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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9. 목요일

산하


 



 


1976년 7월 31일 날으는 작은 새들의 동메달


 


요즘 산하의 오역이 영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올림픽인 것 같다. 올림픽 경기를 본 뒤엔 이기든 지든 그냥 자야 하니까. 어차피 올림픽 무대에 선 사람들은 각국의 1인자들이고 거기서 주어지는 메달이란 사람의 힘만이 아니라 하늘이 도와야 하는 결과일 것이다. 그러니만큼 값지지 않은 메달이 어디 있을까마는 1976년 7월 31일 몬트리얼 올림픽에서 한국 여자배구팀이 따낸 동메달은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로서 그 영양가가 매우 높다 하겠다.


 


여자 배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된 것은 1964년 동경 올림픽 때였다. 전쟁의 참화를 완전히 극복하고 전쟁 이전의 국력을 회복했음을 과시하는 무대이기도 했던 이 올림픽에서 일본은 여러 개의 금메달을 따내 국민들의 환호를 받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빛났던 것은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던 여자배구에서의 금메달이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과 질릴 정도로 강력한 수비로 ‘동양의 마녀’라고 불리운 일본 대표팀은 소련을 꺾고 금메달을 땄는데 이날 동경 시내에서는 통화량이 거의 없었고 시청률도 70퍼센트에 육박했다고 한다. 우리가 배구를 볼 때 가끔씩 듣는 ‘시간차 공격’은 바로 이때 일본팀이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리시브 토스 스파이크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 뒤 10여년 동안 일본 여자배구팀은 막강한 전력으로 세계를 주무른다. 76년 몬트리얼 올림픽에서도 일본은 단연 최강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이 올림픽에는 ‘동양의 마녀’들이 한 팀 더 등장한다. 한국팀이었다. 그리고 이 한국팀은 원조 ‘동양의 마녀’ 일본팀을 꺾은 적이 있었다. 몬트리얼 올림픽 1년 앞두고 벌어진 프레 올림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전 세계에서 적수가 없다 하던 일본으로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조혜정, 유경화, 정순옥, 윤영내, 변경자, 유정혜, 백명선 등이 주축을 이룬 한국 여자배구팀은 서양의 선수들보다는 평균 신장이 10센티 가까이 작았다. 주공격수 ‘날으는 작은 새’라는 별명의 조혜정은 불과 164센티미터였다. 요즘 164센티미터의 키로 배구를 한다면 세터로나 재능이 있다면 모를까 대성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키로 조혜정은 덩치들의 블로킹을 뚫고 자유자재로 스파이크를 날렸다. 또 한국 여자 대표팀은 64년 동경에서의 일본팀과 같은 악바리 근성과 투혼의 수비로 장대같은 서양 팀과 고무공같이 튀어오르는 쿠바팀을 상대해 나갔다.


 


[caption id="attachment_99134" align="aligncenter" width="532" caption="이미지 출처 : http://www.interview365.com/wys2/file_attach/2008/02/29/2008229821811258.jpg"][/caption]


 


첫 경기에서 소련에 첫 세트를 따내고도 3대 1로 역전패하면서 주춤했지만 ‘날으는 작은 새’들은 (원래 나는 작은 새들이라고 표기해야 맞지만 말맛이 안나서 걍 쓴다.) 동독과 쿠바에게 짜릿한 풀세트 역전승을 거둔다. 특히 동독전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한국 대표팀은 두 세트를 먼저 내 주고 벼랑 끝에 몰린다 가까스로 한 세트를 만회하여 2대2를 만들었지만 5세트에서도 13대 8까지 몰린다. 그때 세터 유정혜가 갑자기 뭐라 고함을 지르며 바닥에서 뭔가 찾기 시작했다. “부적이 없어졌어요!” 몸에 품고 다니던 부적이 떨어졌던 것.


 


부적을 찾은 뒤 유정혜는 이번에는 공격수 조혜정의 등 뒤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언니 하나만! 하나만! 제발 힘을 내요.” 조혜정은 그 단신의 몸이 부서져라 스파이크를 때렸고 급기야 한국팀은 14대 13으로 대역전극 일보직전까지 갔다. 이때 동독의 강스파이크가 터져나왔다. 공은 블로킹에 나선 한국 선수의 손에 스칠 듯 말 듯 한국쪽으로 날아갔지만 선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문제는 터치 아웃이냐 그냥 아웃이냐. 그 순간 주심은 아웃을 선언했다. 하지만 서브권을 되찾아온 이후 세터 유경화가 교체되어 나왔다. 그녀는 사실 새끼 손가락을 심하게 다쳤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척 하고 있었다. 즉 터치 아웃이었던 것이다. 이 오심(?)으로 한국은 동독을 꺾는다.


 


조혜정은 이후 쿠바와의 경기에서 무릎을 심하게 다친다. 의사 소견으로는 “뛸 수 없다.”였다. 아쉬움을 달래며 얼음찜질을 하던 그녀의 눈에 막내 백명선이 보였다. 조혜정은 백명선에게 “메달 따서 연금받으면 뭐할 거니?”라고 물었다. 가벼운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뜻밖에 무거웠다. “언니. 저 동생이 여섯 명인데 학비를 제가 대야 해요.” 이 말을 듣고 그래 고생해라 할 언니가 어디 있으랴. 결국 조혜정은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일본과의 경기에 출전한다. 첫 세트 악전고투를 했지만 끝내 패했고 더 이상 점프조차 어려운 조혜정은 교체되어 나왔다. 그리고 프레 올림픽에서의 패배 이후 한국팀을 철저히 연구해 온 일본팀에게 패하고 만다.


 


하지만 코칭 스태프는 동메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일본에서 조혜정을 뺀 것도 그 전략의 일환이었다. 헝가리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한국은 3대 1로 승리한다. 이 경기에서 유독 맹타를 휘두른 선수가 있었으니 바로 여섯 명의 학비를 대야 했던 백명선이었다. 동메달. 그것이 대한민국 구기종목 사상 최초로 딴 메달이었다. 열 두 명의 선수들은 한덩어리가 되어 울었다. 그 가치를 인정해서일까. 그들은 몬트리얼 올림픽 후 베풀어진 카 퍼레이드에서 금메달리스트였던 양정모와 같은 예우를 받은 것이다. 조혜정에게는 ‘날으는 작은 새’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그것을 붙인 건 한국 기자가 아니라 외국 기자였다. 영어로 “Flying Little Bird"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한국 기자가 컨닝(?)을 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날으는 작은 새가 어찌 그 하나 뿐이었으랴.


 



 


산하

트위터 : @sanha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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