 대처는 어떠 했었는지 철저하게 조사해 왔습니다.

물론 우리는, 수원지검에서는 보다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많은 증거자료들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검사님들께서는 우리가 내놓은 증거들을 별로 탐탁치않게들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단적으로 표현해서, 화성경찰서의 수사과정이 그런대로 잘 이루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기에도 조작과 축소의 흔적이 너무나도 뚜렷한 이사건의 수사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심히 궁금합니다.

진실이 진실로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답답함을 느낄뿐입니다. 이렇게 부도덕한 사회에서 커가는 것보다는, 일찌감치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순수한 우리아이들의 영혼이 차라리 축복받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쌍둥이엄마의 편지 및 다른 피해자 부모의 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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