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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어머니

2010-05-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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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0 목요일


테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지 조금 있으면 1년이 된다. 나는 원래 상당히 긍정적이며 마초같은 성격이라 남 앞에서 잘 안 운다. 남자는 평생 세번만 울면 된다는, 지금은 사어(死語)가 되어버린 말을 신봉하는 셈이다. 그런데 작년에 많이 울었다. 모두 노 전 대통령 때문이다.

5월 23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날일테다, 회사에서 컴퓨터를 켜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거짓말인 줄 알았다. 이내 사실로 밝혀졌고 당연히 혼란스러웠다. 모두들 조용했다. 정적 속에서 마우스 딸깍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다들 인터넷 서핑만 해 댔다. 오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아마도.

하지만 이 때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까지 지낸 인물이, 비록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자살까지 했어야 하나 라는 원망섞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검찰이나 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보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원망스러웠던 것 같다. 스스로 옳다면 끝까지 밀고 나갔어야지 도중에 그런 선택을 하는 게 어디있냐는 그런 마음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현실감각을 지닌, 그러니까 적어도 반칙이나 부정에 대해 '이건 나쁜 짓이며 공정하지 못한 짓'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니 사실 모든 정치인들은 이래야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좌파, 우파라는 말도 어느 정도 상식이 통해야 가능한 거다. 이성적이지 못한 좌파,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이 결여된 우파가 득실거린다. 아니 우파로 한정한다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는커녕 전과 십 몇 범이 대통령을 하고 있고 남의 원고를 버젓히 베껴 쓴 이가 모 정당 최고위원을 하고 있는 웃긴 곳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사실 보수주의는 나쁜 말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 당시에 나타난, 인간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며 앞만 보고 달려나간 진보주의의 급진성을 다시한번 천천히 재고해 보자는게 보수주의다. 멈춰서서 다시한번 보자는 게 나쁠리 없다. 그런 보수주의가 대한민국에서 개고생하고 있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하고는 만리길이나 떨어진 주체사상이 진보와 결합되면서 역시 개고생 중이다. 밖에서 보면 뭐 이런 희한한 나라가 다 있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은 빛났다. 노무현을 비판했지만 노무현을 인정하는 이유는 여기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런 그가 죽었단다. 그것도 자살이란다. 믿기지 않는다. 그런데 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이라는 캐릭터가 원래 그랬다. 지지자나 '민주세력'(?)을 생각한다면 그 책임감 때문에라도 절대 자살해선 안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노무현이라는 페르소나는 그랬다. 부림사건 시국변호사를 맡을 때도, 3당합당을 반대했을 때도, 살인마 전두환에게 명패를 집어던졌을 때도 그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2002년 12월도 그랬다. 김경재 전 의원이 들려준 말이다.

"정몽준이 단일화 취소한 그날 밤 말야. 내가 꼭 가야 한다고 그랬거든. 정몽준 집 앞에. 그런데 이 양반이 곧 죽어도 안 간다는 거야. 그러더니만 '내가 왜 거길 가야 합니까? 그냥 떨어져도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하는 거야. 다 이게 자기 당선시킬려고 하는 건데 어떻게 장본인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참... 결국 2시간을 설득해서 겨우겨우 데리고 갔어."

노무현이라는 남자는 이런 사람이다. 이게 멋진거다.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인간 노무현을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 있다. 웬지 납득해 버렸다. 너무하지만 이해해버리는 복잡한 감정. 눈물이 나올만큼 북받쳐 오는 뭔가가 없었다. 머리속만 아팠을 뿐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억울해 했고, 분노했다. 그들은 정치적 타살에 음모론을 들먹였다. 나 역시 음모론까지는 아니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 낸 이충렬('간송 전형필'의 저자) 님의
블로그 포스팅을 인용해 기사를 작성했다.

봉화마을 사저 도청 의혹설 나와

하긴 이것도 안 울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을 테다. 울었다면 감정이 뒤죽박죽돼버려 기사를 쓸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었을 것이니까.

그렇게 시간은, 참 무심히도 흘러갔다. 저녁 8시 사무실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와세다 역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덕길이다. 한참 올라갔다. 그런데 언덕길을 혼자서 올라가다 보니 노무현이 생각난다.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데 그 땀 사이로 눈물이 한 두방울 섞이기 시작했다. 왜 담배도 한대 제대로 못 피우고... 괜히 억울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니다.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니 괜찮나?"


어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참고 참았던 그 무언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한달음에 북받쳐 올라왔다. 먹먹해져 말을 못했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노무현을 싫어한다. 02년엔 아들때문에 노무현을 찍었지만 07년엔 이명박을 찍었다. 아버지도, 삼촌도 모두들 마찬가지다. 다들 노무현을 싫어한다.

그런 어머니가 일년에 한두번 할까 말까하는 국제전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와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이러신다.

"뭐가 그리... 참 다들 와 그라는지 모르겠다..."

그러시곤 소리내어 우셨다. 나도 소리내 울었다. 지나가던 일본아이들이 힐끗힐끗 쳐다본다. 어머니나 아버지들은 보수고 진보고 모른다. 다만 왜 죽냐는 것이다. 그 죽음에 가슴이 아프다. 나도 가슴이 아픈데 그걸 억지로,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생각으로 막아놓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일과를 마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니는 '대통령' 노무현은 싫어했지만 '인간' 노무현의 죽음을 너무나 슬퍼했다. 그 슬픔이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 왔다. 천상 어머니의 아들인 나 역시 그 죽음이 슬펐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나는 그토록 울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지독스럽게도 맑은 날이었다. 09년 5월 23일, 도쿄 와세다 근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