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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상황 간단 요약

 

미국 영화 각본, 미드 대본을 쓰는 할리우드 작가들이 떨쳐 일어섰다.

 

미국 영상업계의 각 노조는 몇 년에 한 번씩 영화 및 TV 제작자 조합(AMPTP)과 노동 환경 및 조건에 대해 노사 단체협상을 하는데, 이번에 작가 노조(WGA)와의 협상이 결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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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바, 2023년 5월 1일부터 파업이다. 우리가 글 안 쓰면 영화, 미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 조때바라.”

 

파업 예고 날인 5월 1일까지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할리우드는 멈출 것이었다. 협상은 왜 결렬됐을까. 할리우드 작가들이 무엇을 요구했길래? 그 요구는 왜 했을까. 이유는 작가들의 노동 환경, 조건이 급격히 파괴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파괴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파괴하는 주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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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작가들을 착취하는 대마왕 ‘넷플릭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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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아니 인류 전체를 노예화하려는 Chat GPT와 같은 사악한(?) 인공지능 ‘대화형 AI’.

 

과연 할리우드 작가들은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대신해 승리할 수 있을까? 강대한 적, 넷플릭스와 대화형 AI의 반격은? 

 

자, 여기까지가 지난 4월 말 할리우드 상황을 괴~앵~장히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자세한 파업 배경이 궁금한 분들은 지난 기사를 우선 클릭하시라!  

 

 

 


 

할리우드가 멈췄다

 

운명의 5월 1일, 결국 미국작가조합(WGA)은 0시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 소속 영화, 미드 작가 1만 5,000여 명이 이 시각부터 펜... 아니, 키보드를 놓았다. 노조원 작가들은 영화사 내 작가실(writer’s room)에서 짐을 빼고, 할리우드와 뉴욕의 영화사 본사 앞에서 시위에 돌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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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The Hollywood Reporter>

 

미국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필자의 캐스팅 에이전시에서도 이런 메일을 보내왔다. 딴지스들을 위해 필자의 화려한 콩글리쉬 실력으로 일부 번역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As you may have noticed, the Writer's Guild of America has officially gone on strike… you may have already noticed work in the area dramatically slowed down because of the fear of a strike. Now that the strike is official, more productions will go on hiatus until writers negotiations are met.”

(뉴스 안 보는 사람이면 지금 봐라. 미국작가조합(WGA)이 파업에 들어갔다. 그동안 파업 우려 때문에 너네 일거리(영화 촬영)가 줄어드는 거 알고 있을 거다. 이제 공식 파업이 시작됐기 때문에 니네한테 줄 일거리는 없다.)

 

“We have no clue how long it will last could be a week, could be a couple of months (or more) The previous writers' strike lasted around 3 months.”

(파업이 얼마나 갈지는 김어듄도 모를걸. 일주일 갈 수도, 한 달이 갈 수도 있다. 이전 작가조합 파업(2007년 파업)은 3개월 이상 갔다는 걸 명심해라.)

 

“Please don't let this get you down and discourage you… So my suggestion would be to use this slow time to work on resume builders and passion projects… This is also a great time to work on learning new special skills or taking classes so when the industry is back you'll be ready.”

(조때따고 실망하지 마라. 아프니까 청춘이지! 이 기회에 이력서도 다시 쓰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마, 영화 촬영에 추가로 필요한 기술(어학, 묘기, 군사훈련)도 익히고 연기 수업 다시 수강하고! 그래야지 파업이 끝나면 곧바로 일하지, 안 그래?)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거다.

 

“이제 당분간 너네 일거리 없다. 너네는 조때따. 허리띠 졸라매라.”

 

작가 파업으로 조땐 건 우리 같은 단역배우만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심야 토크쇼 프로그램들이다. ‘지미킴멜 라이브’, ‘데일리 쇼’, ‘투나잇’, ‘래이트 나잇’ 등이 방송을 중단했다. 매일 작가들이 대본을 써야 하는 일일 토크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밖에 촬영이 중단된 주요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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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시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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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아직 안 정해진 워킹데드 스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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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봇 초등학교(Abbott Ele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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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블레이드 리부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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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의 코브라 카이 시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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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스핀오프 ‘하우스 오브 드래곤’

 

이 외에도 올스탑된 현장은 수두룩하다. 파업 일주일 만에 이 정도의 영화, 미드가 촬영을 멈춘 것이다. 세계 최대 영상업계가 할리우드인데 오죽하겠나.

 

현재는 집필 주기가 짧은 토크쇼 및 미드가 먼저 제작 중단됐지만, 파업이 계속 길어지면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린 대규모 블록버스터 영화들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시위에 나선 작가들의 메시지

 

파업에 나선 작가들은 펜만 내려놓은 것이 아니다. LA와 뉴욕의 영화, TV 제작사, 그리고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의 피켓을 보면 작가들의 요구사항을 알 수 있다. 글로 먹고사는 사람들 아니랄까봐 피켓 문구도 평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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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조여, (타노스 영화사에 맞서) 어셈블”

 

그리고 ‘이 시위 문구를 승인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어벤저스 엔드게임’의 감독 Joe Russo(조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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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넷플릭스에 성난 사람들(Beef)이거든”

(Beef는 요즘 인기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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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은 내려놓고 가운데 손가락은 올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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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경영진 여러분, 당신 요트 한 대 살 돈 아껴서 우리 월급 좀 올려주시죠.”

 

“영화사 경영진도 AI로 대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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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욕타임스>

 

“니네 영화사 덕분에 내 통장 잔고가 다이어트 중이거든”

(넷플릭스 본사 앞에서 시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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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AP>

 

“넷플릭스 보며 못 쉬겠다. 넷플릭스야. 내 몫을 내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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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데드라인>

 

“내 넷플릭스 패스워드는 ‘월급 줘’거든.” 

 

위 피켓을 보면 알겠지만, 현재 할리우드 작가들의 주적은 바로 ‘넷플릭스’라고 할 수 있다. 왜 넷플릭스가 이들의 적이 되었는지는 다음 피켓이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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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탄광 속 카나리아입니다.”

 

탄광 속의 카나리아는 광부들이 탄광으로 일하려 내려갈 때 산소 농도를 측정하러 가져가는 것이다. 한마디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은 넷플릭스 때문에 산소가 부족한 탄광처럼 위험해지고 있고, 작가들은 탄광속의 카나리아처럼 마지막 경고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파업을 진행하며 작가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번 파업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 고치지 못하면 다음엔 파업할 작가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어떻게 작가들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지난 기사(링크)에서 소개했지만 조금 더 소개하자면, 작가들은 영화와 미드의 ‘넷플릭스화’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작가들이 넷플릭스화에 반대하는 이유

 

기존 미드, 영화업계의 패턴을 깬 넷플릭스 영화와 드라마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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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에 몰아치기 시청(binge-watching)을 위해 하나의 작품을 잘게 토막 내고 질질 끈다. 기존 1시즌 22회, 1회 50분 미드가 아니라, 횟수는 6-10회이고 1회 시간도 20분, 30분이 들쭉날쭉한다. 한 회 시간은 줄고 시즌 전체 횟수도 줄어드니 작가들의 집필료도 반토막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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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시즌1과 시즌2의 방송 간격이 매우 길다. 대다수 미드 1시즌 22회로, 1년 단위 새 시즌을 방송하는 것과 달리, 넷플릭스 드라마는 다음 시즌이 1년 후에 나올지 3년 후에 나올지 알 수 없다. 따라서 1시즌을 집필한 작가들은 생계를 위해 다른 드라마에 참여하다 2시즌 발표가 나면 참여 못 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결국 시즌마다 작가가 바뀌니 작품의 일관성이 없고 내용이 마구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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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명작도 많지만, 저퀄리티 작품도 많다. 콘텐츠 퀄리티 자체가 기복이 심하다. 일관성 없이 트렌드에 맞춰 저예산으로 빨리 찍고, 인기가 없으면 시즌 캔슬해 버리고 또 다른 작품으로 넘어간다. 결국은 작가들도 일정 기간 동안 일관된 작품을 쓸 수 없고, 몇 개월마다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장돌뱅이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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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를 하나의 제대로 된 ‘작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시간 때우기 배경음악 정도로 들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닌 무언가’로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전락시키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한국 드라마를 생각하면,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 제작 한국 드라마를 보면, 그동안 한국 매체에서 보기 힘든 걸작들도 꽤 나왔으니까. 그러나 최근 잘 나갔던 일부 한국 콘텐츠만 보지 말고, 넷플릭스 전체 콘텐츠를 생각해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이렇게 해도 동의가 안 되는 분들은 영상업계 관련자들이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게 된다면, 미래에도 계속 나올 미디어 콘텐츠의 퀄리티가 어떨지 생각해 보시면 될 것이다)    

 

물론 할리우드 영화도 모든 게 걸작인 건 아니다. 망작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의 포인트는 넷플릭스가 영화나 드라마의 가치를 전락시키면서 동시에 그 업계 종사자들의 노동 가치도 헐값으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결과물인 콘텐츠에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니 관련 종사자들의 노동에도 별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셈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은 넷플릭스가 자신들을 헐값으로 부려 먹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넷플릭스를 대표적으로 말했지만,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총체적으로 비판한다).

 

‘웨스트윙’으로 에미상을 수상한 작가 ‘릭 클리블랜드’는 최근 LA타임스 기고문(링크)에서 넷플릭스의 작가 대우 및 각본료 지급에 대해 다음 같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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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하우스 오브 카드’ 시즌1 제작 및 각본 집필 의뢰를 받았다. 넷플릭스 최초의 대규모 오리지널 드라마였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제시한 집필료는 내가 12년 전에 받았던 액수 수준으로 터무니없이 적었다. 정식 TV 드라마가 아닌 ‘웹 드라마’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업계에는 스트리밍 드라마에 대해 얼마를 받아야 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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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0년 ‘식스 핏 언더’를 처음 집필하고 5년 후 시즌 피날레까지 계속 대본을 쓸 수 있었다. 그때 나는 9개월 동안 12회 대본을 썼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높은 성의 사나이’(Man In The High Castle)를 쓸 때는 1년 동안 10회 대본을 썼다. 그런데 돈은 대본 횟수만큼 받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더 오랫동안 일하고 돈은 덜 받게 됐다.”

 

한마디로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2시간짜리 영화, 또는 1년 단위 1시즌 22회라는 할리우드 미드의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이렇게 모든 영화와 드라마를 ‘넷플릭스화’하여 싸게 빨리빨리 찍고, 인기가 없으면 칼같이 캔슬해 버리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들은 넷플릭스가 이러한 기존의 안정적 영상산업 생태계를 파괴하며 일반 TV나 영화에 비해 훨씬 헐값에 작가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작가’라는 직업이 끝날지도 모른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벌어지는 작가들의 파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넷플릭스 식으로 짧은 기간에 빨리빨리 쓰는 시스템이 계속될 경우, 할리우드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곧 끝장날 것이라는 위기감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고참 작가들은 최근 영화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사내 작가 집필실(writer’s room)을 없애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집필실은 쇼러너(Showrunner)라 불리는 대표작가가 고참 작가(프로듀서), 작가(스토리 에디터), 새끼 작가(스태프 라이터), 보조 작가(PA)들과 함께 1시즌분 대본을 같은 장소에서 집필하면서, 선배가 후배를 가르쳐주고 노하우를 전수해주며 현장 경험을 전달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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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아웃랜더(Outlander)의 작가집필실의 모습. 

출처-<소니 유튜브>

 

그러나 최근 3년간 영상업계가 넷플릭스화 되면서, 코로나19를 이유로 원격회의만 한다고 한다. 후배 작가들이 선배 작가들에게 직접 배울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선배 작가들은 이를 지적한다.

 

“랩탑 컴퓨터 Zoom 미팅으로는 선배 작가의 경험이 제대로 전달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현장 상주 작가(on-site writer)도 줄고 있다고 지적한다. 시즌 1회분 대본 집필 후에도 작가 1, 2명은 촬영 현장에 상주하면서 현장 분위기에 맞춰 대본을 수정하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이유로 현장 상주 작가는 모조리 원격 집필로 대체됐다. 이것 역시 후배 작가들이 촬영 현장에서 경험을 쌓을 수 없게 하는 요인이라고 한다.

 

결국 ‘넷플릭스’ 시대에 작가 생활을 시작한 신세대 작가들은 선배 작가들에 비해 돈도 덜 받고, 집필실에서 선배들과 같이 일하지도 못하며, 촬영 현장에서 직접 현장을 경험할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작가 노조는 이런 현재의 흐름이 지속되면 결국, 젊은이들은 생계도 어렵고 일에서 보람도 크게 찾지 못하는 이 직업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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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트위터는 ‘아바타’ ‘니키타’의 작가인 앨버트 김의 트위터다.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2007년 작가 파업 때 같이 시위에 나선 딸이 2023년 작가 파업에 아마존 드라마 작가가 되어 시위에 나섰다. 내 딸은 내가 지금 파업하는 이유다. 나는 내 딸과 다음 세대를 위하여 싸운다.”

 

앞서 언급했던 ‘웨스트 윙’의 작가 릭 클리블랜드가 한 말 중에도 이런 위기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난 괜찮다. 나는 이룬 것도 많고, 선배 작가들이 이뤄놓은 근로 조건 속에 한 사람의 작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스트리밍 시대에 작가들은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 물론 뛰어난 작가들은 계속 오스카상과 에미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근로 조건이 어떻든 간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계속 잘 쓸 테니까.” 

 

“그러나 문제는 작가들이 업계에 머무르면서 성장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1년 동안 한 작품에 20주 일한다는 것은, 30-50주 동안은 놀거나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작가들이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있을 때보다 근로조건이 악화되면 미래 세대 작가들은 이 업계를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파업에 나선 작가 노조는 영화사 측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다음과 같다.

 

 업계 최저임금 및 재방료(레지듀얼)의 5-6% 인상

 

1,200만 달러 이상 예산 작품의 스트리밍 방영 시 재방료 인상

 

집필료는 집필 시작 시 50% 지급, 나머지 50%는 매주 나눠서 지급

 
드라마/영화 제작 들어가기 전 기획안 구상할 때 : 작가 집필실에 최소 작가 6명을 고용해야 한다.  

 

 

기획안 제작 시 소수 인원으로 집필실(Mini Room, 미니룸)을 꾸미는데, 최근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드라마들이 이때 작가들을 덜 고용하고 돈을 덜 주며 착취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런 사항을 막기 위한 조항이다.

 

기획 종료 후, 드라마/영화 제작이 승인되어 본편 대본 집필을 시작할 때: 드라마 6회까지는 1회마다 최소 작가 1명을 고용해야 한다. 6회를 넘는다면 드라마가 2회 추가할 때마다 작가 1명씩 추가해야 한다. 

 

소수의 작가가 많은 양의 대본을 써서 작가의 창작 소재가 고갈되고 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5회짜리 드라마는 최소 작가가 5명 배정되어야 하고(6회까지 이런 식), 8회짜리 드라마는 작가가 최소 7명의 작가가 배정되어야 한다. 10회짜리 드라마는 최소 8명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 노조는 영화사 측이 업계 최저임금의 3-4% 인상안만을 제시했을 뿐, 나머지 요구는 거부했기에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글 쓰는 건 노동이고, 제대로 된 값을 받아야 한다

 

이번 할리우드 작가 파업에 대해, 한국이든 미국이든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뭐야? 이런저런 이유는 붙였지만 결국 돈 더 달라는 거잖아?”

 

“글 쓰는 게 자기 좋아서 하는 거지, 뭐 돈을 더 달라고 파업을 하냐?”

 

맞다. 작가들은 지금 돈을 더 달라고 파업을 한다. 그런데 반대로 필자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작가는 돈 더 달라고 파업하면 안 되나요? 글쟁이가 돈 달라는 소리 하면 천박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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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노조가 2007년 100일 동안 파업했을 때도 똑같은 반응이 있었다(작가 노조의 2007년 파업에 대해서는 이전 기사(링크)를 참조하시라). 2007년 당시에도 작가 파업으로 영화와 미드가 올스탑되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LA와 뉴욕 영화산업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시원한 방안에서 커피 마시며 글 쓰는 사람들이 파업한다고 말이 많았다. 그중의 압권은 뉴욕 타임스의 2007년 11월 6일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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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뉴미디어에서의 지분 문제로 인해 파업 중인 작가들

출처-<뉴욕타임스> 링크

 

이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다.

 

“(이들 작가 노조 시위대는) 공사 헬멧과 작업용 장화 대신 멋진 선글라스와 팬시한 스카프를 착용하고 파업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조스 웨던(Joss Whedon)이란 작가가 반박하고 나섰는데, 좀 길지만 한번 옮겨보자. 혹시 조스 웨던이 누군지 모르시는 분은 이 양반이 감독하고 각본을 쓴 영화를 보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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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조 파업을 와해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들을 멋진 스카프를 착용한 댄디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것이야. 그러면 사람들은 우리가 파업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글쓰기는 노동이 아니야. 예술은 노동이 아니야. 노동이란 육체적으로 일하는 것이고 하기 싫어하는 것이지. 하지만 예술이란 재미있는 거잖아. 그리고 할리우드 작가들은 돈 많이 받으며 스카프 착용한 멋쟁이들이구. 아주 쉬운 주장이고 반박하기도 어렵지.

 

물론 글쓰기는 재미있는 일이야. 잘 써질 때는 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지. 하지만 잘 안 써질 때는 회사 사람들과 싸우게 되지. 그럼 글쓰기는 노동인가? 물론 글쓰기에 근육은 필요 없어. 글쓰기는 재미있고 멋진 일이야. 하지만 아주 힘든 노동이지. 그리고 필요한 일이야. 

 

나는 지금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아주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지. 음식? 그건 동물적 욕구야. 주거? 그건 끼리끼리 모이는 럭셔리 아이템이지. 하지만 인간은 스토리텔링을 통해 인간임을 자각해. 바로 우리의 기억을 풀어내고,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를 규정하는 일을 하는 것, 그건 바로 우리의 자존감이야. 그리고 그런 고귀한 일을 하는 것이 노동하는 작가들이지.

 

작가들은 진짜 노동자가 아니고, 이건 노조가 아니라고? 아니야, 이건 노조 문제야. 이건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거라고. 다른 노조들이 파업하는 것과 똑같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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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스 웨던이 윗글을 쓰고 10년 후 이 영화를 왕창 말아먹었다는 사실은 흑역사다. 웨던 형, 왜 그랬어요….

 

필자도 조스 웨던과 할리우드 작가들에게 동의한다. 글쟁이는 노동자이고 글쓰기는 노동이며,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다. 따라서 작가들은 자기 글 값을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이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론 한국과 비교되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다. 한국에도 수많은 문예 창작 아카데미가 있지만, 글 쓰는 법은 가르쳐도 글 값 받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많은 글쟁이가 출판사와 영화사 앞에서 쭈뼛쭈뼛하다가 푼돈이나 받고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왜? 예술하는데 돈 이야기하면 천박해서 그런 걸까. 예술가는 먹고사는 문제를 초월한 고귀한 존재라서 그런가. 글로 먹고사는 교수, 소설가, 기자들은 자기 글 값에 대해 왜 가만있는가.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망한 처우를 벗어나기 위해선, 합심하여 제대로 된 처우를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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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계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 작가노조는 다르다. 노조원 작가들의 글 값에 최저임금을 스스로 정하고 영화사와 협상하여 관철한다. 이 액수보다 더 많이 주는 건 얼마든지 괜찮지만, 적게 주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작가들의 최저임금은 대단히 세세하게 규정돼 있는데, 예를 들어 프라임타임 방송인지 심야방송인지 또 오리지널 창작인지 원작이 있는지 등에 따라 액수는 모조리 다르다.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소개하겠다)

 

반복하면, 글쓰기는 노동이고, 글쟁이는 노동자이다. 내 글을 팔려면 그 값은 정당한 수준으로 받아야 한다. 그것이 글쟁이의 자존심이며,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길이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전적이고도 틀에 박힌 노동의 이미지에 갇혀있으면, 이번 할리우드 작가 파업은 이해할 수 없다.

 

글이 엄청 길어졌다. 이번 할리우드 작가 파업에 대해 더욱 궁금한 분들이 계신다면, 이번 파업의 또 다른 쟁점인 대화형 AI(Chat GPT) 문제도 다룰지 생각해 보겠다. 할리우드 가십거리는 매번 퍼 나르는 한국의 기자(?)들이 이런 중요한 문제는 나 몰라라 다루지 않으니, 나라도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