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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7.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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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프트웨어 iTu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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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최고의 플랫폼 iTunes


2005년 말 즈음으로 기억한다. 당시 코엑스 1층에는 소니 직영 매장이 있었다. 코엑스 직원인 형과 함께 그 곳에 들어가서 소니 워크맨을 눈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내 목에 1세대 iPod nano가 걸려있었는데 소니 매장 직원이 느닷없이 내 근처에 오더니 내 목을 보며 한마디 했다. “iPod 별로에요.” 난 “네? 왜요.”묻자 “iPod은 iTunes이 없으면 안되잖아요. iTunes 참 뭣(=ㅈㅗㅈ) 같죠.”라고 대답했다. 당황스럽긴 했으나 iTunes에 관련해 제법 낯 익은 광경이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다른 애플 소프트웨어에 비해 iTunes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이다. 2001년 발표 후 애플 소프트웨어 중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인기 상품이지만 이 소프트웨어에 대한 찬사만큼이나 불만 또한 많다. 애플 소프트웨어 대부분이 초보자들이 사용하기에 매우 직관적인데 반하여 iTunes를 처음 실행하면 도무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졸라 당황하게 된다. 일부 사람들은 iTunes 소프트웨어를 단순히 아이팟, 아이폰과 컴퓨터 사이에서 자료를 입출력하는 동기화 프로그램 정도로만 사용하게 되고 iTunes의 기능에 익숙해 지기 전에 이미 익숙해진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그냥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 14살이 된 iTunes는 사람들에게 이미 많이 알려져 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아직도 매우 낯선 소프트웨어이기도 한 것 같다. iTunes가 걸어왔던 14년 동안에 소프트웨어 내 외적으로 정말 많은 변화가 있어왔다. iTunes가 태어났을 당시 애플은 컨텐츠의 디지털화 흐름에 쫓아가기 바빠 급하게 날조한 것 처럼 보이는 이 소프트웨어는 21세기의 플랫폼 중심 서게 되었다.





2. 맥을 위한 소프트웨어, SoundJam 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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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Jam MP는 쉐어웨어로 기능 및 일자(7일) 제한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 MP3 음악 파일이 CD의 1/10 크기이지만 음질차이가 별로 안난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물론 엄연히 차이가 난다만.) 당시는 인터넷 보급 초창기로 전화선에 연결된 모뎀으로 하이텔, 나우누리 같은 피씨통신(텔넷) 이용이 대중적이었다. 당시엔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동네 레코드 가게에 가서 CD를 구매하는 것이 일상적인 것이었다. 슬슬 MP3의 소문이 퍼지긴 했으나 네트워크 속도도 느렸고, 당시 CD에서 MP3로 변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손쉽게 MP3로 변환하는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유료였다.(국산 윈도우즈 MP3 변환이 되는 대표적인 유료 소프트웨어가 ‘거원제트오디오’였다.)


특히 맥에서는 윈도우즈와 달리 MP3 재생 및 변환이 한꺼번에 되는 소프트웨어가 없었다. MP3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Xing사에서 만든 Audio Catalyst 같은 변환만 가능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필요했었다. 그러던 중 MP3재생과 변환이 한꺼번에 되는 SoundJam MP가 등장한 것이다. 인기는 당연지사.


SoundJam MP는 애플에서 퇴사한 제프 로빈(Jeff Robbin), 빌 킨캐드(Bill Kincaid)가 1998년 개발한 프로그램이다. 제프 로빈과 빌 킨캐드는 애플의 차세대 OS, 코플렌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애플은 중도포기 하고 프로젝트를 취소했다. (상품가치전쟁 1편 참조 / 기사보기) 두 개발자는 애플의 행보에 실망하고 애플을 퇴사한다.


제프 로빈은 Casady & Greene사에 입사하여 Conflict Catcher라는 맥용 유틸리티를 만들었는데 이 소프트웨어는 소프트웨어와 OS가 충돌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와주는 인기있는 소프트웨어였다. 매뉴얼 작업은 그 유명한 데이비드 포그*가 작성했다.



* 데이비드 포그(David Pogue)는 월터 모스버그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IT 전문저널 기고가다. 2013년까지 뉴욕타임즈에 몸 담고 있다가, 2013년 Yahoo CEO가 된 마리사 메이어의 간청으로 Yahoo로 자리를 옮겼다. 데이비드 포그는 IT 컬럼 뿐 아니라 어려운 IT 기술을 일반인들에게 재미있는 영상으로 소개하여 인기가 많았다. 초창기 부터 맥 OS 전문가로 월터 모스버그와 함께 언론에 적대적이었던 잡스와 친했던 몇 안되는 인물이다.


빌 킨캐드는 애플 퇴사 후 맥 OS에서 하드웨어 인식하게 해주는 ‘디바이스 드라이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었다. 당시 초기 MP3 하드웨어 플레이어인 Diamond Rio를 맥에서 인식하는 드라이버를 만들었다. 킨캐드는 사용자들이 사용할 수 있게 MP3 플레이어 하드웨어 드라이버 뿐 아니라 맥에서 MP3를 변환하여 들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원했다. 그러나 자신은 하드웨어 디바이스 드라이버 전문가였기에 소프트웨어 사용자 환경(UI)에 대해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제프 로빈슨(자신과 함께 퇴사한 Casady & Greene사에 있는)을 끌어들였다. 그래서 세상에 나온 소프트웨어가 SoundJam MP였다. 매뉴얼 작성은 역시 ‘데이비드 포그’가 하였다. 킨캐드는 소프트웨어 판매를 위해 제프 로빈이 몸 담고 있는 Casady & Greene사에 협력하게 되었다.


SoundJam MP는 쉐어웨어 소프트웨어로 RIO MP3 플레이어 등 맥에서 하드웨어를 인식했을 뿐 아니라 CD를 넣으면 MP3 변환(RIP)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가격은 $40 정도로 다른 비교 소프트웨어보다 비쌌지만 애플에서 나온 개발자들이 만든 프로그램 답게 사용자 환경이 훌륭했다. 이제 맥 사용자들이 CD를 MP3 파일로 변환을 매우 쉽게 할 수 있게 되었다.





3. 디지털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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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 Mix, Burn 광고. CD를 MP3로 손쉽게 ‘공짜로’ 만드는 것을 강조했지만 음반사에 뭇매를 맞는다.


 


1997년 돌아온 잡스는 애플이 자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망가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상품으로 판매되는 애플 제품들은 ‘모두 쓰레기’ 처럼 보였다. Mac OS는 1984년에 만들어진 이후 근본적인 변화없이 낡을 대로 낡았고 ,Mac 컴퓨터는 수 십 가지 라인업으로 확장되었으나 제품마다 차별성이 전혀 없었다. 임시 CEO 였던 잡스가 마치 산소호흡기같은 임시방편으로 의지한 제품은 본디블루 iMac이었다. iMac은 1998년 5월 6일에 발표, 1998년 8월 15일에 판매하기 시작했고, 실패로 짓눌렸던 애플에게 성공의 시작을 알렸다. 급한대로 iMac은 OS 등 소프트웨어의 혁신없이 하드웨어 디자인만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가 (CEO 앞에) ‘임시’라는 칭호를 고수한 가장 큰 이유는 애플의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이 가까워지자 애플이 다시 일어섰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잡스 덕분이었다. 그는 아내 파월과 함께 오랫동안 산책을 하며 자신의 직위 문제를 의논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잡스가 정식 CEO가 되는 것을 이미 정해진 의례적 수순으로 여겼지만 그에게는 여전히 중대한 문제였다. 만약 그가 ‘임시’라는 꼬리표를 뗀다면 애플은 그가 구상한 모든 것을 실현할 기반이 될 터였다. 그 중에는 컴퓨터 이외의 제품을 만들 가능성도 포함되었다.

 

<월터 아아이작슨 - 스티브 잡스 中>


잡스가 복귀하고 2년 6개월이 지난 2000년 1월 5일 맥월드 엑스포(MacWorld Expo)에서 잡스는 애플의 미래를 책임질 OS X을 처음으로 공개 시연 후 그 유명한 ‘One More Thing’을 화면에 띄우고 조금 뜸을 들인 다음 임시(interim) CEO가 아닌 정식 CEO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정식 CEO가 된 잡스는 내심 더이상 ‘맥’만으로는 애플의 미래를 지탱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바로 1년 후 2001년 1월 9일 맥월드 엑스포 전년도와 같은 장소에서 애플의 10년을 지탱할 ‘디지털 허브’ 전략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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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허브 전략은 맥이 허브가 되어 카메라, 캠코더, CD Player 등의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이는 앞으로 애플이 10년간 가야할 이정표였다. 아이튠즈 1.0이 2001년 1월 9일에 발표하게 된다.


아이튠즈 1.0은 SoundJam MP를 그대로 가져다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잡스는 아이튠즈를 만들기 위해 개발자인 제프 로빈과 빌 킨캐드를 애플로 2000년에 데려온다. 단, 제프 로빈이 속한 Casady & Greene은 인수하지 않는다. 주요 개발자가 떠나자 결국 Casady & Greene은 얼마 안 있어 파산하게 된다. 잡스가 원한 건 뛰어난 개발자였기에 회사 인수에는 매우 냉정했다. 물론 당시 애플이 지금 처럼 현금 보유가 많은 기업이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SoundJam MP, Conflict Catcher 등으로 경쟁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든 회사에서 제프 로빈 등 중심 개발자를 빼내가면 파산을 향해 내닫게 될 것은 불 보듯 뻔 한 것이기도 했다.


잡스는 제프 로빈을 능력을 인정하였고 이후 iTunes 소프트웨어 개발에 모든 권한을 제프 로빈의 책임하에 둔다. 잡스의 제프 로빈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여 언론에 제프 로빈 이름이 노출 되는 것 자체도 꺼렸다. (2015년 현재 iTunes 총괄을 여전히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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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iTunes 1.0, Library와 meta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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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프트웨어의 근본적 차이는 ‘Library’에 있다.


잡스는 Napster 이후 음악시장에 빠르게 대응하고 싶었지만 MAC OS X에 집중해야 해서 그런지 내부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것 대신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찾았다. SoundJam MP는 맥과 어울리는 훌륭한 소프트웨어였고 그것을 만든 개발자들이 모두 애플 출신이었다.


비록 외부 소프트웨어를 개발자와 함께 가져와 변경없이 그대로 만들었지만 iTunes는 애플과 잡스의 손에 의해 새로운 개념을 탐재하게 된다. 바로 ‘Library’ 개념이다. 우리 말 번역은 심심하게 ‘보관함’으로 해석되지만 이후 ‘라이브러리’ 개념은 애플식 자료관리의 초석이 된다. (추후 이 개념은 OS까지 확대되어 iOS에도 영향을 끼친다.)


iTunes 라이브러리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료 파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긴장마시라. 어렵지않다.) 컴퓨터에 전원을 누르고 윈도우즈가 부팅하고 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바탕화면(혹은 데스크탑)이다. 윈도우즈 95 부터 파일을 찾기 위해서 내컴퓨터 혹은 윈도우 탐색기를 열게 된다.(맥에서는 find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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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탐색기로 파일을 탐색하고 있다.


컴퓨터에서 문서 저장하기 위해서는 폴더로 파일을 묶어서 저장한다. (이를 파일시스템 방식이라 한다.)


[폴더 예시]

C:\Users\사용자 계정 이름\내 문서\한글 자료\


컴퓨터에서는 자료를 계층으로 보관한다. 하드디스크에 폴더를 만들고 그에 안에 다시 폴더를 만드는 구조다. 가령 음악파일을 저장한다고 할 때 사용자는 파일을 저장하기 위해 기준을 정한다.


[음악 폴더 예시] 

(Pop 폴더 아래 A 아티스트 폴더 아래 앨범 폴더)

D:\Music\Pop\AC_DC\Back in Black\AC_DC - 01 - Hells Bells


이는 저장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아티스트 폴더가 아닌 앨범 폴더로 저장 할 수도 있다. 문제는 곡이 수 천곡, 아니 수 만곡 이상 되면 사용자가 폴더로 파일을 관리하기 어려워 진다는 것이다. Soundtrack, 편집음반(Compilation) 혹은 Classic 음반의 경우는 폴더 단위로 기준을 세우기가 만만치 않다.


iTunes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MP3 플레이어에 있는 플레이리스트는 옵션에 불가했다. 윈도우탐색기 등에서 원하는 음악 파일을 선택한 Drag & Drop하여 재생하였다. Winamp, 제트오디오, SoundJam MP 등 에서 플레이리스트는 그때 그때 필요할 때 재생하고 싶은 곡들을 나열하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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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대표적인 MP3 플레이어 Wimamp, 플레이리스트 기능은 듣고 싶은 곡을 넣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iTunes는 기존의 사용자들의 폴더 접근 방식을 완전히 무시한다. iTunes를 처음 설치하면 사용자의 컴퓨터에 있는 음악파일를 검색한 다음 라이브러리에 몽창 넣어 버린다. 이는 iTunes를 처음 경험하는 사람에게 프로그램을 이용에 가장 어렵게 만든다. 메타데이터를 제대로 정리 안했을 경우 ‘재앙’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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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에서 앨범 데이터만 빠져있다. 이를 찾아서 일일히 넣는다는 건 곤욕이다.

물론 유료 음원을 사면 말끔히 해결된다.(애플의 꼼수?)


왜 애플은 라이브러리 개념을 도입했을까? 기존 사용자들은 폴더 저장 방식에 익숙해 있었기에 iTunes의 관리 방식은 정말 ‘뭐 같이’ 보인다. 라이브러리 방식의 문제점은 파일에 메타데이터가 없을 경우 공유 프로그램에 받은 많은 음악파일들의 경우 태그 정리가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폴더관리로 음원을 저장했을 경우 태그 정리가 불필요 했기 때문이다.


iTunes는 기존 사용자들의 음악 듣는 습관을 무시한다. 자신의 라이브러리에 음원들의 모음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기 원했다. 각 음악 파일에 Artist(아티스트), Title(이름), Album(앨범), Track#(트랙번호), Artwork(앨범 사진) 등의 데이터가 파일마다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이를 메타데이터라 한다.(메타데이터에 대해 보다 자세히 설명했다. 참고 기사 보기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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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unes 1.0 부터 음원에 대한 메타데이터 관리로 승부를 걸었다.


메타데이터를 제대로 저장하여 일단 라이브러리를 어느 정도 구축하게 되면 원하는 음악을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다. 기존의 폴더로 음악을 찾으려고 할 때, 가수별(A,B,C..)로 폴더를 관리했을 경우, 곡 제목은 떠오르는데 가수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 음원을 찾기 난감하다. 하지만 iTunes는 라이브러리 자체가 데이터베이스이기 때문에 오른쪽 위 검색에서 몇글자만 입력해도 바로 원하는 음악을 검색할 수 있다.


iTunes 라이브러리는 파일에 저장된 메타데이터만 검색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곡이 얼마나 재생했는지(재생 횟수), 언제 재생했는지(최종 재생시간), 듣기 싫어 건너 뛰었는지(건너뛰기 횟수) 등 사용자의 음원에 대한 경험과 방식을 자동으로 저장한다. 이 단순해 보이지만 막강한 기능은 온라인으로 음원을 파는 2003년 iTunes Music Store가 개장 되었을 때 엄청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대표적으로 Genius 기능이다.)


캡처.JPG



5. iTunes의 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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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동안 icon 변화 만큼 진화한 iTunes


아이튠즈가 14년이 지나오면서 많은 진화가 있어왔다. 2001년 발표 당시 클래식 맥(버전 9.0 이하)만 지원했던 iTunes는 2003년 버전 4.0에서 iTunes Music Store가 개장하였고 그해 10월 윈도우즈를 지원하는 4.1버전이 나왔다. 윈도우즈 지원이 되자 iTunes 사용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맥용 소프트웨어를 외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포팅하도록 하여 맥용 소프트웨어에 비해 부족한 면이 있다.


2005년 Podcast가 세상에 나왔으며, 2006년 7.0버전에서 커버플로어(Cover Flow)와 라이브 음악 등 제대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트랙간 Gapless 기능을 추가했다.(Gapless기능: 라이브 음악을 들을 때 트랙 간 무음없이 현장 소리가 연결되어 재생되어야 한다. 일부 스튜디오 음원의 경우 또한 트랙간 무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를 바로 연결하여 재생하는 기능이 Gapless 기능이다.) 2006년 기존의 음악 뿐 아니라 동영상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부가 기능으로 음원 앨범 정보를 효과적으로 담은 iTunes LP와 영화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담은 iTunes Extras 등 을 선보였다.


itunes-7-cover-flow.jpg

Cover Flow


이밖에도 아이팟과 아이폰을 위한 Photo(iPhoto, Aperture), 연락처 연동 지원, 가정안에서 iOS와 Apple TV에서 모든 컨텐츠를 즐길 수 있는 Home Sharing과 무선으로 음악 및 영상을 전송하는 AirPlay(AirTune) 기능을 추가했다. 2011년 11월 클라우드와 연동한 iTunes Match를 선보였다.


물론 꼭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2010년 9월 Facebook, Twitter 등 SNS가 인기를 끌자 아티스트 정보를 이용한 SNS 인 Ping을 선보였지만 2년만에 서비스를 접고 만다. (서비스 등 iTunes sevice 및 Store는 추후 다루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 iTunes는 애플이 만든 유일한 윈도우즈 지원 소프트웨어이다. 윈도우즈용 iTunes를 잡스는 원하지 않았다. 아이팟의 판매 확산을 위해 iTunes를 윈도우즈용이 필요하다고 필 쉴러 등 애플 부사장들이 잡스에게 건의 했을 때 잡스는 그런 거지같은 것에 지원할 수 없다고 역정을 냈다. 건의 했던 부사장들은 자신들의 책임하에 윈도우즈용 iTunes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iTunes는 윈도우즈의 트로이 목마가 되어 윈도우즈를 사용하는 다수의 사람들이 아이팟을 사용하도록 유인하였다.


윈도우용 iTunes 개발을 주도했던 애플 부사장들도 대단하지만 SoundJam MP 때부터 하드웨어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소프트웨어를 만든 킨캐드의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를 인식하게 만든 iTunes로 인하여 애플은 21세기의 최고의 기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편에서는 윈도우즈의 플랫폼을 통하여 절대 우위에 있었던 MS의 MS Media Center에 대해 다루도록 하겠다.


 

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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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딴지일보 너클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