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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지지 여론의 급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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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lobal News>

 

“1700억 세금이 아깝다!”

 

“불륜남이 왕이라니 엄청난 수치다!”

 

7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영국 국왕으로서 영국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은 엘리자베스 2세의 뒤를 이어, 불륜남 딱지로 평생을 살아온 찰스 3세(74세)가 왕위에 올랐다. 새로운 국왕 찰스의 대관식 날, 여론은 평소보다 더욱 차가웠다. 대관식을 앞둔 지난 목요일엔 영국 소도시 바스(Bath)의 로열 크레센드 앞 잔디광장에 누군가 남근 형상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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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3세 대관식 현장

출처 - <로이터 통신>

 

TV로 실시간 중계된 대관식 현장은 영국 왕실을 환영하는 인파로 가득하다. 대관식을 보기 위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시민, 비가 오는 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관식을 찾은 이들의 모습은 성공적인 대관식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장을 벗어나면, 영국 국왕 찰스를 환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20%대를 웃돌던 영국 왕실 폐지 찬성에 대한 목소리도 이제는 50%다. 절반으로 늘어났으니 영국 왕실 역사도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한때는 차밍(매력적인) 찰스

 

화면 캡처 2023-05-08 150530.jpg

여동생 앤과 찰스 3세

 

찰스가 처음부터 영국인들에게 눈엣가시였던 건 아니었다. 한때 ‘차밍 찰스’(Charming Charles)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으니 인기가 꽤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찰스는 영국 왕실 구성원 중 최초로 공교육을 받았다.  그전까지 왕실 사람들은 학교를 가지 않고 궁 내에서 모든 교육을 이수했다. 보안이나 안전 등 여러 가지 위험을 감수하면서 궁 밖에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함에 따라, 왕실 사람들도 시대적 요구에 순응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 움직임은 여왕이 자신의 자녀를 학교에 보냄으로써 본격화되었다. 아마 제대로 된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은 이때부터 였을 것이다.

 

찰스의 인생은 과거 왕가의 자손들과는 달랐다. 여왕이 '학교 의무 교육'이라는 국가 방침을 따르기 시작했고, 오랜 역사 속에서 지켜온 왕의 전통적 책무는 다 하지만 더 이상 군주로서 군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했다. 이 때문에 찰스의 인기도 덩달아 올랐다. 

 

비범한 왕실 사람들이 보여주는 평범성은 대중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게다가 중고등학교는 스코틀랜드에 있는 사립학교에서, 왕자 즉위는 웨일스에서 했으니(찰스는 웨일스의 왕자로 불렸다) 사실상 브리튼 섬 전체를 아우르는 군주로 크기에 손색없는 조건을 갖추게 된 셈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군 입대를 자청했던 것도 인기에 한몫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수부대만 이수한다는 공수훈련까지 받았으니 보는 이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이었겠나. 그뿐만 아니라 전역 후인 1976년, 개인 재산으로 <Prince’s Trust>라는 청소년을 위한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단체는 재능 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찾아 직접 교육 환경을 지원했다. 당시 찰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국민들에게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청년이었다. 

 

1등 신랑감으로 떠오른 차밍 찰스. 그는 1948년에 출생, 1957년 학교 입학과 동시에 21세의 나이로 왕자 즉위, 웨일스의 왕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즉위식에서 웨일스어로 연설하는 포용성을 드러냈다. 23세 군 입대, 제대 후 자선단체를 기획한 그는 영국인들에게 그 누구보다도 매력적인 후계자였다.

 

오점의 시작, 불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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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왕세자와 카밀라

 

1066년, 윌리엄 1세의 영국 정복 이후, 957년간 이어져 온 영국의 왕조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하지만 국왕으로서 왕위를 이어받은 이는 42명에 불과하다. 세월에 비해 왕위에 오른 이가 많지 않은 이유는 빅토리아,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이 60년 혹은 70년씩 왕위를 지켜낸 전직 왕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년 중 42명의 국왕. 비교 대상이 많지는 않지만 이들 중 불륜을 저지른 왕은 몇이나 될까? 

 

현대적 의미에서 불륜을 저지른 이는 없었다. 빅토리아도, 엘리자베스도 지고지순한 사랑을 했던 왕으로 기억되고, 이혼 후,  새 장가를 들면 들었지 불륜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18세기 영국의 절대 군주와 달리 20세기 국왕이 윤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매 순간 국민의 관심 속에 생활하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일반 시민과 같은 소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 왕실이었기에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더욱 컸다. 찰스가 쌓아온 선한 영향력의 이미지는 카밀라와의 불륜 이후, 하루아침에 추락하게 된다(앤드루 왕자의 아동 성 착취 문제 역시 한몫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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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스1>

 

영국 국민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어머니 엘리자베스도 죽기 진전까지 왕위를 넘겨주기 부담스러워했다. 9살에 책봉되어 오랜 시간 왕세자로서 어머니 곁을 지킨 그가, 무려 74세에 왕위에 오르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1세기 트렌드에 맞춰, 허례허식하지 않고 간소화된 대관식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국민 세금 1700억을 단 하루 만에 태워버린 영국 왕실. 그들의 이중성은 결국 왕실 폐지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다.

 

내 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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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왕이 아니다(Not My King)"이라는 문구를 든 시위대

출처 - <AFP 연합뉴스>

 

영국 내에서 왕실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유지되어 온 왕실을 하루 아침에 없애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의회를 통해 법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거의 없다. 사실상 폐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영국 국교, 성공회의 수장인 영국왕은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로 명맥을 유지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국외에서는 그 자리의 중요성이 커 보이지 않지만, 오랜 기간 영국에 거주한 경험상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기독교 문화는 지금의 영국을 지탱하는 받침대 중 하나다. 

 

기독교 인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에 따라 영향력 역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삶의 방식은 당분간 혹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역사적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인간의 습성은, 왕이 누구건 간에(신경질적인 불륜남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흘러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 때까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중세 모습 그대로를 구현한 왕실은 유럽에서 영국밖에 없다고 하니, 개체보단 전통과 형식을 유지하려는 권력의 움직임이 우세할 것이다. 늦게 왕위에 오른 만큼 재위 기간 역시 짧을 것으로 예상되는, 최초의 할아버지 왕 찰스. 찰스를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시위까지 벌어진 마당에, 앞으로 그의 업적보다는 언제까지 영국 왕실이 이와 같은 형태로 이어질 것인지 주목하는 일에 관심이 쏠린다. 

 

나야 대관식 덕에 각종 세일과 공짜 음식을 누릴 수 있었던 하루였지만, 고작 이걸(?!) 위해 1700억을 태웠다고 생각하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영국인들의 분노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