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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럼프가 날린 관세폭탄

 

작년에 세금개혁법안을 통과시킨 트럼프 행정부의 2018년도 경제정책의 핵심은 무역전쟁이었다. 먼저 개요를 함 훑자. (계산상 편의를 위해 1000= 1달러로 가정하고 쓴 글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22일 태양광 패널과 세탁기에 대한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3월에는 철강제품 등으로 관세품목과 액수를 확대했다. 이러한 관세정책의 최종 타겟은, 명확하게 중국이었다.

 

4월에 중국이 3조 원가량의 미국산 농산물(과일, 견과류, 햄 등) 에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콜'을 하자, 61550조 원에 달하는 중국산 공산품에 추가관세를 부여함으로써미국이 '레이즈'를 했다. 일단 중국은 여기까진 콜. 같은 날 중국은 50조 원에 달하는 보복관세를 부여하며 미국의 무역전쟁에 응전한다.

 

그러자 트럼프는 다시 710일 무려 200조 원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여할 계획을 발표하면서 다시 레이즈를 한다(즉각 부여한 게아니라, 앞으로 부여할 품목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에 대한 공청회를 가졌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계획에 중국이 응전할 경우, 트럼프는 추가적으로 200조 원에 달하는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매길 예정임을 밝혔다. 불과 한 달 사이에 판돈이 최대 450조 원 가량 늘어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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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링크

 

미리 결론부터 까놓고 말하겠다. 이렇게 판이 커지면, 중국은 사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왜나하면 보유한 시드머니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 수입액은 500조 원인데 반해, 중국의 대미 수입액은 130조 원 밖에 되지 않는다. 무역전쟁은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싸움이다.

 

단순히 숫자만 미국에게 유리한 건 아니다. 디테일로 들어가서, 교역품목을 살펴보면 미국의 우위는 더욱 극심하게 드러난다. 중국은 미국에 각종 기계품목, 가구, 전자제품 등의 공산품을 주로 수출한 반면, 미국은 중국에 농산물을 주로 수출했다.

 

미중 무역분쟁이 심화되었을 경우미국 기업들은 베트남이나 인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의 인건비는 중진국 수준 이상으로 가파르게 상승해 왔음에도 다국적 기업들이 중국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세계의 공장 중국 내의 거대한 서플라이체인이 주는 비용절감 효과와 (아프리카의 인건비가 아무리 싸더라도, 미국기업들이 공장을 안 짓는 이유는, 부품들을 각 대륙에서 아프리카로 들여와서 조립하고, 다시 미국까지 수출하는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미래 시장에 대한 접근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에서 나서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이에 따른 분쟁으로 반중국 정서가 고조된다면? 이는 다국적 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 속도를 더욱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국이 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산물들은 그 공급처를 바꾸기가 힘들다. 경제성장으로 급격히 늘어난 육류 소비를 지탱하기 위해선, 사료가 되는 엄청난 양의 대두와 옥수수가 필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농산물을 경작할 만한 농지가 중국엔 없다는 점이다. 중국 내 대두 생산량은 연간 1400만 톤인데, 현재 그 7배를 미국에서 들여오고 있다. 이걸 전부 국산화하려면 중국 전체 농업용지의 20~40%가량을 다 갈아엎고 대두농사만 지어야 된다. 무역분쟁이 심화되더라도, 중국은 계속 미국산 농산품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까지 정리를 해보자.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는다면, 그 전쟁의 승자는 미국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판돈이 될 수입액의 규모가 다른 데다가 중국은 관세를 내고서라도 미국산 농산품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 지도부도 이를 충분히 인지해 왔다고 본다. 그래서, 타협점을 모색해 왔다.

 

대외적으론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과 달리, 미국산 제품의 수입을 늘리는 식의 당근을 제시하면서 극적 타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때 대상이 되었던 품목은 주로 트럼프의 정치적 지지 기반이 되는 지역들의 생산품들이었다. , 한 발 물러나서 트럼프형, 우리가 재선 도울 테니까, 그만하자였다또한, 보복관세를 매길 때도, 역시 트럼프의 지지 기반이 되는 지역들의 생산품을 집중 타격했다. 즉, 중국은 이 무역분쟁을 미국대 중국의 싸움이 아닌, 트럼프 개인 혹은 정권과의 싸움으로 상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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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경제적으로 보면 이러한 중국의 시각이 대체적으로 옳다. 미국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을 때 얻는 경제적 실익은 매우 미미하다. 중국산 공산품에 관세를 부여한다고, 미국으로 이전할 공장은 당장 많지 않다. 일부 고가품의 최종 조립을 미국에서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부품들까지 미국에서 만들 수는 없다.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베트남이나 인도로 바뀔 뿐, 미국 내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리는 없다. 또한, 공장이 미국으로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공장이 과거 디트로이트에서 노동자들이 일일이 나사를 조이던 공장은 아닐 거다. 고도의 자동화 설비가 갖춰져, 고용효과가 크지 않은 자본집약적 공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중국이랑 무역전쟁을 통해 보는 피해는 눈에 띌 것이다. 가령 비행기의 경우, 미국이 생산하는 보잉 안 사고, 유럽산 에어버스 사면 그만이다. 반미정서가 고조되면,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대대적인 미국산 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그들이 먹는 자국산 축산류는 미국산 사료를 먹고, 타는 차는 미국 셰일가스로 굴러가겠지만). 그 피해가 아무리 적다고 해도, 미국이 얻을 실익보다는 훨씬 클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올해 초까지도, 트럼프가 중국 상대로 뻥카를 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반 트럼프 정서가 강한 대학교 교수들은 트럼프가 멍청한 짓을 벌인다고 폄하했고, 각 은행 이코노미스트들도 미국이 무역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기 때문에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모두가 틀렸다. 트럼프는 타협 대신, 50조짜리 관세폭탄을 실제로 날렸고, 200조짜리 추가 계획을 발표했으며, 추가로 200조를 때리겠다고 협박까지 날렸다. 무역전쟁, 그것도 전격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인식이 경제적이 아니라, 국제정치적이란 것을 보여준다. 경제학에서 합리적인 국가는 이익과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역, 즉 윈윈을 추구한다. 내가 50원만 이득을 보고, 상대가 100원의 이득을 보더라도, 내가 이익을 보는 게 확실하다면 중국과 무역을 확대하는 게 경제학적인 사고관점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여기에 국제정치학적 사고를 들여왔다. 국제정치학의 본질은 제로섬, 즉 내가 최대한의 패권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있다. 내가 50원 손해를 보더라도, 내 적이 100원의 손해를 본다면, 더욱이 그 적이 잠재적으로 나를 위협할 수 있는 2인자라면, 지금 싸우는 게 이득이라고 본 것이다.

 

즉, 트럼프는 단순히 중국과의 무역분쟁을 통해 좀 더 나은 교역조건을 얻기 위한 협상을 하는 게 아니라, 중국을 힘의 논리로 찍어 누르기 위한 전쟁을 벌이려는 것이다.

 

이걸 좀 더 자세히 설명하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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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국이 만든 달러라는 시스템

 

지금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라는 패권국이 만든 시스템 속에 살고 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미국이 찍어내는 달러에 있다. 달러는 전 세계 어디에서나 결제통화로서 무역과 거래에 널리 쓰인다. 특히, 원유 거래의 대부분은 달러로만 결제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쓸모 있고, 널리 유통되는 통화는 단연 달러이다. 또한, 달러를 쓰는 모든 국가의 금융산업망이 미국을 거쳐 연결된단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세계 경제의 중심이 뉴욕에 있고, 미국이 적대시하는 국가 및 단체는, 시스템 내의 어떠한 은행에 돈을 예치할 수도 없고, 다른 기업 및 국가와의 거래조차 제한받을 수 있다.

 

달러 시스템을 지탱하는 건 미국의 군사력이다. 항모전단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막강한 해군력은 세계 물류의 90%를 차지하는 해상 물류를 보호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는 더 이상 화물을 실은 상선이 A 항구에서 B항구까지 이동하는데,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국가단위의 호위선단을 꾸리지 않아도 되었다중간에 해적을 만나거나, 사략선을 운영할 만한 막장인 국가가 나타나면 미군이 나서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는 미국이 제공하는 군사 인프라 덕에 자유로운 해상 무역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미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미국이 발행하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해 온 셈이다.

 

이 시스템을 좀 삐딱하게 보면, 과거 제국이 식민지를 경영하던 원리를 금융으로 이름만 바꾼 것일 수 있고, 반대로 긍정적으로 보면, 역사상 가장 합리적인 계약관계에 기반한 세계질서다. 여기서는 이 시스템 자체에 대한 가치판단은 보류하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강제적이든 자발적이든, 이 시스템 속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참여중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짓고 딜러도 겸하는 이 하우스(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나라들은 플레이어로 참여한다.

 

이들이 하는 게임의 이름을 무역이라고 할 때, 이 하우스에는 특히 남들보다 게임을 잘하는 무역 국가들이 있다. 일본, 독일 등이 대표적이고, 우리나라도 그 중 하나이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무역게임에서 흑자, 즉 다른 나라들로부터 돈을 많이 따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하우스에서 쓰이는 칩, 그러니까 달러를 많이 가지고 있다.

 

문제는, 무역이라는 게임의 룰이 좀 특이하단 점이다. 각 나라에는 고유의 통화가 있는데, 이 통화의 값어치가 올라가면, 무역 게임에서 돈을 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무역 국가 일수록 통화의 값어치를 낮게 유지하기 위한 꼼수를 쓴다. 독일 같은 경우에는 유로존이라는 형태의 거대한 경제 공동체를 만든 뒤, 평균치를 깍아먹는 그리스나 이태리, 동유럽국가들이랑 같은 통화를 써서, 무역게임에서 지속적으로 돈을 벌어가고 있다.

 

이렇게 머릿수를 꿔 올 수가 없는 일본이나 한국 같은 대부분의 나라는, 외환 보유고라는 이름으로 달러를 쌓아놓고, 이 돈을 다시 미국에다가 빌려준다. , 무역게임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자국 통화로 바꾸지 않는 방식으로(하우스에서 번 칩을 환전하지 않는 셈이다), 통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중이다.

 

하우스의 운영자인 미국은 이 포인트에 주목했다. 아무리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었어도, 지속적으로 이윤을 남길려면 달러를 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적극 이용, 하우스를 짓는 데 들어간 비용, 그리고 운영비까지 뽑아왔다.

 

그 방식이란, 미국이 먼저 나서서 이 무역게임에서 적극적으로 돈을 잃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소련이 붕괴하면서 미국이 절대패권국이 된 이후로 (혹은 전 세계가 미국의 달러 시스템에 편입된 이후), 미국의 무역적자는 매년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 처음에는 일본이, 그 다음엔 독일이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규모의 무역흑자를 거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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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렇게 자발적 호구가 되어주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딜러인 미국이 돈을 잃어준 덕에 더욱 더 많은 국가가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갔고, 이와 비례해서 점점 더 깊숙히 달러 시스템과 국제금융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어 갔다. 소위 미끼 상품인 셈이다.

 

둘째, 돈을 잃어줄 대상을 고를 권리가 상당 부분은 미국에게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만한 국가와는 거래를 늘려줌으로써 우방을 챙겨줄 수 있고, 그 반대의 국가와는 거래를 제한하는 식으로 패널티를 줄 수 있다.

 

셋째, 무역적자의 대부분은 어짜피 다시 미국으로 흡수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무역 국가는 무역흑자를 위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벌어들인 달러를 외환보유고로 보관해야 한다. 이 외환보유고는 미국 정부가 발행한 국채 등을 매입하는데 다시 투입된다. 2018년 기준으로,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무 중 6,294조가 외국 정부 및 기관투자자들에 의해 보유 중이다.

 

넷째, 이렇게 외국 정부가 미국 국채를 사주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매우 낮은 비용만 지불하면 언제든 외부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 미국 정부의 국채금리는 Risk Free Rate로 취급될 정도로, 매우 리스크가 적고, 그만큼 금리도 낮다.

 

다섯째, 미국은 이렇게 쉽고 싸게 빌린 돈을 이용해서 국방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의 예산을 국방비에 배정하고 있으며, 그 액수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이 압도적인 국방력 덕에 미국의 패권국으로서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지고, 미국이 운영하는 달러 시스템의 안정성 또한 보장된다.

 

여섯째, 달러는 미국만 찍어낼 수 있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이 외국에서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하면 외환위기가 닥치지만, 미국은 발권력이 있기 때문에 그럴 걱정이 없다. 돈을 못 갚겠으면 언제든 중앙은행을 통해 돈을 찍어내면 된다.

 

일곱째, 채권자 채무자 관계를 맺음으로써, 채권국가인 독일, 일본과 채무국인 미국 간의 이해관계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당장 빚을 못 갚거나, 돈을 마구 찍어내서 달러가 똥값이 되면, 채권자들이 벌어둔 달러와 채권의 가격 역시도 똥값이 된다. 결국 지금의 달러 시스템 속에서 성공을 거둔 무역 국가들은, 그동안 쌓아온 외환보유고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패권국 미국의 성공을 바랄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이 달러 시스템 내에서 만들어 낸 이윤의 상당 부분은, 금융시장을 거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다국적 기업이 해외에 공장을 지어서 원가를 절감하면, 이렇게 늘어난 이익은 투자자의 몫이 된다. 달러 시스템 덕에 늘어난 교역과 해외생산의 최종 혜택은 결국 자본에게 돌아가는데, 전 세계 최대 자본시장과 이 자본시장에서 돈을 실제로 굴리는 자산운용사들의 대부분이 모두 뉴욕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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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내가 파악하고 있는 현재의 달러 시스템이다폭력과 강압 대신에무역과 거래라는 다소 세련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역대 패권국이 만든 다른 시스템에 비하면참여국들의 이익이 꽤나 잘 담보된 시스템이라고 나 개인적으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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