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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4 월요일


파토


 


 








1년 만이다.


 


지난 번의 방문에 대해서는 이미 본지 기사를 통해 여러 번 소개가 되었거니와, 솔직히 그때의 느낌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 자체가 힘들다. 황망한 가운데 급히 내려갔고, 인산인해의 추모객들 속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포착하고 의미를 발견해 내고는 여관방에 돌아가 열심히 기사를 써서 송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일을 해야 했기에 감정을 제어하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대통령님 이건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울부짖던 초로의 아저씨, 부모형제가 죽은 듯 정신줄을 놓고 흐느끼던 아주머니의 모습들은 안그대로 찢겨나가 있던 내 감정을 심히 건드리곤 했다. 그리고는 며칠째 밤을 새며 계속되던 추모 행렬... 바쁜 주중임에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알 수조차 없던 그 많은 사람들을 신짱과 함께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던 기억도 선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이번에는 본지 독자 90명과 함께 내려갔다.


 


이 방문길 자체에 대해서는 내일 신짱이 많은 사진과 함께 구체적인 내용들을 쓸 것인바, 나는 노무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지난 1년간의 의미와 봉하마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란다.


 


 




 


 


친애하는 로마 시민, 그리고 동포 여러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는 카이사르를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시신을 장사 지내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여기 현명하신 브루투스와, 역시 현명한 사람들인 그 일파의 허락을 받아 나는 카이사르의 장례식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나의 친구였고, 나에게 성실하고도 공정했습니다. 그러나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가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중략). 가난한 이들이 굶주림에 울부짖을 때, 카이사르는 그들과 함께 울었습니다. 이것이 야심입니까? 야심이란 이보다는 더 매정스럽지 않고서는 품을 수 없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브루투스는 그가 야심가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여러분의 가슴과 마음을 뒤흔들고 격분을 자아내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면, 브루투스에게도 카시우스에게도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나는 그와 같은 현명한 사람들에게 덤비는 것보다는 차라리 죽은 자에게, 나 자신과 여러분에게 화살을 돌리겠습니다.


 


여기 카이사르의 도장이 찍힌 문장이 있습니다. 그의 밀실에서 알아냈는데, 이것은 그의 유서입니다. 이 유언은 평민들만 들어 주십시오. 아니, 죄송합니다. 읽지 않겠습니다. 그들은 숨진 카이사르를 찾아가 그의 상처에 입맞추려고 했고, 그의 거룩한 피를 손수건에 묻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기념으로 그의 머리카락 한 오라기를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때 자신들의 유서에 그 사실을 언급하고 후손들에게까지 귀중한 유산으로 들려주겠노라고 말입니다.


 


참으십시오, 여러분. 이 유서를 읽어서는 안 됩니다. 카이사르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했던가를 알게 되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무나 돌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사람인 까닭에 카이사르의 유언을 들으면, 여러분은 감정이 폭발하여 광란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좋을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두렵습니다. 여러분, 좀 참아 주시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러분에게 유서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나는 비수로 카이사르를 찌른 저 현명하신 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이 유서를 기어코 읽어 달라는 겁니까?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시신 주위에 둘러서십시오. 그러면 그 유언을 남긴 분을 여러분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내려갈까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여러분에게 눈물이 있다면 지금 흘릴 차비를 하십시오. 여러분은 모두가 이 망토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자리로 카시우스의 비수가 뚫고 들어갔습니다. 이 옷이 어떻게 찢겨져 있는지 보십시오. 이곳으로는 카이사르의 따뜻한 사랑을 받은 브루투스가 비수를 꽂았습니다. 브루투스가 그 저주받은 칼날을 뽑자, 카이사르의 피가 이렇게 그 뒤를 좇아 흘러내린 자국을 보십시오.


 


착한 친구들, 마음씨 고운 친구들이여, 여러분을 선동하여 돌발적인 홍수와도 같은 폭동을 몰아와서야 되겠습니까! 이 짓을 한 그들은 현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고귀하고 명예로운 자들이기에, 여러분에게 이치를 따져 대항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브루투스와 같은 웅변가가 아닙니다. 다만 여러분 모두가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친구를 사랑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내가 공개석상에서 카이사르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람의 무릎를 끓게 할 기지도, 말도, 가치도, 행동도 없으며, 그러한 목소리도 언변도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 스스로 알고 있는 바를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애로운 카이사르의 상처들을 보여 드리면서, 이 가엾고도 가엾은, 아무 말도 못하는 상처가 나 대신 말을 해줄 것을 간청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브루투스요, 브루투스가 안토니우스라면, 안토니우스는 여러분의 기개를 북돋우고 카이사르의 상처마다 혀를 달아, 로마의 돌마저 감동하여 일어나 폭동을 일으키게 할 것입니다.


 


 


…여기 한 사람의 카이사르가 있었습니다. 언제 또 그러한 사람이 나오겠습니까?


 


(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중 안토니우스의 연설 일부)


 


 


왜 이 글을 이토록 길게 인용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을란다. 저 연설문 중에서 몇몇 사람 이름들과 ‘야심’ 같은 몇 단어만 바꾸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어떤 이의 이야기가 된다는 것도 굳이 강조하지 않을란다.


 


카이사르와 노무현의 상황은 여러모로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2천 년이라는 세월을 무색하게 하는 두 사람의 공통분모가 있다. 카이사르와 노무현 둘 다 평민의 친구였다는 것,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명한 자들'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되었다는 점이다.


 


카이사르는 권력자였고 로마 제정의 기틀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지만 이는 사실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가 로마 초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의 결과론적인 해석에 가깝고, 정작 그 자신은 우리가 알던 어떤 이처럼 살아 생전 원로원의 귀족들에 대항하고 평민들을 옹호하는 관점을 견지했다. 또 그와 마찬가지로 카이사르도 당시의 다른 권력자들과 달리 유쾌하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허나 혈통으로 뭉쳐진 귀족들에게는 위험한 이단자였고, 그들이 단죄한 야심이란 것도 결국 자신들의 타고난 권력을 위협하는 의미에서였다.


 


카이사르가 계속 살았다면 로마는 평민의 힘을 통한 공화제의 완성을 보았을까? 아니면 결국 황제로 등극해서 권력의 정점을 완성했을까. 아무도 모른다.


 


허나 역사에서 어차피 가정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가 (당시 기준으로는) 평민의 친구로 살다가 권력을 세습하던 자들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 뿐이다. 그것이 카이사르를 유럽 전통 속에 있는 다른 위정자들과 구별하게 만드는 이유고, 아직도 존경 받고 기억되게 하는 이유이며, 세익스피어로 하여금 저 연설문을 안토니우스의 입을 빌어 말하도록 만든 이유다.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은 워낙에 얽히고설켜 뭐가 뭔지 알 수 없을 때도 많지만 그 주된 줄기는 항상 두 부류의 투쟁과 대립이었다. 그리고 그 두 부류는, 이 글의 맥락에서는 ‘현명한 자’와 ‘평민’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것은 계급이나 그 유사한 구분들과 비슷하지만 한편으로 다르기도 하다. 현명한 자를 규정하는 것은 물리적인 조건보다는 되려 멘탈리티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리더는, 안토니우스의 표현을 빌자면 ‘고귀한 자’ 들이다. 이들은 생득적으로 고귀한 신분을 타고 났거나, 후천적인 활동의 결과로 이를 체득한 자들인데 그 중심에는 물론 돈과 지위, 권력이라는 물리적인 조건들이 자리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를 죽인 이들, 즉 ‘현명한 자들’은 그들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신분이나 능력, 금전적으로나 지위에서 이들보다 훨씬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거대한 피라미드의 하부가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언젠가 고귀한 자에 합류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무한히 긴 줄의 어딘가에 서 있다. 스스로 어디쯤에 있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단지 그 줄에 서 있기에 현명하고 우월하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이너서클에 포함되지 못하면서 그 무한 동심원의 어느 궤도면을 돌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이들은 대체적으로 동물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집착하고 약자에 대한 경멸을 공유하며 (고급스럽게 포장된 경우도 많지만) 애써 들어서 있는 긴 줄과 동심원에 누군가가 새로 들어서길 바라지 않는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은 어느 정도의 신분이나 지위, 금전을 갖고 있다고 해서 현명한 자들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충분 조건이 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집착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가 삶의 다른 어떤 면들보다 강력해야 한다. 그것이 능동적이냐 수동적이냐도 중요하지 않고 조그만 구멍가게를 운영한다 한들 정신적인 면에서는 큰 기업체의 사장보다 훨씬 큰 ‘현명함’을 가질 수 있다. 단지 기회가 없고 엄두가 안 나는 관계로 티가 안 나는 것일 뿐.


 


그리고는 이제 ‘평민’이 있다. 평민의 기준 역시 재산이나 지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들과 관계 없이 그들은 ‘삶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합리성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적인 삶, 자기자신만의 욕망만이 아닌 타인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의 행복… 이런 것들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를 하거나 돈을 번다면, 그는 아무리 부자건 지위가 높건 결국 평민이다.


 


그리고 이 평민을 현대식으로 표현하자면 딱 들어맞는 단어가 하나 있다.


 


시민.


 












노무현의 죽음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것은 바로 이 시민과, 시민의 지위로는 도무지 만족하지 못하는 ‘현명한 자들’ 간의 간극이었다. 정치인이나 언론 등 소위 ‘사회 지도층(이 표현은 열라 싫지만 그 모순됨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사용)’을 제외하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이 구분이 명백하게 드러난 것은 건국이래 처음일 거다.


 


예컨대 분향소만을 놓고 생각해보자. 공식 분향소는 저들, 현명한 자들이 만들었다. 개인 사정이나 상황에 따라 거기에서 분향을 했다고 해서 모두 ‘저들’인 것은 아니지만, 대한문의 시민 분향소는 그것을 참을 수 없던 시민들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여기에서 분향한 사람들은 모두 ‘시민’이었다. 이렇게 이미 첫날부터 분할은 시작된 셈이다.


 


이런 상태는 장례 기간 내내 지속되었음은 물론, 다른 형태로도 확산되어 이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럴 거다. 지금까지 역사가 모두 그래 왔으니 이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과거에는 그 분할의 형태가 뚜렷하지 않았거나, 다른 복잡한 기준들로 지나치게 포장되거나 윤색되어서 잘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이렇게 노무현의 서거를 기점으로, 이제 시대는 우리들 자신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재산의 유무나 생산 수단의 유무 같은 지난 세기의 객관적 관점에 더해,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가치관’과 ‘정서’가 새로운 기준으로 등장한다. 이때 가치관의 근간은 합리성과 개방성이며, 정서의 근간은 약자에 대한 연민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열정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민을 진보나 보수, 좌와 우 등의 파악하거나 규정하는 일은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데, 시민됨의 기준이 정치적 성향이나 이데올로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명해지는 것은 노무현의 상징성은 진보도, 좌파도, 심지어 민주주의도 아니라는 점이다. 그가 상징하는 것은 그저 평민이고, 그 평민이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 시민이다. 그는 ‘깨어있는’ 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시민 앞에 붙였지만, 이제는 시민이란 말 자체에 깨어있음은 기본으로 전제되는 거다.


 


이 시민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상식이다. 그리고 이 상식은 이미 우리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교과서에 다 배운 그것들, 그 단순무비한 가치들을 삶에서 실천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장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 한때는 누구나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지만 세파에 찌들고 유혹에 굴하며 조금씩 잊고 버리고 외면한 바로 그것들이다.


 


이데올로기고 혁명이고 민주주의고 뭐고, 따지고 보면 그 가치들을 다시 되찾는 것, 즉 우리가 가장 어리고 순수했을 때 옳다고 배우고 믿고, 또 나이가 들어서는 우리 애들에게 가르치던 그것들과 실제 세상과의 거대한 위선의 간극을 줄이는 방편들인 거다.


 


우리가 재산의 유무와 정치적 성향과 지역, 나이 등등의 조건에 관계없이 노무현을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뽑았던 것, 탄핵 책동에 그토록 분노했던 것, 그리고 그에 대한 많은 현실적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러운 죽음에 가족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고 또 분개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노무현, 그는 우리가 차마 간직하기를 포기하고 얼굴을 돌려 버리고 만 그 순수한 상식들, 세월이 지나면서 속세의 가치에 동화되고 그것을 이용하게까지 된 우리들이 포기해 버린 그 모습을 죽을 때 까지 간직했던 사람이었다.


 


대통령이 되어서까지 평민일 수 있었던, 작은 지위와 시시한 권력, 초라한 부에도 이미 변해 버리는 우리들로서는 가장 해내기 힘든 그 일을 실제로 해낸 사람이기 때문이다.


 


 







 


 


...묘역에는 박석이 깔리고 많은 방문객들로 편의시설이 조금 들어서긴 했지만, 봉하마을은 1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것 없었다.


 


그러나 1년 만에 봉하로 돌아온 나에게 이곳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민주주의의 성지가 되었나? 아니다. 위대한 영웅의 전각으로 승화되었던가? 그것도 아니다. 그런 말들은 노무현이나 봉하와 어울리지 않는다.


 


노무현이 태어나 죽은 그곳은 이제 평민들, 시민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폭우를 뚫고, 천금 같은 연휴를 포기하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찾아갈 곳이 고향 외에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누군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유는 그곳이 가장 편한 곳이기 때문이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말이다. 속세에서 무슨 짓을 하며 살던 그곳에서는 다시 수십 년 전 그때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 내가 대통령이라 한들 다시 소년이 될 수 있다. 언제나 어린 나를 기다려주는 산천과 부모와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무현은, 봉하마을은 우리의 마음의 고향이 되었다. 고향에 가는 길이 언제나 순탄치는 않다. 특히 이번처럼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속도로는 주차장이 되어 버리는 상황에서는 몸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지친다. 솔직히 다들 힘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고향에 다녀왔다.


 


평민인 우리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