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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이지호

 

2017년 3월 31일,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배 한 척이 침몰했다. 이름은 스텔라데이지호. 한국인 8명, 필리핀인 16명, 도합 24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이 중 구조된 것은 필리핀 선원 두 명. 나머지 22명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말 그대로 ‘실종자’가 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1993년 일본에서 건조되어 유조선으로 15년가량 일했다. 2009년 선사(船社)인 ‘폴라리스 쉬핑’이 사들였을 즈음엔 이미 퇴역했어도 오래전에 했어야 하는 노후선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폴라리스 쉬핑은 철광석 운반선으로 개조해 바다 위를 달리게 했다. 그것도 기름보다 무거운 철광석을 싣고 말이다(사고 당시에도 철광석 26만 톤을 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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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한국은 탄핵정국이었다. 폴라리스 쉬핑 사고 대책 본부엔 정부가 없었다. 사고 소식도 선사에서 전해주었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일 자리를 마련한 것도 선사였다. 가족들은 정부가 아닌 선사로부터 정보를 얻어야 했다. 물론 선사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명확하게 밝힐 리 없다. 해경과 외교부에 사고에 대해 신고한 것도 각각 11시간, 16시간이 지난 시점에 했던 이들이었다.

 

사실을 밝히지 않는 선사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부. 실종자 가족이 믿을 수 있는 건 김영미PD 뿐이었다. 실종자 가족인 허영주·허경주 자매(허재용 2항해사의 가족)는 말했다.

 

“PD님이 그곳에 가주시면 안 돼요?”

 

‘그곳’이란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의 구조 주체국인 우루과이였다(IMO(International Maritime Organization, 국제해사기구)의 규정에 따라 바다에서 사고가 날 경우 인접국가가 구조활동을 총지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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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난 곳이 대서양 한가운데였기 때문에 주체국인 우루과이도 사고해역과 무려 3000km나 떨어져 있다.

 

우루과이로 가야한다는 것 빼곤 아는 게 없었다. 자신도 없었다. 현장접근도 힘든데 사건이 일어난 지 몇 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취재하는 사람으로서 승부내기가 쉽지 않은 주제였다.

 

그럼에도 김영미PD는 취재를 시작했다. 언론인으로서 면피의식에서였다.

 

 

1. 취재를 하게 된 계기

 

챙타쿠(이하 ‘챙’): 어떻게 실종자 가족들과 연이 닿았나요?

 

김영미PD(이하 ‘김’):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대책위 쪽에 계신 분이 가족분들에게 제 얘기를 하셨대요. 그렇게 만나게 됐죠. 처음에는 그분들이 더 이상 하소연할 곳도 없다는 얘기를 들어서, 나라도 얘기를 들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시민대책위 분들하고 허영주·허경주 자매가 나왔는데, 정보를 들을 데가 선사하고 정부밖에 없다는 거예요. 가족들이 정보를 입체적으로 알지 못하니까, 한쪽의 일방적인 얘기만 들으니까 정보를 검증할 수가 없죠.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 일에만 매달려있어서 생계를 하나도 못 하고 있다고 하는데, 빨리 이분들이 진실을 알았으면 좋겠는데,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거예요. 생사확인을 하고 또 사고원인 규명해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지금도 그렇긴 한데, 그때도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와 선사에 대해 굉장히 불신이 컸어요. 거짓말을 많이 해서 믿을 수가 없고, 언론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믿을 수가 없다고. 언론도 선사와 정부 편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안타까웠죠.

 

: ‘언론인으로서 면피의식’이 작동한 건가요?

 

: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하면 가족분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을 덜 하시지 않을까 했죠. 아마 우리 언론이 사건 초창기에 갔으면 더 알아냈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갔을 때는 벌써 6개월 정도 되었을 때였어요. 그때가 아니라 지금 가서 미안하다고 생각했어요. 사건 초기에 갔었으면 조금 나았을 텐데.

 

: 진상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셨는지.

 

: 자신이 없었어요. 사실 취재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가는 거거든요. 출장비도 어마무시하게 들고. 스텔라데이지가 침몰한 곳은, 남대서양 가운데, 진짜 망망대해에요. 현장접근이 안 되니까 막막한 거예요. 현장접근이 안 되면 승산이 없단 말이에요.

 

가족들한테도 가봐도 더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라고 말했어요. 내가 모자랄 수도 있고 현지 상황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했죠. 가봐도 많이 알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는 거죠. 무조건 비관적인 상황이고 취재 자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 그래도 가셨네요.

 

: 갈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피해자 가족, 실종자 가족이 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어요. 근데 누구는 되잖아. 아픔이라는 거는 겪어보기 전에 몰라요. 당하면 엄청난 아픔이고 슬픔인데 남들이 몰라줄 때의 외로움과 서러움은 2차 데미지로 와요. 누군가가 들어주고 관심 가지는 게 이분들 정신건강에도 좋고 위로도 되는 거예요. 제가 안 된다고 해도 그분들이 저를 강제로 밀진 않겠지만, 그래도 간다고 하면 조금 위로도 될 것이고, 기대도 있을 수 있고, 그 힘으로 버틸 수 있기도 하겠죠. 나아가 진상규명이 될 수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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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어요.

 

 

2. 우루과이로 떠나다

 

: 취재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루과이로 떠나신 게 시작이에요.

 

: 우루과이 MRCC(해난구조대)가 이 사건의 컨트롤타워였으니까요.

 

: (우루과이에 가서) 스텔라데이지 사건을 보도했던 방송사 <채널5>와 신문사인 <엘파이스>에 가시잖아요. 근데 그들도 우루과이 국방부에게 받은 자료로 기사를 썼을 뿐 직접 취재한 것은 아니었다고.

 

: (취재하기엔) 사고가 벌어진 데가 워낙 먼 거죠. 접근이 안 되는 상황이니까.

 

(방송사와 신문사에선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방문한 우루과이 기자협회에서 “우루과이 선원노동조합에 가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주 중요한 얘기를 듣는다)

 

: 우루과이 선원노동노조의 위원장으로부터 ‘스텔라데이지호의 생존자가 “스텔라데이지호는 두 동강이 났다”는 증언을 했다’는 얘기를 듣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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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김PD로 하여금 배의 결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 배가 쪼개져서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거잖아요. 실마리를 발견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은데.

 

: 아뇨, 일단 안 믿었어요. 그들이 본 게 아니잖아요. 그 눈으로 봤다고 하면 믿었겠지만 그쪽도 우루과이 MRCC 보도자료에서 본 얘기니까 믿지 않았죠. 다리 건너 들어온 정보니까 루머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이걸(두 동강 났다는 증언) 확인해야 되는데 타임머신 타고 그 때로 가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잖아요. 증명을 못 하면 그냥 썰이죠. 카더라. 카더라 가지고 기사를 쓰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김PD는 증언이 나온 과정을 밟아 올라간다. 선원노조가 알려준, 스텔라데이지호가 두 동강이 났다는 증언은 우루과이 MRCC의 공식보도자료로부터였다.

 

김PD는 MRCC을 찾아가 책임자 오캄포 대령을 만난다. 오캄포 대령은, 사고 인근 해역을 지나던 ‘엘피다호’가 필리핀 선원을 구조했고, 구조된 선원이 “스텔라데이지호는 두 동강이 났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3. 결정적 단서, 동영상

 

: 구조된 필리핀 선원을 만나러 필리핀까지 가셨다고 들었는데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다고요. 그게 필리핀 선원하고 선사가,

 

: 계약을 체결했죠. 침몰 상황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을 않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들었어요. 얘기를 더 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자기가 판단했을 때 그 얘기를 하면 불리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말을 안 하는 거겠죠.

 

(생존선원에게 직접 얘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꺾여서 침몰했다’는 증언에 대한 접근 창구가 모두 막힌 건 아니었다. 다행히 ‘엘피다호’에서 선원들 구조 당시를 동영상으로 찍어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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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피다호에서 찍은, 구조 당시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

이 영상의 존재는 허영주·허경주 자매가 SNS를 통해 알아냈다.

 

: ‘엘피다호’에서 구조 당시 찍은 동영상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이걸 왜 찍고 있었나요?

 

: 상선이란 게 물건을 제 시간에 목적지까지 갖다 줘야 돈을 받잖아요. 근데 국제법상 배 하나가 침몰하면 인근을 지나가는 배들이 구조작업에 참여하게 되어있어요. 이렇게 구조작업 하다 보면 며칠이 딜레이될 수도 있죠. 실제 엘피다호도 5일 정도 그 해역에서 떠나지를 못했어요. 국제법상으로 못 떠나게 되어있거든요. 대신 구조작업에 참여했을 때엔 (화물 수송이 늦었다는 것에 대해) 위약금을 물지 않아도 돼요. 그래서 동영상을 찍었던 거에요. 일종의 증명서죠. 엘피다호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구조작업을 했다’는 게 증명되어야 위약금을 물지 않으니까 되게 열심히 찍었던 거예요.

 

: 그래서 화질이 좋군요. 화질이 너무 좋아서 재연영상인 줄 알았어요.

 

: 구조작업 하느라 늦었다는 증명을 받기 위해서 애쓴 거죠.

 

(김영미PD는 해당 영상을 입수하기 위해 엘피다호의 행방을 찾는다. 엘피다호 역시 스텔라데이지호처럼 물건을 운반하는 배라서 김PD가 동영상의 존재를 확인했을 때도 항해 중이었다고 한다. 다행인 건 엘피다호가 우루과이의 옆나라인 아르헨티나로 오고 있었단 사실이었다.)

 

: 엘피다호가 들어오는 건 좋은데, 아르헨티나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고요.

 

: 폭풍우가 와서 배가 접안을 못 했어요.

 

: 접안을 못 하면 바다에 계속 떠 있는 건가요?

 

: 거기는 바다가 아니라 강이었어요. 파라나강.

 

: 배가 강으로도 들어오나요? 엄청 크잖아요.

 

: 저도 처음엔 바다로 들어올 줄 알았어요. 근데 강 근처에 있는 산로렌조’라는 곳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바다 근처에 또 ‘산로렌조’가 있더라고요.

 

: 원래 들어온다는 파라나강 근처 말고 바다 근처에도 ‘산로렌조’가 또 있었다는 거죠?

 

: 네. 듣기는 강 근처의 산로렌조라고 들었는데,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현지 스텝(통역, 현지가이드 등)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무래도 강 근처 같긴 한데, 여기가 내가 한 번도 안 와본 데잖아요. 현지인들이 자꾸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바다가 있는) 산로렌조라고 우기니까 갔죠. 느낌도 그렇잖아요, 바다 근처로 오겠죠.

 

: 그렇죠.

 

: 근데 그 큰 배가 강으로 올라가 버렸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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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파라나강 근처의 산로렌조로 가야 하는 거죠. 현지 스태프들에게 뭐라고 하면 일이 진행이 안 되잖아요. 얘기를 못 하고, 애들아, 강 근처로 가래. 빨리 가자, 밟아, 밟아, 하면서 간 거죠.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 궂은 날씨 때문에 배가 닻을 내리는데까진 5일이나 걸렸다.)

 

: 당일치기로 끝날 줄 알았는데 거기서 닷새나 걸렸어요. 우루과이하고 아르헨티나는 쾌속선으로 1시간이에요. 그래서 하루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옷도 여유 없이 갔어요. 우루과이 스텝도 마찬가지였고. 그것도 모자라 아르헨티나 스텝은 쉽게 말해 시티보이(cityboy)야. 5일 동안 있는데 계속 불만을 하는 거지. 옷도 없고, 음식도 안 좋고, 지금 와이프가 난리고, 애가 아프고, 별 얘기를 다 했어요. 5일 동안 민원을 듣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접안은 안 됐죠.

 

문제는 또 있었어요. 배가 들어온다고 해도 그 배에 올라갈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접안한) 항구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도 불확실했어요. 거기에 취재는 또 다른 얘기고.

 

: 항구에 들어가는 것 따로 취재하는 것 따로 허락을 받아야 했던 건가요?

 

: 항구는 국가보안시설이에요. 촬영이 원칙적으로 안 된단 말이에요. 아르헨티나 공보부에 요청하고, 경찰서에서 신원보증을 받아야 했어요.

 

: 신원보증은 왜 필요한가요?

 

: 내가 범죄자면 안 되잖아요. 누가 이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이 배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또 배는 그리스 깃발을 달고 있었어요. 아르헨티나에 있어도 그 배는 그리스 영토란 말이에요. 경찰서장한테 신원보증 받은 다음에 (엘피다호의) 선장한테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그랬죠.

 

: 이 과정을 기다리는 닷새 동안 한 건가요?

 

: 중간중간 했지만 확답은 듣지 못한 상황에서, 배가 새벽에 접안을 했어요. 닥치니까 이제 밀어붙이는 거죠. 미리 알려는 줬지만 지금 배가 왔다. 그러니까 나 좀 도와 달라,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결했죠. 새벽 6시에 배가 들어왔는데 서류가 완료된 건 12시? 여섯 시간 동안 뛰어다녔던 거 같아요.

 

: 배에 들어갈 때 한 선원을 위해 간장약을 들고 갔다고 하던데, 제가 만약 그 선원이었다면 너무 고마웠을 것 같아요.

 

(허영주·허경주 자매는 SNS를 통해 엘피다호의 선원과 접촉한 적이 있다. 그 때 한 선원이 간장약을 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것이 기억난 김영미PD는 간장약을 구해 배에 오른다.)

 

: 그렇죠. 근데 취재를 위해 사다줬다기 보단 몸이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 게 안타까워서 구해준 거예요. 배에서 구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좀 열심히 구하러 다녔죠. 그 약이 아르헨티나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약이었는데 다행히 성분분석표를 보니까 요거와 유사한 약은 구할 수 있을 거 같더라구요. 병원에 가서 의사한테 설명한 뒤 처방전을 써달라고 하고 성분이 비슷한 약을 샀죠.

 

항구에 들어가는 것과 취재하는 것도 허락받기도 힘들었던 상황이기는 한데 의사분한테 부탁을 했어요. 일당을 드릴 테니까 우리랑 같이 있어 달라고. 환자를 볼 수 있으면 봐달라고. 가능하면 그 선원이 의사를 보는 게 낫겠다 싶었는데, 선원들은 배 밖으로 못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시고 갔죠. 항구에 들어갈 때 차 안에 의사분이 대기하고 계셨어요. 여차하면 의사선생님을 배로 들여보내달라고 하려 했는데, 가서 보니 상태가 심각하지 않았어요. 다행이었죠.

 

 

4. 동영상을 입수하다

 

: 배에서 드디어 동영상 받을 수 있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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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의 상태에 대해 증언하는 필리핀 생존 선원. 이 영상은 나중에 국감에도 제공되었다.

 

: 진짜 고생고생해서 얻은 영상이라 ‘해냈다!’ 이런 느낌이 들 법도 한데요.

 

: 언어를 모르니 그림만 받은 거였죠. 필리핀 말인데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증언이) 있다고 하지만 확신을 할 수가 없는 거죠. 현지에서는 확인이 불가능했어요.

 

: 저는 번역작업이 완료된 영상만 봤으니까 영상을 손에 넣으셨을 때 기분이 되게 좋았을 거라고 예상했거든요.

 

: 글쎄요. 취재하면서 기분 좋았던 적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항상 불안한 거죠. 만에 하나 아니면 어떡하지? 엘피다호 선원들이 다 짜고 얘기해도 나는 모를 수 있잖아요. 그럼 빨리 확인작업을 해야 하는데 나와 영상은 아르헨티나에 있고 확인은 필리핀에서 해야 하잖아요. 이 영상을 필리핀에 보낼 때부터 생쇼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고, 어떻게 보내긴 했는데 쓰는 말이 타갈로그어(필리핀 언어 중 하나이며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인다)가 아니어서 번역이 불가하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선원들은 필리핀인의 1/4이 쓴다는 타갈로그어가 아닌 필리핀 지방 방언인 비샤어를 쓰고 있었다고 한다.)

 

: 다시 보냈더니 심지어 비샤어하고 다바오어(필리핀 지방 방언 중 하나)하고 섞여 있대. 결국 다바오어 하는 사람이 비샤어로 번역하고, 그걸 또 타갈로그어로 번역하고, 또 영어로.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했죠. 이 과정이 한참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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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번역과정을 거친 영상 속에서 생존선원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선원은 전체적인 배의 부실과 사고 당시를 구술한다.

 

(앞서 말했듯 스텔라데이지호는 이미 고철이 됐어야 할 유조선을 대형 광석운반선으로 개조한 경우다. 원래 철광석을 운송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가 아니라 선체의 강도가 낮았다. 거기다 건조된지 20년이 넘은 노후선이었다. 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 생존선원이 배의 부실을 증언하고 있잖아요. 역시 노후선인 게 문제였던 건가요?

 

: 배가 오래된 것도 물론 그렇죠. 근데 그것보다 이 배는 일본에서 고철로 판 거예요. 쓰레기, 폐선으로. 노후 선박을 넘어서서 (팔 때부터) 이미 생명이 끝났다구요. 폴라리스 쉬핑에서 그걸 데리고 와서 대륙을 몇 개나 건너는 항해를 했단 말이에요. 원래는 기름을 담아 가는 유조선이었는데 (개조 후에) 철광석을 실었어요. 기름보다 철광석이 더 무겁지 않겠어요? 퇴역하고 나서 더 무거운 거를, 그것도 수리비를 줄여가면서 운항을 한 거죠. 그러니까 문제가 생긴 거라고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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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데이지호의 선장이 선사에 보낸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 ‘2번포트에 물이 새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배의 결함을 증명하는 것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 이렇게 결함이 있어 보이고, 생존선원조차 “출항할 때 이미 기울어져 출발했다”고 말하는 배가 어떻게 출항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출발한 항구가 사설항구(스텔라데이지호가 출항한 브라질 구아바항은 브라질 발레사가 소유한 사설항구다)여서 검사가 전혀 안 되었던 건가요?

 

: 그렇죠.

 

: 제2, 제3의 스텔라데이지호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조건에 맞는 또 다른 배가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김영미PD는 자신이 쓴 <시사인> 기사에서 이 항구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사설항구는 안전검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인원도 따로 두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출항 전에 안전검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 선사는 침몰에 대해 선체의 결함이 아니라 황천항해(악천후 항해) 얘기를 하던데요.

 

: 배에 결함이 있었다는 걸 더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선사가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니까 자꾸 자연재해라고 얘기를 해요. 국감에서 ‘황천항해를 했다’고 말하더라고.

 

(폴라리스 쉬핑의 김완중 회장은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보퍼트 스케일 7에 해당되는 황천항해와 같은 항해를 출항 이후 계속했”다고 말한 바 있다.)

*보퍼트 스케일(beaufort scale. 풍력을 측정하기 위해 풍속에 따라 정한 계급. 7은 센바람/강풍이 부는 상태이며, 풍속 13.9~17.1m/sec, 물거품이 바람에 날리는 해면상태,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보행하기 곤란한 육상상태)

 

: 황천항해가 뭐냐면 황천에 갈 만큼 굉장히 힘든 항해라는 뜻이에요. 그런 항해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가 침몰했다는 게 선사입장이죠. 그런데 황천항해라고 할 만큼의 날씨가 아니었어요. 그 얘기를 듣고 온갖 유럽에 있는 기상 사이트, 기상 전문가한테 다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고 난리 쳤죠. 황천항해라고 말하는 그 날의 날씨를 증명해야 되니까.

 

: 결과는 어땠나요?

 

: 황천항해라고 할 만큼의 날씨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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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국감에서의 이만희 자유한국당 의원과 김완중 폴라리스 쉬핑 회장

 

 

5. 수색과 구명벌 사진

 

: 지금까지 나온 게 선사의 주장과 생존선원의 증언 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초반에 수색이 잘 진척되지 못해서 이렇게 증거가 없는 건가요?

 

(앞서 나온 우루과이 MRCC의 오캄포 대령은 “우루과이를 비롯해 브라질, 아르헨티나, 미국 등이 구조에 나섰으며 40일 동안 수색했다”고 말한다. 사고가 있고 브라질 해군이 수색을 시작해서 구명정 등 유류품을 수거했고, 우루과이 해군은 출동했지만 배가 작아 사고현장에 가지 못하고 되돌아왔다. 커다란 결과가 없었다는 말이다.)

 

: 실제로 구조 활동을 하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가 굉장히 가난한 나라였으니까(수색이 잘 되지 않았다). 남미 국가들 중엔 군부독재를 겪은 나라가 많은데, 그런 나라들은 다시는 군부가 독재 안 하게 국방비를 확 줄여요. 국방부 예산이 많지가 않으니 수색하러 갈 때 최첨단 장비를 쓸 수 없는 거예요. 배 자체가 워낙 높아서 헬기로 수색을 해야 하는데 헬기가 없었어요.

 

그나마 브라질 해군이 사고 나자마자 갔는데 4월 7일 도착했어요. 편도로 일주일 걸려서 갔는데 오래 있을 수가 없었어요. 브라질도 탄핵정국이었으니까. 거기도 탄핵하자고 시위 중이었어요, 경제적으로 힘드니까 오래 있을 수가 없었던 거죠.

 

(결국 우루과이는 미군에 도움을 요청했고, 미군은 초계기(경계, 정찰 임무를 수행하는 군용항공기)를 띄운다.)

 

: 그리고 미 초계기가 뜬 거예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떴는데, 초계기가 기름이 많이 든단 말이에요. 그래서 보통 항공모함에서 떠요. 근데 리우데자네이루(육지)에서 뜨니까 사고현장에 가서 몇 바퀴 돌고 나면 기름이 다 떨어지는 거죠. 너무 바다 중간이니까. 항공모함이 안 되면 공중급유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었던 거죠.

 

: 미군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미군 초계기가 구명정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찍었다고 하던데요.

 

(미군은 4월 8일 우루과이 MRCC에 ‘구명벌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는데 기름띠일 확률도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보낸다. 진짜 구명벌이라면 생존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인 것과 마찬가지였다. 한국 외교부 또한 우루과이로부터 해당 사진을 받을 예정이라고 실종자 가족에게 알린다(결국 외교부는 이 사진을 입수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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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게 구명벌인지 기름띠인지 확정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이 ‘기름띠 사진으로 확인됐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국내언론들은 그걸 받아썼고, 사실상 우리나라에서의 수색은 중단되었다.)

 

: 그 사진을 받기 위해 우루과이 정부 상대로 미군 초계기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셨죠?

 

: 네. 그랬죠.

 

(김영미PD가 우루과이 MRCC에 사진에 대해 물었지만, 미국에 요청하라는 답을 들었다. 이후 사진을 받기 위해 우루과이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 그 일로 우루과이 신문에도 나고 우루과이 부통령도 만나셨잖아요.

 

: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기사가 나서 그 나라 일반인들이 많이 알게 됐어요. 시민단체 같은 데서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상규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어요. 도와주려고 하는 데가 많이 생긴 거죠.

 

: 근데 아직도 사진을 못 받으셨잖아요.

 

: 우루과이 국방부가 법정시안을 어겼어요. 그럼 우루과이 국가가 국방부를 상대로 왜 정부공개 요청을 안 들어줬는지에 대해서 법적인 행동을 취할 수가 있어요. 이제는 법정다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 일부러 시안을 어겼을 수도 있겠네요?

 

: 일부러 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직접 들은 건 없지만 법정시안을 넘긴 거는 팩트에요.

 

: 법정싸움은 어떻게 하나요? 검사나 변호사가 붙나요?

 

: 이미 그 나라의 시민단체가 붙어있어요. 시민단체가 다 변호사들을 데리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잘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6. 끝나지 않는 취재, 계속되어야 하는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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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주(왼쪽)·허영주(오른쪽) 자매

 

: 실종자 가족분들이 가장 원하는 건 진실규명일 거잖아요. 블랙박스 수거를 요청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인가요?

 

(현재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는 배와 함께 심해 3000m에 가라앉아있다. 이걸 건지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게 사실이다(프랑스 정부는 심해 3000~6000m에서 블랙박스를 수거하기 위해 2년 동안 4천만 달러를 썼다). 하지만 블랙박스를 분석하면 선원들의 탈출 여부와 사고 원인을 규명할 수 있다.)

 

: 진실은 블랙박스를 건져내서 그걸 해독해봐야 알아요. 제가 진실에 가까운 증언을 구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배가 침몰했을 거라고 말은 하지만, 내가 배가 침몰하는 순간을 본 건 아니잖아요. 이걸 100%라고 말할 순 없어요. 99.9% 팩트라고 해도 0.1%로 아닐 수도 있어요. 블랙박스로 진실규명을 해야 다른 배들이 더 이상 그렇게 어이없이 침몰당하지 않을 거예요. 사고 예방에도 더 신경 쓸 거고요.

 

실종자 가족들은 더 이상 본인들 같은 사람들이 나오길 원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블랙박스 수거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거예요. 자기 동생이 혹은 자기 아들이 어떻게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진실을 알고 싶은 거고, 또 그걸로 인해서 본인들 같은 아픔을 겪는 가족이 없기를 바라는 거죠.

 

: 지금 나라가 해야 할 건 수사와 블랙박스 수집에 힘쓰는 거겠네요.

 

: 국민 한 사람의 생명도 끝까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우리나라 국민이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생명을 잃거나 잃을 만한 일이 있었을 때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하잖아요. 신뢰를 갖게 해줘야 하는 거죠.

 

(허경주·허영주 자매가 블랙박스 수거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타당성과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감되었다.)

 

: 현재 선사에 대한 수사 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 지금 부산 해경에서 수사 중에 있구요.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을 압수수색해서 많은 증거물을 받았다고 얘길 들었어요. 압수물에 의해서 여러 가지 혐의가 적용되나 봐요. 그런데 선사도 유명 법무법인을 선임한 상황이라 법적공방이 있을 수밖에 없죠. 선사는 계속 황천항해라는 말을 쓰니까.

 

: 취재는 어떻게 되는 중인가요?

 

: 저는 최대한 현장취재를 하는 편이지만, 현지에 가서 두 달 넘게 취재를 했기 때문에 SNS로 물어봐도 사정을 대강은 알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취재는 지금도 계속 하고 있죠. 사실 어떤 계기로 취재가 딱 끝나도 문제가 있는 거예요.

 

기사 나고 나서 선원분들이 제보를 많이 해주세요. 고립된 직업이다 보니 말을 조리 있게는 못하셔도 마음은 느껴져요. 어쨌든 한국말은 통하니까 얘기하다 보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그중에 취재할만한 건이 있다고 하면 확인작업도 하고 있죠.

 

: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있으시다면.

 

: 스텔라데이지 사건은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또 간다고 하면 또 가서 취재하는 게 맞는 거거든요. 제가 저작권을 가진 것도 아니고 독점권을 가진 게 아니잖아요. 만약에 형편이 되신다면 제가 안 하고 돈 있는 언론사가 뛰어들어서 적극적으로 한다고 하면 감사해요. 대신 끊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계속 가야 하는 취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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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난 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블랙박스는 대서양 심해에 있고, 미군 초계기 사진은 한국 정부의 손에도, PD의 손에도 들어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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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의 생사여부를 알아야 가족은 더 이상 ‘실종자’ 가족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또 스텔라데이지호의 진짜 침몰 이유를 알아야 제2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진실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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