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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1. 23. 금요일

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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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 다룬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녀석은 요즘 꽤 유명해져서 들어본 사람도 많을 거다. 사실 본 코너의 앞쪽 편에서 한 번 다룬 적도 있다. 거기 썼던 글을 인용해 보자면 이렇다.




양자역학의 주류라고 할 코펜하겐 해석이 주장하는 바는 관찰이라는 행위를 통해야만 비로소 실체가 정립된다는 건데,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는 이와 관련해서 1935년에 다음과 같은 사고실험을 제안했다.


여기 방사성 물질이 들어 있는 밀폐된 상자가 있다. 이 물질은 1시간에 50%의 확률로 핵분열을 일으키는데, 그러면 알파입자가 방출된다. 상자 안에는 가이거 계수기가 들어 있어서 만약 알파입자가 검출되면 연결된 망치가 작동, 청산가리가 든 병을 깨트리고 그 가스를 맡은 고양이가 죽는다. 따라서 원리상 고양이의 생사 확률은 반반이 되고, 1시간 후에 상자를 열기 전까지 우리는 이 불쌍한 동물의 운명을 알 수 없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면 내가 속을 들여다보든 안 보든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 둘 중 하나고 상자를 열기 전에 이미 그 결론은 내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객관적인 상황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거고 다만 어느 쪽인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걍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적용하면 이 상자 속의 고양이는 관찰자가 상자를 열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은 것과 산 것이 중첩된 상태', 즉 Dead or Alive가 아니라 Dead & Alive 상태에 놓여 있다. 개념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상태에 놓여있다는 게 중요한데, 관찰 행위가 일어나는 순간에 중첩 상태의 파동함수가 붕괴되고 실체가 확립되기 때문이다. 


근데 아무리 양자역학의 괴이한 원더랜드라 한들 생물이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다고 주장하는 건 좀 너무하지 싶은 거다. 그래서 실은 슈뢰딩거가 이 예를 갖고 온 이유도 코펜하겐 해석의 이런 황당한 면을 –원래의 양자역학은 소립자 영역에서의 이론이고 고양이 같은 큰 물체를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반박하기 위한 거였는데, 복잡무도한 고등수학의 세계인 양자역학에 친숙한 고양이가 동원된 이 사고실험의 대중성과 상징성 덕에 되려 양자역학의 흥미로운 세계관을 긍정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자주 인용되고 있다.





대략 이런 소리다. 다만 그때 썼던 글은 평행우주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양자역학 이야기는 이 정도에서 끝내 버렸다. 그래서 그 관련된 부분을 좀 더 소개해 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우원이 오랫동안 쓰고자 벼르고 있던, 그 빌어먹을 청산가리 상자 속에 갇힌 고양이의 사정을 픽션으로 만들어 본 거다. 그럼, 양자역학이란 게 어떤 건지 맛을 보기 위해 일단 이 애니메이션 영상부터 보자.




다 보셨다면 이제 열분들은 '저게 대체 무슨 개소리냐'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저 영상이 말하는 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거다. 다시 글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광자, 전자 등의 입자를 하나의 틈새 사이로 두루룩 쏘면 뒷벽에 입자의 자국이 남는다.

-그러나 두 개의 틈새에 두루룩 쏘면 뒷벽에는 웬일인지 파동의 간섭무늬가 남는다.

-심지어 한 번에 하나씩만 쏴도 파동의 간섭무늬가 생긴다.

-그러나 이때 빛/전자 등이 틈새를 정확히 어떻게 통과하는지 관찰하면 파동성은 사라지고 벽에는 다시 입자의 자국이 생긴다.



이게 방금 열분들이 본 더블슬릿 실험의 내용이다. 상식선에서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입자'는 이를테면 작은 공이다. 열분들이 야구 치러 들어가 있는데 피칭 머신하고 열분들 사이에 틈새가 두 개 있고 공은 그 사이로 날아온다. 열분들이 공 쪽을 안 보고 뒤돌아 있으며 공은 날아와서 어떻게 된 건지 벽에 파동의 간섭무늬를 남기고, 타격 자세를 취하고 어느 쪽 틈새로 통과해 오는지 보고 있으면 제대로 된 공 덩어리 상태로 날아온다는 소리다. 이럴 리가 없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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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 설명 중일 뿐



그런데 소립자 차원에서는 분명히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것도 늘. 그렇다면 이걸 설명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우리가 공 같은 뭔가라고 생각했던 전자, 광자, 이런 것들이 실제로는 공이 아닌 거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이 (혹은 검출기 등의 기계가)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때만 공이 되는 거다. 나머지 상황에서는 그냥 파동일 뿐이다. 근데 파동의 성질을 조금이라도 아는 넘들은 이 지점에서 의아할 거다. 백번 양보해 광자나 전자가 덩어리가 아닌 파동일 때가 있다고 치자. 그럼 대체 뭐의 파동이라는 거냐? 


생각해 보자. 열분들이 잔잔한 호수 표면에 괜히 돌멩이를 하나 던지면, 그 돌멩이로부터 동심원 형태의 물결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이걸 본 적 없는 넘은 아마 없을 거다. 그런데 이건 실은 물이 사방으로 퍼지는 게 아니라 그저 위아래로 움직이고 있을 뿐이고, 그 위아래로의 '움직임', 즉 진동이 퍼져 나가는 거다. 당연히 물이 없는 곳으로는 전달되지 않고 따라서 이 파동의 매질은 '수면'이다. 이렇게 파동이라는 건 매질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래서 저 더블슬릿 실험에서도 빛이나 전자가 파동이 되려면 뭔가 매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 매질로 공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진공 상태에서도 아무 문제 없이 벌어지는 현상이니 공기는 아니다. 사실 이런 파동-입자 이중성에서의 파동에는 매질 같은 건 없다. 왜냐하면, 이 파동은 일반적인 파동이 아니라 '확률의 파동'이기 때문이다.


확률파는 입자가 존재할 확률 분포를 나타낸다. 즉, 아까 더블슬릿 실험에서 측정이라는 활동이 일어나기 전에 광자는 발사 지점과 벽 사이의 가능한 경로 중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 즉, 하나의 광자가 두 개의 슬릿 중 한 개를 통과할 가능성이 같으므로 그 너머 벽에는 이 확률파의 간섭무늬가 나오는 거다. 그런데 슬릿에 기계를 바짝 갖다 놓고 측정을 하게 되면, 즉 광자 하나가 어느 슬릿을 통과하는지 직접 보면 그 순간에 다른 가능성은 (당연히) 사라지면서 확률파가 붕괴되고 한 개의 굳어진 입자로 정립되는 거다. 따라서 벽에는 공 자국만 남게 된다.


안다 알아. 여전히 말 같지 않은 소린 거. 근데 이게 소립자 세상에서는 그냥 일상이고 당연한 현상이라는 게 지난 100년 동안 반복 검증되어 왔다는 말씀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 우리는 뭔가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하나 들여다보고 만 거다. 우리들이 생활하는 크기의 세상에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현상을.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등장하는 닐스, 즉 닐스 보어가 주축이 된 코펜하겐 학파의 양자역학 해석이 바로 이것이고, 이 이상한 게 양자역학의 주류이자 표준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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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와 에르빈



그런데 이걸 따라가다 보면 점점 더 괴이한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관측하는 존재, 즉 의식을 가진 관찰자가 우주의 성립 자체에 개입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 볼 때 물체는 그냥 확률의 파동 상태일 뿐이고 봐야만 굳어진 실체가 된다니 말이다. 하지만 우주는 우리 따위와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존재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소설에 등장하는 에르빈, 즉 에르빈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은 바로 이 부분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양자역학의 핵심 중 하나인 파동함수의 방정식을 만든 슈뢰딩거지만, 우주가 관찰자의 개입에 의해 실체로 정립된다는 관점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미야옹을 데려다가 진짜 실험을 한 건 아니지만 논리를 사용한 사고 실험을 고안했다.


이 실험에서 양자역학적 관점을 제공하는 건 핵분열 가능성을 가진 방사성 물질이다. 이 가상의 물질이 분열하는 경우와 하지 않는 경우의 확률은 5:5로 설정돼 있다. 그래서 뚜껑을 열고 관찰을 하기 전까지 상자 속은 분열한 상황과 분열하지 않은 두 상황이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는 1시간 후 문을 열어 관찰하면 그 순간 파동 함수는 붕괴하고 분열과 비분열 둘 중 하나의 실체가 결정되게 된다. 우리가 이미 분열하거나 하지 않은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이때 그것이 물리적 세계 속에서 실제로 결정되는 거다. 여기까지는 앞에 등장한 더블슬릿 실험을 다른 모양으로 만든 거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의 큰 차이는 이것이 소립자 차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이거 계수기와 망치, 청산가스 등의 장치 덕택에 미시 세계에서의 핵분열이 우리의 일상적 크기 속 사건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원자 세계에서의 미미했던 움직임은 고양이 미야옹의 생사와 직결된 문제로 발전한다. 따라서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미야옹은 핵분열 가능성의 연장 선상에서 상자 안에서 살아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여야 된다. 그리고 슈뢰딩거는 이런 삶과 죽음의 중첩 따위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이 사고 실험을 통해 주장하려 했던 거다. 


양자역학의 최전선에 있으면서 의문을 제기했던 슈뢰딩거와 달리, 양자역학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면서 문제를 찾아내려 했던 이는 다름 아닌 아인슈타인이었다. 그에게 코펜하겐 해석이 주장하는 '관찰자가 확정하는 우주'의 개념은 참을 수 없으리만치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달을 가리키며 "내가 보지 않으면 달은 없다는 거냐?"고 되물으면서 양자역학적 관점을 조롱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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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으면 달도 없나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이런 아인슈타인의 비아냥이 실은 양자역학의 세계관을 정확하게 설명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내'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달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어떨까. 인간뿐 아니라 우주의 어떤 의식체도 달을 보고 있지 않다면 달은 존재하는 걸까?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할 수 있나? 조금 전 저기 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있을 것이다, 같은 말은 경험에 의한 추론에 불과하다. 갑자기 무슨 일이 발생해서 파괴됐을지도 모르고 실제로 우주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달의 존재 여부를 지금 확인하려면 결국 달을 봐야 한다. 즉, 관찰이 일어나야만 되는 거다. 그전까지는 달에 대해서 아무 말도 명확히 할 수가 없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 관점을 더욱 확장해서, 관찰자가 없으면 우주 전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매우 진지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재야의 아마추어 학자들이 아니라 노벨상급의 석학들이 포함된 주류 학자들이다. 예컨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리처드 파인만의 스승이자 블랙홀이라는 말을 만든 것으로 알려진 존 휠러는 '참여 우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관찰 행위는 본질적으로 피 관찰자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참여의 의미를 갖게 되고, 이것은 일종의 상호작용으로서 우주의 존재 자체에 간여하게 된다. 하이젠베르크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질문 방식에 따라 도출된 자연인 것이다. 그래서 존 휠러는 아래와 같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우주관을 피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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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끝에는 빅뱅, 즉 우주의 시작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는 점점 공간적으로 커지고 복잡해져 가고 마침내 의식을 가진 존재, 즉 관찰자가 등장한다. 충분한 지적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그의 눈은 공간 전체를 아우르고, 138억 년을 거슬러 올라가 우주의 태초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그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우주를 사실상 창조하고 있는 거다. 이쯤 되면 달 따위는 그저 찜쪄먹을 소리다. 그래서 휠러는 우주의 근원적인 요소가 물질이 아니라 실은 정보라고도 말한다. It from bit이라는 간단한 문장으로 표현되는 이 주장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세상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일종의 환상일 가능성마저 제공한다. 이런 세계관은 어쩔 수 없이 불교나 힌두교 같은 동양 종교, 즉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나 우파니샤드의 '마야' 등을 떠올리게 하며 실제로 그렇게 연관 짓는 사람들도 많다. 


보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정보가 근본이 되는 세상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의 세계를 연상할 수도 있다. 예컨대 리니지 안의 캐릭터들은 물질로 존재하지 않으며 0과 1의 이진수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일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마치 물질적으로 살아 있는 것처럼 기능한다. 만일 그런 시뮬레이션 속의 캐릭터에 인공지능을 통한 자의식이 생겨난다면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컴퓨터 속의 비트, 즉 정보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는 몹시 어려울 거다. 하지만 어떤 시뮬레이션 프로그램도 완벽할 수는 없고 일종의 버그나 허점이 존재한다. 혹은 시뮬레이션의 정밀함을 능가할 정도로 그 내부 캐릭터의 지능이 발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아주 미묘하고도 섬세한 탐구를 통해 어쩌면 기묘한 곳에서 빈틈을 찾아낼 수도 있다. 만약 우리의 정체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정보'라면, 어쩌면 그 사실을 발견하기 직전에 도달해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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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미야옹의 입장에서 함 생각해 보자. 슈뢰딩거가 저 사고실험을 고안한 1935년에는 동물에 대한 관점이 지금과는 달랐다. 만약 지금이라면 그 자체로서 관찰자가 될 수도 있는 (고등) 생물을 상자 속에 넣는 실험을 제안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것은 시대적인 인식의 한계고 내가 이 실험에 대해 안 고등학교 때부터 내내 맘에 들지 않았던 부분이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는 미야옹을 잠재움으로써 80년 전의 슈뢰딩거가 고려하지 않은 실험의 불완전성을 픽션적으로나마 해결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고양이의 의식 문제를 제외하고 보면 저 실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달과 우주까지 있고 없을지도 모른다면 고양이가 Dead and Alive한 상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저 실험은 달리 말한다면 고양이를 포에 장전해서 더블슬릿에 쏘는 것과 비슷한데, 놀랍게도 실제로 과학자들은 그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다. 물론 정말로 고양이를 쏘는 것은 아니고, 전자나 광자보다 큰 물체를 사용해서 어디까지 입자-파동의 이중성이 나타나는지 보는 거다.


탄소 원자 60개가 모인 풀러렌이라는 물질이 있다. (이 물질을 발견한 학자들은 1996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 물질은 지름이 1 나노미터–1억분의 1 미터-쯤 되는데 수소 원자의 지름이 1옹스트롬이니 그 1/10쯤 된다. 따라서 수소 원자에 포함된 작디작은 전자와 비교하면 농구공과 지구만큼이나 크기 차이가 난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립자 기준에서는 거대한 이것으로 똑같은 더블슬릿 실험을 했을 때, 처음에는 입자의 특성만 보였다. 즉 공처럼 한 군데로만 지나간 거다. 아, 역시 양자역학은 미시적인 세상에만 적용되는 건가, 싶다가 실험 장치 내부를 진공 상태로 만들어서 다시 실험했다. 그러자 앞에서처럼 입자-파동의 이중성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 실험에 이어 탄소 원자 70개가 모인 분자로도 실험에 성공했고, 2011년에는 구성 원자가 430개나 되는 거대한 분자로도 가능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복잡한 이야기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이론적으로는 고양이도 더블슬릿에 쏠 수 있고, 파동의 간섭무늬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물체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전자나 광자는 워낙 작으므로 공기 분자와도 상호작용 없이 쉽게 파동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물체가 커지면 주변의 공기를 비롯해 온갖 다양한 요소와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완전히 고립되는 것이 어려워진다. 


고립되지 않는다는 말은 일종의 관찰자 효과가 일어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고양이가 발사되면서 냐옹 거린 다면 그 소리가 외부와 영향을 주고받게 되기 때문에 관찰자 효과가 일어난다. 털 하나가 날려서 실험 장치의 내벽에 부딪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이런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역시, 원리상으로는 가능하다. 이렇듯, 상대성이론과 함께 양자역학은 우리들이 눈과 코와 귀로는 알 수 없는 세상의 본질적 비밀을 조금씩 풀어내고 있다. 그 비밀의 끝이 과연 어디일지, 색즉시공 공즉시생일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의 우주일지 아니면 지금으로써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무엇일지, 그저 흥미진진할 뿐이다.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에서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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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본지는 <생각비행>출판사와 연계하여 딴지 인기연재물을 출판하고 있다. 

첫빠타로 <호모 사이언티피쿠스가 책으로 나왔고

글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사진과 일러스트, 관련 자료 출처, 계보 등  

아주 보기 좋게 정리가 되어 나온 상태. 


많은 언론에서 본 저서를 다루었기에 언론사 서평 또한 링크 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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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마켓에서 책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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