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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02. 10. 화요일

물뚝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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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웠던, 그러나 유권자 대부분에게 외면받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가 마무리 되었다.


아니, 관심을 받긴 했다. 요즘 뉴스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핫한 손석희의 <뉴스룸>에 나와 유력한 후보들이 서로 물고 뜯는 추태를 연출했으니 말이다. 그 와중에 이러면 난 집에 가겠다고 외치던 이인영 후보는 자기 이름 석자 정도는 유권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닥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전당대회의 전후 사정은 그렇다치자. 여태까지의 야당 전당대회와 별로 다를 바도 없었다. 당원은 비노가 유리하고, 국민 여론조사는 친노가 유리하다는 작동원리도 그대로 유지되는 판이었다. 항상 나오는 '룰'에 대한 시비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은 이 사람들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을 안정시키는 것에 관해 얼마나 무능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만 짚어주고 넘어가도록 하자.


누구나 예상하던대로 대세는 문재인이었다. 그 대세를 뒤집어 보려고 박지원 의원이 70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전국민이 보는 화면에 나와 처절하게 문재인 진영의 반칙을 성토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룰에 관한 시비는 언제나 양측 모두의 잘못으로 귀결되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대중은 상대의 잘못을 성토하는 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남은 것은, 51%의 지지를 가지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화합을 얘기하면서 나라를 두동강 내버리는 것과 유사하게, '반쪽 짜리 지지율, 그것도 2위 박지원 후보와 겨우 3.5% 차이를 가지고 당대표로 당선된 문재인이 앞으로의 정국에서 이 나라, 대한민국의 제2야당을 과연 어떻게 끌고 갈 것인가에 집중하는 일이다' 라고 썼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했다.


초장부터 판은 문재인 당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묘소 참배 건으로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36년 전에 지 부하의 총에 맞아 죽어 버린 박정희가, 또 55년 전에 독재자로 규정되어 국민의 손에 의해 끌어 내려진 이승만이 서기 2014년 대한민국의 제1야당 전당대회의 마무리 이슈로 거대하게 터져 나온 이유가 뭘까?


여러사람 환장하게 만들 노릇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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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참배가 뭐 어때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록되어 있는, 기록되어 있는 수준이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있는 두 전직 대통령이었다. 지금 현재 이 땅에는 그들을 독재자라고 규정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중이다.


특히 현행 제6공화국 헌법에 명확하게 규정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라는 구절에서 '불의'를 맡고 있는 이승만이야 그냥 독재자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팽팽하기 보다는 오히려 칭송하는 사람이 더 많은 분위기다. 최소한 현재 대한민국의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박정희를 구국의 영웅으로 추앙하는 중이다. 비록 직속 부하의 총에 맞아 죽었지만, 그를 반인반신으로 숭배하고자 하는 현직 지자체 장이 있다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웅변한다.


그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공식 국립 현충원에 호화롭게 안장되어 있다는 현실도 있다. 만약 이 사회의 주류가 그들을 독재자로 규정하게 된다면 아마 그들은 지금 어딘가 초라한 구석에 작은 묘비 하나 세우고 그 아래에 쓸쓸하게 누워 민주주의 교육의 반면교사로나 활용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런 두 전직 대통령, 혹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짓밟은 두 독재자를 참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가 있겠다.


하나는 야당의 지도자로서의 관점이다.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온 전통을 자랑하는 가장 오래된 야당이 민주당이었다. 최소한 새정치민주연합이 민주당의 적통을 이어받은 정당이라고 자랑을 하려면, 이승만 박정희를 참배해서는 곤란하다.


이승만이 끌어내려진 뒤, 정권을 떠 맡았던 것이 바로 민주당이었고, 박정희를 선거에서 실질적으로 이겨 버리고, 그로 인해 박정희에게 제거해야 될 정적으로 인식되었으며, 그로 인해 죽음의 직전까지 떠밀려 갔던 민주당의 리더가 바로 김대중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런 야당의 전통을 지키려는 생각이 손톱만큼, 아니 손톱 밑에 낀 때만큼이라도 있는 야당의 대표라면 박정희의 무덤에 찾아가는 것은, 침을 뱉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의 역사의식도 없다면 민주당의 대표는 커녕 당직도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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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당선된 대통령의 관점이다.


야당의 지도자와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입장이 된다. 특히나 국가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보다는 경제성장을 더 우선시하는 반민주적인 세력이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고, 여당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하고, 박정희를 보릿고개를 없애고 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구국의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이 몇 % 수준도 아니고 반수에 가깝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독재자 박정희의 딸에게 대통령 직을 맡길 수 있냐며, 야당 후보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총결집 했던 선거에서조차 근소한 차이로 밀렸던 것이 바로 지난번 대통령 선거의 결과 아니었던가. 물론 공권력의 부당한 선거개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런 독재자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럴 경우, 어떤 정치적 과정을 거쳐 당선이 되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유권자인 국민 모두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고, 당연히 헌정사에 기록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는 갖춰야 한다.


이런 논리적 판단의 결과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자신을 죽이려 했었던 독재자 박정희의 묘소에 당선되자 마자 참배를 했던 것이다. 이는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공식 절차로 현충원에 갔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이승만과 박정희를 전혀 인정할 수 없고, 인정해서도 안되는 야권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도 만약 야권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그렇게 두 독재자의 무덤에 가서 절을 하는 행위를 눈 질끈 감고, 이 악물고 용납해 주게 되는 것이다. 그게 역사의 무게고, 현실의 무서움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떨까?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의 두 후보로 각축을 벌이던 두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안철수 후보였고, 또 하나는 지금 새정연의 대표로 당선된 문재인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참배하는 것이 정당할 수도 있다고 얘기했지만, 당선된 뒤에 참배하는 것과 후보 시절 참배하는 것은 또 다르다.


즉, 야권 후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려면 독재자의 무덤 따위 갈 일은 없다. 하지만 대선 후보로서의 당선 가능성, 즉 망설이고 있는 중도 유권자의 지지율을 생각한다면 참배할 수도 있다. 정치공학적 선택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철수는 대선후보로 활동하던 시절, 현충원을 방문해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고, 문재인은 하지 않았다.


그 때 문재인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저도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 언제든지 참배할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가해자측의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통합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언제든지 묘역을 찾겠습니다.”


좋은 말이다. 옳은 말이고, 야당의 후보 다운 멋진 말이다. 그리고 지지자들은 이와 비교되는 안철수에게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문재인은 대선에 패배했고, 이제 다시 야당의 당대표 선거에 도전했으며 당선되었다.



전직 대통령 참배 제안


시작은 문희상이었다. 전당대회가 끝나면 신임 대표단에게 당권을 물려줘야 할 현직 대표 문희상은 후보자들에게 전당대회가 끝나고 이승만,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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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다. 문희상은 야당의 기조를 대여 투쟁이나 반정권 투쟁으로 가져가지 않고 흔히 말하는 '상생의 정치'를 신조로 삼는 사람이므로 야당의 정체성 자체에 대한 생각이 다를 테니 얼마든지 그런 제안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민주당의 적자 새정연의 당대표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무한한 자괴감을 유발하긴 하지만 말이다. 아마도 본인은 자신이 대통령급이라고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문재인은 여기에 화답을 한다. 박지원 후보 쪽에서 '룰'의 문제를 가지고 앞뒤 안 가리고 싸우자고 덤빌 정도로 당선이 유력한 상태였던 문재인이니 자신이 당선되지 않을 경우를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놀라운 변화였다.


십 년 전도 아니고 불과 2년여 쯤의 시간 차이를 두고 저렇게 변화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그 이전에 그 변화가 사실일까? 실제로 당선되면 이승만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 심지어 헌법에 '불의'로 규정된 독재자와 자신을 대선에서 패배시킨 현직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군사독재를 시행했던 독재자의 묘소에 야당 대표의 자격으로 참배해야 할 어떤 이유가 생긴 것일까?


사람들은 의아해 했고, 이 때부터 패가 갈려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당대회는 치러졌고 예상대로 문재인은 당선이 되었으며 당선 소감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박근혜 정권에 경고합니다. 민주주의, 서민경제, 계속 파탄 낸다면 저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당선 직후 기자회견에서는 이런 얘기들이 나온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의 공이 있고, 이승만 대통령은 건국의 공로가 있다. 저는 그 분들을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임 대통령으로 함께 모시고 함께 기념할 것'


'저는 우리 지난 날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우리 국민의 자부심이다. 역대 정부마다 과가 있으나 공로가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그동안 저희가 김대중 대통령 묘역을 특별히 더해 참배한 것은 서거한 지 얼마 안돼 모신다는 자세로 그런 것이며 앞으로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 묘소 참배 여부를 놓고 국민이 서로 갈등하고 그것으로 국론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충원 참배로 그런 분열과 갈등을 끝내겠다'


이걸 어찌 이해해야 할까?


박근혜 정권이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걸 조건으로 걸었다는 것은 그냥 전면전을 시작하겠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자신이 전면전을 선포한 바로 그 정권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의 친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 즉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재자에게 자부심을 느끼고 공로가 더 많았다면서 참배를 하겠다고 주장을 한다.


박정희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것인가?


'당신은 과보다 공이 많았지만 당신의 딸은 민주주의와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있으니 내가 전면전을 해야겠소. 부디 도와주시오'


이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정치인의 말처럼 신뢰하기 힘든 것이 없다고는 하지만 최소한 한 자리에서 하는 말에 맥락은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것 아닌가? 박정희 대통령 지지자들은 유권자로 인정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전쟁의 대상으로 선포하는 건가? 그게 다른 사람들이라고 보는가?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 수많은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혼란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말은 저렇게 하더라도 제발 실제 참배라도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희망을 표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 희망은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 이제 와서 저렇게까지 얘기해 놓고 참배를 안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무참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었다. 김대중은 민주당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야당지도자였으며, 민주당의 이름으로 대통령직까지 수행했던 살아있는 민주당의 상징이었던 사람이다. 그 민주당의 적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정당의 전당대회장에서 방금 대표로 선출된 사람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차마 현실로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평생을 민주당과 김대중을 지지해온 호남인들의 심정은 차마 미루어 짐작하기도 힘들만큼 참담할 것이다.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저 좀 더 자주 참배한거라고? 이승만, 박정희 참배 문제로 더 싸우면 국론 분열이고, 내가 가서 참배함으로써 그런 갈등을 끝내겠다고?


내 눈을 믿기 힘들었다.



원인은 무능이다


왜 이럴까? 도대체 왜 이럴까?


안철수 후보가 현충원 참배를 하겠다고 하자, 어디 야권의 대선 후보가 이승만, 박정희 같은 독재자를 참배하냐며, 정권의 끄나불 아니냐, 친이계 아니냐며 호되게 비난을 했던 사람들이 바로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이었다. 그런 지지자들을 대표하던 문재인 후보는 가해자측의 반성이 있어야 참배할 수 있는 거라고 지극히 정당한 말로 훈계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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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그가 왜 바뀐건가? 그 동안 가해자측이 진심어린 눈물의 참회라도 했단 말인가? 나만 모르고 있었나? 가해자측의 반성이 없다면 독재자의 묘소를 참배할 일은 없다던 문재인과 독재자들에 대한 참배 문제로 싸우면 국론분열이라며 직접 참배해서 갈등을 끝내겠다는 문재인이 과연 같은 사람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런 변화를 유발할 만한 무슨 실질적인 변화라도 있었나?


그런거 없다.


그냥 말이 바뀐 것 뿐이다. 두 문재인 중에 어느 쪽이 진짜 문재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은 경우에 따라 아무 이유 없이 맥락도 없이 말을 바꾸는 정치인이라는 것 뿐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정치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지지자들을 열광케 하고, 중간층들을 설득해 내며, 반대자들을 무력화하는 언어로 싸우는 전쟁이다.


위대한 정치인들은 이 와중에 언제나 자신의 맥락, 즉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낸다. 때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면 언제나 하나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게 만드는 말을 하는 법이다. 이게 진짜 프로 정치인이다.


그러나 프로가 되고 싶지만, 어떻게 해야 프로페셔널이 되는지 모르는 아마추어들은 프로들의 말을 흉내낼 뿐, 그 맥락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만의 맥락, 자신만의 정체성이 없다. 치열한 고민과 자기성찰이 부족하고 심도있는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세계관이 없고, 그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방법론적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가해자측의 진정한 사죄가 없다면 난 그들을 참배하지 않겠다는 말은 프로의 말이다. 그러나 그 문장 하나만으로는 맥락을 구성하지 못한다. 그 맥락에 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 정체성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치열한 행동과 역사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불과 2년여 만에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냐는 표정으로 뒤집어 엎어 버리면 그건 앵무새가 흉내낸 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반대로 '현실은 현실이니, 역대 대통령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며 따라서 그 묘역을 참배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라는 이야기 역시 하나의 맥락을 구성할 수 있다. 선명한 야당,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투사는 아니지만 합리적이고 냉정한 보수주의자로 우리의 역사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변화시키겠다는 현실정치인에 걸맞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얘길 할 수 있겠다. 이건 선택의 문제이지 비난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맥락이 한 명의 정치인 속에 같이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정치인이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말을 시차를 두고 같이 한다면 그는 앵무새인 것이다. 그저 그 때 그 때 정치적 이해득실에 맞춰 그럴싸한 말을, 그것도 자신의 정체성에서 우러나온 말이 아니라 남들의 말을 주워 읊조리는 앵무새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새정연의 신임 당대표에 당선된 문재인은 자신의 맥락이 없는, 자신의 정체성이 없는 그런 하급의 정치인이라는 것이 확실해 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그런 정치인을 보통 무능한 정치인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정치인이다. 자신만의 맥락이 있고, 철학이 있고, 가치관이 있으며 세계관이 확고한 사람이다. 그런 정치적 정체성에 많은 유권자들이 동의하게 되면 그 정치인은 권력을 가지게 되며, 이 사회를 바꾸게 된다.


문재인은 매우 상품성이 좋은 정치인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으며 그 옆에서 국정을 총괄하던 비서실장이었고, 그의 철학에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잘 생겼으며, 큰 흠결도 없다. 군대 문제도 없고, 여자 문제도 없다. 초선부터 악전고투하며 바닥부터 기어 올라온 역전의 용사는 아니지만, 전직 대통령의 후광으로 순식간에 가장 강력한 야권의 대선후보 자리에 올라 역대 야권 최대의 득표를 한 전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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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차기 야권 후보는 문재인이 될 것 같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 순탄하게 야권의 대선후보 가도를 달리는 사람도 드물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는 결코 위대한 정치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간 보여준 그의 행보 역시 위대한 정치인의 그것은 아니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와의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를 자랑스럽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물론 맹목적인 지지자들이야 자랑스러워 하겠지만 그건 사실과는 한참 떨어져 있다.


대선 이후, 정권 차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행보 역시 불의를 보고도 나서지 않는 무능함을 보여준 그것이었다. 야권 내부에서도 당내 계파 논쟁이 한창일 때에 조차 제대로 된 해결 방안 한번 말하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그저 이제 와서 내가 당권을 잡으면 계파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지극히 박근혜스러운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증세도 없이 복지를 하겠다고 외치던 박근혜와 내가 대표가 되면 계파 문제가 없어진다는 문재인이 무엇이 다른가? 근거 없는 장담을 한다는 면에서는 똑같다.


국민여론조사에서야 많이 앞섰지만 그건 당 외부의 여론일 뿐이다. 겨우 겨우 앞선 대의원 투표와 박지원 후보에게 오히려 밀려 버린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당원 여론조사의 결과를 보면, 당대표로서의 문재인의 행보는 지극히 험난할텐데 말이다.


2012년 총선과 같은 공천학살이네 하는 시비가 내년의 총선에서 또 한 번 재현되고, 당을 친노 위주로 재편을 한다는 둥, 전통의 민주당에 영남패권주의가 웬 말이냐는 둥 엄청난 반발이 예상되는 마당에 딱히 뾰족한 통합의 방안을 제시하고 구현할 만한 역량이 있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줄 서서 기다리다가 지자체 장 자리나 하나 얻어볼까, 총선 지역구나 하나 얻어볼까 하는 딸랑이 정치권 룸펜들의 지지 이외에 어떤 사람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당을 이끌어 나갈지 걱정이 태산이다. 극단적인 예상이지만, 당장에 분노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분당 논의가 시작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에 대해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는가?


취임직후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개헌 논의에 대한 입장이나,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이야기들은 도대체 무슨 힘으로 추진할 것인가? 당내 역량도 집결시키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당에 그런 거대담론을 다루어 낼 여지나 있을까?


총체적인 무능의 난국이다. 이런 정치인 문재인을 이제는 누구에게도 지지하라고 권유하지 못하겠다.



대안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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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대안이냐고? 전당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코빼기도 안 보인 초선의원 안철수가 무슨 힘으로 이 난국을 돌파하겠는가? 거품이 모두 빠지고 난 뒤에 우리 눈앞에 드러난 그의 모습은 이제 막 정치를 시작한 초짜 의원일 뿐이다. 그런 그를 누가 감히 대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대안은 언제나 있다. 단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여의도에는 300명에 달하는 의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우리가 지지할만한 정치적 정체성을 보유한 초년병들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비록 금배지를 달지는 못했어도 뜻을 품고 있는 정치 지망생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에 열중하고 있다. 그 들 중에 누가 한 자리 욕심에 사로잡힌 떨거지인지, 진짜 제대로 성장할 정치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뿐이며, 진짜 제대로 된 재목이 아직 우리 눈앞에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금 당장 박근혜 정권이 이 나라를 이렇게 망가트리고 있는데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영웅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그럴리가 없다.


밑바닥부터 자신의 힘으로 기어 올라온, 그러면서도 자신의 맥락을 지키고 자신의 정체성을 갈고 닦아온 사람, 눈 앞의 이해관계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남의 말 베껴 써먹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 땅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분노하며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굴러가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으면서 두 주먹을 굳게 쥐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정치권 바깥에도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하기를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있다는 점이다. 더욱 더 많이 가지고 싶어하는 이 땅의 가진자들이 모든 권력과 재화를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굴복하지 않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수많은 유권자들이 있고, 현실 정치에 뛰어들지는 못하더라도 유권자의 입장에서 해야 할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이 있는데 뭐가 그리 조급하고 뭐가 그리 걱정인지 모르겠다.


당장 눈앞에 대안이 없다고 해서 되도 않을 무능한 정치인에 매달리는 것은 당장 급하다고 사채 끌어다 쓰는 사업가와 똑같이 미몽에 빠져드는 일이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일일 뿐이다.


우리 선배들이 피땀흘려 지켜온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지금 당장 내가 할 일은 무엇이며, 우리가 찾아서 부려야 할 충실한 하인들은 누구인지 맑은 눈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그게 우리의 대안이다.


끝.







물뚝심송

트위터 : @murutukus


편집 : 딴지일보 홀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