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병 : 선생님, 다음 주엔 뭐 하죠?
황쌤 : 글쎄 뭐 생각해둔 거 있나?
근병 : 고기 한 번 해야 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더 이상 채소로 스텝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요 흑흑.
황쌤 : ㅎㅎㅎ그럴까? 대놓고 고기 한번 할까? 무슨 고기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술이 하나 있긴 하지.
황쌤이 꺼낸 치트키는 바로,
한우 두태 기름. 콩 두 클 태. 콩팥 기름이라는 뜻이다.
얼핏 보면 녹여먹었다간 내장을 파괴해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비주얼이지만,
살에 껴있는 지방과는 달리 내장에 붙어있는 이것은 몸에 이로운 불포화지방이다.
고소하고 풍부한 맛을 잔뜩 머금고 있어서, 육개장, 찌개, 국밥 등의 풍미를 올리는데 주로 사용되는 식재료이다.
황쌤 : 두태를 구해서 팬에 녹인 다음 고기 아무거나 구워봐봐. 바로 투뿔 등심 맛이 날 거야. 마블링 고기라는 게 결국 기름맛으로 먹는 거거든.
우어어어. 소기름에 소고기를 굽자는 황쌤 말씀에 마음이 상온에 꺼내둔 소기름마냥 사르르 녹는다.
"간만에 쉽게 갈 수 있겠어. 헤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는 건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인생은 좀처럼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어디를 구울 것인가
요즘 주 출입처, 충정로 인근 마트.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어 근데 막상 와보니 금세 난관에 부딪힌다.
"소고기를 맛있게 굽는 법"
이라는 주제에 가장 적합한 부위는 어디인가.
맛있는 부위를 더 맛있게 구워야 옳은가, 좀처럼 구워 먹지 않는 부위를 구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합당한가. 그 방법의 최대치가 구워 먹을만한 정도에 그친다면, 그것은 시청자들에게 의미 있는 제안이 될 수 있는가. 적당한 구이용 부위를 업그레이드 시켜 최고급 맛을 내는 데에 도전한다면, 어느 등급의 어느 선이 과연 적당한가.
머릿속이 과부하가 걸려 멍청한 표정으로 쇼케이스를 쳐다보고 있을 때, 사장님 등장.
사장님 : 어 또 미션 하러 오셨나 보네요?
근병 : 우어어어어
사장님 : 이번엔 주제가 뭐예요?
근병 : 이러쿵 저러쿵,,, 지난주에 오이를 했는데 어쩌구,,, 작가님이 흐에에엑,,, 이번주엔 꼭 고기를 해야 어쩌구 저쩌구,,, 그래서 황쌤이 두태 기름을,,, 이래저래,,, 속닥속닥,,,,
사장님 :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근병 : 소고기 주세요. 살코기로요.
뭔 짓을 하든 아무튼 구울 거라면 힘줄 많은 사태보다는 양지가 나을 거라는 사장님의 고견.
호쾌하게 4kg 양지 덩어리 통째로 구입.
어떻게 자를 것인가
지체 없이 언박싱.
손질 전인 통 양지살의 웅장한 모습. 맨날 국거리로 세절된 것만 보다가, 시뻘건 게 졸라 맛있을 것 같은 고깃덩어리를 마주하니 뭔가 DNA 깊숙이 잠들어 있던 원시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역시 육식이 짱인듯.
일단, 일병 정기 휴가 나온 군인이 헌팅포차 출격 전에 얼굴에 비비크림 바르듯, 섬세한 터치로 겉면에 물기를 닦아 낸 다음.
기름 부위 제거.
칼로 모양을 만들기 전에, 근육의 결 모양대로 덩어리들을 손으로 분리해 보자. 인위적인 재단보다는 자연스러운 분리가 살결의 방향을 파악하기 쉬울 것이다.
양지는 소 앞가슴과 배 위 갈비뼈 주변에 분포하는 살코기 부위다. 넓적한 모양 때문에 미국에서는 양지를 'plate'라고 부르기도. 기름이 적고 촘촘한 결합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주로 국이나 탕용으로 사용된다. 넓적하게 썰린 냉면집 소수육이나 결대로 죽죽 찢어 놓은 육개장이나 장조림의 고기가 바로 이 부분.
이 결을 직각으로 다 썰어내야 구워 먹든 발라먹든 그다음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손질에서 살결 파악이 중요한 이유.
다음은 근막을 경계로
살들을 잘 나눠보자.
고깃덩어리를 이래저래 잘라 늘어놓고 보니
동네잔치해도 될 듯 ㄷㄷㄷ
어떻게 구울 것인가
연구 시작
일단,
실험 1) 고기 모양에 따른 비교
큐브 vs 넓은 면
탐구 내용 - 숙성이나 다른 연육 작업을 하지 않은 쌩 양지 부위가 구워졌을 때 어떤 질감이 나오는지.
실험 2) 두태 기름 투입 여부에 따른 비교
쌩으로 구운 양지 vs 두태 기름에 구운 양지
탐구 내용 - 과연 두태 기름이 고기 맛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인지.
아래 - 쌩 / 위 - 두태
오늘의 1빠 시식자. 다스뵈이다 메인 연출, 벙커 나PD님.
아무것도 하지 않은, 2등급 쌩 양지 시식.
나PD : 그냥 먹어도 맛있는뒈?
원래 고기를 좋아하시나...
두태 기름에 구운 양지 시식.
나PD : 별 차이 없는 거 같은뒈??
어... 그러면 안 되는데...죻된건가..
근병 : 아 피디님 그 옆에 거 드셔야 해요.
나PD : 아 쏘리 쏘리.
나PD : 에이 이건 반칙이지 ㅎㅎㅎㅎ
휴 다행... 아이템 엎어질 뻔.
아무튼 간에, 여러 스텝들에게 실험을 반복한 결과는,
1) 큐브 VS 넓은 면
큐브 - 씹는 맛이 연하고 육즙이 느껴진다.
넓은 면 - 질기고 퍽퍽하다.
큐브 승.
2) 쌩고기 VS 두태 기름 고기
두태 기름 압승.
구웠을 때 질겨질 줄 알았던 양지살이 굽기 조절만 잘하면 의외로 부드럽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렇다면 한발 더 나아가 보자.
양지 덩어리를 보통의 스테이크 굽기처럼 겉면부터 바싹 구워보자.
이걸 시어링(searing)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고기 표면에 캐러멜라이징과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난다. 그게 뭐냐면... 나도 잘 모르지만 아무튼 겉면을 빠싹 구우면 졸라 맛있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하면 겉면과는 달리 안쪽이 하나도 안 익은 생고기라는 것. 보통은 이 상태로 오븐에 넣어 안쪽을 더 익히거나, 고기를 미리 뜨뜻한 물이 유지되는 수조에 담가 안쪽을 서서히 익히고 나서 나중에 팬에 겉면을 태우는 수비드 방식을 택하지만.
겸손한 바보 레시피에선 그딴 걸 쓰지 않기 때문에, 그냥 팬 뚜껑을 덮어 약식 오븐을 만들어 보자. 어차피 양지살이라 안쪽을 많이 익혀봤자 손해라는 계산. 대충 핏기만 가시면 되지 않을까, 뭐 그런 안일한 계산이 깔려있다.
불을 끈 팬의 잔열 속에 한참을 뒀다 꺼낸 양지 스테이크.
그럴싸
고기 두께를 올려서 구워보니 두태 기름의 한계가 드러난다.
얇게 저며 구웠을 때는 고기의 풍미를 충분히 끌어올리지만, 고기가 두꺼워지면 기름이 닿는 면이 줄어들어 풍미 커버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
고기가 구워질 때 두태의 은총을 오롯이 머금으려면 고기를 얇게 썰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오버쿡된 양지 특유의 뻣뻣함이 강조되어 구운 고기로서의 경쟁력이 급감하는 것.
이 중간 어딘가에 있을 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츄라이 앤 츄라이 해본 결과
마침내 도달한 결론.
1) 고기는 큐브로 썬다. 겉면만 빠르게 익히면 부드러운 식감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6면에 모두 기름을 닿게 구울 수 있기 때문에 두태의 풍미까지 확실히 챙길 수 있다.
2) 두태 기름 2에 버터 1을 추가해서 오일의 파괴력을 올린다.
그렇게 완성된, 금요미식회 저등급 소고기 스테이크 레시피.
온에어
아침부터 컨디션 좋으신 황쌤.
한우협회 화이팅!
불금이라 그런가 출연자분들이 다들 컨디션이 좋으시다.
역대급 방미 성과(링크)를 거두고 컴백하신 각하.
내가 어쩌다 벼락출세를 해가지고, 매주 이렇게 역대 대통령들을 알현 중.
이 분은 현역이라 그런가 좀 쉽지 않네.
그 어느 때보다 스탠바이하는 마음이 편안하다.
접시 드가유.
입사 이래로 가장 기분 좋아 보이시는 사장님 얼굴.
공장장 : 어우 마시써 으하하하. 그래 바로 이거거덩. 누가 이걸 2등급 양지라고 한단 말인가!
황쌤 : 이거 투쁠 한우 이겨!
대기자님 : 누가 먹어도 투쁠에 견줄만하죠.
공장장 : 투쁠은 기름기가 많아 느끼해서 많이 못 먹게 되는데, 이거는 그런 게 없네!
황쌤 : 포인트는 여기에 있어요. 이 두태 기름은 불포화지방이 높아요. 게다가, 이 풍미는 우리가 소고기에서 맡을 수 있는 가장 고급스러운 향이에요.
온 동네방네 퍼진 고기 굽는 냄새에 난리가 난 대기실.
변기자님은 이미 1열 착석.
역시 고기는 불판 앞에서 먹어야 제맛.
금요음악회 '카리나 네뷸라'팀의 재즈 공연과 고기에 취해
폭주중이신 슨배님들.
공연을 마치고 진짜 악기 두고 나온 음악회팀.
전남 영광입니당.
급 동네잔치.
금요 음악회팀을 위한 즉흥 요리.
손님들이 맛있게 드셔서 뿌듯.
또 다른 시선
그리고 주말 특근
(계속)
사진/영상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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