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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영속하는 권력을 원한다. 영속하는 권력에 기생하기를 바란다.

 

먼 과거에 그것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본 제국이었다. 그들은 제국에 기생한 덕에 그렇지 않은 자들이 픽픽 쓰러져나갈 동안에도 생존할 수 있었다.

 

가까운 과거에는 독재 권력이었다. 독재 권력에 기생한 대가는 생존 이상의 달콤함이었다. 몸집이 쑥쑥 불어났고 힘도 세졌다.

 

그 당시 독재 권력에 함께 기생했던 다른 부류가 있었다. 기업이라는 이름의. 그들 역시 무럭무럭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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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생존 본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피아식별을 잘하고, 상대를 적으로 판단하면 집단이 덤빈다.

 

그들이 원하는 영속하는 권력이란 일종의 왕권 같은 것이다. 인간은 영생할 수 없으므로 권력이 세습될 수 있어야하며, 무엇이든 발 아래 둘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법까지도 말이다.

 

독재 권력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되었을 때 그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기생이냐 자생이냐. 아니다. 그건 선택이라기 보다는 그들이 찾는 영속 가능한 권력을 찾아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의 차이겠다. 그들은 그런 쪽으로 아주 기가 막히게 후각이 발달해있다.

 

그들은 영속 가능한 권력을 찾아냈고 거기에 기생하기 시작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같은 권력에 기생하면서 몸집을 불렸던 다른 부류. 과거에는 일개 기업이었으나 지금은 재벌이라 불리는.

 

그들의 새로운 숙주가 된 재벌, 이른바 자본 권력은 여러모로 이전까지의 정치 권력과는 속성이 달랐다. 재벌은 이전까지의 정치 권력처럼 법을 제 발 아래 두고 있지만 법 자체를 주무르지는 않는다. 대신 법을 다루는 사람을 주무른다.

 

이전에 기생했던 독재 권력과의 관계가 ‘굴종’에 가까웠다면 자본 권력과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수평적이다. 광고를 내주고 광고비를 받는 계약 관계가 성립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본 권력이 이들의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해주니 얼마나 살기 좋은 기생인지. 예전보다는 공생이 강화된 기생 관계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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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도 그랬다

<미디어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영속하는 권력에 기생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자본 권력의 세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한다. 정치 권력의 민주화로 숙주를 잃었던 그들이다. 자본 권력마저 민주화되어서는 안된다. 권력이 주기적으로 교체되면 나름의 이용 가치는 있을지 몰라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다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도 나타나면 골치가 아프다. 여기에서는 지나치게 합리적이기 보다는 적당히 구리면서 변하지 않는 쪽이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자본 권력은 민주화가 아니라 왕권 강화가 되어야 한다.

 

민주화된 정치 권력은 더 이상 굴종의 대상이 아니다. 새로운 숙주가 된 재벌의 왕권 강화와 이익 도모에 얼마나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들은 피아를 식별하는데, 적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시기에는 집단이 덤벼 총공세를 펼친다. ‘살아있는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자위 행위이자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겁주기이며 아군에게 정치 권력을 쥐어주기 위한 선동이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21세기에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재벌가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형제 간의 다툼이 생기면 그들은 그걸 스스럼없이 ‘왕자의 난’이라 표현한다. 이들에게 재벌 일가는 왕조와 같은 뜻인 것이다. 자산가치 100조가 넘는 어떤 그룹은 경영권을 승계할 아들이 없어 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를 입양하여 경영권을 물려준다. 어떤 재벌 총수는 자신들의 승계 방식이 사우디 왕가와 같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주식회사’와 ‘지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럼에도 자본 권력에 기생하는 그들은 아무런 말이 없다. 숙주의 권력이 영속하는 데에 방해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그들의 무기이자 존재의 이유인 ‘글과 말’은 숙주의 권력을 영속화 하는 데에만 쓰일 뿐이다. 말과 글은 숙주를 위한 것이고 침묵 또한 숙주를 위한 것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재벌 대기업의 성장 배경은 총수의 영도력이다. 그들이 말하는 기업가 정신은 오너 일가 자손들에게 대물림되는 것이다. 재벌이 재벌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금전적, 정책적 지원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노동자들이 얼마나 기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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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재벌 오너 일가의 경영권은 왕권이며, 경영은 치국이다. 재벌 대기업의 이익은 국익이고 노조의 쟁의는 반역 행위다. 오너의 탐욕으로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는 건 과장해서 비유하면 국력을 총동원한 정복 전쟁 쯤 될까. 다행히 성공하면 그들은 앞다투어 재벌 총수의 업적을 칭송한다. 만약 실패해서 그룹이 휘청거릴 지경이 되어도 그들은 세습되는 권력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어차피 오너 일가는 책임을 지지 않고 나랏돈 수십 조를 끌어다 그룹을 회생시키면 그만이다. 살아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대한민국에 재벌 왕조가 한둘만 있지는 않으니까. 다만 왕이 무리하게 일으킨 전쟁에서 개죽음 당하는 백성들마냥 고통분담,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아래 직원들만 밥줄이 끊겨 나갈 뿐이다.

 

이러니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적잖은 불법이 자행되거나 의혹이 불거져도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 뿐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그렇게나 신봉한다는 자들이 정작 재벌 일가의 증여, 상속 과정에서 탈세 의혹이 일어도 아무런 말이 없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무리하게 계열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국민연금 수천 억이 날아갔다는 의혹이 일어도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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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더 이상 경영권 자녀 승계는 없다’고 공언했을 때 반응이 가관이었다.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한답시고 하는 말이 ‘오너 일가의 책임 경영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였다. 그럼 정치 권력은 왜 세습하지 않고 선거로 갈아치우나. 자손대대로 한 집에서 해먹으면 ‘책임지고’ 나라를 잘 운영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다가 근래에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구속 영장이 청구되자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왜 삼성을 그렇게 몇 년 째 괴롭히고 있느냐’. 이쯤되면 충성을 넘어 숭배에 가깝다.

 

그들에게 세상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왕권을 떠받드는 자와 위협하는 자. 그리고 끊임없이 감언이설로 대중을 선동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왕권을 떠받드는 자로 만들기 위해. 이 지점에서 그들은 재벌을 도와 법을 주무르는 자들이나 재벌의 이익을 추종하는 정치 권력보다 더 나쁘다.

 

나는 왜 ‘그들’을 ‘그들’이라고만 부르는가. ‘보수 언론’도 아니고 ‘언론’도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도 아닌 것들이 자꾸만 언론 행세를 한다.

 

과연 그들 뜻대로 그들의 숙주는 영속하는 권력으로 대대손손 이어질까. 그게 가능하다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않지만 혹여 그런다한들 숙주가 계속해서 기생을 허락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의 영향력이 앞으로도 지금까지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젠가 다시 ‘언론’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자신도 어디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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