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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크리스마스 전, 한국 여행을 다녀오다 여권 분실로 부대복귀가 8일 늦었다. 7일까진 부재중인데 8일째부턴 탈영 처리가 되어 제 2외인 보병연대에 복귀하자마자 신분 확인받고 영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최고형인 40일을 중대장, 연대장 보고에 들어가서 받고 영창을 사는 중 아버지 돌아가시고 약혼녀에게 파혼 당하고(내 잘못) 의욕이 없는 와중에 명령불복종과 영창에서의 싸움등으로 다시 40일, 괘씸죄와 뭐뭐해서 다시 40일, 결국 의가사 결정이 나고 2002년 지대만기 1개월 남겨놓고 의가사 제대 한 프랑스 외인부대.

 

외인부대는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인생에서 경험할 수 없는 분쟁지역 참전, 오지 탐험, 훈련에 의한 태평양과 알프스 등등의 경험. 두 번의 아프리카 파병은 돈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이다. 프랑스 국방부 소속으로 동료들과 의지하며 다닌 경험은 무엇과도 비꿀 수 없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제대까지 거의 7개월 간 휴가를 받고 1개월에 한번 씩 오바뉴 사령부에 보고만 하던 시기에 나는 파리의 퐁피두 광장에서 거리의 화가로 아무런 걱정없이 살았다. 외인부대 출신이라는 배경과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미의 화가는 내 정체성인 한국인들을 만나기 전까지 무지랭이로 행복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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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외인연대 상징인 도끼와 공병들. 혁명기념일 샹젤리제 행군 준비.

 

 

파리의 노쟝 요새나 다른 모병소를 통해 지원되는 모든 외인부대 지원병은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근처의 사령부 오바뉴에 모인다. 어디에서 지원 하든 지원한 순간부터 공식적인 외인부대 지원병으로써 급여가 발생한다. 탈락해도 돌아갈 차비는 생긴다. 담배 피는 것 외에 들어갈 돈은 없으니 돈 걱정은 마시라. 문제는 음식인데 지금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아무런 문제 없이 빵과 커피에 익숙해지고 생전 처음 맛보는 음식들에 길들여지게 된다. 솔직히 배고프다. 특히 자극적인 음식 좋아하는 이들에겐 고역이지만 세계 각국, 다른 언어 문화의 젊은이들이 모여 하나의 체계를 익혀가는데 살아왔던 기호는 중요치 않다!

 

나는 1995년, 96년, 97년 마저도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탈락의 과정을 위해 거치는 게쉬타포에서 독일 출신 상사와의 격렬한 논쟁으로 다시 대기소에 돌아왔었다. 구구절절 말도 안되는 영어를 섞어가며 내가 했던 말은

 

'나는 외인부대를 사랑한다.

그런데 세 번씩이나 이유도 없이 돌려 보내면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동료들이 많다면 얼마든지 떠나겠다!' 

 

로 요약해서 삼수 끝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령부의 지원병 대기소에선 총 8가지 테스트를 통과하고 어깨에 빨간 리본을 다는 것이 중요하다. 합격을 의미하여 훈련소가 있는 카스텔노다리의 외인부대 사관학교 제 4 외인연대로 훈련을 받으러 가야한다.

 

그럼, 지원병 대기소에서 받는 테스트는

 

1. 호구조사. 가족, 결혼 여부, 지원 동기, 특기 등등

2. I.Q 테스트, Niveau Général 이라 하고 최고점수 20점에 12 이상이면 하사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설문지 테스트와 그림그리기 등.

3. 지원소 원사 면담. 받은 테스트와 호구조사

4. 의료테스트; 전체적으로 세심하게 받는다.

5. 체력 테스트; 6M 줄타기, 3KM 구보 12분 내. 푸셥, 윗몸일으키기

6. 지원소 중대장(대위) 면담

7. 게쉬타포 조사; 총괄 조사로 하루종일 받음

8. 연대장(대령) 면담. 

 

이후 합격 고지. 매일 아침 8시,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되는 중대 집합 때, 탈락자 이름이 호명된다. 몇번의 테스트를 거쳤는지에 상관없이 호명된다. 제일 슬픈시간. 

 

외인부대는 했던 질문을 또 하고 또 한다. 제대 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명백한 범죄를 지어도 묻고 또 묻는다. 그 과정은 지루하고 이해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 한국사회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차이를 낳게되는데, 한국은 네가 잘못 한 것을 내가 알기 때문에 내 위에서 바로 처리를 해버리고 위에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외인부대는 네가 잘못한 것을 내가 알아도 소대장, 중대장 보고에 들어가고 같은 얘기를 수십번 해도 똑 같은 질문을 하며 충분한 소명을 하게해서 내가 왜 징계를 받는지 명확하게 한다. 그리고 그 징계가 잘못 되었을 땐, 최종 책임자가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물론, 복무 중엔 불만만 많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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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뉴 사령부에서 거행되는 외인부대 최대행사 Le Jour de Cameroun

 

 

합격한 지원병들은 머리를 깍고 피복을 지급받고 합격자 숙소로 이동한다. 그리고 훈련소 이동 전까지 지원병들과 대기하면서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일을 하는데 군기는 아예 없어보인다. 한 번은 합격자들을 상위용사 요양소인 푸이로비예로 가서 하루종일 포도 수확을 하는 것인데 그 맛이 정말 꿀을 흡입하는 듯 기가 막힐 뿐 아니라 일을 하는 멀쩡한 상위용사들은 똑같은 군대생활을 늙어서도 하고 있었다. 

 

그땐 젊었으나 노동은 힘들었고 말도 안통하는 외국이었으나 신비스러움 없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한국 군대를 3주 실미로 면제 받았으니 비교가 불가능하겠으나 한국 군대 다니지 않은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한다. 어느 군대 가서 저리 침대 생활하고 구타와 차별없이 군대 다녔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군대가 프랑스 군대처럼 개인에게 돌아갈 권리와 용품에 착취와 삥땅이 없었다면 세계 최강이라고 자부할 수 있겠지만!

 

지원병 대기소에서는 보통 빠르면 2주, 늦게는 2개월까지도 대기하면서 빨간견장(Rouge:후즈, 빨간색)을 어깨에 달때까지 대기와 테스트를 번복한다. 대기를 할때는 식사후에 담배꽁초 줍는거 외에 하는일 없이 빈둥거리며 새로운 친구들과 말이 통하든 안통하든 친구가 되어 시간을 보낸다. 보통 자국들끼리끼리 모여 논다. 담배는 필요하면 사 필수 있다.

 

어깨 견장은 소대를 뜻한다. 다시말하면, 그때까진 언제떠날지 모르는 떠돌이 지원병이지만 합격을 함으로써, 지원병 중대 표식을 어깨 견장으로 달게되는 것이다. 외인부대원들은 항상 어깨에 견장을 다는데 색깔별로 중대를 뜻한다. 우리는 지원병 중대에 있었으니 빨간색이고 지원병의 줄임말 E.V로 공식 서류에 기록된다. 내 성은 전씨이니 EV JUN 이라 기록된다. 이름은 의무적으로 바뀐다. 

 

외인부대원들은 두 가지 행정적인 전통을 갖게되는데 하나가 의무적으로 이름을 바꾸어 새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고 하나는 제대할때 '품행방정 증명서'라는 받아야 하는 것이다. 품행증명서를 5년 안에 못받으면 영주권을 주지 않는다. 물론 불법이지만 자행해왔다. 또하나 불법으론 영창이 있다. 영창 운영도 불법이었는데 나 의가사 제대후 여론의 뭇매를 맞고 폐쇄했다. 물론,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이번 5월 즘에 행정 문제를 해결하러 프랑스로 들어갈 예정이다. 

 

자! 이제, 어떻게 외인부대원이 만들어지는지 본격적인 일과를 따라가보자. 처음에 보면 모두들 어리버리 까까머리 총각들인데 세월이 지나며 자신감을 가지면 눈빛도 언행도 달라진다. 처음 사령부로 와서 가지고 간 모든 짐을 압수 당하고 외인부대 상징 색인 초록색 체육복을 하사받고 생필품을 보급받고 침대를 배정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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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인부대 기본훈련을 제 4외인연대에서 수료 후, 비로소 외인부대 첫번째 상징인 케피블랑을 착용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많은 이들이 탈락한다.

 

아침 6시, 당직 병장이 '중대 기상'을 외친다. 6시 30, 중대 점호 후, 당직 병장의 구호에 따라 식당으로 이동 후, 아침 식사를 한다. 버터와 잼, 그리고 빵이라니! 식사 후, 남겨진 소수만 식당 청소를 하고 나머지는 대기 중대로 복귀해 청소를 하고 담배꽁초를 줍는다. 외인부대원은 제대할 때까지 담배 꽁초를 줍는다. 8시, 중대 집합, 언제나처럼 탈락자들 이름이 가장 먼저 호명되어 입소할 때 맡겨 두었던 소지품과 대기기간 동안 생긴 급여를 챙겨 군용트럭으로 마르세유 기차역까지 안내해 준다. 

 

오늘은 여기까지. 

 

 

 

편집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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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애묘, 40대를 위한 딴지미팅 목적으로 가입! 2018년 초 2개월간 탈퇴 후 재가입. 딴지 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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