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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진왜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분의 어록과 관련 문구를 몇쯤은 알고 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일휘소탕 혈염산하(한 번 크게 휘두르니 피가 산과 강을 물들이누나)"

 

다음의 어록은 빠지지 않으며, 빠질 수도 없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

 

전전긍긍하는 선조의 입을 틀어막고 명량해전의 기적을 예고한 이 한마디. 나중에 한 척의 판옥선이 더해져 13척이 되지만 저 열두 척의 판옥선이 없었다면 조선은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탑승했을 것이다.

 

12척의 판옥선을 지켜내 이순신에게 배달해준 기적의 남자, 그의 이름은 배설(裵楔)이다. 우리는 그를 이순신을 배신한 비겁한 탈영병으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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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은 왕을 제외한 모든 의사결정집단 구성원을 고시로 뽑은 중앙집권적 공무원 사회였다. 고시 엘리트 국가의 무관은 재미난 존재다. 임진왜란 초기를 보면 전쟁에 숙달되지 못한 조선군의 일반 병사들은 왜군에 비해 전투력이 형편없었다.

 

그런데 무관들은 전투에서 패할지언정 개인적인 무력은 대단했다. 신립은 탄금대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지만 혼자서 스무 명이 넘는 왜군을 베고 절벽에 몸을 던졌다. 이런 무력이 가능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의 무과 시험과목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기마술 통과 기준은 무공을 넘어 라스베이거스 서커스 수준이다.

 

아무나 공무원이 될 수 없기에 조선 관료들의 직업윤리는 견고했다. 흔히 사극에 전, 현직 관료가 목숨을 걸거나 자결하기 직전 "국록을 먹은 몸으로..."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거 요즘 말로 손보면 그냥 "월급 받았으므로 목숨 건다"는 뜻이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에게 목숨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보다 제 목숨이 소중한 건 인지상정 아닐까? 공무원도 직업인 만큼 주어진 상황에서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닐까. 잘 먹고 잘살기 위해 공무원을 하고, 인정받기 위해 능력을 발휘한다. 국가라는 직장은 '직원'에게 그 정도만 요구하면 되지 않을까.

 

무관 배설은 유능한 공무원이었다.

 

 

3.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배설은 상관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 왜군과의 전투에 참여한다. 그는 상관의 명령을 곱게 따랐고, 상관은 곱게 패배했다. 그러나 전투에 패배하자 그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는 대신 신속하게 지방의 장정들을 모아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행정 능력을 발휘했다.

 

일 잘하는 배설은 합천 군수로 승진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투에서 겁을 먹고 도망가는 적병을 추격하지 않았다. 그렇다. 이 사람은 합천 군수다. 군수의 일은 관할지를 지키는 것. 배설은 맡은 바 임무를 다했으므로 야근은 거부한 것이다.

 

이 일로 의병장 김면에게 곤장 20대를 맞았다. 그는 김면에게 반항했는데 이유가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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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이 어찌 일개 서생의 명령을 듣는단 말인가?"

 

그러나 배설의 말은 일리가 있다. 김면은 전쟁통에 조정에서 배설보다 높은 품계를 받았다. 하지만 의병장을 우대하기 위한 명예직이었다. 반면 배설은 차근차근 승진한 정규직 공무원이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낙하산에 휘둘릴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으니, 그의 삶을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있다.

 

곤장을 맞은 배설은 필요한 곳마다 투입되어 백성들을 동원해 성도 쌓고 행정도 정비하는 등 조정이 시키는 일을 착착 해낸다. 일 기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

 

 

4.

 

이순신 장군께서 고초를 겪으신 후, 원균이 해군력을 말아먹은 칠천량 해전에 배설이 있었다. 그는 조선 수군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원균의 모습을 보고 고뇌에 휩싸여 있었다. 배설, 그는 상관에 반항하는 객기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다.

 

원균 밑에서 그나마 열심히 잘 싸우며 이 기록적인 패전에서 유일하게 공을 세우기도 했던 배설. 그러나 원균이 이틀 연속 대패를 당한 후에도 장수들을 불러모아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하자, 그는 결심한다.

 

'오케이, 난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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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은 불가능일 뿐. 배설은 가능한 상황에서만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음날, 조선 수군이 섬멸되는 지옥도가 펼쳐질 즈음 이미 배설은 전장을 신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12척의 판옥선과 120명의 부하를 이끈 그를 왜군 선단이 가로막았다. 배설은 아마도 수십 척, 최소 십수 척의 배를 물리치고 그중 8척을 격침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올리며 포위망을 뚫었다.

 

배설은 자신만 빠져나가기 위해 부하들과 배를 희생시키지 않고 모두를 지옥에서 건져냈다. 자기 휘하의 무기와 군사를 지키는 일도 공무원의 윤리다. 물론 다른 '공무원'의 사정이야 알 바 아니다. 허나 적어도 자기 일에는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도 윤리는 있다. '직장인의 윤리'가...

 

'나는 내 일만 한다. 단, 할 때는 최선을 다해서.'

 

정말 칭찬받아야 할 일도 있다. 배설은 도망 중에 한산도에 피신한 조선 백성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왜군에 학살당할 운명이었다. 전시의 장수가 백성을 구함은 공무원의 윤리! 내 목숨이 가장 소중한 배설이지만 '가능한 상황에서는' 할 일도 한다.

 

배설은 한산도의 피난민들을 모두 배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구조했다. 그 와중에 왜군에게 넘어갈 뻔한 군사시설과 군량을 불태우는 '업무'도 잊지 않았다. 이런 부하직원과 일하고 싶지 않은가?

 

 

5.

 

상관이 죽은 원균에서 살아 돌아온 이순신 장군으로 바뀌자, 공무원 배설은 불세출의 영웅에게 전함 12척을 안겨준다. 그러나 <난중일기>에는 배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다. 이놈이 말을 안 듣는 건 아닌데, 슬슬 눈치를 보며 굼띠게 행동하는 게 아닌가? 우리 충무공 장군 열받게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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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는 배설의 모습을 '두려워했다'고 표현하는데 한문에서 이 표현은 '겁을 먹었다' 와는 조금 다르다. '우려했다'는 것에 가깝다. 배설은 충무공이 13척의 배로 왜군의 대선단에 도전하려 하자 이 양반 이거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렇다, 불가능은 불가능이다.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 수도 있겠지만 그건 말이 될 때만, 또 내가 산다는 희망이 있을 때만이지. 아니 그런데 이놈들이 죄다 미쳤는지 이순신의 연설 한 번 듣더니 장수고 졸병이고 한번 해 보자고 한다.

 

'아 놔... 님들 정신 차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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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배설이 어디 상관의 명령에 저항하는 사람이던가. 그는 뼛속까지 공무원이다. 배설은 항명하는 대신 병을 핑계로 이순신을 피해 다녔다. 핑계도 가관이다. 뱃멀미였다. 적선 8척을 침몰시키며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수군 장수 입에서, 뱃멀미를 핑계로 미팅은 다음에 하자는 핑계가 나오다니...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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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은 결국 탈영해서 이순신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그런데 탈영 중에도 할 일은 했다. 병을 핑계로 멀찌감치서 적의 동태를 확인하는 임무를 따낸(?) 배설은 <난중일기>에 따르면 양력 10월 12일에 탈영했다. 그런데 14일에 배설의 종복이 충무공을 찾아와 적의 동태를 보고했다. 공무원 배설, 도망치는 와중에도 마지막 업무보고는 잊지 않은 것이다. 이쯤 되면 위대한 수준이다.

 

전쟁사에는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영웅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그런 일을 해내니까 영웅으로 불린다. 영웅은 고난에 처한 국가와 민족에게 로또 같은 존재다. 그에 반해 배설처럼 유능한 공무원은 두둑한 만기 적금이다.

 

배설은 결단코 영웅은 아니지만, 잡놈은 더더욱 아니다. 배설, 그는 공무원의 신화이며 공무원의 이데아다. 다만 영웅이 어떤 존재인지 예측할 수 없었음이 그의 불행이다.

 

아니 세상에, 13척으로 300척의 적을 이길 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명량해전은 조선에 기적이었고 완벽한 반전의 대서사시 속에서 배설의 이름은 수치와 배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배설은 그답게 잘 잡혀주지 않았다. 그러나 권율이 아버지를 대신 붙들어 협박의 시그널을 보내자 서산에서 체포되고 만다. 이 또한 너무나 배설답다. 조선의 양반에게 효를 지키는 일 또한 당연한 소임. 그는 해야 할 일은 한다.

 

배설은 참수되었다. 그리고...

 

 

7.

 

조선은 배설이라는 인물을 곰곰이 다시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조선은 공무원 사회다. 모든 공무원에게 충무공 같은 영웅이나 사육신 같은 충신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 국가와 공무원은 계약관계다. 녹봉으로 능력뿐 아니라 일정 수준의 충성도 구매하지만...

 

배설의 충성 이상을 요구하는 게 양심적일까?

 

공무원은 배설 만큼만 하면 된다. 아니 그만큼 하면 최고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배설에 대한 평가를 재고할 만큼 세련된 면모가 있었다. 광해군 때에 이르러 배설은 복권되었다. 그는 병조판서(국방부장관)에 추증되었다. 여기엔 당연히 공무원 사회에 보내는 시그널이 담겨 있다.

 

'배설은 여러분이 롤모델로 따를 만한 모범적인 공무원이다.'

 

배설은 고종 대에 한 번 더 병조판서로 추증되었다. 이 사실은 재미있다. 외세의 탐욕 앞에 나라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었을 때, 무너져가는 왕조는 초인적인 영웅뿐 아니라 여러 명의 배설도 원했다.

 

 

8.

 

영화 <명량>이 1700만 관객을 동원하자 배설의 후손들이 소송을 냈다. 돈이 중요하지도 않았고 승소를 기대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후손들의 억울함을 알리고 조상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려는 소송이었다.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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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하다. 배설은 자신을 참수한 왕조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두 번이나 복권/추증한 인물이다. 이로써 역사적 재평가는 끝났다고 봐야 옳다. 그러나 후손분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시대가 바뀌었다. 역사적 평가는 이제 사서의 기록이 아니라 대중이 소비하는 이미지로 정해진다.

 

충무공 같은 영웅은 존경받는 '칭송의 대상'이다. 

배설과 같은 공무원은 인정받는 '추천사항'이다.

 

우리 사회생활 하면서 절절히 깨닫지 않는가?

배설 만큼 하는 거, 이거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