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의 역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송강호의 애드립을 남겨 준 건 다름 아닌 미국서 날아온 서류 한 장 이었다.
서류는 거짓말 안 한다며
서류는 거짓말을 안한다고 영화 내내 읊어 대던 두 형사는 결국 서류에게 배신 당하고 눈 앞의 확신범을 놔 줄 수 밖에 없었다. 이 미국서 날아왔다는 서류는 다름 아닌 유전자 검사 결과. 그동안 유전자 검사라는 것이 가장 많이 사용 되어 왔고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용도는 바로 위와 같은 범인 판별, 혹은 친자 감별 등일 것이다.
헐~
이미 1980년대부터 PCR이라는 기법을 응용한(지금 기준에서는 매우 단순한 수준의) 유전자 분석법은 널리 사용되고 있어서 위의 예와 같이 A라는 샘플과 B라는 샘플이 동일인으로 나온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의학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으며, 지금의 기술 수준은 살인의 추억 시절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에 도달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을 한 기술은 IT가 아닌 유전자 분석 기술이다. (유전자 분석 기술 세계도 나름의 춘추 전국 시대라 강호에 고수들이 즐비하고 재미있는 야사들도 수두룩하다. 나중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써 보도록 노력하겠다)
북한에도 유전자 분석기가? 알고보니 김정은이 유전자 분석 덕후였다?
는 합성짤이고 가짜 우스개 뉴스인데
심심하시면 한번 읽어 보시라.
나름 유전자 업계를 조금 아는 친구가 웃기게 썼다. 다만 영어의 압박이...
다시 유전자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유전자(Gene)라는 것이 포함하고 있는 정보는 상당히 많아서, 조금 더 심도 있는 분석에 들어가면 위와 같이 두 개, 혹은 여러개 샘플들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물론이고, 분석한 사람들 간의 유전적 근접성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특성, 예를 들면 누구는 술을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지 않는 이유라든지, 누구는 커피 한 잔만 마셔도 심장이 전력 질주를 한다든지,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유전적 질환에 걸릴 가능성 등이 대략적으로 얼마인지 등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즉, 한 개인의 유전적 청사진을 손에 쥘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 현 시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해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유전자 분석 서비스라는 거다. 뭔가 무서우면서도 슬쩍 귀가 솔깃하지 않은가. 마치 번지 점프처럼.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바로 안젤리나 졸리였다.
졸리가 슴가를 잘라내는 바람에 유방암 치료에 대한 경각심이 일깨워졌다는 기사
滅私奉公의 乳房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검사 결과, 자신의 BRCA1이라는 유전자에 유방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변이를 발견 했고, 또 가족력과 종합한 결과 본인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약 50%라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고, 이에 과감하게 유방 절제술(물론 제거 후 인공물로 재건)을 했다는 거다. 그동안 인류의 특정 질환에 대한 대응법은 병으로 발전 되면 그 증상에 맞는 치료제를 선택하여 투여하는 것이었는데, 이 언니는 유전자를 토대로 자신이 걸릴 병의 확률을 미리 계산 후 발병 가능성이 높은 신체의 장기를 발병 전에 미리 제거했다는 것이다. (ㅎㄷㄷ 역시 툼레이더 여전사)
그녀의 선택이 옳은 것이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른 목적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 보지만) 어찌되었건, 그렇잖아도 전세계 남성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었던 졸리의 유방에 대한 유방 주인의 과감한 결단, 즉 예방적 치료(preventive treatment)로 인해 유전자 검사가 더이상 범죄자 추적이나 친자 감별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돈 냄새 나는 곳에는 이미 그걸로 돈 벌고 있는 놈들이 있는 법. 벌써 미국에서는 이러한 개인 유전자 검사가 상당한 인기를 끌며 꽤 높은 매출을 올리고 있어 미국의 100대 기업 안에 이미 이런 회사 서너 개가 들어가 있다. 물론 개인 정보 유출의 우려나, 질병 관련한 유전자의 잘못된 분석이 개인에게 미칠 나쁜 파급력 때문에 국가 단위에서의 상당한 규제가 있기는 하지만, 유사 이래 사회를 좀먹을 수준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상품이 아닌 이상 규제와 돈벌이의 싸움에서 규제가 이긴 적은 별로 없다. 국가가 이를 허용하든 그렇지 않든, 개인의 유전자를 이용한 여러가지 치료나 식습관은 어느 순간 우리 옆에 와 있었고, 아마도 조만간 일반인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할 가능성이 높다. 마치 인공지능이 어느 사이 우리 곁에 와 있는 것처럼.
기왕 이렇게 된 거,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만 보기보다는 차라리 유전자 검사가 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그걸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기왕에 바뀐 정권, 편안하게 맘 먹고 살아 계시길
그래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개인별 유전자 검사의 배경과, 몇몇 서비스, 그리고 필자 개인적으로 해 본 몇 개의 국내외 서비스 결과지를 토대로 몇번에 걸쳐 리뷰를 풀어 볼까 한다. 과연 이게 돈 값 하는 물건인지 아닌지.
조금 덜 알려진 사실이지만 은근 우리 나라가 세계적인 유전자 분석 강국이다. 딱히 친자감별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건 아닌 것 같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어찌 되었건, 기대하시라.
CZT
편집 : 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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