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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 범람의 시대다.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개소리가 도처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금방 생각해봐도 민중은 개돼지라느니, 촛불이 환경오염을 일으킨다느니, 병우 씨 아들 코너링이 좋았다느니,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느니 하는 개소리들이 떠오른다. 유난히 개소리가 끊이지 않은 한 해였다.


'아무 말 경진대회'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무 말'은 개소리의 한 단계 낮은 버전이다. 사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니, 어지간한 개소리는 개소리에 미치지 못하고 아무 말로 격하되기에 이른 것이다. 개소리에 대한 임계점은 점점 올라가고 있고, 경계심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개소리 시대에 개소리란 무엇인가, 하는 엄중한 주제를 고찰하고자 한다. 개소리인 것과 개소리 아닌 것, 개소리의 조건은 무엇인가 등을 엄격하게 따져볼 것이다. 나아가 개소리가 범람했던 2016년을 마무리하며 한 해를 주옥같이 수놓았던 올해의 개소리, 즉, 개소리 of 개소리를 선정해 보도록 하겠다.


 

1. 개소리란 무엇인가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 해리 G. 프랭크퍼트




사전적 의미로 개소리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다.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조리 없고 당치 않은 말. 여느 사전적 정의 못지않게 알아먹기 힘들다. 이래서는 피부에 확 와 닿지 않는다.


개소리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위해서는 보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하여 우리는 엄격하기로 소문난 학문의 영역에서, 그것도 가장 엄격하다는 철학의 잣대를 빌려보기로 했다. 


일찍이 프리스턴대 (무려) 철학과 명예교수인 프랭크퍼트는 저서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를 통해 개소리를 철학적으로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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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있는 책이다.

정가 9,000원



그는 개소리를 살펴보기에 앞서 개소리와 같은 부류의 말들, 헛소리, 사기, 엉터리, 쓸데없는 말, 거짓말 등의 의미를 구분한다. 특히 그가 관심을 가지는 건 개소리와 거짓말이다. 그는 많은 시간을 두 용어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데, 핵심만 간추리자면 다음과 같다.


 1. 개소리와 거짓말 모두 '정확하지 않은 진술'을 뜻한다. 


 2. 거짓말은 참의 반대로서 진실이 어떠한가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만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나, 개소리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3. 개소리는 거짓말에 비해 적은 노력을 필요로 하고, 들통나더라도 비난을 적게 받는다.


 4. 그러니까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나쁘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기춘대마왕이 청문회에 나와 "최순실을 모른다"고 했다. 이 진술은 개소리일까 거짓말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 진술은 거짓말이다. '최순실을 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모른다"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진술만 놓고 보면 김기춘은 구라쟁이다.


그러나 우리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는 그는 또한 개소리쟁이기도 하다. 같은 청문회에서 증거를 들이밀자 결국 "최순실이란 이름은 내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순 없다."고 개소리했기 때문이다. 최순실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질문을 피해가기 위해 "모른다고는 할 수 없다"는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개소리를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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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썩~



기춘대마왕의 이 진술은 여러모로 개소리의 핵심을 관통한다. 저자는 개소리를 '특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속셈부정확하게 진술'하는 것으로 보았다.


기춘대마왕의 경우 최순실을 명확하게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을 타계하려 이도저도 아닌 부정확한 진술을 한 것이다. 오랜 세월 개소리로 단련한 대빵의 노련한 개소리라 하겠다.



2. 뛰어난 개소리란 무엇인가


개소리라고 다 같은 개소리일 리 없다. 개소리 중에서도 들었을 때 "오, 뛰어난 개소리다!"는 감탄을 자아내는 것들이 있다. 올해의 개소리를 추려내기 위해, 개소리다운 개소리의 조건 몇 가지를 개소리 연구의 권위자 프랭크퍼트 교수의 논리를 빌려 분석해보도록 하자.



① 정성 들이지 않아야 한다.


개소리란 모름지기 정성 들이지 않은 말이여야 한다. '정성 들인 개소리'란 모순이다. 정성 들이면 개소리가 아니다. 개소리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순간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불쑥불쑥 튀어나와야 한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뜬금없을 수록 좋은 개소리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우병우 아들이 운전병으로 빠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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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묵하고, 뭘 하나려도 배우려고 하는 자세, 운전이 남달랐습니다. 코너링이 굉장히 좋았고.." 


라고 답한 건 아주 뛰어난 개소리라 할 수 있겠다. 제대로 머리가 박혀 있다면, 운전병은 이런이런 능력을 요하므로 요런요런 기준에 따라 선발하고 있는데  A가 이런요런 걸 잘해서 선발했습니다, 라고 했어야 한다. 이걸 '코너링' 한 단어로 즉흥적으로 툭 내뱉는 것, 이런 게 제대로 된 개소리다. 최순실이 "나라가 바로 섰으면 좋겠다"고 한 것 역시 뇌를 거치지 않은 좋은 개소리라 하겠다.



② 창의적이여야 한다.


개소리란 모름지기 창의적이여야 한다. 불리한 상황을 해쳐나가는 경우에 발생 빈도가 높은 개소리는 심박해야 한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1초 정도 "응?" 하는 감탄사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타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켠대, 242만 명이 촛불을 들고나온 정국을 비판하고 싶었으나 비판점을 찾지 못했던 어느 대학 교수는,


 "촛불을 태우면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다수 발생한다. 비록 실외일지라도 이는 건강에 좋지 않다." 


라는 창의적인 개소리를 했다. 이처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라, 그런가?" 하는 정도의 의문을, 비록 2초 이상 그 의문이 지속되진 않지만, 잠시나마 혹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제대로 된 개소리다. 이문열의 "4500만 중에 3%에 한군데 모여 있다고 ...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라는 개소리는 전체를 인용하기도 지겨운, 창의적이지 못한 고리타분한 개소리의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의도가 있어야 한다.


개소리란 모름지기 명확한 의도가 있어야 한다. 아무런 의도 없이 하는 개소리는 말장난 수준의 개소리일 뿐이다. 개소리는 팩트를 따지려 하는 게 아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어떠한 인상'을 전달하는 것이 개소리의 목적이다. 따라서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개소리를 뱉었을 때, 또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날 때 좋은 개소리라 하겠다.


예컨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면 국민이 아니다"는 발언을 통해 이정현 의원이 하고 싶었던 말은 "너희들은 국민이 아니야!"라는 사실이 아니라 대통령에게 "나 열심히 일하고 있소!" 하는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으로, 그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뛰어난 개소리라 하겠다. 김무성의 "노조가 쇠파이프만 휘두르지 않았으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됐을 것"이라는 발언 또한 같은 맥락에서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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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이란 이런 것



공직자가 하면 더 좋다.


개소리란 모름지기 공직자가 해야 제맛이다.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야 하는 자연인과 달리, 유권자의 지지로세금 으로 밥을 먹고 사는 공직자가 하는 개소리는 우리 가슴에 확 와닿는다. 국민으로 하여금 이러려고 세금 냈나, 자괴감 들고 괴로운 마음이 들게 해야 뛰어난 개소리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개소리는 공직자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지적했듯, 발언의 기회가 주어지면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보통 잘 모르는 것에 대해 뭐든 주절거려야 하는 상황에 자주 처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물대포로는 "뼈가 안 부러진다" 혹은 "추미애 나경원은 세월호 당일 화장 몇 번 고쳤냐"는 진태 형의 발언이나, 민중은 개돼지니 신분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나향욱의 개소리는 공직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개소리의 끝판이라 할 수 있겠다.



3. 올해의 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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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가쁘게 달려왔다. 어느덧 개소리의 정의와 좋은 개소리의 조건까지 살펴봤다. 이제 지금까지 엄격하게 선정한 '개소리 기준'을 근거로 선정한 올해의 개소리를 공개해 보겠다.



 올해의 개소리1: 한선교 "내가 그렇게 좋아?"


교문위 국정감사 중 새눌당 한선교 의원이 민주당 유은혜 의원에게 뱉은 개소리다. 현장에 있던 동료 의원들이 즉각 반발하자 한선교 의원은 "공직자 선배로서 좋아하느냐는 얘기를 물어본 겁니다"라고 2차 개소리를 시전했다(이 발언으로 그는 국회윤리위원회에 제소되었다).


맥락을 떼어 놓고 봐도 뛰어난 개소리인데, 맥락을 조금 붙여보면 이 개소리의 진가를 알 수 있다. 2016년 10월 13일, 교문위 국정감사로 돌아가 보자.



한선교: 저희 쪽에서 생각할 때는 차은택, 최순실이 과연 무엇인데 이 3주간의 국정감사를 전부 그걸로 도배를 하려 하는지 거기에 대한 비난과 다 밝혀졌다고 그러지만 설 이외에 나온 것은 아무것도 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차은택이라는 자가 자기 인적, 사람들 이렇게 같이 협력을 하고 이것은 사실, 특히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항상 인적 네트워크에 의해서 어떤 프로젝트가, 특히나 시간 여유가 없을 때는 더더욱, ‘자, 이 분야는 누가 최고니까 우리 같이 한번 힘을 합쳐 보자’ 이런 일은 이제까지 저는 뭐 그렇게……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 웃지 마시고.


유은혜: 어디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한선교: 왜요? 왜 웃으세요, 그러면 나한테?



한선교 의원이 올해의 개소리를 시전하기 직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정감사에 차은택, 최순실이 지나치게 많이 거론되니 자제하자는 말을 하고 있다. 전체 맥락이 개소리였다. 즉, 개소리 안의 개소리가 담긴 액자식 개소리를 시전한 것이다.


총평: 말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내뱉는 즉흥성, 개소리가 어이없어 웃는 상대방에게, "내가 좋아?"라고 묻는 창의성, 최순실 물타기 의도 등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뛰어난 개소리다. 




 올해의 개소리2: 정운천 "전 세계 오지에 청년 10만 명쯤 보냈으면 좋겠어요."


산자위 국정감사 중 나온 개소리다. 코트라 사장과 말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조금 흥이 오른 정운천 새눌당 의원이 시전한 것이다. 우선 전체 발언을 보자.

정운천: 제가 보기에는 대한민국의 청년 철벽을 해결하는 방법은, 개발도상국가의 취업인력이 엄청 늘어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돈 한 100만 원만 가지고 캄보디아 가면 한 1,000만 원 이상의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아프리카로 가 보면 나이지리아 같은 데 또 콩고, 동남아에 보면 캄보디아 이런 전 세계 오지에 우리 청년 한 10만 명쯤 보냈으면 좋겠어요.



우선 청년 절벽은 청년 고용 절벽을 의미하는 듯하다. 말인즉슨, 청년 실업이 심각하니 전 세계 오지에 청년들을 보내 청년 실업을 해결하자는 거다. 과연 헬조선의 산업, 통상, 자원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원다운 발언이다.


캄보디아, 콩고가 치안 문제로 외교부의 '여행 자제 국가' 명단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 거꾸로 캄보디아에서 1,000만 원 벌어봐야 한국에 오면 100만 원밖에 안 된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치 않다. 200만 명에 이른 청년실업자 지표를 줄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심시티를 해도 자기 도시 시민들을 오지로 보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애정이 생기기 마련인데 놀라울 따름이다.


총평: '캄보디아 여행해보니 싸더라 -> 한국 돈 만 원 = 캄보디아 10만 원 -> 청년 보내자 -> 청년 실업 해결'로 이어지는 창의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찍이 대통령께서 했던 "청년들 다 중동 보내자" 발언과도 맥을 같이 함으로써, 대통령께 충성하는 의도도 분명히 드러나는 뛰어난 개소리다. 다만 국감을 위해 준비한 회심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즉흥성은 떨어진다.



 올해의 개소리3: 안양옥 "빚이 있어야 파이팅을 한다"


빛이 아니라, 빚이다. debt. 대출을 받아야 파이팅이 생긴다는 쌈박한 개소리는 한국장학재단 안양옥 이사장이 시전했다. 2016년 5월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같은 개소리를 뱉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 개소리는 한때 유행했던 "니네는 헝그리 정신이 읎써"의 한국장학재단 버전이다. 아마 본인 스스로 유복하게 자란 자식들을 보며 "오냐오냐했더니, 저거뜰은 파이팅이 없어!"라는 생각을 자주 했던 게 아닌가, 강력하게 추정한다. 


덤으로, 그는 6년간 교총 회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총선 새누리당 비례대표에 도전했으나 탈락해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되었다는 슬픈 스토리를 간직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총평: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으로서 운영 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 중 즉흥적으로 나온 개소리로서, 의도가 특히 빛나는 개소리라 하겠다. 못다 이룬 정치인의 꿈을 가슴에 품고 있던 그는 기자들이 많이 모이자, 호탕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이와 같은 개소리를 내뱉게 된 것이다. 다만 창의성에 있어서는 꼰대들이 흔히 입에 물고 다니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아 창의성은 감점.



이상 올해의 개소리를 살펴봤다. 뛰어난 개소리로 꼽은 개소리 외에도 깜짝 놀랄 만한 개소리가 차고 넘치게 많은 한 해였다. 지면의 한계로 모든 개소리를 소개하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끝으로 좋아하고 아끼는 동영상 하나를 소개하며 개소리가 난무했던 2016년을 마무리할까 한다. 글 쓰는 내내 너무 보고 싶었던 영상인데 참고 또 참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시원하게 재생하고 글을 마치겠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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