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99번째 3.1절을 맞이한 2018년 3월 1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 도심 곳곳에서 일명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행사가 열렸다. 이름하여 '구국과 자유통일을 위한 3.1절 한국교회 회개의 금식기도대성회 및 범국민대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의 주체로 진행된 당시 행사는 한미동맹의 강화와 북핵의 무력화 등을 관철시키기 위한 집회였다고 한다.

 

스크린샷 2018-03-15 오후 12.19.29.png

관련기사 - 링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찬양도 부르며 진행된 이날 집회는, 사실 지난해 대통령의 탄핵 정국을 맞이한 상황에서도 진행된 바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진행되면서 줄곧 “거짓이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다.”고 주장한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해 왔고, 현재는 집권 여당을 공산주의자이자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며 집회를 진행중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많은 범죄사실들이 소명되어 재판을 앞두고 있다. 전 정부의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의 고위관료들도 대부분 범죄혐의가 인정되어 구속수감 되거나 감옥에서 형량을 채우고 있다. 그런데, 헌정사상 이와 같이 부패한 국정농단 사태는 없었다고 평가되고 있음에도, 한국교회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한기총은 범죄사실이 충분히 소명된 이들을 두둔하며 연이은 집회를 진행 중이다.

 

 

 

1. 한기총, 그들은 누구인가?

 

1989년 설립되어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 ‘한기총’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줄임말이다. 한국 개신교의 여러 종파들 중에 일부 종파가 모인 연합 단체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교회를 대표하여 활동해 왔었다. 물론, 한기총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스스로가 부여한 대표성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단체의 뿌리는 무엇이고 이들은 왜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부패한 정권을 비호하고 나섰을까.

 

4922.jpg

 

1989년이 설립년도이기는 하지만, 사실 ‘한기총’의 시작은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3번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3선 개헌’을 추진하고 있었다. 1962년까지만 하더라도, 제3공화국 헌법에 의거, 우리나라는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영구 집권의 발판을 마련코자 헌법을 개정하려 했던 것. 이 ‘3선 개헌’안은, 역사적으로 1972년, 한국판 ‘메이지 유신’이라 불리는 ‘유신체제’와 더불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기집권 디딤돌이 되는 사건인데, 지금의 ‘한기총’은 ‘3선 개헌’을 찬성하면서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의 개신교는 급속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한국교회에 말한다9(링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정식으로 등록된 교인 수가 몇 배, 몇 십 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니 정치꾼들에게 한국교회야말로 투자가치가 충분한 곳 아니었겠는가. 투표로 당락이 좌우되는 민주주의 정치에 걸맞게 그만한 지지자 수가 필요했던 정치세력은 다수의 표심을 가진 한국교회의 힘이 필요했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자신이 추진하고자 했던 개헌안이 통과되도록 다수의 동의가 필요했다.

 

신사참배에 대한 과오에 뚜렷한 해결점을 찾지 못했던 교회의 정치권력 계층은 이러한 정부의 부응에 맞춰 국정 운영의 안녕과 반공산주의를 위해 ‘3선개헌’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는데, 훗날 이를 지지한 기독교 종파들이 ‘한기총’이 된 것이다. 사실상 한국형 ‘정교유착’(政敎癒着)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왜 이 단체가 지금까지 박정희-박근혜를 지지하고, 국민들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가운데서도 꿋꿋하게 태극기를 휘날리는지는 40년만 돌려보면 이해(?)할 수 있다.

 

04064350_taegup3.jpg

 

2. 한기총을 움직이는 작동 원리(1) – 잘못된 해석

 

지금까지 한국교회가 안고 있던 문제는 다름 아닌 성서해석의 오류였다. 교회를 다니지 않거나, 무늬만 교인인 사람들도 왜 성경 구절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어야 하는가 비판했던 이유는 다름 없다. 성경의 내용이나 정신보다는 ‘경전’(經典)자체를 신성(神聖)시 하여 ‘일점일획’(一點一劃)의 오차도 없다는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해 오류가 있는 문자들까지 합리화했던 지난날의 교회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기총’과 같은 기독교 단체들은 어떻게 성경을 잘못 이해했을까. 흔히 보수 단체라 불리는 한국개신교 단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복종을 강요할 때 주로 사용하는 구절은 로마서 13장의 내용이다. 해당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은 누구나 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해야 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이미 있는 권세들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역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요, 거역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2절>

 

위 구절은 문자 그대로 국가 권력에 대한 성경적 태도를 분명하게 나타낸다. 때문에 역사적으로 위 구절은, 고대 로마의 황제를 위해, 중세 왕권신수설을 위해, 현대에 들어서 독일의 히틀러나 한국의 박정희가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 하기 위해 사용하였다. 전두환이 쿠데타로 집권하고 난 후, 정권의 정당성을 부여 받고자 한국교회의 대표자들(한경직, 조향록 목사 등)을 종용하여 사용했던 성경도 바로 이 구절이다.

 

그런데, 과연 이 구절이 국가의 권력에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뜻을 갖고 있을까? 로마서가 쓰여질 당시의 상황을 살펴본다면, 해당 구절이 단순히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질 수 없음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로마서는 ‘바울’(Paul)이 쓴 편지이고 기원 후 50년경에 쓰여졌다고 알려져 있다. 바울이 활동하던 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고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로마의 황제는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라고 말한다. 권세를 가진 이, 당시 로마황제의 권세가 황제 스스로가 갖는 권위에서 오는 것이 아닌, 자신이 믿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사실상 이는 모든 권력의 주체가 로마 황제라는 메시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와 관련, 'Good Stewards Church'의 송병주는, 바울이 이 구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절대적 권력을 가진 황제 숭배 사상을 향해, “신이라 불리는 황제여 그대들은 하나님이 세우셨다, 고 함으로써 황제를 종으로 만들어 버리는 ‘반역'을 시도한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권세를 향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가르치기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닌, 권세를 가진 이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말한 것이다. 로마 황제가 가진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相對的)이라는 것임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구절이 바로 로마서 13장이다.

 

그렇다. 수없이 많은, 절대권력을 가지려는 이들의 욕망에 뒷받침되어 온 위 구절의 본 뜻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함이 아닌, 권력의 본질과 원천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스스로 권세 있는 자로 여기는 지도가의 태도는 신을 조롱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절대권력을 쥐려 했던 히틀러와 그를 우상화하려 했던 나치정권 및 독일의 국가교회에 저항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목적을 위해 성경을 수단화했던 것과 불합리한 권력의 ‘저항’에 대해 언급하는 신학자가 많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f9e5bf0b4a3531e19a9dd0dd4239ea2d--the-vatican-wwii.jpg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도, 왕정시대에 살았던 이였음에도 장기적인 폭정이 계속된다면 폭군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하다 말했고, 16C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 역시도, 자신의 저작 <기독교 강요>를 통해, “통치자가 폭군 노릇을 하면 국가의 고위 당직자들이 그 폭군을 제거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C를 대표하는 영국의 신학자 ‘존 스토트’(John Stott)도 “국가가 하나님이 명하는 것을 금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는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로마서 13장은 권세를 가진 이들이 권력을 사용함에 있어 불합리할 경우, 통치의 정당성은 소멸되고 국민은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가의 지배계층으로 혹은 기득권층으로 자리매김 했던 이들이 성경을 근거로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하려 했던 시도들은 성경의 본 뜻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적 오용의 결과였던 것이다.

 

 

 

3. 한기총을 움직이는 작동 원리(2) – ‘메카시즘’(McCarthyism)

 

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소비에트 연방)의 군사적 대립으로 전 세계가 초긴장에 있었던 ‘냉전’(Cold War)의 시대, 한반도는 이념 갈등의 최대 피해국이었다. 군사적 전쟁은 중단되었지만,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Ideology, 이념/사상) 전쟁 속에서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자유조차 누리지도 못했던 그때, 생각의 ‘다름’을 해결하지 못하고 끝내 세계에서 가장 잔인한 전쟁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한국 전쟁’(6.25전쟁)까지 치러내야만 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국가를 배신한 친일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는 과업을 채 이루기도 전, 한반도에 불어 닥친 이념 갈등은 누군가에게는 호재로, 누군가에게는 악재가 되었다. 특히 나라가 위기에 닥쳤을 때, 재빨리 기득권에 목을 조아렸던 친일 세력은 자신들에게 향한 화살을 돌리기에 적합한 상황을 모색하던 중, ‘공산주의’(Communism)에 대한 막연한 적대감에 사로잡힌 군중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빨갱이’, ‘공산당이 싫어요’와 같은 말들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이켜보면, 친일파의 적반하장식 군중 몰이가 어떤 성과를 거두었는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이념 갈등의 시작은 다름 아닌, 부패한 정치인이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고안해 낸 ‘꼼수’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이다. 1946년, 미국의 위스콘신 주 연방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요셉 메카시’(Joseph McCarthy)가 금품 수수 및 각종 부정부패로 정치적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공산주의 혐오 사상’이었다. 소련의 첩자들이 미국 내에 활동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막연한 긴장/공포감을 심어주었던 그는, 1950년 자신이 속해 있던 공화당의 당대회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표하여 관심을 얻어냈고, 관심을 돌려 허물을 감추었던 그의 정치적 계산은 적중했다. 그렇게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극복한 ‘요셉 메카시’는 1950년부터 약 5년여 기간 동안 미국 전역을 휩쓸게 된 공산주의자 색출 운동을 주도하며 수 많은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켰다.

 

mccarthy-map.jpg

 

최근 개봉하여 화제를 모은 영화 ‘1987’을 기억한다면 당시 미국의 상황이 연상될 수 있다. 사상적 갈등으로 빗어진 무고한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이 무분별하고 근거 없는 모략의 대명사인 ‘메카시즘’은 미국 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부터 줄곧 각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덮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박정희, 전두환 등 부정한 독재를 꿈꾸는 이들에게, 반대세력이 공산당이나 빨갱이 등으로 내몰린 이유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죄없이 죄값을 치러야 했단 말인가.

 

과거, ‘공산당 몰이’ 모략으로 벌어진 일들이 대부분 조작으로 밝혀져 무죄 처리가 된 걸 보면, 또 ‘요셉 메카시’의 이름을 본떠 만든 ‘메카시즘’(McCathyism)이 자신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한 야비한 미국인에 의해 고안된 위기 모면용 꼼수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반공’(反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무분별한 법적 처벌이나, ‘종북좌파’라는 명칭으로 일부 정치권 세력이 공산당으로 내몰리는 상황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시츄에이션’인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한기총을 비롯하여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온 자칭 보수단체들의 모습은 과거 ‘메카시즘’에 사로잡힌, 그래서 무분별하게 상대를 적으로, 공산당으로 빨갱이로 내몰아 부치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들에게 반공은 교회의 친일 행적을 덮기 위한 수단이었고, 정치적 비호 아래 권력을 유지시켜주는 방패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