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1. 피고용세습

 

그동안 윤석열 정부의 노동 탄압 시리즈로 금속노조·금융노조·건설노조를 거쳐 이번엔 피고용(被雇用) 세습을 뿌리 뽑겠다고 나섰습니다. 이에 노동부도 전국 1,200여 개의 사업장에 감독을 실시하기로 했고, 추가로 회계장부를 제출하지 않은 42개의 노동조합에 관해서는 2주간 현장 행정조사를 예고했습니다.

 

피고용세습과 관련하여 노동부는 2022년 8월, 100인 이상 사업장 1,057곳의 단체협약을 전수조사해서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확인된 60곳에 시정조치를 했고, 이 중 54곳은 2023년 4월 기준 개선을 완료했습니다. 이 시점에 핵심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기아자동차와 동 노동조합의 단체협약 제26조에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라고 명문화한 내용입니다. 

 

기아자동차 측은  2014년부터 단체 교섭 때마다 해당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하며 "십수 년 전부터 실행에 옮겨진 적 없는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했습니다. 비슷한 내용이 있던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9년 이를 삭제했습니다. 

 

사문화된 조항이 사실이라면 단체협약에서 삭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단체협약의 조항을 추가, 삭제하거나 수정할 때 해당 조항이 조합원에게 불리할 경우,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측과 노조 대표자 측이 삭제나 수정에 합의한다 해도 조합원의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지요. 단체협상의 경우 1년에 한 번 여러 가지 현안들을 함께 논의합니다. 이미 6개월 전에 협상이 완료되었고, 지금 당장 삭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기아자동차 측에서도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했을 정도지요.

 

더불어 피고용세습과 관련해서 의문이 드는 것은 해당 조항을 통해 입사 혜택을 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조사 결과가 없는 지점입니다. 가끔 "누구 아들은 백으로 어디에 들어갔다"라는 이야기가 들리긴 하지만 그게 실제 피고용세습의 사례인지 여부는 정확하지 않은 "카더라"에 불과해 보입니다. 

 

실제 피고용세습이라 할 사례는 오히려 공공기관들에 있었습니다. 2019년 공공기관 직원의 가족 친척 특혜 채용 의혹 조사 결과 서울교통공사에서 이 같은 행위가 사실로 드러났지요. 공공기관 직원들의 자녀·형제·배우자 등이 계약직 채용 후 정규직 전환, 면접 평가 시 점수 몰아주기 등으로 채용한 사실이 있었지요.

 

l_2018103001003824900293951.jpg

2018년 10월 당시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운데)가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서울교통공사의 고용세습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들어보이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이런 피고용세습이나 채용 비리의 경우 해외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는 해외의 고용이 더 투명하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해외의 경우, 대부분 채용 과정에서 실무부서의 권한이 강합니다. "나와 함께 일할 직원은 내가 뽑는다"의 마인드와 실제로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 후보를 추천하기도 하지요. 또한 직무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직무와 맞지 않은 인재를 외부 압력에 의해 채용하더라도 성과가 떨어지거나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면 해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이는 다른 나라들의 노동유연성이 한국보다 강하기에 나타나는 터입니다. 노동유연성은 다른 큰 주제이기에 따로 기회가 있을 때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maxresdefault.jpg

'채용 비리 의혹'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대법원에서도 무죄 확정(2022년 6월)

출처-<유튜브채널 'MBC NEWS'>

 

물론 이런 시스템이 자리 잡기 위해서는 실무진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환경과 성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외부 압력에 의한 인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추천에 대한 신뢰도 쌓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유독 이 같은 관행이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개선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약한 처벌 수위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피고용세습과 같은 불법행위가 적발되더라도 최고 벌금은 겨우 500만 원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이 본격화된 것도 과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원 가족의 고용 의무이행에 관한 소송에서 본격화되었습니다(2012가합2732 판결). 당시 산재 탓에 사망한 조합원의 가족을 고용하라는 소송에서 법원은 해당 단체협약이 민법 제103조에 반하는 약정이기에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후 피고용세습에 대한 논의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으며, 그 당시 관련 단체협약 조항이 있는 사업장들에 시정명령을 내린 바 있죠. 그리고 관련 내용에 대한 법률, "고용정책기본법 개정안"은 19대 국회에서도 발의가 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425a8c8e-0581-4169-b3cb-8221f0016dad.jpg

평등 │ 공정 │ 현실

출처-<Morgan Marks. 'A Discussion

on Equity and Equality'.(Powerhouse Montana)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는지 윤석열 대통령은 "세습 기득권", "반드시 뿌리 뽑겠다"라고 말하며 개혁이라고 하기도 부끄러운 문제를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윤석열 정부의 적은 노동자입니다. 지지율 위기 때마다 노동 개혁이라는 카드를 꺼내서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냈었죠. 최근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지자, 이번에도 "노동 개혁" 카드를 꺼내서 지지율 만회를 하려고 하는 것일 테죠. 하지만 실속 없이 보여주기식, 편 가르기식 정책으로는 더 이상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을 겁니다. 

 

2. 경영세습

 

말이 나온 김에 피고용세습과 함께 사회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세습은 경영세습일 듯합니다. 경영세습이 문제가 되는 것은 후계자에 대한 '초고속 승진', '형식적 경영수업', '경영 능력 검증 시스템 부재'일 터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후계자를 입사시키고, 경영수업이란 이름으로 몇 년간의 해외 유학과 기업의 요직에 배치되어 40살이 되기도 전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경영권을 세습하고 있습니다. 5대 그룹이라 일컫는 삼성(3대 세습)·현대(3대 세습)·SK(3대 세습)·LG(4대 세습)·롯데(2대 세습)의 경우 회장은 단순히 경영자가 아닌 총수·사주(오너)라고 불리며 경영세습을 당연하게 인식합니다.

 

소규모 중소기업이나 가족기업의 경우, 세습경영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본인의 자금을 내 사업을 시작하고, 가족이 경영하며, 기업을 매각하지 않는 이상, 대를 이어 경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외부의 자금이 기업에 들어오고, 주주가 생기게 되면 더 이상 그 기업은 개인이나 가족의 소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71_81_713.png

사주 일가 세습 경영인들

 

일부는 "경영권이 세습되어야 책임경영을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농·진로·해태·동아·삼미·한일·한보 등 한국의 굵직한 재벌기업이 모두 2세의 횡령·배임·탈세 등 불법 행위를 저질러서 지금은 사라지거나 합병된 것을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야 말할 것도 없고 국가의 대외신용도도 추락했습니다.

 

maxresdefault (1).jpg

한진그룹 일가

출처-<유튜브채널 'Newstapa'>

 

경영 능력의 검증 없이 세습이 이루어지는 것은 지배구조(governance)가 선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데 있어 지분율보다는 이사 구성이 더 먼저 작용하는 것입니다. 한국 재벌은 모든 권한이 총수에게 집중된 1인 지배체제이며, 이사회는 형식상 최고 의사결정기구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총수의 결정을 따르는 거수기 역할이지요. 이런 이사회에 총수 자녀의 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터입니다.

 

2023030122090412587_1677676144_0924289778.jpg

출처-<게티 이미지>

 

게다가 이러한 세습 과정에서 각종 불법, 탈법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명했던 삼성그룹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은 전형적인 재벌그룹의 세습 과정을 보여주며 불법으로 판결되더라도 이미 세습된 경영권에 대한 박탈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사건으로 이병철-이건희-이재용의 3대 세습을 공고히 하였지요.

 

20230504_121446.png

출처-<공정뉴스 기사 갈무리>

 

세계적으로 유명한 발렌베리 가문을 비롯한 유럽의 가족 기업의 경우, 엄격한 후계자 선발 시스템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부모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나오고, 세계 시장의 다른 기업에서 근무하면서 역량을 입증하는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기업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후보자가 됩니다. 

 

150529515089_20170914.jpg

출처-<한겨레>

 

경제 선진국에서는 창업주와 전문 경영진이 나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자식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경우, 이사회 및 주주들의 철저한 검증 끝에 이뤄집니다. 이 같은 이유는 어마어마한 상속세로 인해 지분의 상당수를 잃기 때문입니다. 상속세를 감안하고라도 경영권을 세습했다가 경영에 실패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대주주로써 전문 경영인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입니다.

 

11238_12600_5359.jpg

출처-<더스쿠프>

 

한국의 경우 상속세를 부과하면 상속세를 낮춰달라 하고, 상속세가 높을 경우 편법을 이용하여 세습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승계'라는 이름의 세습이야말로 윤 대통령의 말처럼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부당한 기득권 세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피고용세습에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야겠지요. 그러나 기울어진 언론 진영 속에서 한국 특유의 경영 세습 문화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윤 대통령님께서도 공정하다고 여기리라 믿기에 한 번 제시해 보았습니다. 둘 중 진정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는 무엇일까요?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