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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09. 30. 월요일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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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956년 9월 28일 장면 저격 사건


1956년 한국의 선거 제도는 다소 특이해서 정/부통령 선거가 러닝메이트 제도를 통해 운영된 것이 아니라 대통령 따로 부통령 따로 뽑는 시스템이었다. 즉 요즘으로 치면 새누리당 대통령에 민주당 부통령이 가능했다는 얘기다. 대통령 후보 신익희가 호남선 열차 안에서 갑자기 배를 쥐고 쓰러져 급서한 이후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는 다시 내지 못했고 부통령 장면만 겨우 당선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 이승만이 나이 여든 넘은 고령이었다는 점이다. 요즘도 그 나이라면 아무리 정정해도 오늘 갈 지, 내일 갈지 모르는데 대통령이라도 저승사자를 포박할 수는 없는 노릇, 이승만 유고시 대권을 계승할 사람은 부통령이었다. 이승만의 똘마니들로서는 매우 배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한 노릇이었다. 오죽하면 취임식 때 부통령 자리까지 마련하지 않는 결례를 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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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8일, 부통령 장면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여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는다. 그런데 연설을 끝내고 퇴장하려는 찰나 뜻밖의 총성이 울린다. 암살 시도였다. 박정희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킨 이후 군부 독재 정권이 수십 년을 군림하면서 좋은 점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총기 관리의 철저함이다. 총 무서운 줄 아는 집단이라 그런지 총기 관리는 세계적으로 확실하게 해 놨다는 것이다. 하지만 50년대만 해도 권총 정도는 흔했고 무시로 권총으로 사람을 쏘는 일도 벌어졌다. 그래도 한 나라의 부통령이 권총 앞에 섰던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천만다행히도 장면은 손에 스친 정도의 부상만 입었고 범인은 현장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체포된다. 이때 장면은 의연하게 나는 이상이 없다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왜 이 용기를 5년 뒤 쿠데타 때는 발휘하지 못하고 수녀원에 숨었는지!) 그런데 범인이 총을 쏘고 체포된 지 5분 만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난다. 김종원. 백두산 근처도 안 가본 주제에 '백두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즐겨 사용했던 군인 출신의 치안국장. 여순 사건 때 일본도로 목을 치고 다녔고 미군이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으며 거창 양민 학살 은폐 주범이었던 그가 직접 현장에 나타나 범인을 접수한 것이다.(치안본부장실에 늘어선 역대 경찰 총수들의 사진 가운데 이 사람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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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김상붕이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척이 민주당 구파였고 그는 끌려가면서 난데없는 '조병옥 만세'를 외쳤다. 조병옥은 민주당 구파, 장면은 신파였으니 언뜻 보기에 장면에 불만을 품은 민주당 구파가 신파를 공격한 듯 보이게 한 서툰 연출이었다. 하지만 그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민주당 신구파의 싸움이 치열하긴 했지만 그 정도 당내 분쟁이야 요즘에도 ‘친박과 친이’ ‘반노와 친노’ 정도로 엄존한다. 즉 누군가를 죽여서까지 속이 시원하거나 그 뜻을 이룰 상황도 아니었다는 뜻이다. 아마 범인 김상붕이 두들겨 맞을 때 민주당 구파들도 팔뚝을 걷어붙였을 것이다.


장면은 간단한 응급처치 후 귀가했는데 부통령 경쟁자였던 이기붕이 위문차 찾아오자 '무슨 정치를 이렇게 하시오?'라고 힐난했고 이기붕은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라고 총총 돌아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펼쳐진 수사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라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한다.


치안국은 조병옥 만세를 부르짖은 대로 김상붕이 민주당 신구파의 내분에 분노하고 장면이 친일행위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분노하여 총을 쏜 단독범행이라고 발표했지만 말도 안된다는 항의에 부딪혔고 수사를 진행한 끝에 최훈이라는 이를 그 배후라고 발표했다. 김상붕의 형 김상봉이 동생을 취직시켜 주는 등 뒤를 봐 주던 이가 최훈이었다고 제보한 것이다. 그런데 이 최훈이 쪽지로 '단독범행했다고 해라.'는 전갈을 보내다가 발각되어 꼼짝없이 얽히게 되자 성동경찰서 사찰주임의 지시를 받아 한 것이라고 폭로한다. 일개 경찰서 사찰주임과 이런 일을 단독으로 꾸몄다는 걸 믿을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50년 뒤의 경찰 간부도 국회에 불려와서는 '진실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못하겠다는 판이니 뻔뻔함도 조직적 유전인 듯도 싶다.


그래도 결국 재판을 받은 것은 3명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은 뒤 그들의 코멘트들을 들어보면 예나 지금이나 '깃털과 몸통'은 유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배후가 있는데도 추궁하지 않고 왜 그네들을 벌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혹을 풀지 않고 약한 자만 이렇게 돼야 하는 거요.'(최훈) '난 죄 없는 몸이니 천국에 있는 것 같소. 이 재판은 무효야 ' (이덕신) '어차피 나는 대신 죽는 목숨이오.' (김상붕) 하지만 맘씨 좋은 장면 아저씨는 이들의 감형을 탄원하여 사형을 면케 한다. 진상은 4.19 이후에나 밝혀진다. 끌려나온 김종원 전 치안국장이 배후를 증언한 것이다. 그 경로는 성경의 마태복음을 연상케 한다.


이기붕이 서울시장을 지낸 임흥순에게 장면을 어떻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자 임흥순이 내무부 장관 이익흥(이 인간, 이승만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했다는 전설의 장관)에게 운을 띄우고 이익흥은 예의 치안국장 김종원에게 말하고 김종원은 치안국 특수정보과장 장영복에게 하달하고 장영복은 박사일 중앙사찰분실장을 불러 전달하고 박사일은 오충원 서울시경 사찰과장에게 토스하고 오충원은 이덕신 성동경찰서 사찰주임을 부르고 이덕신은 최훈에게, 다시 최훈은 김상붕에게 지시한 것이라는 그 기나긴 진상이 고구마 꿰듯 나온 것이다(엔하위키미러 참고)


4.19 이후 열린 재판에서는 이익흥이나 임흥순 등에게도 사형이 언도됐지만 5.16 쿠데타 이후 처벌은 모두 흐지부지 유야무야 되고 만다. 절대 권력자의 의지에 따라 어이없는 일이 행해지고 말도 안되는 조작이 행해지고 억지를 부리다가 뜻밖에 폭로가 되면 그나마 몸통은 빠져 나가고 꼬리들만 남고 그 와중에 턱도 없는 꼬리 자르기들이 행해지고 꼬리는 '우리는 깃털일 뿐인데'를 들먹이는 일은 50년 전이나 요즘이나 변화가 없다. 아니 변화는 있었다. 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뿐. 50년 뒤의 우리 아이들은 '아이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한탄을 하지 말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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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조선일보>







산하


편집 : 홀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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