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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25.화요일


신짱




작년 4월 20일자로 등록된 딴지일보 245호의 기사리스트에는 총 11개의 기사가 등록되어 있다. 당시 편집부였던 너부리 편집장과 본 기자를 포함하여 딴지와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맛스타드림님과 돗자리님, 그리고 새로 딴지와 인연을 맺은 충용무쌍님과 한윤형님이 필진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8년 9월 1일(말이 9월이지 사실상 몇달전부터 한달에 한두개꼴로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던 실정이었다.) 이후 8개월만이자, 딴지의 부활에 대해 그 누구도 자신을 가지지 못한 상황에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업데이트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년 후, 딴지에 불어닥친 변화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흉물스런 폐가처럼 방치된 사이트에 기꺼이 옥고를 보내주신 필진분들과 충성스런 독자분들 덕분에 오늘의 딴지가 있다는 것, 역시도. 편집부 입장에서 조강지처와 같은 분들이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린다.



무엇보다 오늘 딴지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흔적을 남겨놓고, 많은 사람들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던 '사건'. 딴지 역시 이 거대한 자기장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자유롭기는커녕 그 '사건'의 영향 아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었던 조직 중의 하나가 딴지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딴지의 독자들과 봉하 마을을 간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 단순한 추모여행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인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며 때로 한숨짓고 때로 눈물 지을지언정, 딴지의 부활을 기뻐하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떠들며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놓을 수 있었던 1박 2일간의 여행. 이번 여행의 의미에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그 여행, 지금부터 출발한다.







 

출발지인 경복궁으로 총수가 생색을 내러 배웅 나왔다. 

 

출발 전 찍은, 심히 수학여행스러운 단체사진.

 





총수의 제안으로 새로운 각도에서 도전. 이 와중에 사진 오른쪽 줄무늬 티셔츠 입은 여성분과 그 바로 뒤 남성분은 독특한 시선처리로 단체사진모델의 딴지식 전범을 제시해 주시기도... 

 





사진만 봐서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출발한 듯 보이나, 딴지주최 행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그 또한 '오해'를 살만한 행동이라는 거, 수뇌부 역시 잘 안다.

 

딴지 수뇌부는 가카와 달리 나중에 '오해'드립을 치지 않는다. 그저 행동할 뿐. 출석체크와 티셔츠, 서적 분배로 수뇌부가 버벅대고, 버스까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출발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됐다.

 

결정적으로 한명의 여유분도 없이 45인승 버스 두대분을 꽉꽉 채워 예약을 받았는데, 행정착오로 한명이 오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본 기자가 인솔을 맡은 B버스에서!) 출발 직전까지 펑크를 내는 독자분이 생기길 간절히 바랬으나, 단 한명의 취소자 없이 전원 참석.

 

덕분에 본 기자, 본의 아니게 경상남도 양산 숙소까지 가는 여섯시간 동안 단 몇초간의 취침도 없이 모처럼 진지한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노무현 서거 1주기의 의미와 딴지 부활의 의미에 대해 찬찬히 숙고하는 시간 약 30초.

 

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가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에, 안전벨트 없는 보조석에서 조는 사람이 받게 될 신체적 영향에 대한 고찰 약 1시간.

 

소녀시대의 유리와 애프터스쿨의 유이가 서로간에 본 기자에 대한 소유권 분쟁을 했을 시에 본 기자가 취해야 될 행동에 대한 고찰 약 2시간.  

 

우주 삼라만상의 기원과 그 궁극적 공허에 대한 명상 약 2시간.   

 

본 기자의 이런 심정이 버스 안 승객들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딴지티셔츠의 도안 디자이너로 이번 행사에 특별초청된 양시호님이 구슬픈 가락으로 본 기자의 쓰라린 마음을 위로해 주고 있다.

 

 


 

본 기자가 고뇌를 하거나 말거나, 참가자들은 A, B 두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출발. A버스의 인솔자는 파토님과 필독님. B버스의 인솔자는 본 기자, 그리고 스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대접 받아야 할 외부필진에서 졸지에 현장스탭이 되어버린 화성님이 맡았다. A버스에는 찍사가 없으므로 버스 안 풍경 스케치와 '인증'은 오롯이 B버스 승객들의 몫이다. 줄을 잘 서야 되는 건 군대나 딴지나 마찬가지.

 

B버스에서는 가는 도중 간단한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원래 모임에서 이런 거 시키는 거 싫어하는 데, 정말 이대로 아무 일 없이 6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면 죽을 것 같았다. 억울하면 직접 수뇌부 하던가.

 

간단히 인사만 하랬는데 죄다 마이크를 내려 놓을 생각을 안한다. 뭔가 남녀비율도 그렇고 단체 짝짓기 버스여행 가는 듯한 분위기...

 










일단 마이크를 들이대자 가식의 가면은 벗어 던지고, 슬슬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급기야 버스 안은 술 안 먹고 초저녁에 들어간 뻘쭘한 노래방 분위기로 전환. 시키지도 않았는데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 한곡 시원하게 불러 제낀 이분 탓이 크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 어느새 사위는 어두워지고 출발 후 떨어지기 시작한 빗방울도 점점 굵어진다.

 


 

어느덧 버스는 고속도로를 나와 으슥한 산길로 접어든다. 강원도 한계령을 방불케하는 굽이길을 가길 한참여, 산을 넘어도 몇개는 넘었다고 생각할 즈음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예상보다 훨씬 늦어진 도착에 모두 지치고 허기진 상태. 얼른 버스에서 숙소로 튀어가고 싶지만 산골의 비바람이 매서워 버스에서 숙소까지의 몇걸음이 천리길 같다. 이 와중에 버스 A는 범퍼가 진흙바닥에 처박히는 바람에 문도 안 열리는 상황. 다행히 오래 지나지 않아 해결됐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번에 방문단이 숙소로 사용하게 될 산장은 총 세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B동을 여자가 나머지 A,C동을 남자가 이용하기로 되어 있으며 전체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은 야외 밖에 없다. 이날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었기에 먼저 간 선발대가 비닐로 된 간이천막을 치기로 예정된 상태.

 

일단 방문단은 숙소로 보내놓고 수뇌부는 천막으로 가서 선발대와 조우.

 




그런데 선발대 상태가 이상하다.

 



 


사연인즉슨 지금 설치한 천막이 처음 친 게 아니라, 비바람에 한번 날아간 걸 다시 친 거라 한다. 쏟아지는 폭우를 온몸으로 맞아가며 천막을 두 번 쳤으니, 얼이 빠질 만도 하다. 지금도 언제 텐트가 바람에 날라가고 빗물에 무너질지 조마조마한 상황. 안된 마음에 위로의 말을 던졌다.


 


"알았으니까 밥은 언제?"


 


원래 예정보다 늦게 도착했으니 밥 역시 이미 준비되어 있었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밥 역시 사연이 구구절절이다... 이걸 다 설명하려면 또 기사 하나 분량. 관련 내용을 정리한 헤라님의 300 링크로 대체한다. 


 


현장에서는 차마 밝힐 수 없었던 식사시간 지연에 대한 진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범인은 부산에서 따로 출발하느라 먼저 숙소에 도착했던 독자분. 선발대를 돕고자 몸소 100인분의 밥을 직접 지어보이시겠다고 팔을 걷어 붙이셨는데...


 


   


 


밥이 될 때까지 방문단은 숙소에서 대기하고 있기로 결정.


 


먼저 C동 풍경. 깡소주 까면서 시국토론을 하는중...이라기 보다는 웬지 인력시장 대기소 같은 분위기...


 






반면 여자분들 숙소인 B동.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과 우산부터 범상찮은 포스를 풍기더니 확실히 정돈된 분위기. 


 






A동은 파토님의 특강을 경청하는 중.


 




 


특강주제는 '40대, 혈색관리 피부 관리 노하우'


 





 


우여곡절 끝에 식사준비 완료. 근 일곱시간에 걸친 버스여행에 지친 몸을 풀기에 너무나 안성마춤인 야외식당의 모습. 한눈으로 보기에도 아늑하고 쾌적해 보인다.


 






 


심지어 이 분은 넘치는 아늑함을 주체 못하고 이런 포즈까지... 


 




천막과 비닐을 쳤다 하나 사이 사이로 들이치는 비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 온몸은 물론 신발까지 젖은 상태에서 식사와 음주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 어떻게 저분들을 위로해 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본 기자와 대화했던 독자분들의 상당수가 천성관 관련 취재기사로 본 기자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바로 이 장면.


 





해서 진심을 다해 위로해 드렸다.


 


"허허 오늘 비바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천성관 취재 때가 훨씬 심했어요. 오늘 비바람이 커피라면 천성관 취재 때는 티오피라고 할 수 있죠. 이 정도면 참을만 하네요. 독자분도 그렇지요?"


 


물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와 고백하거니와 그 말을 하던 순간 본 기자의 머리 속에는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주인공 병구의 대사가 떠올랐다.


 


"고통은 익숙해지지 않아..."


 


사방이 물바다에 진흙탕. 눅눅함과 끕끕함이 극에 달했지만 마땅히 쉴 곳 하나 찾을 수 없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차라리 날 좀 죽여줘~" 아우성 치던 바로 그 순간, 비바람 몰아치는 야외천막에서의 늦은 저녁식사와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술자리는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계속되었다.


 











 


 한창 이야기꽃을 피우는 데, 반가운 손님 도착.


 






문성근, 명계남씨가 방문단을 위해 먼 길을 달려 오셨다. 바쁜 일정상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짧은 인사 말씀만 남기고 바로 돌아가셨다. 명계남씨의 이야기 중 " 즐거운 시간 가지시되, 1년 전 오늘 이 시간 '그분'께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지 한번쯤 새겨보셨으면 좋겠다." 이런 취지의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난다.


 












손님이 돌아가신 후, 본격적인 술자리가 이어지고... 곳곳에서 부상자와 전사자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대략 새벽 5시경 자리가 정리됐다.


 


그리고 다음날...


 


은 아니고 두어시간 후.


 





 


재첩국으로 쓰린 속을 대충 달랜 후,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인 봉하로 출발.


 


예상대로 많은 추모객들이 몰린 탓에, 봉하마을로부터 약 3키로 정도 되는 거리에 버스를 세워 놓고 도보로 이동. 많은 인파에 좁은 길. 단체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다른 추모객들에게도 불편을 끼치는 일이다. 이제부터는 각자 나름의 동선에 따라 봉하마을 탐방에 나서기로 한다.


 


작년에 없던 몇몇 편의시설이 생겨서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버린 수많은 노란 리본들과 노란 풍선 추모글들...


 













부엉이 바위 근처 1주기 추도식장으로 이동. 쏟아지는 빗속에 수많은 추도인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오후 두시, 김제동의 사회로 추도식이 거행되고...


 









추도식은 곧 묘역완공식으로 이어져 1만 5천개의 박석 중 마지막 박석놓기로 끝났다.


 















  







 


이로써 봉하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나고 버스로 집결, 귀경길에 올랐다. 오후 4시 반경에 출발한 버스의 서울 도착시간이 대략 11시 반경. 서로간에 못다한 얘기들은 가슴에 품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방문단 여러분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