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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1탄에서 노가다판의 여러 부조리를 지적했다. 건설노조가 창립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관해서도. 순서상, 지금부터는 건설노조가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떻게 활동하는지,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구구절절 늘어놔야 하는데, 으아~~~~~!!!! 상상만으로도 재미없다. 물론, 중요하다면 중요할 수 있는 얘기지만, 여기서 굳이 그 많은 얘길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 2007년 창립한 건설노조 창립선언문 일부 소개하고 넘어갈까 한다.

 

「일당쟁이 노가다라는 천대와 멸시 속에서 소중하게 일구어온 우리의 조직은 이제 역사의 당당한 주인으로, 이 사회를 움직이는 건설 노동자로서 역사의 주체로 일어섰음을 이 나라와 전 세계만방에 선포한다. (중략) 200만 건설노동자들의 절절한 염원인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철폐하고, 8시간 노동제와 일요휴무제를 전국의 현장에 실시되게 하고, 생활임금 쟁취를 반드시 이룩하겠다는 것을 역사 앞에서 선언한다. (중략) 건설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건설자본과 정권의 현실을 통 큰 단결과 거대한 공동투쟁의 함성으로 돌파할 자랑스러운 투쟁의 무기 "전국건설노동조합"으로 성장할 것이다.」

 

따분한 이야기 대신, ‘아~ 건설노조는 이런 단체구나!’ 하고 느껴볼 수 있는 에피소드 하나 풀겠다. 

 

시골 촌놈의 상경 투쟁기

 

건설노조 가입한 지 1년쯤 됐을 때였던가? 광화문에서 건설노조 총파업 결의 대회를 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국 3만여 조합원이 한자리에 모일 거라는 말과 함께. 며칠 전부터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상상해보라. 세상 거칠 것 없는 ‘강성’ 노가다꾼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니!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3만 명씩이나!!!!!

 

전설로 전해 들은 얘기가 주마등처럼 스쳤다. 노가다꾼들 집회는 집회로 끝나지 않는다더라, 누군가는 반드시 피를 보게 된다더라 등등. 집회 전날, 나는 잠자리에 누워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나? 목수니까 망치라도 챙겨야 하나?’ 같은 허무맹랑하고 순진무구한 상상 말이다.

 

날이 밝았다. 집결지로 갔다.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날의 드레스코드는 머리에 빨간 띠와 건설노조 단체 조끼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 착용한 이들도 많았다.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었다. 어제까지 같이 일했던 동료들인데도 개별로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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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건설경제>

 

사람들을 헤집으며 앞으로 나갔다. 왼쪽 길가엔 관광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대략 헤아려보니 20대 남짓이었다. 앞으로 갈수록 고막을 찢을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성기 부착한 승합차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단결투쟁가> 같은 노동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목적지는 우리 팀, 아니 정확하게는 우리 분회였다. 여기저기에 각 지대와 분회 깃발이 나부꼈다.(참고로 건설노조 조직체계는 지역본부-지대-분회로 이어진다. 군대의 대대-중대-소대 같은 개념이다.) 우리 분회 깃발은 저~ 앞쪽에 있었다. 겨우 찾아갔다. 진이 쭉 빠졌다.

 

각 분회장은 도착한 순서대로 줄을 세웠다. 분주하게 인원 체크도 했다. 인원 체크를 마친 분회장들은 지대장에게 보고하고, 지대장은 다시 지부장에게 보고했다. 분회별로, 지대별로, 도열하고, 체크하고, 도열하고 체크하길 수차례, 천 명 정도가 오와 열을 맞춰 앉았다. 각 분회장, 지대장, 지부장 인사말이 이어졌다.

 

그 사이 분회별로 떡과 생수가 배급됐다. 아침 대용이었다. 양손에 떡과 생수 챙겨 든 조합원부터 정해진 버스로 올라탔다. 서울까지는 두 시간쯤 걸린다 했다. 긴장이 풀렸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뭉치면 용감해진다더니

 

소란한 소리에 깼다. 광화문 앞이었다. 버스에서 내렸다. 입이 떡 벌어졌다. 아침, 집결지에서 느꼈던 혼란은 비할 게 아니었다. 이미 도착해서 도열한 지역, 막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지역, 5분 뒤 도착한다고 소식 전해온 지역, 어쨌거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인천, 경기……. 전국 팔도에서 모든 조합원이 속속 모여들었다. 우리 지역에서만 버스 20대였으니, 아마도 버스 600대에서 끝도 없이 사람이 내렸으리라. 그렇게 3만 명이 광화문에 모였다. 수십수백 깃발이 펄럭였다. 북측광장 끝에 설치한 무대에선 끊임없이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역별로 몇 시까지 점심 먹고, 정해진 자리에 도열하라는 방송이었다. 서울은 여기, 대전은 저기, 대구는 요기, 부산은 저 뒤…….

 

그 사이 도시락 실은 화물차가 줄줄이 도착했다. 도시락은 지역별로, 다시 지대별로, 다시 분회별로, 마침내 나에게로 전해졌다. 또 일회용 숟가락과 젓가락이 지역별로, 지대별로, 분회별로, 나에게로 왔다. 또 생수가 지역별로, 지대별로, 분회별로, 나에게 왔다. 도시락 차가 도착한 걸 내 눈으로 확인하고, 그 도시락과 숟가락과 젓가락과 생수가 내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을까. 난 가늠할 수 없었다.

 

우리 지역은 교보빌딩 앞 인도에서 도시락을 받았다. 시내버스가 오가고, 사람이 끊임없이 들고나는 버스정류장 뒤쪽 길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뭉치면 용감해진다더니.

 

담배를 두 개비쯤 피웠던가. 다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대 앞 광장으로 집결하라는 방송이었다. 분회별, 지대별로 줄을 서고, 인원 체크하고, 광장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다시 분회별로, 지대별로, 지역별로 줄을 서고, 인원 체크하고, 오와 열 맞추고, 자리에 앉기까지는 또 얼마나 시간이 걸렸던가. 각 지역의 지부장이 무대로 나가 인사를 하고, 투쟁 구호 외치기까지는 또 얼마나 걸렸던가. 서울 지부장과 대전 지부장과 대구 지부장과 부산 지부장을, 나는 구분할 수 없었다.

 

그날 우리가 모인 가장 큰 이유는 주휴수당 쟁취였다. 무대에서 투쟁 구호 선창하면 목이 터져라 후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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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건설경제>

 

“구호 준비!!!”

 

“투쟁!!!!”

 

“일요일은 쉬고 싶다! 주휴수당 보장하라!”

 

“일요일은 쉬고 싶다! 주휴수당 보장하라! 주휴수당 보장하라! 건~ 설~ 노~ 조~ 단결! 투쟁! 결사! 투쟁!”

 

 

이어 <철의 노동자>, <단결투쟁가> 같은 노동가를 반복해 불렀다.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아~~ 민주노조 우리의 사랑 투쟁으로 이룬 사랑~~♪”

 

 

투쟁 구호 외치고, 노동가 부르기를 수차례. 집회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지역별로 오와 열 맞춰 행진한다는 방송이었다. 다시 분회별로, 지대별로, 지역별로 줄을 서고, 인원 체크하고, 오와 열 맞췄다. 앞쪽 지역부터 차례로 행진을 시작했다. 대략 30분쯤 걸었던가. 놀이동산에 처음 놀러 간 아이처럼, 앞서가는 형님 팔뚝을 꼭 붙들었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건 형님 팔뚝뿐이었다.

 

하나의 덩어리로서 적을 부수어내는 것

 

전설로 전해 들은 유혈사태 같은 건 없었다. 평화로운 행진이 끝나고 광화문으로 복귀했다. 지역별로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지역별로, 지대별로, 분회별로 줄을 서고 인원 체크한 후 버스에 올라탔다. 맥이 풀렸다. 졸음이 쏟아졌다. 1시간 후, 휴게소에서 저녁 먹는다 했다. 꾸벅꾸벅 조는 사이, 휴게소에 도착했다. 주차장에서 지대별로, 분회별로 줄을 서고 인원 체크했다. 지부에서 분회별로 도시락을 배급했다.

 

“5분회! 도시락 30개 맞죠? 생수 30개 챙기시고. 숟가락, 젓가락은 저쪽에 있습니다. 다음 6분회! 도시락 27개 챙기세요. 7분회! 7분회 안 계세요??

 

“7분회 여기 있습니다!!”

 

“7분회!!! 앞으로 나와서 도시락 받아 가세요.”

 

지부 관계자 입에서 우리 분회가 호명되길 기다리다, 문득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라던 소설 속 한 구절이.

 

식어 터진 밥과 국에 숟가락 찔러 넣으며 임진왜란과 요동정벌과 6·25 한국전쟁에 총칼을 들고 나섰던 군사들을 떠올렸다. 모르건대, 그들도 하루 대부분을 끼니에 맞춰 밥 배급하고 배급받고, 먹고, 싸고, 자면서 보냈겠구나, 그 틈틈이 도열하고, 인원 체크하고, 이동했겠구나, 그런 와중에 겨우 칼을 빼 들고, 겨우 총을 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먹고 자고 싸야만 하는 개개인 일상에 울타리를 둘러주는 것, 서로가 서로의 손을 맞잡을 수 있도록 줄 세워주는 것, 그리하여 하나의 덩어리로서 적을 부수어내는 것, 그게 전쟁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날 나는 휴게소 주차장에 주저앉아 도시락 까먹으며, 이쑤시개로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 쑤셔내며, 교과서에서 배웠던 전쟁 속 군사들 일상을 생각했다. 그들 일상과 그날 하루 내가 겪은 일상 차이에 관해 생각했다. 그 차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렴풋이, 이런 생각들 했던 거 같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전쟁 속 군사들 일상 어딘가에서, 건설 자본 권력에 대항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