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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와 노무현

2010-05-1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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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0.목요일


다찌마와 FEEL


 




-알렉산더가 병사들에게 일장 연설을 한다.




알렉산더 : 물론 두렵겠지. 나도 두렵다. 우리 모두에게 여긴 처녀지니까! 3주만 행군 하면 홍해가 나온다. 함대를 조직해 나일강을 따라가면 몇주일 뒤엔 귀국할수 있다. 전리품을 갖고 금의환향해서 가족과 기쁘게 재회하고 제국의 영광을 영원토록 노래하자.




          





 


 


연설이 끝난자 병사들은 평소답지 않게 알렉산더에 동조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쳐다보기만 한다. 멀리서 몇몇 병사들만이 큰소리로 동조한다.




알렉산더: 뭔가? 왜들 조용해? 퓨케스타스 우리의 영웅. 용맹한 아마존 부족은 어디있나?  다 어디 갔어? 자네 멜리거! 우리가 정복 못한 부족이 있나? 라이시마커스! 안티고누스! 실망스럽군. 모두 두려운건가? 




-침묵하는 부관들과 병사들. 이때 병사들이 자신들의 대표격인 크라테로스를 부른다. 크라테로스 한숨을 쉬며 알렉산더에게 다가가 말한다.


 


             








크라테로스: 폐하! 이런 나약한 말씀 드리긴 싫지만 전사자가 많습니다. 결혼도 못해보고 죽고... 병에 걸려 죽고... 옥서스 강둑에서 개죽음을 당하고..장렬하게 죽었건 비참 하게 죽었건 다죽었어요. 4만 군사가 8년 전 출병 한 후 1만 마일을 행군해 왔습니다. 눈, 비를 맞으며 목숨 걸고 싸웠죠. 50여회의 전투를 치르며 많은 적을 죽였지만.. 잃은 전우도 너무나 많습니다. 헌데 이 미친짓을 계속 하라고요? 코끼리떼와 싸우고, 수백개의 강을 건너며?




-병사들 크라테로스의 말에 동요하기 시작한다.




알렉산더: 크라테로스! 좋아 크라테로스! 그런 말 할자격이 자네는 충분하네. 허나 내 몸도 상처투성 이야! 찔리고 부러지고 찢긴상처! 나도 만싱창이가 됐다고! 




크라테로스: 그래서 폐하를 존경합니다!(병사들 함께 동조한다.) 허나 희생이 너무 커요! 자식이 없으시니 저희들 심정을 모르실 겁니다. 자식들과 아내와 손주들을... 마지막 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지옥에간 동지들을 따라가기 전예요! 


 


-알렉산더, 잠시 뒤돌아 크라테로스의 말에 생각에 잠기다 다시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알렉산더: 그래 이해한다, 크라테로스! 내가 무심했어. 고참병 먼저 보내 주겠다. 1진은 50세 이상! 2진은 7년 복무자! 전리품도 챙겨주마!




-병사와 부관들 알렉산더의 선언에 모두 환호하고 좋아하기 시작한다.




알렉산더: 돌아가면 가족들에게 평생 영웅대접 받을거야. 안락하게 살다 죽겠지. 




-알렉산더의 마지막 말에 몇몇 병사들의 표정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알렉산더: 꿈을 깨, 크라테로스! 여기 있는 처자식은 어찌할 텐가? 모아둔 약탈물로 그렇게  편히 살고 싶어? (갑자기 울부짖기 시작한다.) 예전의 꿈과 용맹함은 어디로 갔나? 대체 왜들 이래? 너희도 잘 알고 있어! 세월이 흘러 모든 게 희미해지고 승리의 영광도 퇴색하면  날 남겨두고 떠난 회환만 남으리란 걸! 난 계속 진군할 것이다.


    


          








-이후 알렉산더는 분노에 찬 병사들에게 수많은 모욕과 비아냥을 듣게 된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 중에서-




 


내가 영화에서 좋아하는 장면은, 위기의 순간에 캐릭터들이 서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해가며 갈등이 최고조에 오르다가 결국은 모든 것이 조용히 마무리 되는 장면이다. 그래서 <폭주 기관차>의, 가속도가 붙은 기차 기관실에서 세 주인공이 갈등하는 장면과 <올모스트 페이머스>에서 추락 직전의 비행기에서 벌어지는 락밴드 멤버들의 언쟁, 언쟁 뻘쭘해지는 장면을 특히 좋아한다. 인간이 가장 진실되어 보이는 장면들이기 때문이다.




올리버 스톤의 <알렉산더>의 저 장면도 그렇다.


 


페르시아 원정에 곧바로 이어진 인도원정은 병사들에겐 지옥이었다. 식수도 안 좋았고, 무엇보다 기후에 적응하기 힘들었으며, 독사와 전염병에 개죽음 당하는 일이 속출했다. 그 와중에 원정에 지친 병사들이 두 번의 반란을 일으키며 부대의 내분이 심해지자, 알렉산더는 암살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병사들 앞에 나아가 당당히 연설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맹비난 속에 갈등이 심해지지만, 전투 중 알렉산더가 큰 부상을 당하자 병사들은 자신들의 왕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단합하게 된다.




영화속 알렉산더는 기록대로 양성애자이면서, 남다른 꿈을 가진 이상가로 그려졌다. 그의 이상은 추상적이게도 동서양의 화합이었다. (물론 그것은 제국주의적 정복욕이 일으킨 환상이었지만...) 그런 알렉산더는 부관들과 병사들도 자신의 이상에 동참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은 속물이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행군이 아닌 정착을 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가 따랐던 왕에게 반기를 들며 다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알렉산더에게는 이들의 행동이 배신으로 보였다. 자신과 함께 걸어온 이들이 이제 와서 힘들다고 하자, 그는 왕답지 않게 절규한다. 그의 절규는, 그들이 편안함과 안락함을 떠나 자신을 선택한 근본적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묻는 외침이었다.


 


그의 외침은, 이상하게도 현실의 누군가를 연상시켰다.


 


                     


                                 





 


살아 생전 반대진영의 비난공세와 지지층과 여당의 내분, 그리고 재신임과 탄핵과 비리 의혹으로 시달렸을 때의 그의 심정은 히피시스 강에서 절규하는 알렉산더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다. 자신과 함께 걸어온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익추구와 생각으로 틀어지게 되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퇴진 후 “자신을 버리라”고 이야기했던 그는 속으로는 알렉산더의 대사를 외치고 싶지 않았을까?




'노무현은 이러한 사람이었다.'라고 정의할 자격은 내게 없다. 아니, 없다기보다는 나는 그를 정확히 모른다. 또한 그와 함께 투쟁하며 한 시대를 보냈던 세대도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그에게 투표를 하거나 지지하지도 못했던 세대로써(연령땜에..) 그에 대해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설을 쓰는 거나 마찬가지다. 다만 나에게 노무현은 히피시스 강 앞에 선 알렉산더처럼 보였다. 그는 너무도 이상적이었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았지만, 그 때문에 딴나라 쓰레기들에게 대통령으로 불리지 못하였고, 심심하다 싶으면 조롱과 면박을 당해야 했다.


 


돌이켜 보면 내 주변의 가족, 친척, 친구에게서 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주변에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봤자 극우세력 이나 무관심자,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가 서거한 후에도 나이 많으신 분들에겐 “빨갱이XX 잘 죽었다.” “고졸 주제에 무슨 대통령을...” 이란 말을 들었고, 강남에 살고 있는 부잣집 친구녀석에게는 “김대중과 함께 잃어버린 10년(?) 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요지의 강의를 술자리에서 들어야 했다. (젊은 놈이 벌서부터 그런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불쌍해 보였다.) 심지어 내가 다닌 교회에서까지 직접적으로 또는 우회적으로 그의 정책을 비난했다.


 


원래 조용히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이 양반들과 골치아픈 소모적 논쟁을 하는 건 시간낭비라 생각하며 조용히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지지자가 아니었음에도, 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을 들을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불편했다. 그가 단지 자신과 생각을 달리한 인물이었고, 고졸이었기에 무시하는 거라면 그를 욕하는 이들의 자화상은 상당히 추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일상에 갖고 있는 콤플렉스와 평소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사고방식이었다. 그 정도로 노무현은 대통령으로서의 위엄이나 권위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 이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의 주름살에선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은 마치 영화속에서 지난 추억을 회상하며 알렉산더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던 늙은 ‘프톨레미(안소니 홉킨스)’ 같았다. 그의 이상이 말도 안되는 거였다고 치부하지만, 돌이켜 후회하며 알렉산더를 다시 치켜세우는 모습은 죽어서야 그를 재평가하는 나와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나는 프톨레미처럼, 그가 서거하던 날을 잠시 회상했다.


 


아침 일찍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을 즈음이었다. 주방에서 “노무현이 죽었다.”는 주방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잠시 밖에 나와 집에 전화를 했다. 어머니도 방금 뉴스를 봤다며, 아직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셨다. 예상외로 아르바이트는 일찍 끝났고,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에서 나는 큼지막한 활자의 호외신문 기사를 보고 그가 정말로 죽었음을 확인했다.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던 나는 뉴스를 보다 잠시 주변을 돌아본 후 흐느꼈다.




모르겠다... 왜 그때 눈물이 났는지.




그리고 저녁이 되면서 온가족이 모여 TV를 봤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나에게 “노무현은 어떤 사람 같냐.”고 물으셨다. 잠시 생각에 빠진 나는 이상하게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고, 그리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모르겠다... 왜 그때 울었는지.


 


그런 나를 부모님과 누나는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울면서 아버지의 질문에 대답했다.




“저...사람은..그저...너무나도...욕을 너무 많이 먹었어...아무죄도..없는 저사람...”


             






 


나는 정말로 그를 알지 못하고, 그도 나를 모른다. 나는 그를 지지 한적도 없었으며 그와 같은 시대에 살기에는 세대와 나이차가 컸다. 그리고 우리 둘은 종교도 달랐다(?). 그에게 정(情)을 느끼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그의 죽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나는 분명 마음 한 구석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단지 그가 너무나 많은 이들으로부터 비난을 받아서였을까? 그래서 여린 마음에 한 행동이었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앞서 노인 분들과 불쌍한(?) 부자 녀석에게 들었던 그에 대한 비판은 우리 모두가 어딘지 모르게 짊어지고 있을 콤플렉스 같았다. 그들은 노무현의 콤플렉스가 아닌 자신들의 콤플렉스를 빗대어 그를 비난하는 듯했다. 전여옥같은 막말 괴물이 그가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노무현은 그 콤플렉스의 희생양이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었고 드라마틱한 몇 번의 성공에 기뻐했던건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우리의 모습과 동일했다. 그런 그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이었다.    


               


알렉산더와 노무현은 확연히 다른 사람이다. 허나 왕과 대통령이이라는 지지도자의 위치에서, 그들은 철저히 약자였다. 죽은 아버지의 명성과 살아있는 친모의 야망이 알렉산더의 내면을 짓눌렀으며 현실세계엔 그의 왕위를 위협하려는 귀족과 부관들의 보이지 않는 시기와 협박이 있었다.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은 병사들이었다. 병사들의 반란은 그에게 있어 크나큰 마음의 상처였다.


 


<더 클래스>의 감독 로랑 캉테는 “교사는 30여명이 있는 교실 안에서 유일한 약자”라고 말했듯이, 한 집단의 리더는 아이러니하게도 다수의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한없이 착했고, 이상주의자였으며, 욕심 없었고, 무엇보다 눈물 많은 약자였던 바보 노무현. 이 사람이 한때 이 땅에 살았던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단지 바보란 이유로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며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


                


수많은 비난을 받으며 임기를 마쳤지만, 그가 이룩해낸 업적은 엄존한다. 하지만 나는 업적을 남긴 대통령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죽음을 추모하려 한다. 대통령이 아닌 평범한 국민으로 생을 마감하길 원하며 몸을 던졌던 사람에 대한 최상의 예우는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 속에서 프톨레미가 알렉산더에 대해 마지막으로 내린 정의로 그에 대한 추모를 장엄하게 마무리하려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노무현에 대한 정의는 이 글안에 있다.


 


“진실은 복잡한 듯해도 한편으로는 단순하다. 그는 결국 우리가 죽였지. 꿈만 쫓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해. 그들이 안 죽으면 우리가 지쳐죽지.


 


그는 마케도니아에서 편히 살수 있었지만, 그러면 알렉산더가 아니지. 그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평생 싸웠다. 그렇게 싸움으로써 그는 자유로워졌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상 때문에 그는 좌절했고, 고독했다. 그리스와 타민족의 대화합이란 꿈은 실패로 끝났지만... 위대한 실패였다. 그 누구의 성공보다 성공적인 실패... 역사에 기억되는 건 꿈을 쫓으며 산 사람들의 몫이다. 그중 가장 위대한 꿈을 품었던 사람... 세인들은 이렇게 부르지... 가장 위대했던 영웅 알렉산더 대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