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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광해군 때 신율이라는 자가 과거에 급제는 했으나 남의 답안지를 내서 합격했다. 즉 부정 입시생이다. 어찌어찌 벼슬살이는 했으나 또래들이나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신율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마땅히 감수해야 할 설움이었으나 이 삐딱한 인간은 그걸 못했다. “그래 나 과거 부정했다. 너희들은 얼마나 정직하길래? 두고 보자. 내가 더 출세해 보이겠다.” 이런 신율이 황해도 봉산 현감으로 있을 때 맹랑한 일이 벌어졌다.

 

봉산에 김제세라는 이가 있었다. 군역을 피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던 그는 공문서를 위조하기로 한다. 그런데 위조가 너무 어설펐다. 그는 바로 관아에 끌려와 무릎 꿇고 대죄하는 신세가 됐다. 신율의 형장은 가혹하기로 유명했다. 군밤 몇 대 쥐어박고 풀어줄 일을 곤장 열 대로 만들었고 곤장 열 대 스무 대의 죄는 자칫하면 장하(杖下)의 귀신이 되기 십상이었다. 그 소문을 들었던지 아니면 소문대로 퍼부은 고문의 위력인지 김제세의 입에서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나와 내 동생이 역모에 가담했는데 팔도에 대장을 둔 거대한 조직이오. 평산에도 대장이 있지.”

 

신율은 고개를 끄덕이고 김제세의 동생까지 불러 족쳤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랐던 동생이지만 매를 맞다 보면 무엇이든 알게 된다. 아니 신율이 원하는 걸 알게 된다.

 

“대장이라는 자는 김백함입니다.”

 

“오 그래. 김백함의 아버지는 누구지?”

 

“김직재입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불충한 마음을 품고...”

 

천하의 조작꾼 신율은 대충 이야기가 맞춰지자 측근 유팽석과 상의한다.

 

“좀 깜은 안 되는 것 같은데 보고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래도 역몬데?”

 

유팽석은 어쨌든 보고해야 한다고 했고 사건은 황해 감사와 병마절도사를 거쳐 임금에게 보고된다. 감사와 병사도 터무니없는 사건이라고 여겼다.

 

“역모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걸 알아서 그런지 평소에 조금이라도 원한이 있는 사람은 다수 끌어대어 묻는 대로 대답하는 말들이 마치 미리 외워놓은 것처럼 하였습니다. 그러니 또 무어라 끌어댈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황해감사 윤훤의 장계)

 

“심문하여 전일의 공초를 가지고 힐문하니 대개 앞뒤가 들어맞지 않았습니다. 모든 역모를 꾀한 사실을 마치 심상한 보통 이야기하듯 하고 두서없고 혼란한 말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황해병사 유공량의 장계)

 

현장의 판단은 그러했으되 광해군은 달랐다. 아버지 선조의 견제 때문에 피눈물을 흘렸던, 그리고 형을 제치고 왕위에 올랐으며 명나라로부터 책봉도 뒤늦어 정통성에 자신이 없었던 광해군의 의심병은 아버지 이상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모두를 잡아들여라. 내 친국을 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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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가 오늘은 전라도 대장이랬다가 내일은 경상도 대장이 됐고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바꾸는 자가 부지기수였으며 매 한 대 맞고 나면 좔좔 자신의 역모(?) 동지를 줄줄 부는 사람들이 많았다. 말 안 하면 압슬로 다리를 뭉개 버리는데야 못할 말이 뭐겠는가. 처음에 ‘대장’으로 지목된 김백함은 거열형에 처해지기 직전 이렇게 부르짖는다.

 

“나라가 나한테 속았네 젠장”

 

대신들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적당히 하시자 했는데 선조가 물려준 의심병의 DNA는 광해군에게도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 “뭔가 있을 거야......” 이 가려움을 긁어주고자 한 게 또 신율이었다. 신율은 애초 말도 안 되는 역모라도 보고는 해야 한다고 하여 자신을 도와준 유팽석에게 속삭인다.

 

“무지렁이들 몇 죽여서는 죽도 밥도 안되지. 우리 크게 한 탕 하세.”

 

“무슨 한탕을요?”

 

“자네가 고변자가 되게. 그래서 황혁, 정경세, 정인홍 등이 역모를 꾀했다고 고변을 하란 말이야. 그러면 공신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로세. ”

 

유팽석은 눈이 돌았다. 그는 열렬하게 역모를 고변했다. 황혁, 정경세, 정인홍, 류영경의 아들들 등등의 이름이 그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처음에는 잔뜩 귀를 세우고 듣던 사람들이 피식피식 웃었다. “류영경하고 정인홍이 개와 고양이 사이인 건 수구문 밖 강아지들도 아는데 같이 역모를 꾸몄다고?” 그러나 의심의 황제 선조의 아들 광해군은 또 달랐다. “(내가 신임하는) 정인홍 말고 다 족쳐라. 뭔가 나올 것이다.”

 

임진왜란 때 임해군을 호종한 이래 광해군에게는 찜찜한 존재였던 황혁은 거기서 죽었고 정경세는 파직된다. 공통점이라면 신율과 악감정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열렬히 역모를 고변했던 유팽석도 고문을 당했다. 아마 죽을 만큼 주리를 틀리고 매를 맞으면서도 유팽석은 조만간 신율이 나타나서 “고생했네 자네는 이제 공신일세.”하고 안아주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유팽석은 진짜로 죽고 말았다.

 

조작의 명수 신율은 그렇게 ‘봉산옥사’의 주역으로 출셋길에 오른다. 봉산옥사 때 몰락한 가문이 100여 개가 넘었고 아이들이고 여자들이고 죄 불로 지지고 두들겨 패서 사람들이 눈 둘 곳을 몰랐다 전한다.

 

신율은 군(君) 칭호까지 받아 승승장구하다가 죽었다. “신율(申慄)이 죽었다. 조회를 중지하고, 부의를 더해주고, 예장(禮葬) 하도록 명하였다. 신율이 맨 처음 무옥(誣獄)을 고발하여 시종 그물처럼 얽어대어 평양 이남의 사람들은 모두 그의 해독을 당하였다. 군수에서 순식간에 팔좌에 올랐는데 은총과 대우가 매우 융성하였다. 그 아비인 순일(純一)이 강서 현령(江西縣令)으로 있었기 때문에 휴가를 청하여 부모를 뵈러 갔는데, 행차가 해서(海西) 지방을 지날 때는 보는 사람들이 눈을 흘겼다.

 

강서에 도달하여 내외에 잔치를 베풀어 그 부모를 대접하는데 손님들이 많이 모였다. 술이 한차례도 돌기 전에 갑자기 도망친 닭이 천막 안으로 날아들어와 신율이 앉아 있던 연회 상과 안주 그릇을 박차서 상이 뒤집어졌다. 율은 얼굴빛이 바뀌어 벌떡 일어나 병풍 밖으로 나갔는데 곧 자빠져 죽었다. 양서(兩西)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흉악한 짓을 한 보답이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그러나 혹자는 그 정도가 어찌 천벌이겠느냐며 치를 떨었고 과거 시험 조작한 놈이 결국 역모도 조작하여 숱한 사람들의 피눈물을 짜냈으니 지하의 염라대왕도 그 사지를 찢을 것이라 하였다. 이 신율의 악행을 두고 한 선비가 남긴 시가 광해군일기 부록에 전한다. 작자는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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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鼠代筆造作字 유서대필조작자

(과거 시험) 답안지 대필시키고 조작한 쥐새끼 있었다네

 

多猜皆疎吏恨多 다시개소리한다

헐뜯는 사람 많고 두루 친하지 않으니 벼슬하기에 한도 많아

 

蠼常屠豪擄蝕驥 곽상도호로식기

항상 배앓이하며 호걸들과 인물들 때려잡고 좀먹는 게 일이었네

 

確知狙勃旣藁破 확지저발기고파

확실히 아는 건 원숭이가 기승부려봐야 이윽고 말라붙어 깨진다는 사실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도 모자라 쉼터 소장의 죽음에도 올가미를 씌우는 국회의원 사진이 왜 들어갔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본문과 사진은 관계없다. 구글 오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