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5.25.화요일
사연인즉슨 지금 설치한 천막이 처음 친 게 아니라, 비바람에 한번 날아간 걸 다시 친 거라 한다.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천막을 두 번 쳤으니, 얼이 빠질 만도 하다. 지금도 언제 텐트가 바람에 날라가고 빗물에 무너질지 조마조마한 상황. 안된 마음에 위로의 말을 던졌다.
"알았으니까 밥은 언제?"
원래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으니 밥 역시 이미 준비되어 있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밥 역시 사연이 구구절절이다... 이걸 다 설명하려면 또 기사 하나 분량. 관련 내용을 정리한 헤라님의 300 링크로 대체한다.
현장에서는 차마 밝힐 수 없었던 식사시간 지연에 대한 진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범인은 부산에서 따로 출발하느라 먼저 숙소에 도착했던 독자분. 선발대를 돕고자 몸소 100인분의 밥을 직접 지어보이시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셨는데...
밥이 될 때까지 방문단은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기로 결정.
먼저 C동 풍경. 깡소주 까면서 시국토론을 하는중...이라기 보다는 웬지 인력시장 대기소 같은 분위기...
반면 여자분들 숙소인 B동.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과 우산부터 범상찮은 포스를 풍기더니 확실히 정돈된 분위기.
A동은 파토님의 특강을 경청하는 중.
특강주제는 '40대, 혈색관리 피부 관리 노하우'
우여곡절 끝에 식사준비 완료. 근 일곱시간에 걸친 버스여행에 지친 몸을 풀기에 너무나 안성마춤인 야외식당의 모습. 한눈으로 보기에도 아늑하고 쾌적해 보인다.
심지어 이 분은 넘치는 아늑함을 주체 못하고 이런 포즈까지...
천막과 비닐을 쳤다 하나 사이 사이로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 온몸은 물론 신발까지 젖은 상태에서 식사와 음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어떻게 저분들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본 기자와 대화했던 독자분들의 상당수가 천성관 관련 취재기사로 본 기자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바로 이 장면.
해서 진심을 다해 위로해 드렸다.
"허허 오늘 비바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천성관 취재 때가 훨씬 심했어요. 오늘 비바람이 커피라면 천성관 취재 때는 티오피라고 할 수 있죠. 이 정도면 참을만 하네요. 독자분도 그렇지요?"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와 고백하거니와 그 말을 하던 순간 본 기자의 머리 속에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의 대사가 떠올랐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아..."
사방이 물바다에 진흙탕. 눅눅함과 끕끕함이 극에 달했지만 마땅히 쉴 곳 하나 찾을 수 없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차라리 날 좀 죽여줘~" 아우성 치던 바로 그 순간, 비바람 몰아치는 야외천막에서의 늦은 저녁식사와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 반가운 손님 도착.
문성근, 명계남씨가 방문단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오셨다. 바쁜 일정상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짧은 인사 말씀만 남기고 바로 돌아가셨다. 명계남씨의 이야기 중 " 즐거운 시간 가지시되, 1년 전 오늘 이 시간 '그분'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한번쯤 새겨보셨으면 좋겠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손님이 돌아가신 후, 본격적인 술자리가 이어지고... 곳곳에서 부상자와 전사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대략 새벽 5시경 자리가 정리됐다.
그리고 다음날...
은 아니고 두어시간 후.
재첩국으로 쓰린 속을 대충 달랜 후,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봉하로 출발.
예상대로 많은 추모객들이 몰린 탓에, 봉하마을로부터 약 3키로 정도 되는 거리에 버스를 세워 놓고 도보로 이동. 많은 인파에 좁은 길. 단체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다른 추모객들에게도 불편을 끼치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각자 나름의 동선에 따라 봉하마을 탐방에 나서기로 한다.
작년에 없던 몇몇 편의시설이 생겨서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수많은 노란 리본들과 노란 풍선 추모글들...
부엉이 바위 근처 1주기 추도식장으로 이동. 쏟아지는 빗속에 수많은 추도인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오후 두시, 김제동의 사회로 추도식이 거행되고...
추도식은 곧 묘역완공식으로 이어져 1만 5천개의 박석 중 마지막 박석놓기로 끝났다.
이로써 봉하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나고 버스로 집결, 귀경길에 올랐다. 오후 4시 반경에 출발한 버스의 서울 도착시간이 대략 11시 반경. 서로간에 못다한 얘기들은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방문단 여러분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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