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에몽 시리즈 중에서 여러 번 리메이크 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코끼리와 아저씨』 시리즈다. 원작 만화에도 ‘당당히’ 이 에피소드가 있었고, 초창기 애니메이션에도 있었다. 극장판으로는 2007년에 한 번, 2017년에서 리메이크되었다.
2017년 극장판에서 진구와 도라에몽은 사육사를 설득하며 이렇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전쟁은 곧 끝나고 일본은 패배할 거예요!”
이 때 두 팔 벌려 환호하는데, 이 때문에 일본 네티즌들이 일본을 모욕했다며 극장판 도라에몽 제작진을 비난했다. 문제가 되는 건 과거로 날아간 진구와 도라에몽이 사육사에게 '왜 일본이 패배할 것'이라고 말했냐는 거다.
당시 사육사가 코끼리 하나오에게 독이 든 사료를 먹이려 했기 때문이다.
(코끼리 하나오의 생명을 걱정할까봐 미리 말하지만, 도라에몽이 하나오의 고향인 인도로 날려 보내면서 모든 게 깔끔히 해결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하나오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우에노 동물원
1882년 3월, 도쿄의 우에노 동물원에 일본 최초의 근대식 동물원인 우에노 동물원이 개설된다. (우에노 공원은 도쿄국립박물관, 서양미술관, 그리고 우에노 동물원까지 위치한 관광 코스가 돼 버렸다)
우에노 동물원은 청일 전쟁, 러일 전쟁, 1차 대전, 중일 전쟁 때까지 잘 운영됐다. 일본이 이때까지 밖으로 나가서 전쟁을 펼쳤기에 일본 본토가 공격받을 이유가 없었다.
1941년 12월 8일,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고, 1942년 4월 18일 둘리틀 공습(Doolittle Raid)으로 인해 도쿄, 요코하마, 요코스카, 가와사키, 나고야, 고베, 오사카 등에 폭탄이 떨어졌다. B-25 미첼 경폭격기 16대가 일본의 대도시 이곳저곳에 흩뿌렸던 거다.
사상자 363명에 군 시설과 공장 등에 약간의 피해를 입은 것 빼고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둘리틀 공습이 가져다 준 충격은 컸다.
“불침의 땅 일본의 하늘이 뚫렸다!”
1941년 12월 8일 개전 이후 승승장구하던 일본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둘리틀 폭격 이후 일본은 황급히 미드웨이 해전을 준비했고, 결과적으로 일본의 패망은 앞당겨졌다.
아무튼 이야기는 1941년 8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미개전(對美開戰)의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그때 우에노 공원에도 ‘전쟁’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사육사 중 3명이 군대에 소집됐고(중일전쟁 중이었다), 1941년에는 코가 타다미치 동물원장이 소집되었다. 그 결과 후쿠다 사부로 기사가 ‘원장 대리’로 임명된다.
중국과의 기나긴 전쟁으로 물자압박이 이어졌다. 여기에 미국의 고철 수출금지, 석유 수출금지가 발효되면서 일본은 자원난에 시달리게 된다.
우에노 동물원에도 비상이 걸렸다. 사료가 부족해 가로수의 가지나 잎사귀, 차 찌꺼기 같은 걸 섞어 동물들에게 먹이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전쟁부터 사료 사정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원장 대리가 된 후쿠다 사부로는 ‘최종계획’을 준비한다. (우에노 동물원은 ‘은사(恩賜)’ 즉, 일왕이 내려준 공원과 동물원이기 때문에 문제 발생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
“이대로 동물들을 내버려뒀다간, 모두 다 죽을 수 있다. 동물원을 지키려면 동물을 줄여야 한다. 혹시 모를 사태로 맹수들이 우리 밖으로 나가면 큰 문제가 된다.”
후쿠다 사부로는 우에노 동물원의 동물을 위험 수준에 따라 4단계로 분류했다.
첫 번째 분류(고위험 동물군) : 사자, 호랑이 같은 고양이과 맹수, 코요테, 하이에나 늑대 같은 개과 맹수, 곰, 하마, 아메리카 들소, 코끼리, 독사류, 개코 원숭이(개코 원숭이는 침팬지와 마찬가지로 사냥과 육식을 하는 맹수다. 고양이과 동물인 표범과도 싸운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보면 얼마나 위협적인지 알 수 있다)
두 번째 분류(위험 동물군) : 너구리, 오소리, 여우, 기린, 원숭이, 캥거루, 악어, 사슴, 독수리 에뮤(타조처럼 날지 못하는 새)
세 번째 분류 (덜 위험한 동물군) : 물소, 산양, 칠면조, 돼지 등
네 번째 분류 (위험하지 않은 동물) : 송어, 거북이 등
후쿠다 사부로는 비상사태 발생 시 동물을 처단하기 위한 방법을 준비했다. 시안화칼륨(청산가리)과 스트리키닌 질산염은 물론, 윈체스터 소총을 2정 준비해 동물원 직원들에게 사격훈련을 시켰다.
우에노 동물원의 소유권이 도쿄시로 넘어간 얼마 후인 1943년 8월 16일, 도쿄 공공시설 공원 과장 이노시타 키요시가 명령을 내린다.
“코끼리 같은 위험 동물을 죽이고, 상황을 촬영해서 보고하라.”
1943년부터 전황은 서서히 나빠져 동물원을 운영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뒤에서 말하겠지만, 동물원을 재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중이었다). 이에 따라 곰(북극곰, 갈색곰, 한국산 흑곰 등), 표범, 사자, 흑표범, 표범, 방울뱀 등을 죽였다. 굶겨 죽이기도 했고, 불로 지진 와이어로 목을 졸라 죽이기도 하고, 계획대로 독살을 하기도 했다. 미국산 들소는 묶은 다음 망치와 곡괭이로 때려서 죽였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동물들을 죽였으니, 수가 총 27마리였다. 맹수로 분류된 27마리 중에는 3마리의 코끼리도 있었다. 도라에몽 극장판 『코끼리와 아저씨』 에피소드가 여기서 나온다.
도라에몽 극장판에서처럼 동물원은 코끼리에게 독약을 넣은 사료를 주었지만, 영리한 코끼리가 음식에 독이 섞였다는 걸 알고 음식을 던져버린다(괜히 영물이 아니다).
코끼리를 ‘굶겨’ 죽이기로 결정한다.
“주변의 시선도 생각해야 하고, 코끼리를 상처 없이 죽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무난하다. 굶겨라.”
당시 죽인 맹수들은 일본 육군 수의과 학교에서 검시한 후 껍질을 벗겨 내 박제로 만들었다. 뼈는 동물원 측이 몰래 수습했다. (1943년 9월 4일 도살된 동물에 대한 추도식이 있었다)
이후 우에노 동물원은 완전한 전시체제가 되었다. 맹수가 사라진 동물원 부지는 고구마 밭이 되었고(식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동물원의 벤치와 우리 쇠창살 등은 모두 전쟁 물자로 공출됐다.
자, 여기서 살아남은 동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살아남은 동물의 삶이라고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도 제대로 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었을까? 전쟁이 길어질수록 동물들의 삶은 비참해져 갔다. 굶어 죽어가다 결국 하나둘 처분되기 시작했다. 사슴과 같은 초식동물들이 처분됐고, 비둘기 같은 작은 새마저 죽었다.
1945년 4월에는 마지막 남은 하마 3마리가 모두 죽었고, 그렇게 우에노 동물원은 초토화가 됐다.
1945년 7월의 일본은 거의 모든 경제활동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비축해놓은 물건이 다 떨어져 암시장에서 조차 물건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들을 먹인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닐 거다. 아니, 동물을 잡아먹는 게 흔히 할 수 있는 판단일 것이다.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 전후 혼란 속에서도 우에노 동물원은 차근차근 재개장을 준비한다. 가장 시급한 건 동물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전 세계 이곳저곳에 연락해 동물을 확보했고, 그 결과 다시 예전의 활기를 되찾는다.
그럼 전쟁 중에 있었던 동물 학살은 어떻게 됐을까? 1975년 우에노 동물원 안에 2차 대전 당시 죽어간 동물들을 위한 기념탑이 세워졌다.
이걸 보면서 좀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의 전쟁 범죄에 대해선 절대 인정하지 않으면서 동물원에서 죽인 맹수들에 대한 기념탑이라니... 일본인의 이중성은 차치하고, 그들이 동물에게 보여준 배려를 왜 사람에게는 하지 못하는 걸까?
전쟁 상황과도 같은 코로나19 앞에서 동물원의 ‘최종계획’ 이야기가 하나둘 나오고 있다. '서류상'의 최종계획이 될 확률이 높지만, 인류가 지난 세월 보여줬던 ‘과거’를 생각한다면 0%의 가능성이라 말하긴 어려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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