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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 시골 깡촌에 사는 필자에겐 종종 이런 이메일이 온다.

 

"헤이~ You, 부탁 하나 해도 되나? 자네 코리안 커뮤니티에 인맥이 좀 있는 거 같은데, 사실 우리 영화 촬영에 한국 씬이 있거든. 한국 사람(또는 아시안)이 많이 필요해. 너네 커뮤니티에 소문 좀 내서 영화 촬영 좀 나오라고 할 수 있나? 일은 쉽고 연기경력은 없어도 돼. 밥도 잘 주고 돈도 줄게! 제발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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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에발, 부탁합니다!

 

세상에 밥도 주고 돈도 주는 꿀알바가 있을까? 이런 꿀알바의 정체는 무엇일까? 많은 분들이 짐작하셨겠지만, 이 꿀알바의 정체는 영화/TV 드라마 엑스트라(영어로 하면 background talent)다. 

 

필자는 대학 시절부터 알바로 종종 영화/드라마 단역배우를 해왔고, 지금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주로 일에 지쳐 머리 식히고 싶을 때) 촬영 현장에 간다. 미국 남부 깡촌에 사는 한국인 또는 아시안 이민자라면 요즘 영화 출연할 기회가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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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촬영된 어벤져스2 장면 中 하나

 

미국 영화/드라마를 보면 종종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또는 관광지 등 해외 배경으로 로케를 해야 할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해외 촬영이 상당히 어려워진 상황이다. 아시아 배경 세트야 CG와 예산을 투입해 만들 수 있지만, 아시안 주민은 CG로도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최근 영화나 TV 촬영이 잦아진 미국 남부는 캘리포니아나 뉴욕과 달리 아시안 이민자가 절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한국인 등 아시안들에게는 영상출연 알바의 기회가 넓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국 영화, TV 엑스트라 출연은 얼마나 꿀알바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지금부터는 영화 현장과 TV 드라마 촬영 현장을 뭉뚱그려서 영상 촬영 현장이라고 호칭하겠다. 사실 코로나19와 OTT 시대에 영화와 드라마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기도 하고)

 

 

엑스트라, 돈은 얼마나 받을까

 

알바를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돈! 돈이다. 설명이 필요 없고, 그냥 한 TV 드라마 제작사에서 내게 직접 보낸 출연료 공고를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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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출연할 한국인을 찾는다는 한 영화사의 공고

(제목과 세부사항은 일부러 지웠다)

 

1. 출연료

 

하루 촬영으로, 12시간에 175달러 보장. 12시간 미만으로 촬영해도 175달러 보장. 12시간 초과(이른바 오버타임 overtime)하면 시급 18.50달러. 교통비(차량 연료비, 대개 gas bump라고 함) 25달러 추가. 

 

이 같은 계산은 일당 형식으로 매일 계산한다. 2-3주씩 촬영해도 하루씩 계산한다.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2. 의상 맞춤비

 

영화사 의상부서를 방문해 의상을 맞춰야 함(fitting이라고 함). 대개 1-2시간 걸림. 의상 맞추기에 85달러 지급. 여기에 교통비 25달러 추가. 만약 머리를 잘라야 하는 경우 머리 커팅비 25달러 추가. (내 머리를 깨끗이 이발해주고도 돈을 준다는 게 참 맘에 들었다)

 

3. 코로나19 검사비

 

여기에 요즘은 코로나19 검사 비용으로 25-30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4. 초과근무수당

 

막상 촬영을 하다 보면, 하루종일 촬영해도 12시간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 이런 경우 12시간을 넘어가면 초과근무 시급(overtime)을 준다. 대개 기본시급의 1.5배이다. 따라서 한번 영상물에 엑스트라 출연하면 받는 액수는 대개 아래와 같다.

 

기본급 175달러 + 초과근무수당(2시간 가정해 기본시급 1.5배) 37달러 + 촬영 교통비 25달러 + 의상맞춤비 85달러 +의상맞춤 교통비 25달러

 

= 총 347달러(한화 약 46만 5천 원 / 현재 환율 기준)

 

진짜 단순 엑스트라(아무런 기술과 경험 없는)의 영화 1회 출연 비용이 한국 돈으로 약 46만 5천 원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요즘 한창 상승 중인 원달러 환율 덕분에 전보다 약간 더 액수가 추가된 금액이긴 하지만)

 

물론 이것은 아시아계 엑스트라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가능한 액수다. 축구경기장 관중 등 그야말로 기술이 필요 없고, 단순 엑스트라의 경우, 하루 촬영하고 손에 넣는 시급이 미국 최저임금(federal minimum wage라고 함. 7불 25센트)으로 시작한다. 이런 단순 엑스트라는 대개 12시간 촬영하면 오버타임 추가해서 100-125달러(약 16만 원) 정도를 받는다.

 

5. 기술 수당

 

꽤 재미있는 것은 기술 수당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 미국답게 미국 영화 현장에서 특수한 기술(special skills)을 가진 사람에겐 따로 추가 수당을 챙겨준다. 특수 기술이라고 대단한 건 아니고, 뭐든지 특이한 재주라면 돈을 더 준다. 

 

아시안이라도 돈을 더 주고, 늘씬한 몸매 여성에게도 돈을 더 준다. 스케이트를 잘 타거나, 통기타 연주하는 시늉을 하거나,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를 할 줄 알아도 추가 수당 명목으로 돈을 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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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극 중 카페 씬 배경으로 키스하는 연인 역 엑스트라에게는 1인당 50달러씩을 더 줬다. 남녀 키스신이 아니라 동성 키스신(이런 경우가 꽤 있다)이라면 1인당 100달러를 준다. 커플 또는 부부가 같이 출연하면 부부 출연료 300-400달러에, 키스신 추가수당 100-200불을 추가로 받아 가는 셈이다. 

 

헷갈린다고? 그러면 재미 삼아서 엑스트라들이 촬영 현장에서 받게 되는 급여명세서(바우처, voucher)를 한번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항목별로 상당히 세세하게 돈을 지급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계산이 안 맞는다고 필자를 탓하지 마라. 첫째 필자는 산수에 약하고, 둘째 이 급여명세서는 실제가 아니며 이해를 돕기 위해 예시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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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클릭하면 확대

 

 

엑스트라도 정규직 대접을 받는다

 

엑스트라 관련해서 한국과 또 다른 점이 있다. 아무리 말단 엑스트라라도 세법상 정규직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다. 엑스트라 및 영상산업 관계자는 납세할 때 정규직임을 나타내는 W-2로 연방, 주 세금, 의료보험 등을 공제한 후에 수표로 지급을 받는다. 

 

(미국에서 비정규직, 계약직(한국말로 하면 도급사업자)은 납세 기록으로 IRS form 1099를 받는다. 돈을 일시불로 받지만 모든 세금과 제반 비용은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세법상 엑스트라와는 직종으로 분류되는 것)

 

사실 “너 해고야” 한마디면 해고가 가능한 미국 사회에서 정규직/비정규직 여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W-2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따로 있다. 비정규직은 받을 수 없는 실업수당(unemployed benefit) 수급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발생시 영화 촬영이 반년 이상 중단되었는데, 이때 많은 영상산업 관계자들이 W-2 봉급생활자임을 증명하여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었다. 

 

 

단역 배우는 얼마를 받을까

 

여기까지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말 그대로 엑스트라의 경우고, 약간이라도 클로즈업이 있는 단역 배우라면, 말단 엑스트라와는 출연료의 급이 달라진다. 필자의 경우 엑스트라 일을 몇 번 하다 보니, 운이 좋아서 약간 비중 있는 단역배우도 해본 적이 있다. 

 

예를 들어, TV 드라마 가운데 한국 장면에서 5초 정도 출연하고 아주 짧은 연기를 해서 필자가 받은 출연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필자의 단역배우 경험은 나중에 독자 리퀘스트가 있으면 소개할지도?)

 

단역배우 1일 촬영 기본급 500달러 + 외국어 구사능력 500달러 + 한국어 대사 연기 500달러 + 의상 맞춤 비용 85달러 

 

= 총 1,585달러 (약 212만 원)

 

 

밥은 잘 줄까

 

꿀알바의 두 번째 필수 조건은 밥을 잘 주냐일 것이다. 말보다는 필자가 촬영장에서 실제로 먹었던 밥 사진을 보여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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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전에는 한 접시에 뷔페식으로

마구 퍼먹을 수 있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런치박스에 1인당

개별적으로 포장해주는 점이 차이점이다. 

 

엑스트라의 식사 수준은 촬영 규모에 따라 다르다.

 

1. 축구 씬이나 학교 씬처럼 야외 엑스트라가 수백 명씩 필요한 경우

 

이 경우엔 식사 수백 명분을 준비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엑스트라 식사의 질이 낮아진다. 아마 식비 단가 때문일 것이다. 대개 간단한 햄버거 정도를 준다.

 

2. 10-20명 정도 스튜디오 촬영 씬의 경우

 

영화 스태프 및 감독과 똑같은 수준의 식사를 먹는다. 대개 소고기와 치킨 등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 등을 준다.

 

3. 디*니 등 대형 영화사의 유명 배우 출연작의 경우

 

연어와 각종 회, 초밥을 뷔페로 먹었다. 

 

(안타깝게도 스시뷔페 점심 사진은 없다. 대형 영화사의 경우 비밀유지보안각서(NDA)를 쓰고 핸드폰에 특수 잠금장치를 해서 사진을 찍을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신기하게 핸드폰 잠금이 자동으로 풀린다)

 

대부분의 촬영 현장에서는 아침 식사(오믈렛과 베이컨, 시리얼)와 점심 식사(대개 스테이크와 샐러드)를 준다. 저녁까지 촬영이 늘어질 경우 피자와 브리또 등 야식을 챙겨준다. 또 촬영 현장에는 땅콩, 빵, 에너지 드링크 등의 간식이 있어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

 

 

촬영팀 사람들은 좋은가

 

아무리 돈 많이 주고 밥 잘 주는 알바라도, 윗사람 성격이나 근무 여건이 나쁘면 일 못 한다. 한국의 영상 촬영 현장은 꽤 살벌하고 막말(rant)도 오간다고 들었다. 사실 미국이라고 해도 크게 다른 건 아니어서, ‘나이스 가이’로 유명한 톰 크루즈나 크리스찬 베일 등이 촬영장에서 소리 지르는 사례도 몇 번 외신에 나오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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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BBC 코리아> 링크

 

톰 크루즈는 2020년 '미션 임파서블 7' 촬영 당시 촬영장에서 소리를 지르고 스태프 5명을 해고했다.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어겼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사실 이건 톰 크루즈 편을 들 수밖에 없긴 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영화 촬영이 중단되고 지연되면 열받을 만하다. 최근 화제의 명작 ‘탑건 매버릭’을 봐도 알 수 있듯 프로정신이 투철한 톰 크루즈라면 더 열받을 만한 일이다. 

 

그러나 그럴 만한 일이든 아니든 필자가 경험해 본 미국 촬영 현장에선 큰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감독, PD부터 말단 스태프까지 모두 나이스했다. 수십, 수백 명을 지휘해 현장을 움직여야 하는데 감독이 ‘인싸’가 아니면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촬영장에서 그 누구도 엑스트라나 단역배우에게 소리 지르거나 강요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나름대로 이름있는 감독들도 나 같은 말단 엑스트라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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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씬은 이런 씬이며, 이런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분위기로 연기를 해주세요. 플리즈~”

 

라고 자세히 주문을 한다. 재촬영을 해도 짜증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촬영이 끝날 때는 감독 또는 조감독이 말단 엑스트라들에게 “정말 수고했다. 여러분 덕분에 장면이 살았다”고 박수를 쳐줬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주연배우들은 촬영이 없으면 각자의 대기실(대개 커다란 컨테이너)에 머물기 때문에 엑스트라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간혹 촬영이 늘어질 경우에는 조연급 배우, 심지어 이름있는 주연급 배우가 촬영 세팅을 대기하다가 심심했는지 엑스트라 대기실에 와서 “고생이 많다”며 엑스트라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사례도 있었다.

 

 

근무 여건은 좋은가

 

일단 아침, 점심식사 시간이 1시간씩 보장된다(meal time이라고 함). 또 엑스트라 배우들에게도 대기실(Extra holding)이 제공된다. 대기실의 수준은 천차만별이다. 

 

제일 좋은 대기실은 고급호텔 개인실, 다음으로는 중급호텔이나 컨벤션센터의 이벤트홀이다. 냉난방이 되고 Wifi가 되기 때문에 심심하지가 않다. (아주 운 좋은 경우, 고급호텔 풀장에서 일광욕을 하며 점심을 먹은 기억이 있다) 

 

최악의 대기실은 거리 촬영 또는 오지 촬영이다. 거리 촬영 때는 인근 커피숍 등을 대여해 엑스트라에게 내준다. 오지 촬영 같은 경우 폐교 또는 공실인 오피스에 엑스라 대기실을 차린다. 아주 오지라서 건물도 없고 그늘도 없으면 천막이라도 쳐준다.

 

이런 경우 냉난방이 없어 덥거나 춥고 Wifi와 핸드폰 충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예비 배터리를 잔뜩 가져가야 한다. 그래도 영화사 쪽에서 이동식 에어컨과 선풍기를 설치해줘서 찜통은 면할 수 있었다. 반대로 겨울에 난방이 불가능한 추운 야외에서는 모든 말단 엑스트라들에게 핫팩을 몇 개씩 줬다. 

 

(여담이지만 한국처럼 거리 야외 촬영을 12시간씩 하는 일은 없다. 일단 스탭이 아닌 시청 소속 경찰관이 직접 나와 교통 및 촬영 현장을 경비하고, 교통 흐름을 장시간 막아둘 수 없기 때문에 8시간 이상을 넘길 수 없다)

 

물론 모든 영화촬영장이 위에 말한 것처럼 나이스한 건 아니다. 필자가 아는 사람은 대재벌 저택의 야외 파티 씬을 찍는다고 갔다가 땡볕에서 몇 시간을 서 있어서 일사병에 걸릴 뻔했다고 한다. 당시 엑스트라 대기실에는 천막 하나 달랑 있었고, 선풍기도 몇 대밖에 없어 버틸 수 없었다고 한다. 아마 영화사 쪽에서도 이 정도로 더울 줄은 예상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엑스트라 상당수가 “냉난방을 제공하라”며 촬영장을 박차고 나오며 파업 사태로 번졌다고 한다. 엑스트라들도 대부분 자가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외진 촬영 현장이라도 ‘탈출’이 가능하기에 벌어지는 상황이다.

 

 

아역배우 엑스트라에 대한 대우

 

영화, 드라마 내용상 학교 씬이나 경기장 씬처럼 불가피하게 아역배우 엑스트라가 필요한 때가 있다. 이럴 때 미국 영화사는 17세 미만 미성년자를 엑스트라로 캐스팅한다. 

 

필자도 주변 한국 아이들에게 촬영 일을 한두 번 해보라고 권하곤 한다. 색다른 경험이고 어린 나이에 합법적으로 수백 달러의 돈을 벌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라고 해도 위에 언급한 성인 엑스트라와 완전히 똑같은 수준의 출연료를 받는다. 

 

그러나 영화 촬영장의 미성년자는 몇 가지 법의 보호를 받는다. 과거 할리우드가 아역배우를 학대 수준으로 혹사시킨 것에 대한 반성이다. 1930년대 영화사가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 역을 맡은 주디 갈란드에게 살을 빼야 한다며 마약과 담배를 강요당하고 잠도 못 자게 하며 촬영한 사례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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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와 주디 갈란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출처-<워너브러더스 홈페이지> 

 

따라서 미성년자가 합법적으로 영화를 찍으려면 대개 다음과 같은 조건이 붙는다.

 

1. 주 노동부에서 노동허가증(work permit)을 받아야 한다.

 

미국법뿐만 아니라 한국법도 15세 이하 미성년자 노동을 금지한다. 그러나 미국법에서 유일하게 미성년자 노동을 허가하는 업계가 바로 연예산업(entertainment industry)이다. 대신 부모 또는 보호자가 매년 주 노동부에 신고하고 연락처를 업데이트해야 한다.

 

2. 미성년자는 하루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한창 촬영하다가도 8시간이 넘으면 미성년자는 무조건 촬영장에서 내보낸다. 보내지 않으면 벌금을 받는다.

 

3. 부모 및 노동 감독관 동행

 

미성년자는 반드시 부모가 촬영 현장에 동행해야 한다. 또한 미성년자를 고용한 모든 촬영 현장에는 미성년 노동법 관련 훈련을 받은 노동 감독관이 동행한다. 이들의 임무는 아역배우가 혹사당하거나 조명에 과다 노출당하는지, 약물 등을 강요당하는지, 식사 시간과 학습권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독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본 대다수의 노동감독관은 현장에서 아역배우 부모와 노가리를 까는 또 다른 ‘꿀알바’였다.

 

4. 간식 제공

 

법적으로 규정된 건 아니지만, 필자가 본 대다수의 촬영 현장에서는 아역배우가 있을 경우 피자 치킨 등 간식을 추가 제공했고, 과자와 음료수(탄산음료 제외) 등을 비치해서 아역배우들이 배고프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미국 촬영 현장 엑스트라는 꿀알바인가

 

필자는 백그라운드 캐스팅 에이전시에 한국인 엑스트라들을 소개해주는 편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되면 이 일을 해보라고 권한다. 

 

특히 진입장벽이 낮고 체력이 필요 없어 시간 여유가 있는 사람, 특히 은퇴자에게 적합한 일이다. 실제로 퇴직한 회계사, 변호사, 대기업 사원이 엑스트라를 하는 경우를 꽤 봤고, 중년 백인 아저씨가 엑스트라만 풀타임으로 해서 월 2-3천 달러(268~400만 원)를 버는 경우도 몇 번 봤다. 

 

부지런하고 영어가 좀 되는 한국 은퇴 어르신들이 이쪽 길에 눈을 뜨고 엑스트라로 시작해서, 칠순의 나이에 에이전시랑 계약하고 비중 있는 배우로 올라가는 사례도 드물지만 본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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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의 제일 좋은 점은 역시 촬영 현장에 참가하고 유명 배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운이 좋으면 주연배우 옆에서 카메라에 잡힐 수도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락다운을 하면서 가족친지들에게 안부를 전하기 어려웠는데, 넷플릭스에 필자가 출연한 쇼가 풀리면서 전 세계 지인들에게 “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하면 넷플릭스를 봐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이처럼 미국 영상산업 현장의 엑스트라 대접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현장의 최하층(?)인 엑스트라를 다수 맡아본 필자가 현장에서 누린 권리를 9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최저 시급 준수

②하루 8시간, 일주일 40시간 법정근무시간 준수

③하루 8시간 초과 시 시급의 1.5배 수준 초과근무수당 지급

④식사 시간 보장 (1시간)

⑤각종 실비 지급 (교통비, 특수 수당, 의상맞춤비, 코로나19 검사비)

⑥정규직으로 실업수당 자격 갖춤

⑦근무 환경 보장 (야외에서도 냉방 및 난방 제공)

⑧아역배우 노동권 및 학습권 보장 (현장 감독관 파견)

⑨인격적 대우 (소리 지르고 하대하기 없음)

 

한마디로, 돈에 미친 자본주의 국가 미국 할리우드도 현장 말단에게 이 정도의 노동권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영상업계의 합리적 근무조건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이런 대우를 받는 데는 미국 영상업계 종사자들의 100여 년에 걸친 끊임없는 노력과 싸움이 있었다. 필자는 그런 노력의 혜택을 입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배우, 감독, 작가, 스태프들이 직장 노동권을 어떻게 보장받게 되었는가?' 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