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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와인계에도 귀족이 있습니다. 와인의 고장 프랑스에서 만들어지는 '5대 샤토', 즉, '샤토 라투르', '샤토 라피트 로쉴드', '샤토 무통 로쉴드', '샤토 오브리옹', '샤토 마고'이지요. 여기서 '샤토(Chateau)'는 '성'을 뜻하는 불어로, 중세시대 봉건영주들이 거주하는 영토를 가리켰습니다. 과거에 와인은 귀족이나 성직자만 즐길 수 있는 술이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샤토는 봉건 영주의 영토개념을 벗어나 일정 크기 이상의 와이너리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5대 샤토는 '프랑스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만드는 5개의 와이너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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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5대 샤토 중 하나인 '샤토 라피트 로쉴드(Chateau Lafite Rothschild)'는 보르도 북서쪽에 위치한 메독, 포이약에 걸쳐 있는 와이너리입니다. 14세기부터 있던 농장이지만, 본격적으로 포도주 양주를 한 것은 17세기 세귀 가문이 매입하면서부터로 보입니다. 18세기에 세귀 가문의 니콜라 앙셍드르 후작이 이 농장의 포도 제조 기술과 포도주를 유럽에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그는 포도주의 왕자가 되고, 샤토 라피트 또한 '왕의 와인'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지요. 미국 독립선언문의 작성자이기도 한 토머스 제퍼슨이 방문해 명성이 더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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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샤토 라피트에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프랑스 혁명에 이은 공포정치로 세귀 가문은 소유권을 잃습니다. 네덜란드 귀족이 샤토 라피트를 소유한 뒤 제임스 마이어 로쉴드 남작이 샤토를 구매하면서 샤토 라피트는 지금의 '샤토 라피트 로쉴드'가 됩니다. 1974년부터는 에릭 드 로쉴드가 경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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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샤토 라피트 로쉴드 중 가장 비싸게 평가 받는 빈티지는

1818년, 1846년, 1945년, 1959년, 1961년. 1982년, 1990년, 1996년, 2000년, 2003년, 2005년

입니다. 포도 수확이 아주 잘 되었죠. 핵심 재료인 포도가 풍년이니 맛이 좋은 건 당연한 얘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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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산

 

65. 두 번째 샤토는 '샤토 마고(Chateau Margaux)'입니다. 보르도에서 만들어지는 드라이(달지 않고 쓴)한 와인이으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특히나 사랑했던 와인이라고 알려져 있지요. 얼마나 사랑했으면 자신의 딸 이름을 마고라고 지었을까 싶습니다. 이 샤토 마고는 한 때 '라 모테 드 마고'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모테'는 작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실제로 샤토 마고의 지형의 모습을 그대로 이름에 넣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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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샤토 마고는 1977년 그리스인 호텔리어의 아들 안드레 멘첼로포우로스에게 매입됩니다. 그는 좋은 와인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요절했지만 그가 개선하고자 했던 부분이 후세까지 이어져 지금과 같은 질 좋은 마고가 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샤토 마고 1787년 산은 무려 22만 5천달러(한화 약 3억 원)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 세상에서 현존하는 와인 중 가장 비싼 와인이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하네요. 사실 훌륭한 빈티지가 아니어도 비싸긴 합니다. 최근 빈티지의 일반 소매가가 60만 원 정도라고 하니 한잔에 7-8만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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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전문가들이 와인을 평가하는 기준은 좋은 빈티지일 때가 아닌 포도가 흉작일 때, 즉 빈티지 와인을 생산해내지 못할 때입니다. '논 빈티지' 와인이야말로 와이너리의 진가를 알 수 있는 지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샤토 마고의 진가는 이 때 발휘됩니다. 장마로 포도 농사가 흉작이었던 2004년에도 훌륭한 향을 뿜어낸다고 평을 받았으니까요. 흉작에도 훌륭한 질을 뽑아낼 수 있었던 것은 토양과 와이너리의 숙련된 양조기술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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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프랑스에선 점점 기업이 와이너리를 경영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만, 샤토 마고는 아직까지도 가족 경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맛을 미국화시키지 않기위한 대책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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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더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샤토 마고

 

69. 세 번째 샤토는 '샤토 오브리옹(Chateau Haut-Brion)'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금융업자 글라런스 딜러가 프랑스의 미국대사로 일을 하던 중 1934년 샤토 오브리옹을 인수했고, 지금은 손자인 로버트가 이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오크통에서만 발효할 때 샤토 오브리옹은 빠르게 스테인리스 양조를 도입했습니다. 스테인리스 양조는 오크의 향이 와인에 베어나오는 것을 막아, 보다 와인 맛을 깔끔하게 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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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샤토 오브리옹의 설립년도는 1423년입니다. 다른 명품 샤토보다 빨리 건설된 와이너리로, 19세기에는 가장 비쌌다고 하네요. 샤토 오브리옹의 1년 생산량은 1만 1천 상자에서 1만 3천 상자 정도라고 합니다. 생산량이 적은 편으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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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다른 프랑스 5대 명품 와인과 다르게 샤토 마고는 보르도의 메독 지방이 아닌 그라브 지방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라브는 자갈밭으로 되어있는데요, 다른 지방이기에 와인에서 느껴지는 향도 확연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세간에서는 명품 5대 와인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와인이라고 합니다. 숙성이 덜 된 빈티지도 부드럽다고 하는데요, 숙성이 덜 되었음에도 부드럽다는 것은 토양이나 포도 그리고 와인메이커의 실력이 정말 뛰어남을 보여주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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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지도

 

72. 샤토 오브리옹에서는 화이트 와인도 만들고 있습니다. 그라브에서 화이트 부문에 있어서도 최고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품질이 향상되고 있는 샤토 오브리옹의 화이트 와인은 소량제작되고 있으며 소유주의 요청으로 품질등급에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명품의 고고함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샤토 오브리옹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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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네 번째 샤토는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입니다. 이 이름은 14세기 말 영국과 프랑스 간의 100년 전쟁에서 지어진 탑에 의해 생겨났습니다. 그 때 만들어진 탑은 오래 전에 사라졌으나 17세기 원모양의 돔형태로 재건된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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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샤토 라투르는 보르도의 북서쪽에 위치한 포이약이라는 지방에 있습니다. 생쥘리앙 포도밭과 경계해있으며 가론강 하구와 몇 백미터 떨어져있지요. 와이너리 면적은 65헥타르 정도로, 역시 자갈밭입니다. 자갈밭에 깊게 뿌리내린 포도나무는 특1급 와인들 중에서 가장 질긴 수명을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유통기한도 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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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샤토 라투르의 맛은 전체적으로 과일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보통 테이블 와인의 도수가 12%인 것에 반해 반해서 도수가 높은 편이고(13.3%), 카베르네 소비뇽의 비율이 높기(81%) 때문에 과일향을 느끼기 전에 혀가 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다음 과일 향이 날 테니 조금 참는 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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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량은 매년 4만 상자 정도로 명품 와인치고는 많은 느낌이네요.

 

76. 샤토 라투르는 이건희가 전경련 모임 당시 다른 회장들에게 대접했던 와인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이 중 가장 뛰어난 빈티지는 1982년산입니다. 가격은 약 150~170만 원 정도로, 70~100년 정도 숙성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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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마지막 샤토는 '샤토 무통 로쉴드(Chateau Mouton Rothschild)'입니다. 프랑스 보르도 포이약에서 만드는 드라이한 레드와인이지요. 샤토 무통 로쉴드의 소유주는 로쉴드 차일드 가문으로, 유대인 금융 재벌 그룹입니다. 로쉴드 가문은 샤토 라피트 로쉴드 또한 소유하고 있습니다. 보르도 1등급 와이너리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니,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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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샤토 무통 로쉴드의 수많은 빈티지 중에서 제일 빛나는 건 1945년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태어난 와인이기 때문입니다. 전쟁 가운데서 태어난 최상급 포도, 그리고 그것으로 만든 최상급의 와인이기에 더 가치를 매길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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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무통은 매 빈티지마다 유명 아티스트에게 라벨 디자인을 맡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실바도르 달리, 피카소, 필립프 줄리앙 등 유명한 아티스트들은 모두 무통의 라벨을 디자인 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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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무통은 와인의 질을 높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 노력 중에 하나는 병입 이후에 와인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을 오크통의 단위로 매매했는데 이렇다보니 유통과정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무통은 이를 막기 위해 와이너리 자체에서 병입까지 다 해버립니다.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어 반발이 많았습니다만, 22살이었던 필립 남작이 이를 강행하여 지금의 샤토의 와인 병입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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