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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있다. 재미있는 드라마긴 한데 한가지 동의할 수 없는 게 있다. 이 드라마는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대해 약간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 클래식은 대단히 고급스럽고 우아한 분야라는 거다. 우아한 클래식 곡이 많긴 하지만 이 드라마는 클래식을 계층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드라마에 따르면 클래식은 돈많고 배우고 교양있는 사람만 연주하고 듣는 게 마땅하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드라마작가는 억울하다고 할 거다. 이 드라마에서 중심인물들은 프로보다 순수한 아마추어이고, 우리와 똑같이 현실의 무게에 버거워하는 <서민>들이라고 할 거다. 이 서민들도 클래식을 할 수 있다는 소시민적 승리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할 거다. 문제는 계층적 장벽에 도전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 계층적 장벽을 만들어냈다는 데 있다. 물론 클래식에 계층적 장벽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클래식 악기는 정말 비싸니까. 하지만 장벽의 두께를 너무 불려놨다. 그 편이 극을 쓰기에는 좋을 것이다. 문화가 대중을 상대하는 편리한 방법 중 하나는 대중의 편견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아마추어도 전문적인 것을 할 수 있다!"는 설정은 편견에 대항하는 게 전혀 아니다. 편견은 작가나 배우나 등장인물들이나 시청자들에게 똑같이 있다. 그 편견에 극중인물들이 '도전'하기 위해선 일단 편견 자체가 있어야 한다. 극중인물들은 승리하겠지만 편견 자체는 그대로 있다. 결국 이 드라마는 클래식에 대한 편견을 확대재생산한다. 이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이듯이 드라마의 목표는 시청률이다.

 클래식=고급이라는 편견보다 좀 더 불편한 것은 클래식=고급=유럽풍이라는 기성적 관념이다. 지휘자 강마에의 라이프스타일은 순 유럽식이다. 지휘구상을 하기 위해 집무실이 유럽풍일 필요는 없다. 이 드라마는 <유럽풍은 곧 있어보이는 것>이라는 태도를 갖고 있다. 이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드라마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분당의 모습은 어째 한국 같지가 않다. 그리고 꼭 와인을 마셔야 지휘가 잘 될 것 같진 않다. 유명한 지휘자는 와인을 끼고 살고 그를 따르는 우리의 서민 연주자들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대비는 좀 많이 유치하다.

 인터넷에 이런 기사가 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클래식에 대한...
 클래식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거다. 클래식을 접하고 싶으면 그냥 음반사에 가서 씨디를 사면 된다. 값고 가요씨디보다 싸다. 클래식은 저 높은 성 안에서 잘난체하는 장르가 아니라 쓸쓸하게 대중으로부터 외면받는 장르다.
 클래식이 직업적으로 뛰어들기에 고달픈 장르인 건 사실이다. 일단 돈이 많이 든다. 음대생이 학생주제에 중형차를 몰고 다니는 이유는 집안에 돈이 많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악기를 옮기기 위해서다. 클래식악기는 크고 무거워서 그걸 들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리고 행여 기스라도 나면 손실이 막대하다. 승용차는 악기보호용이다. 차가 악기보다 더 싸다. 투자비 외에는, 다른 분야와 똑같다. 고도의 훈련은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은 누구나 필요로 한다. 내 동생은 댄서이자 뮤지컬배우인데 무대에서 춤을 추려면 엄청난 하드트레이닝을 통해 걷는 것조차도 보통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운동부가 있는 학교를 나온 사람들이라면 운동보다 공부가 훨씬 편한 길이라는 걸 다 알거다. 또 인정받기 힘든 것도 비슷하다.
 세계에서 백 번째가는 변호사나 회계사라면 재벌 수준으로 잘 살거다. 하지만 세계 100위의 복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 100위의 피아니스트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운동하는 사람들 올림픽에서 메달 따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세계 선수권자도 경제적으로는 그냥 밥먹고 사는 수준이다. 예능은 참 가혹한 바닥이다.
 유명한 클래식지휘자는 신격화되지만 과연 무비스타만큼일까? 대중에게 떠받들려지기 위해선 연예인이 되는 게 훨씬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클래식은 스포츠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경쟁을 거쳐야 한다. 우연성 같은 건 없다. 딱 그 기술이 최고수준이 아니면 지휘봉을 잡을 기회도 없다. 요컨대 클래식은 '일반인'들이 그렇게 위화감을 느낄 만한 분야가 아니라는 거다.

 클래식음악을 즐기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단지 안할 뿐이다. 클래식 취미는 높은 수준의 경제력을 의미하지도 않고, 남다른 교양을 반증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 사람이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걸 말해줄 뿐이다. 클래식 연주회 티켓이 비싸긴 하지만 뮤지컬이나 가수의 공연도 가서 보면 비싸다. 클래식은 눈앞에서 들어야 제맛이라고 하지만 뮤지컬도 가서 보면 tv로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록이나 메탈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쁘장한 아이돌가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이돌의 공연을 직접 보면 춤과 노래가 일반인이 가능한 수준을 가뿐이 넘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다(보통의 편견과는 달리 대중가수가 언더그라운드 가수보다 가창력이 훨씬 좋다.)

 그런데도 사람들한테는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을 고깝게 보는 습관이 있다. 즐겨듣는 음악이 클래식이고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베토벤이라고 말하면 대화가 잠시 어색해진다.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대충 듣는다고 거짓말을 하는 편이 낫다. 클래식 좋아한다는 말에 가장 흔한 반응은 대단한 걸 봤다는 듯이 오오-!하고 감탄하는 건데 이걸 자세히 번역하면 이야 넌 참 잘났구나? 정도가 된다. 참 재수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클래식 좋아하는 사람들은 서로 굉장히 반가워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사회적 소수자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다. 클래식 취미는 계층적으로 봤을 때 중산층과 서민이 올려다보는 특권층이 아니라 소외층에 가깝다.

 여하튼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취미를 가지는 건 불편한 일이다.


 


 


정반합
 정의 상태에 반이 등장한다.

 둘은-선과 악은- 싸운다. 그리고 모순을 극복하고 합이 상태를 이룬다.
 합은, 곧 정

 역사란 이렇게 발전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1악장 -
 웅장하고 평화롭고 조화롭다. 정의 세계

 2악장 -
 침착하고 슬프고 느리고 숙명적이다. 반의 등장

 3악장 -
 격렬한 소용돌이. 하이라이트. 선과 악의 대결. 혹은 정과 반이 융합하는 과정.

 4악장 - 結
 선의 승리. 혹은 합으로의 귀결. 말할 수 없이 웅장한 결말. 둥둥둥, 하는 굵은 타악기 소리와 함께. 

 헤겔은 합을, 베토벤은 4악장을 기다렸다.
 그들에게 있어 위대한 결말을 가져오는 백마 탄 초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독일에 입성하는 나폴레옹의 기마행렬에서, 누구보다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던 두 '매국노'가 있었으니 두 위대한 독일인, 철학의 왕 헤겔과 음악의 왕 베토벤이었다.

 헤겔은 좌초했고 베토벤은 악성으로 남아있다. 음악은 논리보다 유리하고, 더 위대하다.
 베토벤을 '음악의 헤겔'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헤겔을 '철학의 베토벤'이라 부르고 싶다.
 EU의 국가는 베토벤의 합창교향곡 <환희의 송가>다. 이 사람들 분명 생각이 있긴 있다. 나폴레옹이 꿈꿨던 것도 세계-유럽-통합이었고 베토벤이 꿈꿨던 것도 그것이었으니까. 유럽 통합에 즈음해서,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를 방영한 것도 그렇고. 이 드라마는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유럽의 주인공이 프랑스이며, 프랑스여야 한다는 오래된 신화를 상기시켰다. 이 드라마의 폐인들을 '나포마니아'라고 불렀었지.


 


 


베토벤의 사인은 오랫동안 미스테리였지만, 현재는 다양한 연구 끝에 몇 가지 강력한 설이 제기된 상태다.
먼저 사인은 납중독이라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의 머리카락에선 정상인의 수십배(대략 30배)에 달하는 납이 검출되었다. 이로써 매독과 수은중독은 가설에서 탈락했다. 다만 그 많은 납이 왜 베토벤의 몸 속에 들어갔을지가 의문인 것이다.

설 1. 경제적으로 항상 어려웠던 베토벤이 서민들이 쓰던 납 식기를 평생 썼다는 사실때문에. 
첨언하자면 베토벤은 말년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받았으며, 명곡을 발표하면서 여러번 흥행에 성공했다. 그는 사치를 하지도 않았다(그는 검소하게 살았다기보다는 거지같이 살았다. 옷도 거의 갈아입지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 그가 길거리를 지날 때면 동네 아이들이 돌을 던졌다고 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 대부분이 사실은 그가 베토벤인줄도 몰랐다.). 그 많은 돈(자신이 번 돈과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이 지원한 돈)은 모두 공연비에 쏟아부었다. 이를테면 그는 9번 교향곡 <합창>을 초연하면서 대단한 흥행에 성공했지만 파산했다. 유럽 최고의 지휘자와 연주자, 가수들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구성한 그는 공연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스타들의 비싼 몸값에 지불했다. 자신의 음악을 구현하는 멤버들은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다는 고집이 만들어 낸 결과.

설 2. 산업혁명으로 오염된 도나우 강의 민물고기를 먹어서.
베토벤은 민물고기를 좋아했다. 그는 꾸준히 요한 슈트라우스가 사랑했던, 그리고 중금속으로 오염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식사를 했는데 납중독이 여기서 기인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영화 <카핑 베토벤>에는 베토벤이 지인에게 송어를 선물하는 장면이 나온다.

<천재는 괴팍해도 된다>는 편견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베토벤, 그런데 그의 광기는 사실 납중독에 의한 의학적 결과라고 한다. 의학자들은 납중독 사례와 베토벤에 대한 기록을 비교조사한 결과 그이 돌출행동과 기행이 납중독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것을 밝혀냈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을 칭찬하는 친구들에게 화를 내는 이상한 행동을 한 적이 있는데 이유는 <너희들은 감히 나의 음악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절대적인 오만함. 이 매력적인-그러나 곁에서 겪고싶지는 않은- 인간성의 원인이 납중독이었단 말인가? 그의 내면에 흐르는 천재성과 고뇌가 아니고? 이렇게 그가 남긴 언행은 천재성의 증거가 아니라 전두엽에 침투한 화학물질이 만들어낸 과정의 의학적 부작용으로 격하된다. 생각해 보라. 관우장비가 술을 항아리째 원샷할 수 있었던 것이 영웅적인 호연지기가 아니라 평균치를 웃도는 체적량과 탁월한 간기능 때문이라고 한다면 실망스럽지 않은가?

현대의학은 인간의 신비를 제거한다. 의학적 견해에 따르면 베토벤을 고통스러운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신이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어디까지나 베토벤의 주장에 따르면) 그에게 부과한 가혹한 운명이 아니었다. 그의 청력 상실은 인류를 천상으로 인도할 영웅을 위해 준비된 영적 시험이 아니었다. 베토벤이 9번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싸웠던 것은 불가해한 운명적 고통이 아니라 납중독의 부작용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 한 가지 : 악보집에 있는 얼마나 많은 음표가 납중독의 영향을 받았을까?

이제 광기는 숭배가 아니라 해석의 대상이 된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다. 신비롭지 않은 것은 경외받지 못한다. 자신의 여자들을 자살로 몰고 간 파블로 피카소의 광기도 특정 호르몬을 과다발생시키는 유전적 특징으로 설명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피카소는 그의 손녀가 말했듯이 악마의 영혼이 아니라 유전적 결함을 가진 인간이 될 것이다. 과학은 위대하면서도 공포스럽다. 그런데 현대과학이 주는 공포는 사실 사람들의 착각일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은 무작정 두려운 법, 알고 보면 두려움의 실체는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고 판명된 예는 많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인류를 불행하게 했던가? 베토벤의 광기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나는 단지 오랫동안 신비를 숭배해 온 인간의 습관에 젖어있을 뿐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