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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지난 5월 17일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중학교 3학년 선배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하였습니다.

 

저는 피해 학생의 부모로서,

그날 이후 사건의 일지를 작성해왔고,

왜 피해 가족들이 상처를 입는지

하나둘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러한 기록과 과정들을 공개함으로써,

향후 저와 같은 피해 가족들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부모님들께

조금이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선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군주는 역시 광해군입니다. 세종과 정조에 버금가는 개혁 군주로 평가를 받는 한편 연산군과 같은 폭군으로도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광해군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임진왜란 후, 후금과 명나라 사이에서의 중립 외교에 무게가 실립니다. 사대주의로 무장한 조선 시대의 기득권 세력들에게, 중립 외교는 곧 나라의 인륜을 저버리는 것이고, 기득권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중립외교를 표방하여, 국가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은 그가 뛰어난 외교적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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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립 외교만큼 광해군의 큰 치적은 임진왜란 이후의 전후 복구입니다. 사실 조선 시대는 임진왜란 이후 왕조가 끝났을 만큼 모든 것들이 피폐해졌습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시대의 봉건국가체제, 지배층의 무기력과 무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국가를 존속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여러 가지의 전후 복구 정책들로 왕조를 유지하고, 국가를 안정 시켰다는 점에서 광해군은 분명 칭송받아 마땅한 역사 속 지도자입니다. 기득권층에 대항하여 온전히 왕관의 무게를 혼자 묵묵히 견디어 낸 광해군의 심정을 감히 생각해봅니다.

 

그날 이후

 

아들의 폭행 사건은 늘 웃음으로 넘쳤던 우리 집안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희귀, 난치 질환을 앓고 있던 와이프는 급격한 스트레스로 병이 다시 재발했습니다. 독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해야 했고, 심각해진 불안 상태와 불면증으로 아들과 함께 정신과 진료도 받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날 이후, 밥 먹는 시간과 화장실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꼼짝하지 안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은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집안은 절간처럼 적막이 가득했습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저의 사업도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아들 일에 집중하며 집 근처 카페에서 회사 업무를 잠깐씩 봤습니다.

 

은행 업무로 와이프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이 겉으로는 아무 일 없듯이 생활을 하는 듯했지만, 아내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미소와 웃음을 짓는다고 말입니다. 그 말을 하던 와이프도 듣고 있던 저도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이번 일로 엄마가 몸이 더 안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렇게나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엄마를 안심 시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와이프는 끼니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합니다. 각자가 각자의 아픔과 상처들을 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우리 가족의 모습이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결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 동안 넋 놓고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가족 모두를, 사건이 일어나기 전으로 복원 시켜야 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고, 역할이라 생각했습니다.

 

아내와 따로 조용히 대화를 했습니다. 다행히 아파트 주민의 경찰 신고로 폭행의 피해가 크지 않았다는 것. 충분히 우리 아들은 그러한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것. 우리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하여 아들과 가족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노라고 말입니다.

 

아내는 자가면역질환이다 보니 스트레스에 굉장히 취약합니다. 그렇기에 재발이 돼서 다시 활동기가 왔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최소화해 줘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일단 아들의 보호 조치에 대한 부분들에 대해서 아내에게 충분히 이야기해주어야 했습니다. 당신이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을 보이면 아들이 더 힘들 수 있으니 지금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자고요. 모든 진행 과정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오직 아이들과 본인의 건강에만 신경을 쓰라고 했습니다. 아이들 보는 자리에서 우리들이 한숨을 쉬거나,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 아이들이 더 불안해할 수 있으니 힘들겠지만 평소처럼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지만, 새벽 서너시가 되어야 잠을 자는 아들을 도저히 지켜볼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아무 일 없듯이 행동하려는 아들의 모습이 더 가슴 아팠습니다. 그날, 새벽 1시가 돼서 아들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아빠는 네가 아무 일 없듯이 행동하는 것이 더 가슴 아프다고,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제서야 아들이 참아 왔던 눈물을 쏟아냅니다. 무서웠다고. 그리고 눈을 감으면 자꾸 악몽을 꾼다고 토로합니다. 그래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저 또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습니다. 아들을 끌어안고 이야기했습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

 

하고 나서 보니, 몇 년 전에 보았던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선균의 대사와 비슷했습니다. 그 대사의 깊이와 의미를 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에게 그저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아들은 폭행 사건의 발단이 본인으로 인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본인이 선배들에 대한 뒷담화가 폭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러한 폭행의 결과 또한 본인의 잘못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책 또한 하고 있었습니다.

 

폭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가 제일 먼저 아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어떠한 이유든 폭행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뒷담화를 한다고 해서, 국가 공권력이 개인에게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아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폭력의 피해자들이 폭력 원인 제공자라고 생각하고, 합리화, 정당화한다면 이는 폭력의 피해자에서 향후 잠재적인 폭력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떠한 이유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꼭 알려주어야 합니다.

 

아빠와 바다

 

그 다음날 아내에게 아들과 함께 바다를 보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들이 가장 행복했을 때는 아빠와 함께 게임을 하고,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늘,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갔었지만, 이번에는 아들과 단둘이 하루 코스로 바다를 보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들과 아침 일찍 출발해 춘천에 가서 아들이 좋아하는 닭갈비를 먹고, 강원도 양양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내내, 저는 쉴 새 없이 떠듭니다. 강원도 고성에서의 아버지 군 생활의 추억에 대하여, 아들과 함께 즐겁게 이야기했습니다. 유쾌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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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씩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이어갔습니다. 수 십 년 전 재수할 때 무작정 바다가 보고 싶어서 학원을 땡땡이치고 강원도로 갔던 저의 경험을 들려주었습니다. 아빠에게 바다는 어떤 의미 인지(링크) 아들이 알게 되는 시간이었죠.

 

힘들었던 그때 제가 경험했던 바다처럼 아들에게도 넓고 넓은 바다가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왔으면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평온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날의 상처와 아픔들에 대해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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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사건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리 가족 모두가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도 저의 역할이자, 책임입니다. 더러는 법적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지 않냐 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그건 보여지는 결과일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사실 잘 모릅니다. 그럴수록 마음을 가다듬고, 가족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를 먼저 고민하십시오. 그 상처 치유가 먼저 선행되어야, 실질적인 해결이 됩니다.

 

가장의 무게가 무거울 것입니다. 하지만 자녀가 우리에게 왔을 때부터, 우리는 이미 그 무게를 짊어지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 무게를 온전히 감당할 때, 가족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아들과의 바다 여행은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했지요. 가끔씩은 이렇게 단둘이 오는 것도 참 좋겠구나 말입니다. 바다는 그저 목적일 뿐, 그 바다를 보기 위한 과정과 설렘이 우리를 다독였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저는 아들과 그러한 과정의 설렘을 더 느끼고 싶고, 그럴 계획입니다.

 

이번 일을 겪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모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좀 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녀들과 꼭 단둘이 여행을 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사춘기 자녀일수록 더 필요합니다.

 

Tip: 자녀들이 학교 폭력의 피해를 입어서, 가해 학생들의 보복이 두려우시다면, 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자녀들이 신체 폭력의 피해를 입고, 가해 학생들의 보복으로 불안해한다면, 경찰서에 정식으로 신체 폭력에 대한 사건 접수를 하신 후, 신변 보호를 요청하십시오.

 

신변 보호는, 자녀들의 이동 동선에 따라 순찰차가 지역을 순찰하는 방식, 자녀들의 휴대폰 번호를 112 통합 관제 센터에 등록(자녀의 사진과 함께 등록) 하여, 긴급 전화 발생 시, 바로 출동하는 방식과 스마트 워치를 지급하여 보호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112 통합 관제 센터에 아들의 휴대폰 번호를 입력하였고, 스마트 워치를 지급받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조치는 가해 학생들로부터의 보복을 예방하기 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녀들의 심리적 안정을 주기 위함입니다. 국가가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필요가 분명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 주

 

학교 폭력에 대한 사례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진화되고 있습니다.

 

   혹시나

주변에서 학교 폭력에 대한 사례들을 들으셨거나,

경험이 있으시다면,

someofsea@naver.com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폭력의 사례들을 구체화, 정리하는 작업을 통하여,

학교 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1) 후불제장례전문회사 주식회사 직장(www.ziczang.com, 24시간긴급장례의전센터1599-9093) 대표
(2) [학교폭력 부모바이블 1] & [아빠가 되어줄게] 저자
(3) [이해준학교폭력연구소] 소장 https://blog.naver.com/leehaejune_lab)
(4) 유튜브 [이해준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