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공 아이템 회의를 마치고 나온 제작진. 작가님이 다급한 표정으로 찾는다.
도작가 : 기자님, 비상사태!!
근병 : 무.. 무슨 일이시죠... ㄷㄷㄷ
도작가 : 이번 주 아이템 바꿔야 할 거 같아요.
원래 황쌤과 준비하고 있던 요리는, 보리된장으로만 볶은 새로운 짜장면. 제작진 회의에서 짜장면이라는 요리의 평범함에 아이템 재고 요청이 들어온 것. 당시 방송까지 남은 시간, 22시간.
평소 침착하기로는
편집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근병이지만
생방송을 앞둔 출연자가 된 근병의 멘탈은
여린 쿠크다스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공장장 : 일어나라 근병아.
어느새 다가와 옵션을 제시하는 공장장님.
1)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 고기가 들어가야 해)
2) 어린이도 어른도 마냥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아무튼 고기가 많이 들어가야 해)
3) 연휴에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 (= 그러니까 고기가 많이 들어가야 해)
공장장 : 짜장면은 시켜 먹으면 되잖아!! 다른 좀 더 신박한 거 해보라고 우하하하
넹.
궁여지책
지난 금요일. 두태 기름 편 방송을 잘 마치고 집에 돌아온 근병은,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술을 퍼마시고,
다음날 밀려오는 숙취를 해결하기 위해 냉장고로 향한다.
전날 방송에 쓰고 남은 재료들. 요걸 어떻게 해치워야 잘 해치웠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을 하다가,
일단 냉장고에 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꺼내서 다 때려 넣고 볶아봄.
이대로 안될 것 같아, 찬장을 열었을 때 하필 눈에 들어온 게 오므라이스 해먹고 남은 돈까스소스와 캐찹.
고기+두태기름 + 돈까스소스 + 캐찹
=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졸라 맛있는 거
라는
기적의 논리로 탄생한
근본 없는 오뚜기 해장 스프를 해먹고,
역시 대기업이 짱이긴 짱이구나를 깨달으며 주말을 보냈었더랬다.
하지만 그르타고.. 이걸 방송에서 하게 될진 몰랐다.
어떻게든 되것지 뭐...
오뚜기야 힘을 줘
이제 회사 앞 정육점에 가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시는 2등급 한우 살코기 부위.
몇 번 해봤다고,
살결 찾는 것이 익숙해졌다.
씹는 맛이 좋게 살결의 직각으로
잘 썰어내주자.
이번에도 한입 사이즈 주사위 모양으로 재단.
집과 회사 냉장고에서 장기 투숙중인 채소들을
모조리 발굴해 긁어와서,
고기와 같은 한입 사이즈로 손질.
두태와 버터 황금 비율.
두태 2 버터 1
두태 기름 안에는 손질 보관 과정에서 생기는 수분이 숨어 있다. 혹독한 임상실험 결과, 두태를 녹일 때는 약불에서 천천히 녹이는 게 신상에 이롭다.
얼굴에 기름 팝콘이 튀면 무지하게 뜨거운 데다가, 요리 초장부터 기름을 뒤집어쓰면 기분이 상당히 더럽다. 꼭 주의하시길.
이제 고기를 조질 시간. 안전하게 잘 녹인 두태+버터 기름에 고기를 투하하고, 불 온도는 최대치.
고기를 바싹 튀기듯 익혀 줄 예정.
이렇게 진한 갈색이 되도록 바싹 익혀줄때 고기 겉면에 '마이야르 반응'이란 게 일어난다. Maillard reaction. 프랑스의 의사 겸 화학자 루이 카미유 마이야르가 발견한 화학 반응인데, 마이야르 아저씨는 사실 요리에 큰 관심이 없었다. 인체 세포 속에서 아미노산과 당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연구하다 발견한 것.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반응이 요리에서 늘상 일어난다는 것 까지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반응이 일어나면, 식욕이 당기는 여러 좋은 향과 감칠맛이 생성된다. 고기를 구워먹을 때 겉면이 바삭하게 익으면 뭔가 더 고소한 맛이 올라오는 것 같은 게,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라는 거다. 빵이나 부침개도 살짝 눌은 듯한 끝부분에 왜인지 더 손이가는 것도 마찬가지.
마이아르 반응이 일어나려면, 재료 표면의 수분이 빠르게 증발할 수 있는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고기가 필연적으로 많이 익혀져야 하는 것. 이렇게 지방이 적은 살코기로서는 금세 오버쿡되어 육질이 질겨지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 구이로 먹을 것이 아니라 나중에 물을 때려 넣고 뭉근하게 오래 익힐 예정이기 때문에, 고기가 질겨질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 소고기는 또 수분에 오래 익히면 익힐수록 부드러워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까. 지금은 일단 센 불에 조져 감칠맛을 가능한 끌어올리는 데에 집중해 보도록 하자.
채소도 고기와 같은 불맛 효과를 노리며,
센불에 볶볶볶.
기름에 볶인 채소가
갈변하며 어느 정도 숨이 죽어갈 즈음.
내용물 1.5배의 온수 추가.
여기서부턴 시간과의 싸움.
1.5배의 물이 1배로 줄어드는데 걸리는 시간을 약 15분 정도로 잡고 그것을 1회로 본다면,
1) 1회를 끓였을 때,
산뜻하게 씹히는 고기 채소의 식감과 산뜻한 국물.
2) 1)에 0.5배의 물을 추가해 2회를 끓였을 때,
부드러운 고기 맛과 좀 더 깊은 국물.
3) 2)에 다시 0.5배의 물을 추가해 3회를 끓였을 때,
바스러지듯 포슬포슬한 고기 맛과 완전 녹진한 국물.
세 가지 갈림길이 있다.
일단 리허설이니 1회 정도만 끓인 다음,
갓뚜기 돈까스 소스와
갓뚜기 토마토 캐찹을 1대1 비율로 투입.
여기서부턴 이제,
오뚜기의 영역.
너무 대기업에 의지하는 것 같으니 페퍼론치노를
적절하게 부셔 넣어 스튜의 느끼한 뒷맛을 눌러 산뜻함을 강조해 보자.
누가 먹어도 맛있는,
오뚜기의, 오뚜기에 의한
겸손공장 특제 소고기 스튜 완성.
두목님 최종 시식평.
공장장 : 으하하하하 그래 이거야!! 맛이써!!! 죽음이네 죽음!!! 이거 제목을 <죽음의 스튜>로 하자.
온에어
비 오는 어린이날 아침.
자고로 비 오는 날엔 빵을 구워야 하는 법.
스튜에 찍어 먹을 빵을 버터에 살짝 구워보자.
휴일 이른 아침부터 속속 도착하는 출연진들.
방송 직전에 스튜를 오래 끓일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소스에 미리 푹 졸여 놓은 고기.
소스를 가득 머금고 파근파근 부드럽게 부서지는 게, 이대로 빵 위에 올려먹고 끝내버려도 손색없지만
방송이 또 그라고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므로, 한소끔 더 끓여주자.
식감을 위해 당일에 익히려고 놔둔 채소를 손질하는 사이,
미식회 슨배님들 출근.
한눈에 소스의 범상치 않은 빛깔을 알아보신 미식회 센터.
오뚜기 입니다....ㅎㅎㅎ
황쌤 : ㅎㅎㅎ
대기자님 : ㅎㅎㅎ
대기자님 : 스튜라고 하는 요리의 본질이 그거죠. 멋부리지 않고 있는 거 대충 긁어모아가지고 쏟아부은 다음에 푹 끓여 양을 늘려먹는.
역시 대기업 소스보다 더 확실한 황쌤과 대기자님 품평.
마침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덕도 많이 보는 듯.
MBTI 빼박 F, 박시동 평론가님.
확고한 T 재질, 류밀희 기자님.
스튜 한 그릇에 비처럼 촉촉해진 F의 갬성.
아차 싶은 F, 저널리스트 황쌤.
공장장 : 어린이날, 금요미식회 입니다. 어린이가 좋아할 만한, 하지만 어른도 맛있게.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대기자님 : 맥주나 소주 안주로도 좋은데 애들도 먹을 수 있겠어요.
공장장 : 그니까! 달짝 지근 하면서!!!
공장장 : 이거 제가 미리 먹어봤거든요? 이거 죽여요. 어제 네 그릇 먹었어요. 네 그릇. 으하하하 스튜 오브 데쓰!!!
공장장 : 참고로 오뚜기한테 광고 받은거 아닙니다잉? 으하하하하
오뚜기 홍보 담당자님 제 번호는 010...
또 다른 시선
(계속)
사진/영상 : 금성무스케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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