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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AT (Greatest Of All Time) 마이클 조던의 10부작 다큐멘터리 <라스트 댄스>가 ESPN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은퇴한지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까지 원탑 신발장수인 마이클 조던답게 이 다큐멘터리 역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90년대를 소환해주었다. 1편에서,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기 직전부터 흘러나온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시리우스를 듣고 가슴이 찡했던 건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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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는 농구의 시대였다. 마이클 조던이 있었고, 드림팀이 있었고, 손지창이 있었고, 슬램덩크가 있었다. 90년대 중반에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농구 인기의 비결이 마지막 승부 때문이라는 분석을 했지만 웃기는 소리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자들은 참 무식하다. 농구 좀 한다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손지창이나 장동건의 농구 실력은 비웃음 사기 딱 좋았다. 그나마 박형준이라는 탤런트의 농구 실력이 괜찮았지만 손지창이나 장동건, 박형준이 농구하는 것을 보고 멋있다고 느껴 농구를 시작한 중고등학생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서 농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누가 뭐라 해도 마이클 조던과 만화 슬램덩크 때문이다. 라스트 댄스를 10편까지 보고 슬램덩크 생각이 난 것도 나만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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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과 슬램덩크는 정말 센세이셔널한 만화였다. 대부분의 중고딩들은 손오공이 강백호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를 침튀겨가며 이야기했다. 대체 얘네가 이기는지 지는지, 이긴다면 어떻게 이기는지 진다면 진 후에는 어떻게 되는지를, 일본에 사는 친구 삼촌이나 일본에서 살다왔다는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친구의 친구한테 들었다며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대부분 거짓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트랭크스의 등장은 충격적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봐도 슬램덩크는 대단한 만화다. 아니 걸작이다. 어디 하나 허술하거나 흠잡을 구석이 없다. 산왕전에서 강백호와 서태웅의 하이파이브 장면이나 해남전 패배 이후 눈물 흘리는 강백호를 위로하는 채치수가 나오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짤방이나 웹툰에서 수시로 패러디하곤 한다. 물론 프로그램의 저장 아이콘이 왜 그렇게 생겼는지 모르는 2000년대 생들처럼, 지금 그 패러디 장면을 보는 독자들의 대부분은 그게 패러디인지 조차 모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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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가 그렇게 재밌었던 이유는 현실에 있었던 대결, 특히 NBA의 라이벌 구도를 작품에 그대로 차용해 생동감 있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슬램덩크는 트레이싱(tracing)으로 크게 문제가 되어 연재가 중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NBA 선수들의 플레이들을 그대로 따라 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당시는 해적판 번역서였던 김용의 영웅문 시리즈 같은 책이 당당히 TV 광고로 나오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트레이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김성모 작가의 학생생활기록부가 슬램덩크 트레이싱으로 연재 중단이 됐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김성모 작가는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90년대와 달리 지금 트레이싱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라이벌 구도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얘기는 만화 내에 등장하는 팀이나 선수들도 대부분 모델이 있다는 의미다. 몇몇 등장인물들은 누가 모델인지가 잘 알려져 있지만 아예 모델이 없이 창작된 선수들도 있고 어떤 선수들은 잘못 알려져 있거나 혹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슬램덩크의 등장인물들과 학교들은 어떤 선수와 팀을 모델로 만들어졌는지 디벼보자.

 

바스켓 삼분지계

 

우선 가장 기본적인 팀 간의 대결 구도를 살펴보자. 80년대 NBA를 대표하는 팀은 LA 레이커스와 보스턴 셀틱스다. 두 팀이 80년대 NBA를 찜 쪄먹었다. 침체되어 있던 NBA를 세계 최정상 인기 리그로 끌어올린 것은 레이커스의 매직 존슨과 셀틱스 래리 버드의 라이벌 구도였다.

 

그 후 배드보이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시대를 지나 슬램덩크가 연재되던 90년대를 지배한 팀은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다. 슬램덩크의 이야기는 이 세 팀의 경쟁 구도를 기본으로 짜여 있다. 유니폼의 디자인이나 컬러가 동일해 알기 쉽다.

 

최강팀 해남대 부속 고등학교가 LA 레이커스, 그 뒤를 있는 상양고등학교가 보스턴 셀틱스 그리고 시카고 불스가 주인공 팀인 북산(일본 표기로는 상북, 이하 번역본 표기를 기준으로 삼겠다)이다. 이 세 팀의 라이벌 구도와 이런저런 실제 선수를 모델로 슬램덩크의 캐릭터들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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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대부속고등학교

 

우선 최강팀 해남대부속고 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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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포인트 가드)

 

도내 최강자라고 불리는 이정환의 모델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의견이 갈리지만 이런저런 점을 감안해 보면 대체로 레이커스의 전설적인 선수 한 명이 떠오른다. 북산에서 제일 힘센 채치수보다 힘이 세고 제일 빠른 송태섭보다 빠른 압도적인 신체능력, 라이벌인 김수겸이 선수 겸 감독이라는 점, 리그 최강의 선수라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1경기 100점, 1시즌 평균 50점이라는 괴물같은 기록을 세운 윌트 체임벌린을 모델로 삼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겠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리그 내에서의 존재감이나 선수 겸 감독인 셀틱스 선수와의 라이벌 구도 등은 윌트 체임벌린을 생각나게 한다. 윌트 체임벌린은 힘이 세고 키가 큰 것만이 아니라 스피드 또한 탁월했다. 인간계 외 괴물이란 피지컬은 다른 선수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단, 슬램덩크와는 달리 윌트 체임벌린의 우승 경력은 라이벌인 셀틱스 선수에 비해 훨씬 적다. 참고로 이정환이 피부가 검은 이유는 서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정환은 서핑을 즐길 정도의 금수저라는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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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스몰 포워드)

 

보스턴 셀틱스의 래리버드를 모델로 삼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해남의 감독 남진모에 따르면 신준섭은 떨어지는 운동능력에도 불구하고 마음속 깊이 숨겨진 열정과 매일 5백 개의 3점 슛 연습을 할 정도로 연습 벌레라는 점. 그리고 슛만 정확한 것이 아니라 가끔 보여주는 기가 막힌 킬 패스가 래리버드를 연상케 한다. 특히 도내에 2학년 중 에이스 역할을 하는 선수가 신준섭과 윤대협 단 2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레이커스가 모델인 해남대 부속고교지만 신준섭을 래리 버드로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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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구 (센터)

 

90년대 NBA는 센터의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슈퍼스타 센터가 많았던 시대다. 슬램덩크에서도 ‘특히 이 지역에는 좋은 센터가 우글우글하다고 들었다’는 말을 하며 등장하는 센터들이 당시 NBA의 스타 센터들을 모델로 삼았음을 간접적으로 이야기했다. 고민구의 경우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센터 브래드 도허티가 모델인걸로 보인다. 헤어스타일과 외모의 유사성이나 다른 센터들에 비해 실력이나 스타성은 떨어지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자기 몫을 확실히 한 브래드 도허티가 고민구의 모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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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장 (슈팅 가드)

 

전호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논쟁이 많았고 누가 모델인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는 전호장의 일본 이름에서 힌트를 얻었다. 전호장의 원래 이름은 키요타 노부나가(清田信長)다. 전국시대에 통일 직전까지 갔다가 부하의 배신으로 코앞에서 천하를 놓친 오다 노부나가의 이름에서 한 글자만 바뀐 이름이다. 오다 노부나가처럼 전호장도 제멋대로처럼 보이는 성격이다. 또한 키는 크지 않지만 놀라운 점프력으로 상대를 압도하곤 하며 서태웅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낀다. 이와 비슷한 인물은 193cm의 키로 파워포워드 포지션을 소화했으며 1차 쓰리핏 때까지 조던의 라이벌로 불렸던 찰스 바클리다. 연재 중에는 서태웅의 라이벌이기 때문에 강백호의 모델이 찰스 바클리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강백호는 성격이나 플레이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전호장을 찰스 바클리로 보는 편이 가장 타당하다 생각한다.

 

요새 NBA를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믿어지지 않겠지만 찰스 바클리는 마이클 조던과 거의 대등한 라이벌로 불렸다. 어떤 이들은 30점에 5리바운드 정도를 하는 조던보다 20점에 10리바운드를 하는 바클리가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92-93 시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던의 불스가 아닌 바클리의 피닉스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말 많은 독설가인 것도 전호장과 바클리의 공통점이다. 단 바클리에 비하면 전호장의 농구 실력은 많이 떨어져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이정환을 최강자로 만들기 위한 작가의 안배에 의해 전호장의 실력이 실제 이하로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전호장은 도내 최강팀이자 작년 인터하이(전국대회) 4강 전력인 막강 해남대 부속고의 주전자리를 1학년 때부터 꿰찬 선수라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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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양고등학교

 

다음은 도내 2위 팀, 상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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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겸 (포인트 가드)

 

보스톤 셀틱스의 선수 겸 감독이란 점 하나만으로도 이미 빌 러셀 당첨. 게다가 왼손잡이다. 빌 러셀과 포지션은 다르지만 레이커스 vs 셀틱스의 1세대 라이벌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빌 러셀 외에 다른 선수를 모델로 생각하기 어렵다. 다만 포지션부터 플레이 스타일 등은 수비의 제왕이라 불리는 빌 러셀과는 거리가 있으며, 특히 통산 11번, 8번 연속 우승에 빛나는 빌 러셀과는 달리 김수겸은 무관의 제왕에 가깝다. 이것은 아마도 작가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러셀보다 체임벌린을 좋아했기 때문이거나 레이커스를 좋아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신체적인 면도 이정환, 김수겸 구도가 체임벌린, 러셀 구도와 비슷하다. 이정환이 너무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가졌고 북산에 걸려 일찌감치 탈락하는 바람에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지만, 1학년 때 강팀 상양의 주전으로 인터하이에 진출해 팀의 에이스로 활약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과 신체능력을 가진 김수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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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준 (센터)

 

90년대 NBA에 특급센터는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 패트릭 유잉 세 명에 92년 신인왕 출신인 샤킬 오닐까지 4명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샤킬 오닐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이 ‘좋은 센터가 우글대는’ 가나가와 현의 센터들을 모델로 삼았다고 하면 부드러움의 성현준은 아마도 하킴 올라주원이 모델로 짐작된다. 훅슛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카림 압둘자바가 모델이라 말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센터들의 라이벌 구도를 감안하면 통돌이 세탁기처럼 빙글빙글 도는 부드러운 피벗 플레이로 상대를 제압했던 드림 셰이크 하킴 올라주원이 성현준의 모델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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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